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82
282
“흉흉하죠. 말해서 무엇 합니까? 이럴 바에는 차라리 우리끼리라도 마야를 칠 걸 그랬다며 분기가 대단합니다.”
“안휘(安徽)도 마찬가지겠죠?”
안휘에서 온 사람, 남궁세가(南宮世家)의 가인(家人)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우리 서로 눈치 보지 맙시다. 이번 기회에…….”
그가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이다. 낭랑한 웃음소리가 천장에서 들려왔다.
“하하하! 하하하하!”
일순, 머리를 맞댔던 열두 명은 용수철처럼 튕겨지며 천장을 향해 쏘아갔다.
파앗! 파파팟! 우두둑! 우직끈!
웃음소리가 들린 곳은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
열두 명이 모인 곳은 관제묘(關帝廟)다. 아주 은밀히…… 이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삼대가문과 이제 일어난 신흥가문이나 무공이나 세가 구파일방에 못지않은 아홉 가문이 모였다.
한데 불청객이 나타났다.
죽여야 한다!
그들은 불청객의 흔적을 찾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놀라운 자다. 열두 명의 합공을 유유히 피해냈고, 모습까지 감춰 버렸다.
대체 어떤 자가 이런 무공을 펼칠 수 있을까?
생각할 것도 없다. 남도문이다. 남도문도 중에서도 어리바리한 놈은 아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철궁대주(鐵弓隊主)나 형옥대주(刑獄隊主) 정도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노는 자다.
그들은 서로 눈짓으로 물었다.
‘놈의 흔적을 발견했소?’
‘귀신이 곡할 일, 어디로 사라진 거지?’
순간 허공을 찢어발기는 파공음이 관제묘 밖에서 터져 나왔다.
패애앵! 꽈쾅!
파공음은 흙담을 간단히 뚫고 들어왔다.
“커억!”
비명 소리가 너무도 간단히 토해졌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치고 무공에 자신없는 사람은 없다. 나름대로는 일가를 이뤘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있다.
한데 흙담을 부숴 버리면서 강렬하게 쏘아져 온 파공음에 속절없이 목숨을 빼앗겼다.
“은형시(隱形矢)!”
광동진가에서 온 사람이 죽은 자의 가슴에 꽂힌 화살을 보았다.
보통 사람은 들기도 벅찰 만큼 무거워 보이는 화살이다. 촉도 대도 모두 쇠로 만들어졌으며, 굵기가 능히 엄지손가락만 하다.
이런 화살은 세상천지에 단 하나뿐이다.
“궁왕이?”
“아니, 아냐. 웃음소리가 젊었어!”
“그렇군! 독궁(獨弓) 강경승(薑敬勝)!”
사람들은 비로소 화살의 주인을 추측해 냈다.
관제묘 밖에서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버님께서 훈계하는 의미로 한 사람의 목숨만 가져오라 하셔서 그리했소. 불만이 있다면 계속해도 좋소.”
살아남은 열한 명은 꿈쩍도 하지 못했다.
은형시에 대해서 너무 잘 안다. 적을 향해서 날아갈 때, 이보다 든든한 병기는 없었다.
하물며 독궁 강경승은 어둠 속에 있다. 자신들은 그를 보지 못하는데, 그는 자신들을 환히 꿰뚫어 본다.
손끝 하나라도 잘못 움직이면 당장 은형시가 날아올 게 뻔하다.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다니! 동도(同道)를 말 한마디 들어보지 않고 죽일 수 있단 말이오!”
남궁세가에서 온 가인이 치를 떨며 말했다.
“그대들이 이곳에 모인 뜻을 알고 있는데 말은 들어서 뭐 하나. 눈 감고 아웅하지 맙시다. 당신들은 보내주겠소. 돌아가서 가주께 전하시오. 현재는 각자의 목소리를 낼 때가 아니다. 지금까지 남도문에 보내온 전폭적인 지지를 일 년만 더 보내달라. 꼭 이대로 전하시오.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이니.”
“일 년? 일 년이라 했소?”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이오.”
“일 년 동안 뭘 하겠다는 것이오? 설마 남북전쟁을 끝내기라도 하겠단 말이오? 눈 감고 아웅은 궁왕이 하는 것 같소만.”
사천당문에서 온 사람이 말했다.
누가 생각해도 일 년이란 기간 동안에는 어떤 일도 매듭지어지지 않는다.
남북전쟁? 장장 삼십 년을 끌어온 싸움이다. 아직도 싸우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죽는다. 어느 한쪽이 기우는 싸움도 아니다. 힘의 균형이 너무 팽팽해서 밀고 밀리지도 않는다. 치고받고 싸우고는 있지만 제자리에 서서 상대의 따귀를 때리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일 년 안에 결단이 난다?
