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66
266
일수가 촌음(寸陰)보다 빨라서 능히 천수(千手)를 상대할 수 있다 한다.
그 요체가 바로 마야, 자신에게 있다.
가마 든 무인과 싸울 때, 무인들은 열일곱 명이나 되고 일시에 폭포수처럼 달려들었다. 천수라고 할 수 있다. 하나 천수는 모두 그의 몸에 미치지 못했다. 그의 몸을 건드리기 전에 촌음 같은 일수가 천수를 갈가리 찢어냈다.
콘은 일수광음파천불을 향해 달리고 있다. 영능이 없는 그가 단지 무공만으로 인세의 모든 속도를 제압하는 경지에 이르려고 한다.
어찌 인간이 그럴 수 있을까?
당연히 없다. 그렇기에 미친 게다.
콘의 종말은 어떨까? 한 가지만은 확신한다. 불행할 것이라고.
수도 마찬가지다.
수는 콘과는 전혀 다른 쪽에서 일수광음파천불에 도전한다.
콘이 육신으로 무지막지하게 치달리고 있다면, 수는 정신을 마비시킨 후에 죽이는 쪽을 택하고 있다.
육체와 정신이다.
그 둘이 합쳐졌을 때, 그들은 나비가 된다.
수는 적멸주가 되고, 콘은 귀적무가 된다.
두 사람은 자신의 비무 상대다. 무공을 수련하기 마련된 도구다. 목각인형(木刻人形)이 아니라 피와 살이 흐르는 도구다.
이 얼마나 치밀한 안배인가.
육신녀 서군봉이 없었다면 수는 탄생하지 못했다. 금연화가 금궁 강화명을 죽이지 않았다면 강금산이 남만까지 쫓아오는 일은 없었을 게다.
무엇보다 혈귀대주가 죽지 않았다면 자신이 나서지도 않았을 게고, 금연화가 남무림에 들어서는 일도 없었다.
모든 게 치밀하게 조종되어 여기까지 왔다.
놀라운 건, 중원 제일의 두뇌라는 만사무불통지조차 이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만사무불통지에게는 멸신구관의 음모를 비틀 힘이 있었다. 삼원로 또한 그런 힘을 구비했다. 한데 그들 모두가 무력하게 물러서고 말았다. 마야가 철저히 짓이겨져 새로운 육신을 얻을 때까지 지켜보기만 했고, 콘이 석상무공을 얻을 때는 멸신구관에 갇혀 꼼짝하지 못했다.
궁왕 강창도는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
제삼무신가는 구린 구석이 많다.
그는 뇌옥에서 탈출한 자신을 화살 한 대로 쏘아 죽일 수 있었는데, 놓아주었다. 당시는 진정한 무인이기에 진정한 싸움만 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구리다.
금궁 강화명의 죽음도 석연치 않다.
금연화의 무공이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은 사실이다. 뇌옥에 갇혀 있으면서 자하쌍구검, 백형검법을 완벽히 습득했다. 자하문주조차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높은 경지를 일궈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궁왕의 지도를 손수 받은 금궁 강화명이 풋내기 같은 여자에게 죽을 수 있을까?
당시는 금연화가 자랑스러웠지만…… 만약 금궁의 내공을 절반쯤 깎아낸 상태라면 어떨까? 구리다. 구린 냄새가 풍긴다.
그날, 금궁 강화명은 죽음을 각오한 상태였거나 싸움 도중에 적멸주를 얻어맞았을 공산이 크다. 나비가 적멸주를 발호했다면 자신조차도 감지해 내지 못했을 테니까.
어쨌든 나비가 뒤를 계속 따라다닌 건 확실한데…….
소립파는 일어서서 산을 타기 시작했다.
산속에서나, 세상에서나 등불 하나 없이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산에서 나흘을 더 보냈다.
토끼도 잡아먹고, 새도 잡아먹으며 허기를 면했다.
무인이라면 산이라 해도 굶어 죽는 일은 없을 게다.
