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78
278
“전에 그랬지? 잔접이면 살아 있을 게고, 잔접이 아니면 다시 보지 못할 거라고. 살아 있으니 잔접이겠군. 잔접인가?”
“아니라면 믿겠어요?”
“아니. 거짓말을 너무 잘하는 여자라서.”
“전 거짓말한 적 없는데요?”
“후후후!”
마야는 실소를 터뜨렸다.
양리리는 무공을 모르는 여자였다. 한데 지금은 어떤가? 설마 이만한 무공을 지난 일 년 사이에 수련해 냈다고 말하지 않겠지? 신법만 놓고 보더라도 십수 년 동안 무공만 수련해 온 절혼마녀와 필적할 정도인데.
“다시 말하죠. 전 거짓말한 적 없어요.”
순간이다. 마야는 큰 낭패를 당한 사람처럼 미간을 찡그렸다.
“그…… 렇군. 내가 실수했어.”
그렇다. 주담자를 들어 차를 따라준 여인은 양리리가 아니다. 체형과 용모와 성격과 기질이 그녀와 똑같아서 착각했는데, 가까이서 유심히 보니 그녀가 아니다.
“리리가 사랑 운운까지 했나요?”
“그대는?”
“언니예요. 한 호흡 차이로 빨리 나온.”
“쌍둥이.”
닮아도 너무 닮았다. 쌍둥이라도 자라면서 분간이 가능할 정도까지는 달라지는데 양리리와 이 여자는 판에 박은 듯이 닮았다.
마야는 속는 게 아닌가 싶어서 다시 한 번 뚫어지게 쳐다봤다.
같다. 같다. 이마도, 눈썹도, 눈도…… 코도 같다. 얼굴이 같다. 차를 따르면서 부끄러운 듯 살짝 볼을 붉히는 모습까지 똑같다. 염라사자조차 혼동할 정도로 같다.
아니다. 다르다. 왼쪽 귀 밑에 깨알만 한 점이 없다. 머리를 풀어내려 귀를 덮었다면 알아볼 수 없었으리라.
“리리는 잘 있나?”
“잘 있어요.”
“죽지 않았군.”
“걱정했나요?”
“…….”
대화가 끊겼다.
양리리라면 할 말이 많다. 지난 일에 대해서, 잔접에 대해서, 꼭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왔는지만 이야기하더라도 한 시진은 후딱 지나간다.
양리리가 아니고 처음 본 여자라면 할 말이 없다. 아무리 쌍둥이 언니라지만 초면이 아닌가.
“리리는 아무 소리 안 하던데, 호호호! 사랑. 그런 사이였군.”
뭔가 오해하는 말투였다.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그녀와 매듭짓지 못한 말을 먼저 했다.
“가서 잔접에게 말하시오. 내가 어딜 쳐주길 바란다면 직접 와서 말하라고. 난 그만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오.”
“그래요. 알았어요.”
여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뿐만 아니라 볼일을 마쳤으니 가겠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의외다. 이 여인은 뭐 하러 온 것인가?
“훗! 후후후!”
마야는 뭔가 생각난 듯 툴툴 웃었다.
여인은 대화를 나누고자 온 게 아니다. 그의 무공을 떠보려고 온 것이다.
마야는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질문부터 던졌다.
“소저의 무공은 특이하던데, 어떤 방식으로 공격했는지 말해줄 수 있겠소? 적일지도 모를 사람이 이런 걸 묻는다는 게 우습지만 궁금해서 말이오.”
여인은 이번에도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세상에는 하늘이 준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죠. 어떤 사람은 인간의 음역(音域)을 벗어난 소리를 내지를 수 있다죠? 전 영매체(靈媒體)라는 원치 않는 능력을 가졌어요.”
“영매…… 체?”
영혼을 접신하는 무당들에게 종종 있는 현상이라고는 들었다.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마야가 되물어본 것은 단순히 영혼을 접신하는 영매체가 어떻게 무공에 응용되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공격에 사용되다니, 귀신이라도 부린단 말인가?
“영매체라는 게 참 우스워요. 어렸을 적에는 접신하는 게 싫었는데, 내가 싫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거고요. 그걸 자주 하다 보니 몸이 기운에 민감해지더군요.”
알 만하다. 몸이 그 정도로 민감하다면 사람이 내뿜는 기운 정도는 쉽게 느껴졌을 게다. 조금 더 주의를 집중하면 자신의 기와 느낀 기가 동조(同調)하는 현상까지 일어났을 게다.
여기까지는 일반 무당도 가능하다.
무인이 되려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기를 조절하는 능력을 구비하는 것이다. 자신의 기운으로 타인을 살해하는…… 그렇다. 의기살인(意氣殺人)이다.
알 수 없던 공격의 정체는 의기살인이었다. 호랑이를 본 사람이 심장 마비에 걸려 죽은 것처럼…… 그래서 유독 심장만 영향을 받았던 게다.