지나가는 개가 들어도 웃을 소리다.
그렇다면 남도문을 해체하겠다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정말 그럴까? 남도문을 해체할까? 지금까지 누려온 권력이 있는데 순순히 물러날까? 이것 역시 권력의 속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코웃음을 칠 말이다.
일 년 안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하하! 하하하하! 어찌 아버님 예측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할까. 일 년이란 기한에 대해 의심한다면 이렇게 전하라 하셨소. 그때는 이번과 같은 회합을 하더라도 묵인하겠다고. 우리 제삼무신가는 묵인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뜻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금분세수(金盆洗手)라도 하시겠다고.”
“바, 방금 금분세수라고 하셨소!”
“그렇게 말했소이다.”
열한 명은 더 있을 여유가 없었다. 지금 독궁에게서 들은 말의 의미가 크다. 남도문을 손도 안 대고 무너뜨린 것이나 다름없다. 무혈입성(無血入城). 그렇다, 무혈입성을 했다.
빨리, 빨리 가주에게 알려야 한다.
“꼭…… 그렇게 전하리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형을 날렸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궁왕이 누군가! 무신 아냐! 그런 일 없었다고 한마디만 하면 누가 어찌할 거야! 그런 말을 믿고 얌전히 돌아왔단 말인가! 멍청한 위인 같으니라고!”
사천당문주는 불벼락을 내렸다.
“이왕 일이 그렇게 됐다면 기다려야지. 쯧! 만일을 대비해서 궁왕과 싸울 준비를 해! 약속을 어기면 싸우기라도 해야 할 것 아냐! 일 년 안에 궁왕에게 먹혀들 만한 독과 암기를 책임지고 마련해!”
사천당문에 초비상이 걸렸다.
“한심한…… 말이란 허공에 흩어지면 그만인 것을. 서신이라도 받아왔어야 하지 않은가.”
“그럴 상황이…….”
“어린놈 술수에 걸려들었군. 한 명을 죽여서 정신없게 만든 후, 마음을 녹여줄 제안을 했으니 혹하고 말려들 수밖에.”
“죄, 죄송합니다. 그런 줄은…….”
“됐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어차피 밀회가 새어나갔다면 이번 일은 그른 거였어. 후후! 우리 의사만 전달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뜻밖에도 월척이 걸려들었군. 일 년 동안 편히 즐기면서 지켜보자고.”
남궁세가주는 웃었다.
“모두 짐을 꾸려라.”
“네? 무슨 말씀이신지?”
“쯧! 미련한 위인들. 목숨이 경각에 달렸거늘, 염라사자가 코앞에 와 있는 것도 모르다니. 그래 가지고 어찌 가문을 이끌어갈까.”
“전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가……?”
“하천도(下川島)로 가라. 거기서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고 일 년을 살아라.”
하천도는 광동진가의 은신처다.
중원에 있는 본가가 무너질 경우, 아녀자와 가문을 이끌어갈 자식만 대피시키려고 준비해 놓은 곳이다.
하천도가 천산군도(川山群島) 중에서 제법 큰 섬이기는 하지만 무림과는 연이 닿지 않은 곳이니 가장 안전하다 할 수 있다.
가주는 대피령을 내린 것이다.
“독궁이 강직하기는 하지만 거짓을 말하는 자는 아닙니다. 너무 과하신 분부가 아니신지요?”
“허! 허허! 이제 광동진가는 문을 닫았구나. 허! 이 일을 어찌할꼬. 죽어서 조상님을 어찌 뵐꼬.”
진가주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손을 휘휘 내둘렀다.
물러가라는 뜻이다.
아들의 말이 맞다. 독궁의 말은 믿는다. 궁왕이 일 년을 기다리라 했으면 일 년을 기다리면 된다. 하나 만사무불통지는 믿지 못한다. 야광도 믿지 못한다.
궁왕이 알고 사람을 파견했는데, 그들이라고 알지 못할까? 궁왕은 가만히 있을 것이나 그들은 입막음을 해올 것이다.
열두 가문은 한날한시에 무너진다.
만사무불통지가 손을 쓰든, 야광이 손을 쓰든 그만한 능력은 된다.
‘아들놈이 이리 우둔하니……. 이대로 당할 수는 없지.’
진가주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2
마야는 폭풍의 핵이었다.
중원 전 무인의 눈길이 그에게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있는 여주는 무인들로 들끓어 객잔에 빈방이 남아나지 않았다. 방을 잡지 못한 무인들은 민가에 방을 잡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산이나 들에서 노숙을 했다.
그들 중 일부는 호채마와 싸우기 위해 왔다. 하나 대부분은 안목을 넓히거나 기회를 잡기 위해 왔다.