마야는 무공을 사용하여 산짐승을 잡았다. 적멸주로 움직임을 잠재워 놓고 느긋하게 돌팔매질을 했다.
적멸주나 마령음이 살아 있는 동물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야만 했다.
잠자리는 아무 곳이나 좋았다. 아침저녁으로 싸늘하기는 하지만 아직 춥지는 않다.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몰골은 거지나 다름없었다.
“아침부터 재수없게!”
객잔 안으로 들어서려던 그는 점소이에게 앞을 떡 가로막혔다.
소립파의 입술이 살짝 비틀렸다.
그 순간, 점소이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냥 굳기만 한 게 아니다.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어댔고, 소변이 흘러나와 바지를 적셨다.
소립파는 안으로 들어섰다.
염라대왕을 만난 것처럼 무서워하며 쩔쩔매는 점소이가 가로막을 리 없었다.
범인에게까지 적멸주를 사용한 건 너무한 건가?
아니다. 시간이 없다. 짧은 시간에 나비의 경지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부단히 수련을 반복해야 하고, 살아 있는 인간에게 사용하는 것처럼 효과적인 게 없다.
적멸주를 당한 사람은 무서워할 뿐이다. 심할 경우에는 밤에 잠을 자다가 가위에 눌릴 수도 있다. 하나 그렇다고 죽지는 않는다. 마음에 병을 얻지도 않는다. 하루나 이틀쯤 지나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던 인간이 지나갔다는 사실조차 망각하리라.
그렇다고 사용하는 쪽에서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다. 평소 이야기를 나누듯이 속으로 몇 마디 중얼거릴 뿐이다. 중얼거림이 마땅치 않으면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괴성을 지르면 되는데 무슨 손해가 있으랴.
마음껏 사용해도 무방하다. 무서운 인간이 되고 싶으면, 인간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싶으면.
소립파는 안으로 들어서자 대뜸 주인 앞으로 갔다.
“아침부터 재수…… 으!”
객잔 주인도 마찬가지다. 점소이처럼 부들부들 떨면서 말을 잊었다. 평범한 얼굴, 평범한 몸을 보았을 뿐인데 천하에 다시없는 파락호를 만났을 때처럼 눈치를 살폈다.
“방 있나?”
“이, 있습니다!”
“목욕 좀 했으면 좋겠는데.”
“바, 바로 준비합죠!”
“기왕이면 새 옷도 준비해 주고.”
자신이 봐도 구질구질하다. 칠 주야나 산에서 먹고 자고 했으니 보는 사람마다 인상을 찡그리는 건 당연하다.
“그러무닙쇼.”
“방은?”
“바, 바로 안내를…… 야! 뭐 해! 빨리 방 안내…… 아니, 아니. 제가 안내해 드립죠. 이층으로.”
적멸주의 힘은 놀라웠다. 적멸주를 사용하면 할수록 기파로 타인의 뇌를 건드려서 공포를 이끌어내는 속도가 빨라졌다. 위력도 강했다. 처음 만난 사람은 몸을 움찔하는 정도였는데, 점소이나 객잔 주인은 사신(死神)을 대하는 것처럼 쩔쩔맨다.
“참! 이곳이 하오문 분타 맞나?”
이층 계단을 밟아 올라가던 객잔 주인이 멈칫했다.
이 순간, 그는 많은 생각이 교차하고 있을 게다.
이자는 누구인가? 좋은 목적으로 온 자인가, 아닌가? 수긍해야 하나? 그래서 싸움이 벌어지면 어찌하나? 강렬한 마기(魔氣)로 보니 상대도 안 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도주하기도 마땅찮고. 제길! 오늘 아침부터 재수없게 왜 이러지.
소립파는 피식 웃으며 꽁꽁 얼어붙은 객잔 주인을 밀치고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분타가 맞다면 지필묵을 가져와. 문주에게 전할 말이 있으니까. 요즘 건곤사괴는 어디 있어?”
