Maya RAW novel - Chapter 263
263
마야조차도 잔접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무림에서도 극소수의 몇 명만이 이름만 들어봤을 뿐이다. 구성은 어떻게 되고, 목적이 무엇이고, 어떤 무공을 사용하는지…… 알려진 게 전혀 없다.
‘북검문, 남도문, 사부, 유계. 이제는 잔접까지. 혈귀대주 이놈, 뭘 건드린 거야.’
소득은 있다. 잔접에 열두 마리 나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그리고 대화를 이어갈수록 잔접에 대한 정보는 더욱 많이 얻게 될 것이다.
“장강을 빠져나온 지 한참 됐지? 얌전히나 빠져나왔나. 종남파 놈들을 떼로 죽이고 나왔잖아. 한데 왜 아직까지 북검문 무인들이 나타나지 않는 줄 아나?”
“…….”
“한 달 가까운 기간 동안 남무림을 벗어나면서 용케도 사람을 만나지 않았지. 그게 모두 철저한 암로(暗路) 덕분인 줄 아나?”
“뒤를 봐줬다는 말이군.”
“우리가 뒤처리를 말끔히 해주었지. 유계도 마찬가지. 그놈들도 한동안은 자넬 찾아내지 못할 걸세.”
“연자암 비구니를 보낸 것도?”
“내 생각에는 천멸도주쯤이야 옆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것 같은데 떼어놓으라니 낸들 별수있나. 위에서 하는 일인데. 잔접은 오래전부터 자넬 주시했네. 지금도 주시하고 있고. 어떤가? 이제 열두 마리의 나비를 만날 용의가 생겼나?”
“거절하겠소.”
흑조편복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시 생각해 보게. 우린 앞으로도 이런 일을 계속할 걸세. 자네가 백날 무림을 떠돌아봤자 만나는 사람이 없을 거란 뜻이네. 자네의 흔적을 족족 지워 버릴 테니까. 뒤쫓는 자들을 제거해야 한다면 그 또한 해줄 셈이지.”
“고립무원(孤立無援).”
잔접의 세(勢)가 의외로 막강하다.
고립무원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행할 수 있는 집단은 몇 되지 않는다. 북검문이나 남도문 정도는 되어야 시행할 수 있는 계획이다.
정처없이 떠도는 사람을 철저하게 고립시키는 일이 어디 쉬운가. 불쑥 마을로 들어설 수도 있고, 시장바닥을 휘젓고 다닐 수도 있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면 주루나 객잔에서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능력이 되어야만 고립무원을 논할 수 있다.
시장에 가려 하면 시장 사람들을 모두 잠적시켜야 하고, 주루나 객잔에 들를 요량이면 손님을 말끔히 내쫓아야 한다.
더욱 어려운 점은 이 모든 일을 언제나 한 발 앞서서 시도해야 한다는 거다. 뭘 할지를 예측하고 주변을 정리해 놓으려니 얼마나 일이 많을까.
당하는 사람은 무척 괴롭다.
외롭고, 쓸쓸해진다. 피곤해진다. 정신이 황폐해진다. 고독을 이겨낼 자신이 없으면 지금 손들어야 한다.
흑조편복은 잔접을 말했고, 고립무원도 말했다.
아마도 가능한 일일 게다.
“날 만나고자 하는 이유가 뭐요?”
흑조편복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자네와 난 별로 좋은 관계가 아니지. 한데도 잔접에서는 날 보냈네. 왜 그런 줄 아나?”
“…….”
“내가 드러난 인물이라서 그런 거지. 이미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니 죽어도 손해 볼 것 없다는 거야. 내 말이 통하면 다행이지만 통하지 않으면…… 고립무원은 나부터 시작될 걸세. 나와 이 객잔 주인이 첫 번째 제거 대상이 되겠지. 그리고 이후, 자넨 아무도 만나지 못할 거란 걸 장담하네.”
마야는 술잔에 술을 따랐다.
또르륵!
맑은 액체가 청아한 소리와 함께 흘러나온다.
“장담하지 마시오.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어찌 알고.”
“하나만 말해주겠네. 고립무원은 잔접이 즐겨 사용하는 방책 중에 하나란 걸. 의심하지 말란 소리네.”
“가서 말하시오. 고립무원…… 해보시오. 아! 행선지까지 말해주지. 난 북검문으로 갈 생각이오. 만날 사람은 북검문주. 북검문주에게 독대(獨對)를 청할 생각인데, 만나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
이번에는 흑조편복이 말을 하지 못했다.
잔접의 힘이 아무리 막강해도 북검문까지 초토화시킬 수는 없다.
마야가 정히 북검문주를 만나러 간다면 고립무원이 깨지는 건 시간문제다.
“정말 일을 복잡하게 만들 셈인가?”
어떻게 할까? 누구든 부딪쳐 오기를 바랐다. 마야가 콘과 수의 알맹이를 쏙 빼먹기를 바란 사람이 나타나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들의 첫 번째 움직임은 공격보다는 회유가 될 것이란 것도 확신했다.