곤륜취자가 마도와 싸워 양패구상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진 터라 함부로 병기를 들고 날뛰는 사람도 없었다.
곤륜취자가 어떤 사람인가? 당대 최고의 검수 중에 한 명이지 않은가. 곤륜의 절기를 최고의 경지까지 녹여냈다는 검귀 중에 검귀가 곤륜취자다.
그런 사람이 마야도 아니고 그의 수하 중에 한 명인 마도와 싸워서 양패구상했다면…… 도대체 셈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누가 나서야 마야 일당을 호쾌하게 쳐 죽일 수 있는가.
가장 어린 일령이 나와도, 가장 늙은 시마가 나와도 비무나 결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무인들은 여전히 호채마 주위를 맴돌았다.
정상적인 비무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무인들이 기습으로 선회했다.
그들은 완벽한 함정을 짜놓고 호채마가 걸려들기만을 고대했다.
“언제까지 있을 거예요?”
절혼마녀가 곱게 눈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녀는 이 생활이 싫지 않았다. 송택은 편안했고, 침상은 포근했다. 그녀의 옆에는 든든한 남편이 있다. 적어도 송택 안에서만은 여느 평범한 아녀자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올 때까지. 맞죠?”
다담선자가 마야를 대신해 말해주었다.
한 여자가 왔다 갔다. 하나 그녀는 마야가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다.
감지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은밀히 왔다가 어둠 속에서 살펴보고 돌아간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다리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잔접,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타나야 한다.
누가 준비되지 않은 걸까? 잔접일까, 마야일까. 어느 쪽이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나타나지 않는 게 아닐까?
마야가 옅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마도에게 가려는 것이다.
마야가 방을 나간 후, 다담선자는 절혼마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왜?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언니.”
“왜?”
“언니.”
“왜 그러냐니까? 동생, 오늘 참 이상하다.”
“할 말 없어요?”
“할 말? 무슨 말? 내가 뭐 섭섭하게 한 거라도 있어?”
“언니, 정말 할 말 없어요?”
“오늘 정말 이상하네. 뭔데?”
“언니, 저 여자예요. 여자가 여자를 모르겠어요?”
순간이다. 절혼마녀가 처연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알았구나.”
“그럼요. 그걸 어떻게 몰라요. 축하해요, 언니.”
다담선자는 활짝 웃었으나 절혼마녀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동생도 알다시피 우린 무척 힘들어.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이런 상황에 나까지 짐이 될 순 없어. 당분간 모른 척해줘.”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당분간만. 며칠만이라도.”
“언니.”
“제발, 당분간만 이대로 있자. 어차피 이곳도 오래 있진 못할 거잖아. 여기 있을 동안만이라도 편히 있고 싶어. 이대로…… 난 지금 이대로가 제일 좋아.”
다담선자는 고개를 끄덕여 줬다.
“언니가 애를 가졌어요.”
“뭐?”
좀처럼 놀라지 않는 마야였지만 이번에는 정말 크게 놀랐다.
애를 가졌다면 가장 먼저 알았어야 할 사람이 자신이다. 같이 잠을 자고, 몸을 만졌으면서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다니.
“당분간 모른 척하세요. 언니가 말할 때까지.”
마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불안한 게군.”
제이성에 있을 때, 그의 여인들은 희망을 갖지 못했다. 사랑은 읽히면서도 사랑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희망은 완전히 타버려 잿더미가 되어버린 듯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았다.
미래가 없다는 사실은 사람을 단편적인 생각과 충동적인 행동으로 몰아넣는다.
그런 현상이 이곳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하기는 마야의 처지나 생활이 바뀌지 않았으니 미래란 놈이 나타날 리가 있는가.
절혼마녀는 같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데서 행복을 느낀다.
이 조그마한 행복마저도 잃고 싶지 않은 게다.
“제이성이 가장 안전하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곳이라면 안심하고 출산할 수 있을 거예요. 금 동생도 있으니 마음이 한결 놓이고요.”
“며칠 있다가…… 며칠만 있다가 보내자. 지금 느끼는 행복, 조금이라도 더 느끼게.”
“그래요. 같이 가줄 사람이 필요한데, 제 생각에는 언장은마가 가장 좋을 것 같아요. 눈에 띄지도 않고, 생각도 깊고.”
“사람들 눈이 많아. 절혼을 빼낼 방법을 강구해야겠어.”
“강구랄 게 뭐 있나요? 한바탕 일을 저지르면 모두 이쪽만 쳐다볼걸요?”
“다담, 다담은…….”
“풋! 저도 이대로가 좋아요. 사실 아기는…… 아기를 원하지만…… 잘 키울 자신이 없네요.”
항상 침착하고 냉정했던 다담선자도 아기 이야기를 할 때는 목이 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