“거, 건곤사괴님을 아십니까?”
건곤사괴는 하오문주의 지척에서 떠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아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오문주를 아주 잘 아는 지인은 안다. 또 북검문 천비대도 안다.
“건곤사괴, 어디 있냐니까!”
“도, 동정호! 동정호에 문주님과 함께…….”
하오문이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당분간 금적금노와 함께 동정호의 상권을 휘어잡는 데 주력할 게다.
그 일은 소중하다. 금적금노의 평생 염원이 담긴 일이기도 하다. 하나 지금은 그보다 더 중한 일이 생겼다.
‘나 좀 도와줘야겠어.’
2
보보혈투(步步血鬪).
천멸도주는 정신없이 밀려오는 공세를 막아내느라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다.
나타나는 자들은 하나같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강자들.
무당파 장문인에게만 전해지는 일인비전의 무공, 무당검법십삼세가 아니었다면 진작 요절났을 판이다.
“제길! 미운 털이 박혀도 단단히 박혔군.”
천멸도주는 백포를 꺼내 가슴을 감쌌다.
방금 전, 한 명을 저승으로 보냈다. 그는 난화도법(亂花刀法)을 구사했는데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매서웠다.
사실 천멸도주에게 절학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무당검법심삽세가 추구하는 게 무엇인가.
검황여기인지체일부(劍恍如其人肢體一部), 검을 인간 사지의 일부처럼 사용하라. 신검합일(身劍合一)이다. 만류귀종(萬流歸宗)이다. 무형검(無形劍), 무형신(無形身). 검이 몸에 녹아들어 보이지 않는 경지를 추구한다.
자연히 낯선 무공을 접해도 마치 오래전부터 수련했던 무공인 양 친숙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난화도법도 그랬다. 분명히 처음 본 도법인데 낯설지가 않았다. 난화도법이 그려내는 궤적은 자신도 한두 번쯤은 그려봤었다.
그는 상대하기 쉬워야 마땅하다. 눈에 익은 무공을 전개해 온 만큼 일초에 승부를 냈어야 한다.
한데 그러지 못했다. 고전(苦戰)했고, 가슴까지 베였다.
그는 숙련도가 남달랐다. 무당검법십삼세가 추구하는 검황여기인지체일부가 그의 도에서 나타났다.
아는 무공을 사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파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같은 무공을 배운 사형제 간에 비무를 해도 승부가 나듯이 자신의 무공을 얼마나 수련했느냐가 승패를 좌우한다.
결국 죽이기는 했다. 가슴이 베이고, 등이 베이고, 허벅지가 베인 끝에 간신히 죽였다.
천멸도주의 옷이나 다름없는 백포는 붉은 피로 물들어갔다.
“쳇! 또야?”
간신히 상처를 수습했을 때,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청년이 다가오는 걸 발견해 냈다.
시선이 허리춤을 훑었다.
병기가 없다. 암기를 사용하거나 권각을 쓰는 자다.
“끄응!”
천멸도주는 검을 들고 일어섰다.
지금 판단을 잘해야 한다. 암기를 쓴다면 검권(劍圈)이 미치기 훨씬 전에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또 권각을 사용하는 자라면 예상보다 두 배는 빠르리라.
“세상에 그렇게 죽일 놈이 없어?”
사내를 쳐다보며 말했다.
연배를 잘못 봤다. 젊은 자라고 생각했는데, 지근거리에서 보니 중년은 훌쩍 넘었다. 활기차고, 탄탄하고, 젊음이 느껴지고…… 몸 관리를 굉장히 잘한 사내다.
“죽이려고 작정했다면 벌써 죽었겠지.”
천멸도주의 입가가 비틀렸다.
난화도법을 사용하는 자까지 여섯 명을 죽였다. 그중 어느 한 명도 녹록한 자가 없었다. 두 명은 정말 힘들었다. 마지막 일격으로 승부가 갈릴 때까지 하늘도 누가 이길지 알지 못했다.
