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80
280
팟! 파팟! 팟!
곤륜취자가 분신술(分身術)을 펼쳤다. 그의 신형이 갑자기 셋으로 늘어났다. 둘은 앞서서 뛰쳐나오고, 하나는 삼각 축을 형성하며 뒤에서 느긋하게 달려온다.
손오공이라면 모를까 사람이 어찌 분신술을 펼칠 수 있으랴.
이는 환각이다. 환영이다.
‘운룡삼현(雲龍三現)!’
말로만 듣던 운룡대팔식 중 네 번째 신법인 운룡삼현이다.
문제는 어느 신형이 진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신이 말짱한데 환영을 지울 수 없고, 진위 또한 구분할 수 없다.
결국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
쒜에엑! 쒜엑! 쒜에엑!
세 명이 펼쳐 낸 검법은 하나같이 날카로웠다. 빛을 쪼갤 만큼 빨랐다. 검기로 진위를 구분해 내기도 불가능하다.
셋은 모두 진짜다.
마도는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일 대 일로도 빠듯한 싸움. 셋을 모두 상대하려다가는 하나도 막지 못해. 하나만 고른다!’
생각은 곧 결단으로, 결단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쉬익! 파파팟!
신형이 튕겨짐과 동시에 혈염도가 왼쪽에서 달려오는 자를 향해 불을 뿜었다.
가장 쉽게 생각되는 건 삼각 축을 형성하며 뒤에서 달려드는 자가 진짜일 것이라는 거다. 허초 두 개를 띄우고 실초를 전개한다? 이건 검리(劍理)에 맞는다.
그렇기에 아니라고 판단했다.
곤륜취자는 검리를 벗어난 공격을 가할 것이다. 그래서 더 파괴력이 강하고 위협적일 게다.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둘 중에 하나를 골라라.
순전히 도박이다. 왼쪽!
까앙!
판단이 옳았다. 왼쪽에서 쳐오는 자의 검을 쳐냈다. 날카로운 쇳소리도 울렸다. 순간,
쒜엑!
검리에 맞게 공격해 오던 자, 가장 뒤에서 달려오던 자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일검을 쏟아냈다.
“헛!”
마도는 다급한 신음을 토해내며 옆으로 피했다.
너무 급했나? 그는 보법조차 제대로 밟지 못하고 기름 위를 걷듯 마구 뒤뚱거렸다.
팟!
뒤늦게 옆구리 살이 갈라지며 피가 솟구쳤다.
“거긴 지혈하지 않아도 돼!”
이번에는 곤륜취자가 선공을 취해왔다.
몸을 허공에 띄운 채 검을 쏟아낸다. 아니다! 허공에서 계단을 밟듯 조금 더 높이 올라갔다. 한쪽 발로 다른 쪽 발등을 찍어서 재차 신형을 띄운 것에 불과하지만 그 동작이 너무 빨라서 스르륵 솟구친 것처럼 보인다.
‘용비구천(龍飛九天)!’
곤륜취자의 신형이 창천에서 뒤집혔다. 머리는 아래로 다리는 위로, 검을 양손에 잡고 일직선으로 내리꽂힌다.
쒜에엑!
부딪칠 수 없다. 부딪치고 싶지만 그게 바로 곤륜취자가 노리는 점이다.
곤륜취자의 검에는 세 가지 힘이 복합적으로 버무려져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의 전신진기가 일검에 모아졌다. 소위 말해서 젖 먹던 힘까지 모두 깃들어져 있다.
둘째, 그는 양손으로 검을 잡았다.
검 이외에 그가 힘을 쏟을 곳은 없다. 즉, 검과 그의 모든 힘이 하나가 되었다. 이럴 때 신검합일(身劍合一)이라는 말을 쓴다.
맞받아서는 안 된다.
셋째까지 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힘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질수록 가속도가 붙어서 더욱 빨라질 뿐 아니라 타격력도 강해진다. 일 장 위에서 떨어진 손톱만 한 돌멩이는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지만 백 장 위에서 떨어지면 목숨까지 앗아간다.
피할 수 있을까?
쉽게 피해낼 수 있다면 곤륜취자가 온 힘을 기울여 펼치지도 않았을 게다.
피할 수 없다. 어디로 피하든 검이 따라붙는다. 피하려고 할수록 더욱 피할 곳이 없어진다.
‘혈염도는 초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리(武理) 같은 것도 없다. 싸움을 반복하며 스스로 깨달아가는 검이다. 내가 죽으면 대가 끊기고 마는 단맥도(斷脈刀)이며, 철저한 살인도다!’
“타앗!”
마도는 피하지 않고 오히려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처럼 내리꽂히는 검광 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한줄기 핏빛 섬광이 번뜩였다.
파앗!
모든 감각을 버렸다. 눈으로 보는 것, 귀에 들리는 소리, 몸으로 전달되는 육감까지 버렸다. 그러니 죽음에 대한 느낌이라든가 공포 같은 감정이 있을 리 없다.
혈염도가 가고 싶은 대로, 혈염도가 치고 싶은 곳을…….
파파파팟!