대답을 듣지 못할 줄 알았는데, 들었다.
의기살인 같은 것은 여자의 말마따나 수련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때문에 네가 알면 어쩌겠냐는 자신감에서 쉽게 말할 수 있었을 게다.
“적멸주가 대단하더군요. 그 정도면 완성인가요?”
여인은 마야가 원하던 질문을 해왔다.
이 질문을 끌어내기 위해 여인의 무공을 물었다. 자신의 무공을 물어오면 예의상 상대의 무공도 물어줘야 되니까.
여인은 질문만 한 게 아니다. 마야가 알고 싶을 걸 자신도 모르게 대답해 줬다.
이 여자는 적멸주에 대해서 잘 모른다. 듣기는 했지만 깊이 있게는 알지 못한다.
이걸 알고 싶었다. 여인이 적멸주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지.
“나도 어느 정도인지 모르오. 알게 되면 알려주시오.”
마야는 의미심장한 소리를 했다.
잔접은 자신에게 적멸주의 진정한 위용을 일깨워 주었다. 멈추지 말고 계속 연구, 발전시키라는 뜻에서.
이제 적멸주를 수련하고 나왔다.
잔접이 궁금해하지 않겠나? 궁금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적멸주와 비교해 보고 싶으리라. 한데 말을 전하러 온 여인은 적멸주를 알지 못한다. 당연히 적멸주에 대한 평가도 못 내린다. 오히려 물어오고 있지 않은가.
어디에선가 잔접이 지켜보고 있을 게다. 적멸주에 대한 평가도 내렸을 게다.
“타장라요거아야불호란타(他張羅要去我也不好 他:그는 가려 하니 나 역시 그를 막기가 곤란하다).”
느닷없이 마야가 엉뚱한 소리를 내뱉었다. 시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고 하고 참으로 모호한 말이다.
여인은 빙긋 웃었다.
말속에 적멸주가 스며 있는 걸 감지해 냈다.
“불양니거요(不讓 去 :가지 말라는 데도), 니우요거( 又要去:기어이 가려 하네).”
마야도 여인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계속 적멸주를 터뜨렸다.
적멸주는 무공을 사용하는 것처럼 힘들지 않기에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사용한다고 기력이 쇠잔해지는 것도 아니다. 말을 오래한 것 정도의 소진만 있을 뿐이다.
방원 십 장 안에는 아무도 없다.
잔접은 정말 오지 않았나?
아니다. 왔다. 그럼 어디에 있는 것일까? 벌써 수위를 파악하고 돌아갔나?
어쨌든 지금은 그 어디에도 없다.
잔접은 다시 온다. 그때는 진짜 목적을 들고 올 게다.
여인이 등을 돌리며 말했다.
“리리에게 전할 말 있나요?”
“어디서나 몸 건강하라고 전해주시오.”
“그것뿐인가요?”
“…….”
“풋! 이 계집애, 짝사랑했네.”
스스슷!
여인은 나타날 때처럼 귀신같은 신법을 펼쳐 사라져 갔다.
제2장 병도저(拼到底) ― 끝까지 싸우다
1
마야는 여주(汝州)까지 나아간 후 이동을 멈췄다.
“시마, 저택을 구입해요.”
“저…… 택씩이나?”
시마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한겨울을 날 곳이니까 괜찮은 곳으로 구해요.”
“제길!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뱃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야 장단을 맞추지.”
시마가 툴툴거렸다.
이건 시마뿐만이 아니라 모두의 불만이었다.
그들은 마야를 위해 목숨도 내놓는다. 한데 사방이 온통 흉흉한 기세로 가득한 적지를 거닐면서 어디로 간다, 무엇을 한다는 정도조차도 말해주지 않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지 않은가.
끓는 가마솥으로 기어들어 간다 해도 따라갈 터이다. 북검문을 치러 가는 중이라고 해도 물러설 사람은 없다. 어차피 언젠가는 철탑거추나 혈유처럼 비명횡사할 목숨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랴.
말해줘도 괜찮다. 정말 괜찮다. 마야여, 말하라.
“기다릴 사람이 있어요.”
“잔접?”
마야는 씩 웃었다.
북검문 한복판에 마인들이 우뚝 서 있다. 싸울 테면 싸우자. 싸우고 싶은 자는 와라.
그는 선전포고라도 하는 듯 당당하다.
한데 아무도 그를 공격하지 못한다.
그들은 몇 명 되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열 명 안짝이다. 하나 그들과 대면한 사람들은 백만대군에 휘감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하나하나가 가공할 무공을 지녔다.
마야와 직접 맞닥뜨리고도 손을 쓰지 못했던 개방 사천왕은 그날 이후로 장로 직을 내놓고 폐관수련(閉關修練) 중이다.
누구도 그들을 탓하지 못했다.