그들이 실수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목적이 있고, 자신은 살기만 하면 되고…… 짐이 없는, 홀가분한 사람이 이득을 본 게 사실이지만 그것조차도 운이지 않은가.
죽은 자는 말이 필요없는 법이다. 더욱이 타인이 죽은 사람을 위해서 해주는 변명은 역겹다. 범인이라면 모를까 무인이라면 죽고 사는 순간 승부가 끝난 거다.
“와!”
검을 겨눴다.
검을 들기가 힘들다. 검을 드는 순간 뼈란 뼈는 모두 어긋나는 것 같은 통증이 치민다.
아무래도 가슴을 제대로 얻어맞은 것 같다. 꼼꼼히 상처를 치료해야 하는데 급하게 금창약만 처발라서 나중에 흉터도 단단히 생길 게다. 썩어 문드러진 곳이 워낙 많아서 새로 생긴 상처 하나쯤은 알아보지도 못하겠지만 말이다.
“상태가 안 좋은데 괜찮나?”
“빌어먹을 놈, 넌 싸움을 말로 하냐?”
“정히 그렇다면.”
쉬익!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내가 돌진해 왔다. 산비탈을 달려오는 멧돼지처럼 다가오는 것만 봐도 숨이 막힌다.
‘권각(拳脚)이야!’
암기일까, 권각일까 아니면 기문병기를 사용하는 자일까.
궁금했다. 한데 권각이다. 달려오는 모양새에서 검창도편(劍槍刀鞭)을 무수하게 뚫어본 경험이 읽힌다.
천멸도주는 검권 안으로 들어서기를 기다렸다. 한데!
쒜에에에에엑!
머리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암기!’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자 방원 일 장 정도를 완벽하게 가릴 만한 세침(細針) 무더기가 구름처럼 피어나 있었다.
“흡!”
급히 신형을 날려 옆으로 튕겨났다.
사내는 거기 있었다. 몸을 피할 곳은 오직 한군데뿐이라는 듯 가는 길목을 가로막았다.
물론 그러리라 생각했다. 신형을 날리기 전에 사내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해서 그에 대한 공격도 준비해 놨다.
쒜엑!
검이 허공을 그었다.
오른손에 든 자검(子劍)이 빙글빙글 작은 원을 그리며 사내의 목을 찔러갔다. 왼손에 든 오검(午劍)은 등 뒤로 감췄다. 사내는 몸을 숙여 자검을 피할 것이다. 그때 오검이 움직인다. 아래에서 위로 쳐 올라가며 머리를 가른다.
사내는 머리를 옆으로 숙였다. 상반신도 머리를 따라 숙여졌다. 그 상태 그대로 상반신이 뒤로 훌떡 넘어갔다.
‘전륜퇴(前輪腿)!’
발이 올라올 게다. 오검을 냈다. 발이 올라오기 전에 허리 어림을 베어내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올라오는 발을 잘라낸다.
과연 사내는 발을 쳐냈다. 천멸도주의 예측대로 허리 어림에서 정확히 오검과 부딪쳤다.
까앙!
다리와 검이 부딪치는 순간, 천멸도주는 득보다 실이 많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망설일 여유가 없다.
쉬익!
그녀는 사내의 다음 공격을 피해 무조건 뒤로 물러섰다.
오검이 손아귀를 찢어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는 것은 물러서고 난 후에서야 깨달았다.
“뭐야?”
“별것 아냐.”
사내는 유들유들 웃으며 다가섰다.
옷 속에 검을 막을 만한 쇠붙이가 들어 있을 게다.
철판은 너무 무겁고, 쇠창살 같은 걸로 교묘하게 엮었지 싶다.
“그래. 별것 아니지.”
천멸도주는 날아가 버린 오검 대신 벽추검을 뽑았다. 오른손에는 자검, 왼손에는 벽추검. 길이와 무게가 맞지 않아서 무정자오검을 쓸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