검광이 마도의 몸을 훑어 내렸다. 핏빛 혈광이 곤륜취자의 몸을 감쌌다.
쿵! 쿵!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땅 위에 곤두박질쳤다.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가?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다. 두 사람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채 일어서지 못했다.
그래도 산목숨이 있지 않을까? 누군가 이기지 않았을까?
군웅들은 곤륜취자가 이기기를 바랐다. 그가 일어서기를 고대했다. 더불어서 호채마의 눈치도 살폈다.
그들이 개입할 순간이다. 시마 아니면 수검이 마도를 안아 들고 들어갈 것이고, 다른 자가 곤륜취자의 숨을 끊으리라. 그러면 누가 나서서 막아줘야 되는데, 그럴 사람이 있나?
호채마는 뜻밖에도 꼼짝하지 않았다. 서 있는 사람은 선 채로, 앉아 있는 사람은 앉아 있는 채로 쓰러진 두 사람을 지켜봤다.
시간이 왜 이리 늦게 가는가.
군웅들은 촌각이 마치 하루나 된 듯이 길게 느껴졌다.
그때, 곤륜취자가 꿈틀거렸다.
“와아아!”
“와아! 곤륜취자가 이겼다!”
군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시에 고함을 질렀다. 하나 그 함성은 이내 침묵에 밀려나 버렸다.
고요함이 장내를 뒤덮었다.
마도 역시 꿈틀거린다. 손가락, 어깨를 움직이더니 손에 굳게 쥔 혈염도를 지팡이 삼아 땅을 짚고 일어선다.
“좋은…… 승…… 부.”
마도의 입에서 힘들게 새어 나온 소리다.
“무…… 승…… 부. 다음에…… 승부…… 를…… 가려…… 도…… 되겠나?”
곤륜취자가 간신히 일어서며 말했다.
어디를 어떻게 맞았는지 곤륜취자는 비 맞은 참새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다음…… 에…… 꼭…….”
마도가 다음을 기약하며 손짓했다. 가도 좋다고.
그들은 상잔(相殘)했지만 치명적인 일격은 가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정신없이 공격을 가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죽을힘을 다해 몸을 빼냈다.
공격은 성공했으나 완벽하지 못했고, 방어는 불완전했으나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막상막하(莫上莫下)다.
어느 한쪽이라도 밀렸다면 승부는 바로 끝났을 것이다. 초식, 내공, 근성, 경험…… 모든 부분에서 그들은 서로를 넘지 못했다.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정적을 깼다.
군웅들의 예측은 맞았다. 호채마는 기어이 개입했다. 마도가 말을 마치자 수검이 걸어나와 마도를 부축하고는 송택 안으로 들어갔다.
곤륜취자에게 다가선 사람은? 절혼마녀다. 그녀는 날개옷을 입은 선녀처럼 하늘하늘 걸어가 곤륜취자 앞에 섰다.
“당신 목숨은 마도의 것, 언젠간 마도가 당신을 죽일 거예요. 알죠? 쯧! 차라리 다른 사람을 택하지, 하필이면 호채마 중에서도 가장 승부욕이 강한 마도를 골라가지고는.”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바닥에는 오리알처럼 큰 검은 단환(丹丸)이 놓여 있었다.
“뭐…… 요?”
말하는 곤륜취자의 입에서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내장이 다쳤다는 뜻이다. 아니면 심장이 상했거나.
“마야가 만든 환단이에요. 치사하게 독살 같은 건 안 해요. 방금 말했죠? 당신 목숨은 마도의 것이라고. 빈말처럼 들렸어요?”
곤륜취자는 두말 않고 환단을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선 채로 운공조식(運功調息)에 몰입했다.
한쪽에서는 다른 일이 진행되었다.
시마가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더니 장난처럼 말했다.
“난 시마. 좀 치사하긴 하지만 독을 쓸 거야. 어쩔 수 없잖아, 평생 배운 게 이 짓거리밖에 없으니. 얼마 안 있으면 염라대왕이 불러갈 목숨이지만 그때까지도 기다릴 수 없다는 작자는 나와. 와서 내 모가지를 떼어가.”
***
곤륜취자는 검을 지팡이 삼아 힘들게 걸었다.
비틀! 비틀!
한 걸음을 떼어놓고 한참을 쉬었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혈염도는 생명을 갉아먹는 요물이다. 도(刀) 자체가 악마다. 처음 살이 베였을 때는 여느 상처와 다르지 않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아픔이 더해간다.
절혼마녀가 준 환단이 아니었던들 진작 혼절했으리라.
“후욱!”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사제, 힘들어 보이는군.”
그의 앞에 도관을 쓴 도인이 나타났다.
곤륜용자, 현 곤륜파 장문인이다.
“풋! 사제…….”
곤륜취자는 실소를 흘렸다.
“놀라운 일이군. 호채마가 곤륜삼자와 동수(同手)라니. 아! 이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나천대초(羅天大醮:복록을 받고 재앙을 소멸시켜 주기를 대라천에 기원하는 의식)라도 지내야 한단 말인가.”
“사…… 매는?”