지금이라도 마야가 제이성으로 돌아가서 콘과 수의 마지막 정혈을 뽑아먹는다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된 것이니까.
제일 먼저 부딪쳐 온 것은 유계.
한데 그들은 멸신구관과는 연관이 없다. 이 음모 어쩌고 하는 것과도 상관없다.
그들이 마야를 데려가고자 했던 것은 일견후즉파라는 능력 때문이다. 순수하게 그들의 마공을 보완하고 발전시킬 생각에서 마야를 필요로 했다.
그걸 거절했으니 서슴없이 죽이려 든 게다.
그럼 만사무불통지의 말대로라면 스승인 마군이 달라붙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제이성으로 돌아가게 타이르던가, 협박하든가 뭔 짓이든 해야 한다.
잔접이라…….
잔접에 스승이 있는 것일까? 열두 마리의 나비 중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가?
이런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따라가 만난다 한다.
북검문주를 만나러 가겠다는 말은 허장성세(虛張聲勢)다. 고립무원을 펼칠 수는 있어도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한 말일 뿐, 북검문주를 만날 생각은 없다. 북검문주와는 일면식도 없는데 그를 만나서 무슨 말을 주고받겠는가.
“좋소.”
마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네.”
흑조편복은 술병을 끌어다 입에 털어 넣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술을 주고받았다.
서로 이토록 할 말이 없는 사이인 줄은 이번에야 알았다.
술을 두 개나 더 내왔다. 그리고 내온 술도 거의 바닥이 났다.
이번에는 더 시키지 않았다. 마야도 흑조편복도 일어서야 할 때임을 알고 있었다.
“오는군.”
흑조편복이 지나가는 바람처럼 흘려 말했다.
“그놈…… 잘 있는가?”
사망혈인 이야기다. 흑조편복에게 부정(父情)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만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잘 있을 것이오.”
“할 수 있다면 잘 보살펴 주게.”
“무림에서 누가 보살펴 줄 수 있고, 보살핌을 받겠소. 제 운수대로 사는 거지요.”
삐걱!
문이 열리고 허리에 검을 찬 무인 다섯 명이 들어섰다.
“가보게.”
흑조편복이 그들을 힐끔 쳐다본 후 다시 술병으로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마야는 흑조편복을 쳐다봤다.
‘이 사람…… 끝이야.’
마야가 무인들을 따라 나와 가마에 올라탈 즈음, 흑조편복은 술병을 들어 마지막 술을 마시고 있었다.
주루 주인이 행주로 손을 닦으며 다가가 마야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서로 아는 사이인 듯 즐거운 표정으로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았다.
주루 주인을 처음 본 순간부터 평범한 노인은 아니다 싶었는데…….
노인이 무공을 모르는 것을 확실하다. 무공을 알았다면 마야의 눈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무공을 전혀 모르는 범인(凡人)으로서 무림에 한쪽 발을 담고 살아온 것 같다.
그렇기 살기는 쉽지 않다.
먹이사슬 최하층에서 한평생을 살기 위해서는 목숨을 내걸 만한 충성심이 필요하다.
주루 노인과 흑조편복은 사이좋게 술잔을 높이 들고 건배했다.
머리를 먼저 떨군 건 주루 노인이다. 노인은 아주 편안한 얼굴로 탁자에 얼굴을 묻었다. 흑조편복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긴 숨을 몇 번 몰아쉬더니 고개를 뒤로 젖히며 축 늘어졌다.
한때는 살수지왕(殺手之王)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흑조편복치고는 그답지 못한 죽음이었다.
“얼마나 가야 하나?”
무인들은 입이라도 봉해져 있는 듯 일절 말이 없었다.
네 명이 가마를 들고, 한 명이 앞장서서 길을 인도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2
술 한 병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는데 몇 사람의 목숨이 필요할까? 목숨을 걸고 술을 사 올 사람이나 있을까? 옆집에 가서 말 몇 마디 전하는 간단한 행위에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이 얼마나 살기 힘든 세상인가.
그런 사람들이 있다.
주루 주인은 아무 죄도 없다. 단지 마야에게 술을 팔았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내놨다. 흑조편복도 그렇다. 마야에게 잔접으로 가라는 말을 전했으니 죽어야 한다.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법이란 말인가.
잔접이란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을 때, 흑조편복은 자유로웠다. 마음껏 웃고 떠들었으며, 행동에도 제한이 없었다. 남무림으로, 남만으로, 그리고 다시 장강을 넘어 여기까지 거침없이 오갔다.
그런 그가 잔접이란 말을 입에 담는 순간, 말을 전하는 간단한 심부름 하나를 마치고 목숨을 끊었다.
잔접, 규율 면에서는 유계보다도 더 엄격한 곳이다.
잔접에 비하면 유계는 참 자유로운 편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자들만 보고 단정하는 건 무리지만 들고 남에 있어서 자유롭게 보이는 건 사실이다.
주루에서 겨우 이삼 리 정도 왔을 때, 가마가 멈췄다.
무인들은 정말 말이 없었다.
