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71
271
“헉!”
호광 분타주는 들어서다 말고 갑자기 손을 들어 심장을 움켜잡았다.
심장 마비? 비슷하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심장의 기능이 잠시 정지했다가 풀린 느낌이다.
“너…… 뭐냐!”
마야의 입에서 음침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귀신의 울림 같다. 폐허에서 유령이 흐느끼는 것 같다.
하오문주도 깜짝 놀라 마야를 쳐다봤다. 진걸은 벌써 허리를 푹 숙이고 바들바들 떨었다.
“소, 소신…… 개방…… 호광 분타주…… 흑투개라 합니다.”
오결 제자인 흑투개는 자신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는 공손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용건은?”
“하, 하오문주에게 무슨 무공을 전하시는 건지…….”
“알고 싶다?”
“네. 알려주시면…….”
“하오문주하고의 일은 내 일. 가라.”
“네?”
“한 번 더 거처를 침범하면, 죽인다!”
어처구니없게도 호광 분타주는 부들부들 떨었다.
“지금 그 말씀은 개방 전체에게 선전포고를…….”
“말을 끝맺어라.”
“서, 선전포고를 하시는 겁니다.”
“선전포고. 남무림에서 삼천 명을 몰살시킨 나다.”
“아, 알고 있습…… 니다.”
흑투개는 정말 힘들게 말을 이었다. 한마디를 할 때마다 마야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다.
이해할 수 있나? 정도무림 대문파의 교수(敎首)가 머리를 조아리다니, 믿을 수 있나?
“후후후! 똑똑히 들어라. 지금부터 나, 마야는 개방에 선전포고한다. 누구든 내 앞을 가로막는다면 죽인다. 하나 더 알아둘 건……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나보다 더 사나우니 조심해라. 그의 비위까지 건드린다면 개방이 먼저 쳐오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쳐갈 테니까.”
“여, 옆에…… 있는 분이시라면…… 하, 하오문…… 아니, 어떤 분이신지요?”
“가라!”
흑투개는 어깨를 움찔하더니 황급히 물러났다.
“자네, 지금 펼친 수법은?”
“놀랐습니까?”
“…….”
“내가 이렇게 행동하도록 만든 자는 모두 열두 명입니다. 전 한 명만 만났는데 대들 엄두도 못 내게 만들더군요.”
“뭐라고!”
“일초지적(一招之敵)도 되지 않았다, 이겁니다.”
“그럴 수가!”
“전 이제부터 개방의 힘을 빌어서 그자들을 찾아낼 겁니다. 완벽하게. 속옷 색깔이 무엇인지까지도 알아내야죠. 문주께서 해주실 일도 그겁니다.”
“우린 뭘 해야 하나?”
하오문주의 음성이 달라졌다.
자신에게서 공포를 느낀다. 가깝게 대하기는 하지만 전처럼 격의없지는 않다.
아직 많이 미숙하다. 기파를 쏘아내더라고 선별적으로 사람을 가려서 충격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조만간 담장을 넘는 자가 있을 겁니다. 그자를 추격해 주세요. 참고로…… 그자는 귀적무를 절혼마녀보다 훨씬 능숙하게 펼칩니다. 발각되는 날에는 누구도 성치 못할 겁니다. 가능합니까?”
“허허허! 걱정 말게. 하오문에서 못 알아낼 정보는 없으니까.”
하오문주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하오문은 애써서 뒤를 밟지 않는다. 많은 수를 바탕으로 갈 길을 미리 예측하여 사전연락을 취한다. 하오문은 움직인다. 하나 움직이지 않는 남무림 정보망, 남무림 전 인원이 총동원되어 수집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는다.
반신반의(半信半疑), 절반은 믿고 절반은 실패할 것이다.
‘됐어.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돼.’
개방은 더욱 철저한 경계를 펼 것이다. 취월루에서 나가는 사람은 모두 개방의 수색을 받아야만 하리라.
고수도 증파되어 온다.
호광 분타주가 톡톡히 당했으니 장로급 고수들이 파견되어 올 게다. 그리고 그들이라면 나비의 존재를 감지해 낼 게다.
양수겹장이다. 어느 쪽이든 걸려들기만 하면 나비의 존재는 드러날 수밖에 없다.
“진걸, 검을 꺼내.”
진걸이 서둘러 검을 꺼내왔다.
“삼십육분검(三十六分劍)!”
진걸이 촛불을 응시했다. 한참 동안…… 발을 씻길 때처럼 오래도록…… 그러다가 검이 번쩍였다.
“아!”
하오문주가 감탄을 터뜨렸다.
촛불이 정확히 서른여섯 가닥으로 쪼개지고 있었다. 비록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팔십일분검(八十一分劍)이 될 때까지 검을 놓지 마라.”
“아, 알겠습니다.”
진걸이 공손히 대답했다.
공포에 질린 모습은 아니었다.
무서움도 자꾸 접하다 보면 평범해지는 법인가? 아니다. 마야가 그에게 기파를 쏘아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기연을 얻고 있었다.