비공식적인 이야기지만 종남파 수련원주 또한 공격을 시도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수련원주는 이천 명 가까운 무인까지 대동했다. 어찌 사천왕만 탓하랴.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멍청이도, 겁쟁이도 아니다.
그들은 마야가 떠나간 후, 자신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꼼꼼히 되돌아봤다.
마야가 사술을 썼다면 어떤 무리(武理)에 근거한 사술인지 알아내야 한다. 범인들이 귀신을 본 것처럼 ‘아구, 무서워’ 하고 물러선다면 무인이랄 수 없다.
“섭혼술(攝魂術)의 일종 아닐까?”
“아주 강력한 섭혼술 같은데…… 어떤 식으로 펼쳤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소문에 의하면 마야는 적멸주와 마령음을 시전할 수 있다네. 만공심안이라는 제삼의 눈도 가지고 있고, 환희마소도 펼칠 수 있다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전설덩어리지.”
“그만하면 천하제일의 섭혼술 대가가 되고도 남지.”
사천왕의 논의는 거기에서 그쳤다.
사실 그친 게 아니다. 장소만 변경했을 뿐, 지금도 마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실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다. 패배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한 번 패배한 무공에 또 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림인들 모두가 사천왕의 의도를 알고 있다.
하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사천왕 같은 고수가 네 명이나 일시에 빠진다면 총전력에 막대한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 개방은 네 장로의 공백을 메우느라 정신없다.
개방의 문제만은 아니다. 어느 문파든 마야를 잘못 건드리면 개방과 같은 경우를 당한다. 그보다 훨씬 심할 수도 있다. 이판사판까지 결전을 벌인다면 문파의 존립까지 영향받는다.
이럴 때 북검문이 나서줘야 한다. 남도문은 뭘 하나? 그들의 존재가 단지 남북무림의 결전에만 한정되어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내 한목숨 죽더라도 이런 꼴은 못 봐!”
무림인들은 분연히 떨치고 일어섰다.
“오늘은 누구야?”
“다담선자라네.”
“선자는 무슨 선자. 듣기로는 강에서 선루를 운영하던 계집이라던데, 그럼 창기 아냐. 선루라면 강바람을 먹고사는 무지막지한 놈들을 상대하는 곳인데, 창기 중에 창기지. 그런 계집이 무공 좀 익혔다고 선자가 되나?”
“자네, 다담선자 못 봤지?”
“왜? 보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하나?”
“보고 난 다음에 지금과 똑같이 말하면 내 오늘 코가 삐뚤어지게 술 한잔 삼세.”
“정말이지?”
“똑같이 말하지 않으면 자네가 사는 걸세.”
“좋아, 좋아. 내 백 번이라도 말해주지. 창기 중에 창기라고 말하면 되는 거지?”
사람들은 날이 밝기 무섭게 싸움 구경을 하려고 송택(宋宅)으로 모여들었다.
송택은 폐허다.
옛적에는 인근 제일의 부호가 머물던 곳이라 크기만 말한다면 장원(莊院)에 버금가지만, 그래서 더 을씨년스럽다. 저택이 너무 크기 때문에 흉기(凶氣)가 가득해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까지 있다.
어쨌든 인근 마을 사람들은 송택을 버려둔 채 접근하지 않는다.
그걸 마인들이 헐값에 구입하여 여기저기 몇 군데 손본 후 거주하고 있다.
끼익!
대문이 열리며 선녀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사뿐사뿐 걸어나왔다.
“다담선자일세.”
“으……! 예쁘다. 어디서 저런 선녀가…….”
“푸하하하! 내 그럴 줄 알았지. 오늘 술은 자네가 사는 걸세.”
“쉿! 조용히 해. 뭐라고 말하고 있잖아. 음성 좀 들어보세.”
다담선자가 송택 앞마당을 사뿐사뿐 거닐며 말했다.
“저희와 결전을 벌이고자 오신 분들, 지금부터 본녀가 상대하겠어요. 전 다담선자라고 해요.”
그녀의 음성은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 영롱했다.
쉬익! 파앗!
“크윽!”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나 손속은 매우 잔인했다.
그녀에게 도전한 무인은 다섯 명. 다섯 명 모두 단 한 수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들은 무공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했다. 초식을 전개하려는 순간 눈앞에서 무언가가 번쩍 빛났고, 누구도 예외없이 비명을 토해내야만 했다.
세상에서 제일 빠른 병기, 추명반 앞에 적수는 없었다.
“그럼 다음 싸움은 미시(未時)부터 시작하겠어요. 미시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분 계신가요?”
점심때가 되자 휴전이 선포되었다.
“사람을 그렇게 죽여놓고 밥이 들어가나?”
“이그! 보는 것만 해도 구역질이 치미는구먼, 무슨 밥이야. 그나저나 정작 힘있는 놈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애꿎은 사람들만 죽어나가는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