그들은 길가 풀숲을 뒤져 미리 준비해 놓은 물건을 끄집어냈다.
광목이 모두 다섯 조각, 기다란 나무 막대기가 여덟 개.
무인 두 명이 익숙한 솜씨로 나무 막대기를 들어서 가마 네 귀퉁이에 꽂았다. 다른 무인 두 명은 나무 막대기가 꽂히기를 기다렸다가 광목으로 사방을 둘러쳤다.
앞과 뒤가 막히고, 좌우도 가려졌다. 나무 막대기 네 개는 천장에 묶였고, 그곳에도 광목이 덮어졌다.
마야는 그들이 하는 양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이들…… 참으로 용의주도한 자들이다.
가마를 가린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머릿결을 스치는 바람결에 나무 타는 냄새가 섞여 있어서 하는 말이다.
잔접은 이들 외에 또 다른 자를 파견했다.
흑조편복이 말한 일명 ‘흔적을 지우는 자들’이다.
그들은 주루를 불살랐다. 어설프게 태우는 것이 아니라 누가 와서 뒤져도 흔적 하나 찾지 못하게끔 완전히 재만 남게 태웠다.
그 속에 흑조편복의 시신도 들어 있을 게다. 주루 노인의 육신도 타는 불과 함께 소멸되었으리라.
여기까지 오는 길에 만난 사람이 없나 돌이켜 봤다.
있다면 그 사람 역시 죽을 테니까.
다행히 없다. 온 거리가 얼마 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이들의 행보가 극히 은밀한 영향도 있다.
길을 가는 도중에 만나는 모든 사람이 죽을 게다. 그것도 부시독(腐屍毒)을 사용하여 녹여 버리거나 불에 태워져 재만 남겨질 게다.
이 세상에서 감쪽같이 증발해 버리는 것이다.
잔접이 중원을 암약하면서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까닭이 이것이었던가.
들썩! 가마가 들려졌다.
“이봐, 잠 좀 자야 되지 않나? 밤이 늦은 것 같은데.”
대답은 없었다. 대신 누군가가 나무 기둥을 탁 쳤다.
“여기서 자란 말이야?”
탁!
“푹신한 침상 정도는 내줘야 할 것 아닌가.”
탁탁!
이들의 대화 방법을 이제야 알았다.
“가는 곳이 꽤 먼 모양이군. 내일이면 도착하겠나?”
탁탁!
“아냐? 그럼 내일 모레?”
탁탁탁!
‘세 번?’
“묻지 말란 소린가?”
탁!
묻지 않았다. 물어도 대답해 줄 사람들이 아니다. 어디로 가는지, 며칠이나 걸리는지…… 제반 모든 사항을 이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편히 쉬면 된다.
배가 고프다. 식사 때가 훨씬 지난 것 같다.
“먹을 건 없나?”
광목이 들썩이며 건포와 떡이 들이밀어졌다.
가마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라는 소리다.
“배설은 어디서 하나?”
요강이 들어왔다.
이들은 갖지 못한 것이 없다. 웬만한 세간은 전부 지니고 다니는 게 아닐까?
광목에 가려 있지만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알 수 있다. 밤이 어느 정도 깊었는지도 달빛을 보면 어림짐작이 된다.
쉬익! 쉬이익!
가마는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렸다.
달리면서 교대하는 솜씨가 귀신같다. 교대는 반 시진 간격으로 이뤄지는데, 달리다 보면 교대할 무인들이 나타나 나란히 달린다. 서로의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다. 달리는 속도가 같고, 호흡이 맞았다 싶으면 비로소 가마를 넘겨준다.
보통 사람이 가마를 탔다면 교대가 이루어져도 알지 못했으리라. 흔들림이 똑같기 때문에 교대가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을 게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흘렀다.
낮은 밤으로 바뀌고, 날이 밝아 새벽이 온다.
달리는 사람도 피곤하지만 가마를 타고 있는 사람도 지친다.
‘사람을 달달 볶는 건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오늘 하루쯤 더 견디면 되겠군.’
마야는 무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들은 잔접을 만나러 간다. 하지만 만나는 장소는 흑조편복이 죽은 주루에서 그리 멀지 않다. 여유롭게 걸어도 한 시진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다.
아! 물론 자세히 아는 건 아니다. 짐작이 그렇다는 거다.
그럼 이들이 밤낮으로 달리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마야를 지치게 만들려는 속셈이다.
달리는 자들은 결코 지치지 않는다. 푹 쉬었다가 한 시진만 달리면 되기 때문에 여유까지 부릴 수 있다.
마야도 마음만 편히 먹으면 지치지 않는다. 하나 가마 안에서 용변까지 봐야 하는 수치심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다. 또한 며칠 동안이나 씻지 못해서 꼬질꼬질해진 행색은 심리적인 위축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개방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문제가 된다.
과연 잔접이 이토록 얕은 수를 쓰는 걸까? 대범한 사람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 버릴 일인데? 그만한 일에 신경 쓰기에는 당면한 사안이 너무 중대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