2
탁자 위에 비급이 놓여 있었다.
창피하게도 겁에 질려서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언뜻 보기에는 옥룡팔장(玉龍八杖)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 같다.
호광 분타주는 자신이 본 것이 옥룡팔장의 비급임이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놈이 하오문주에게 옥룡팔장을 전수해 주고 있었어.”
이건 중차대한 일이다. 옥룡팔장이 새어나갔다면 다른 절초인들 무사할 리 없다.
“가장 발 빠른 놈이 누구지? 아무나 데려와! 빨리!”
그는 급히 총타(總陀)로 보낼 서신을 작성했다.
내용은 세 가지였다. 확실히 마야가 하오문주에게 개방 비기를 전수하고 있다는 것과 마야에게 마야와 버금가는 동조자가 있다는 것, 그자의 정체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주변을 감시하겠다는 것이었다.
“가장 발 빠른 놈으로는…….”
“여기 있어!”
그는 서신을 냅다 내던졌다.
“가장 빨리 총타로 가라. 가서 가급적이면 방주님께 직접 전하고, 여의치 않으면 장로님께라도 전해. 대책이 시급한 사안이니까 꾸물럭거렸다가는 다리몽둥이가 성하지 못할 줄 알아!”
좋게 말해도 될 일인데 신경질적으로 말하고 말았다.
마음이 괜히 조급했다. 조금이라도 일을 지체하는 날에는 마야가 빠져나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다. 그것 때문이 아니다. 호광 분타주나 된다는 사람이 마인 앞에서 숨도 못 쉬었다는 사실이 그를 닦달하고 있다.
그건 두말할 여지도 없이 기도에 눌린 것이다.
창피하지 않은가. 누구에게도, 방주님까지도 어렵지 않게 지내는 터인데 잡아 죽여도 시원치 않을 마인에게 허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말했다니!
밖으로 새어나가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치욕이다.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펴! 취월루에서 빠져나가는 놈들은 개미새끼까지 검문하고, 만약 놓치는 인간이 하나라도 있을 시에는 내 직접 모가지를 부러뜨릴 테니까 그리 알아!”
개방도들은 평소답지 않게 신경질적인 분타주를 보면서 사태가 굉장히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
그들은 평소처럼 히히덕거리지 않고 재빨리 움직였다.
***
“우리 아이들을 도륙한 게 마야, 맞습니다. 그놈이 이백이나 되는 아이들을 죽였어요.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놈이 고계에 머물러 있답니다. 개방에서 들어온 정보이니 정확할 겁니다.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두 개 분타입니다. 장장 두 개 분타가 씨몰살을 당했어요. 이러고도 무림동도 앞에서 구파일방이랍시고 거들먹거릴 수 있겠습니까! 여기 앉아서 탁상공론(卓上空論)이나 할 바에는 나 혼자서라도 가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알아서들 하세요!”
강도는 달랐지만 내용은 한결같았다.
종남파 장문인인 종남 산인(終南山人)은 의자의 팔걸이를 꾹 움켜잡았다.
“급하게 서둘지 맙시다. 이미 개방이 포위를 한 상태이니. 하지만 가만히 있는다는 건 말도 안 되고. 보장각주(保藏閣主), 군문(軍門)에 투신한 제자들을 움직이세요.”
“그럴 필요까지는…….”
“군문이 움직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종남파 문도 중에는 군문에 투신한 문도가 많다. 그들 중에는 장군(將軍)으로 명성이 자자한 사람도 상당수다.
무림에서 종남파의 입김이 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무공이 뒷받침되니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것이지만, 단순히 무공만으로는 천하가 인정하는 강대문파가 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군문이 움직일 경우, 중원은 상당히 소란스러워진다. 천하격란(天下激亂)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종남파의 분노가 어떠한지 만천하에 알리는 계기가 되리라.
“수련원주(修練院主)는 지금 즉시 아이들을 수습해서 떠나세요.”
“얼마나 생각하십니까?”
“칠십이동(七十二洞)이면 괜찮겠어요?”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분노를 토하던 사람들의 얼굴빛이 환해졌다.
칠십이동이면 종남파 전력의 절반에 해당한다. 백오십동 중에서 절반 가까이를 내놓은 것이다.
“저희도 가겠습니다.”
“저도…….”
몇몇 사람이 일어서는 것을 종남 산인이 제지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법이에요. 왜? 수련원주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그럼 맡겨야지요. 원주, 지금 가세요.”
종남파의 결정이 내려졌다.
***
“이놈……!”
천비대주 천수공자(千手公子) 석녕(石寧)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마야는 정말 골치 아픈 존재다. 눈에 띄면, 아니, 소식만 듣고도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데, 정작 죽이기가 쉽지 않다. 상당히 골치 아프다.
놈을 쫓다가 천비대의 보물인 적선서를 무려 다섯 마리나 잃었다.
천비 십조가 총동원되었는데도 놈을 놓쳤다.
추혼검수는 왼팔이 잘렸고, 옥면검수는 책임을 통감하여 왼쪽 눈을 스스로 뽑아버렸다.