“쯧! 세월이 그만큼 지났건만…… 이젠 잊을 만도 하지 않은가.”
“사매…… 는?”
“이곳에 있을 리 없지 않은가.”
“훗! 후훗! 후후훗!”
곤륜취자는 조롱하듯 웃었다.
곤륜용자를 조롱하고, 세상을 조롱하고, 자신을 조롱하고…… 그래서 취할 수밖에 없다는 듯 습관적으로 허리춤을 더듬었다.
술이 없다.
“가리다. 가리다. 취하러…… 취하러…… 가리다.”
곤륜취자가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곤륜용자는 막지 않았다.
그가 멀리 사라졌을 때, 거목 뒤에서 우선(羽扇)을 든 도인이 걸어나왔다.
“상처가 너무 깊어요.”
여인이었다. 단아한 용모를 지닌 중년 여인, 곤륜봉자다.
“사제는 추스를 거야. 후후! 일이 년 있다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툭툭 털고 나타날걸?”
“일어서고 일어서지 못하고는 얼마나 도력(道力)에 맹진했느냐에 달려 있겠죠.”
“사매는 참 무서운 여자야. 도(道)를 보기 시작한 이후, 한 번도 한눈을 팔아본 적이 없어.”
“사형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잘 쓰세요. 이제 호채마의 무공을 확실히 파악했으니 대처 방안도 뚜렷해야 될 거예요.”
“하하! 걱정은…….”
“전 이만 곤륜으로 돌아가겠어요. 사형을 움직여 줬으니 제 역할도 끝났잖아요. 다음에는 이런 수를 쓰지 마세요. 절대로. 아무리 장문인의 명이라고 해도 받지 않겠어요.”
“약속했잖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정말 마지막이에요. 잊지 말아야 할 거예요.”
곤륜봉자는 세상사에 미련이 없는 사람처럼 툴툴 털고 걸어갔다.
곤륜취자는 먼발치에서 곤륜봉자를 배웅했다.
그의 입에서는 연신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허리도 바로 펴지 못하고 구부정하게 굽혀졌다. 무엇보다 온몸을 찢어발기는 듯한 통증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다.
마도를 두고 도광불승참(刀光不僧斬), 도로 베지 못하는 게 없다고 했나? 무적도(無敵刀)라고 했나?
맞다. 그는 무적도다. 그와 싸우는 자는 항시 어딘가는 베인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병기를 들어야 한다.
자신은 좀 크게 다쳤다.
몸이 상하더라도 마도의 목숨을 취하겠다는 결심으로 검을 휘둘렀으니 뼈마디가 가는 사람 같았으면 벌써 죽었을 부상을 당하는 건 자명했다.
그러고도 마도를 베지 못했으니 참으로 미숙한 검이지 않은가. 그런 검으로 어찌 곤륜삼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사형과 사매에게 누만 끼치지 않았나.
그는 고통을 참았다. 꾹 억눌렀다.
사매가 멀어져 간다.
곤륜파(崑崙派)는 그들을 만나게 해주었지만 동시에 갈라놓았다.
곤륜이 지닌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무공, 무공은 세 사람을 하나로 엮어주었다. 또 하나는 도(道), 도인지 개뼈다귀인지 모를 것은 세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곤륜취자는 도가 싫다.
장문인이라는 자리가 뭐 그리 대수롭다고 사랑하는 여인을 내치기까지 하는가. 혼인이 안 되는 것도 개뼈다귀 같은 일이지만, 안 된다면 도복을 훌훌 벗어던지고 속가제자(俗家弟子)가 되면 될 것을. 그랬다면 사랑하는 여인을 내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여인도 그렇다. 자신을 내친 자가 장문인으로 있는데 뭐가 좋다고 밥을 얻어먹는가. 버림받은 마음으로 버린 자 밑에서 도가 닦아지는가. 신선이라도 된다던가.
하기는 자신 역시 그런 여자가 혹여 눈길을 보내주지 않을까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곤륜을 떠나지 못했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제길! 곤륜까지…… 가지 못하겠군. 그래도 사형…… 사매…… 크윽! 마도 이놈, 좀 살살할 것이지 꽤 아프게 베었어. 시신이 눈에 띄는…… 추잡한 꼴은 면해야겠지.’
곤륜취자는 살아온 삶답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쓸쓸히 죽어갈 생각을 했다. 한데,
“누…… 구냐!”
그의 입에서 힘은 없지만 아직 강기(剛氣)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음성이 터졌다.
사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형도 어디론가 가버렸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소리를 빽빽 질러도 달려올 사람이 없다.
“후후! 후후후! 그래, 그래야지.”
그는 나타난 사람을 보며 툴툴 웃었다.
언장은마, 땅속의 두더지가 자신 앞에서 느물느물 웃고 있다.
역시 마인이다. 마인이니 이러는 것이 당연하다. 상처 입은 맹수를 산으로 돌려보낼 놈들이 아니란 것을.
그는 검을 고쳐 잡았다.
상처는 심하지만 아직 일검을 날릴 기력은 있다. 이검까지는 자신하지 못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