천비대에서 놈에게 원한을 가진 자를 추려내자면 끝이 없다.
천랑대와 칠성군도 망신살이 뻗친 건 마찬가지다.
그들 모두가 나서서 천라지망을 형성했지만 결국 뚫리고 말았다. 그 와중에 잃은 수하는 또 얼마나 되는가.
삼뇌(三腦) 중에서는 육능자(六能子)와 만박선생(萬博先生)이 나섰다.
모두 머리에 쥐가 나도록 이 수, 저 수를 써보았지만 지붕 위로 올라간 닭을 쳐다보는 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놈은 잘못 건드려서는 안 된다. 철저히 파악하고 정말로, 정말로 빠져나갈 수 없다 싶을 때 쳐야 한다.
개방? 그들은 큰 낭패를 당할 게다. 마야란 놈을 너무 모르고 있으니까. 종남파? 모르겠다. 그놈들처럼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면 혹 가능할지도.
“잠사검주(潛死劍主)!”
“네!”
허공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잠사검귀(潛死劍鬼)는 준비됐는가?”
“언제라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이를 부드득 가는 소리처럼 들린다.
잠사검주 또한 마야에게 원한이 많다.
잠사검귀를 사대(四隊)나 동원했는데 결국은 개망신을 당했다.
그들이 자신만만하게 펼친 철벽구망진(鐵壁九網陣)은 종이 그물처럼 찢겨 나갔다. 일대와 이대가 몰살당했고, 삼대에서는 다섯 명이나 혈유란 놈에게 죽었다.
마야가 남무림에서 설치고 다니는 동안, 잠사검주는 잃은 수하들을 재정비하는 데 온 힘을 바쳐야 했다.
참으로 그에게는 한 많은 세월이었으리라.
“분노를 억누를 수 있나?”
“염려 마십시오.”
“가라. 가서 지켜봐. 다시 말하지만…… 싸움은 내 명이 떨어진 후다. 알았나?”
“절대…… 먼저 싸우지 않겠습니다.”
스스슷!
잠사검주가 사라졌다.
“몇 명 더 보내야겠어. 잠사검주는 믿음직하긴 한데 분노를 삭이지 못해.”
그는 잠사검주가 반드시 싸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맞아떨어질 게다.
가만히 지켜볼 자가 필요하다.
십조(十助)의 천비대 중에서 누굴 보낼까?
‘요명(窈冥)이 가장 차분하지. 그래, 요명이야.’
모든 사태를 냉정히 지켜볼 눈으로 요명검수(窈冥劍手)가 채택되었다.
마야에게 원한이 있는 자들, 모두 움직이고 있었다.
제9장 살풍경(殺風景) ― 살풍경하다
1
매화방에서 요구하는 건 터무니없었다.
닭, 오리, 돼지, 개…… 하루에 한 번씩 요구하는 게 모두 살아 있는 동물들이었다.
“오늘은 뭐야?”
“거북이.”
“거북이? 그걸 어디서 구해와?”
“몰라. 구해오라니 구해와야지. 알잖아, 루주님 성격.”
“루주님이 몸도 마음도 홀딱 빼앗겼다며?”
“쉿!”
“아! 실수!”
매화방에 적을 둔 사람들은 요즘 두 가지 화젯거리 때문에 심심치 않았다. 매화방에서 어떤 동물을 요구했느냐와 루주와 마야의 염문이 어디까지가 사실이냐는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꼭 루주의 눈총이 아니더라도 매화방 손님이 요구하는 동물은 구해야 했다.
“이걸?”
“해봐.”
“이걸요?”
“…….”
진걸을 검을 들어 올렸다.
거북이를 상대로 팔십일분검을 시전해야 한다.
거북이는 등껍질이 딱딱한 반면, 안은 홍시처럼 물렁거린다. 내리그을 때와 수평으로 비껴칠 때 감각이 달라진다는 소리다.
사아아아앗……!
검이 조용히 움직였다.
그의 검은 언제나 조용하다. 발을 씻길 때처럼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서 움직인다.
검이 허공을 베는 소리? 그에게는 그런 게 없다. 살금살금 다가와 슬그머니 손을 뻗는 것처럼 잔잔하게 움직인다. 그러다가 마지막 타격의 순간에는 번갯불처럼 빨라진다.
쒜에엑!
검이 흘러갔다.
탁! 타탁! 타타탁!
거북이는 요동쳤다. 등껍질이 튀어 오르고, 머리는 완전히 잘리지 않아 덜렁거렸으며, 내장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욕심이 과했다.”
마야가 냉막하게 말했다.
“검을 쓸 때는 자신의 분수를 잘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 이번 검은 기껏해야 사십분검 정도에 만족해야 했는데 억지로 팔십일분검을 끌어올리려니 이 지경이 된 거야. 다시 수련해.”
“넷!”
진걸은 검을 양손으로 쥐며 포권지례(抱拳之禮)를 취했다.
“저 자식, 제법 쓸 만해졌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