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84
284
“제이성에 있을 때 상반된 무공도 수련한 것으로 아오만…….”
“그것과는 달라요. 무공이 아니라 공격 방법이에요. 우릴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쓴다는 거죠. 최악을 생각해서…… 알죠?”
“시간은?”
“빠를수록 좋아요. 지금 바로 설치해 줘요.”
다담선자는 절혼마녀의 안위가 염려되어 견딜 수 없는지 급히 말한 후 몸을 돌렸다.
제4장 전개아(顛個兒) ― 모양이 뒤집히다
1
두 사람은 먼 길을 왔다. 한 사람은 북쪽에서 왔고, 다른 한 사람은 남쪽에서 왔다. 그들은 백석(白石)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골짜기에서 만났다.
공통점이 있다.
검은 경장을 입었고, 얼굴에도 검은 복면을 뒤집어썼다는 점이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왔지만 그들이 한 부류의 사람이란 건 보기만 해도 안다.
북에서 온 사람이 검지를 펴 상대를 가리킨 다음 하늘을 찔렀다. 그러자 남에서 온 사람이 새끼손가락을 펴 보인 후, 자신의 이마 한가운데에 댔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밀마(密碼)가 확인되었다.
그들은 경계심을 풀고 어깨를 나란히 했다.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두웅! 두웅! 두우웅……!
널찍한 성(城)이 범종(梵鐘) 소리로 가득 찼다.
‘침입자!’
차분히 자수를 놓던 금연화는 번개가 무색할 신법을 펼쳐 벽에 걸어놓은 검을 움켜잡았다.
제이성으로 들어오는 길은 한군데밖에 없다. 그곳은 마야가 나간 후 폐쇄되었다.
누구도 허락없이는 들어올 수 없다.
한데 들어왔다. 입구를 강제로 파괴할 경우, 바위와 연결된 기관장치는 범종을 두들긴다.
쒜엑!
한줄기 미풍이 일어날 때, 그녀는 이미 입구를 가로막아 섰다.
그곳에 두 명의 낯선 인물이 서 있었다.
“누구냐!”
“…….”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입자사(侵入者死)! 물러나라!”
말은 했지만 금연화 자신도 이들이 물러설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제이성으로 들어서는 입구는 간신히 기어들어 올 만큼 좁다. 입구를 틀어막은 돌은 주위에 있는 바위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제이성을 알고 일부러 열지 않는 한은 들어올 수 없다는 뜻이다.
더욱이 입구를 막은 돌 안쪽에 집채만 한 바위를 놓아두었다.
기관으로만 움직이는 것으로, 안에서고 밖에서고 힘으로는 결코 부술 수 없다.
이들은 너무 쉽게 들어왔다.
범종이 울린 게 조금 전이다. 자신은 곧바로 달려왔고, 기관을 조정할 시간은 있으리라고 봤다.
오판이다. 벌써 눈앞에 서 있는 것을.
복면을 한 두 사람은 혀가 없는 듯 말을 하지 않았다. 한데,
“헛!”
누구도 움직인 사람이 없는데, 느닷없이 금연화가 헛바람을 내지르며 다섯 걸음이나 물러섰다.
쿵! 쿵! 쿵! 쿵! 쿵!
억지로 떠밀린 탓에 매 걸음마다 깊은 족적이 남겨졌다.
“이, 이건!”
그녀는 정말 놀랐다.
마야만 펼칠 수 있는 적멸주가 복면인들에게서 터져 나왔다.
아무 이유도 없는데 심장이 벌렁거리고, 무엇에 얻어맞은 듯 눈앞이 샛노랗게 변하는 건 적멸주가 침습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적멸주에 익숙해져 있다.
마야의 수련 상대가 되어주면서 이보다 더한 경우도 참아 넘겼다. 어떤 때는 이제 그만 생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자진하려고도 했었다.
적멸주의 무서운 점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그녀는 마야 앞에 섰을 때처럼 우선 호흡부터 가지런히 골랐다.
츠츠츳! 파팡! 쿵! 쿵!
금연화는 또다시 두 걸음을 물러섰다.
‘아니다!’
적멸주가 아니다. 적멸주와 비슷한데 상당히 다르다. 적멸주는 물어볼 것도 없이 음파(音波)로 공격한다. 한데 복면인이 쏘아낸 것은 기파(氣波)다.
마야도 이런 식으로 기파를 쏘아낼 수 있다. 상대에게 타격을 가할 수도 있으며, 운기조식을 도와주기도 한다.
놀라기는 복면인들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서로를 마주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쉽게 무릎 꿇을 줄 알았던 금연화가 멀쩡히 서 있으니 놀란 것 같다.
“당신들, 잔접이군.”
잔접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나 잔접이 아니고서야 제이성을 어떻게 알랴.
잔접은 마야에게 제이성으로 가라고 했단다. 제이성에 대해서 소상히 알고 있었다. 무엇이 준비되어 있는지도 알고, 마야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가르쳐 주었다.
잔접이 아니고서는 제이성에 대해 알아낼 수가 없다.
이자들은 틀림없이 잔접일 게다.
상대의 정체를 알고 나니 더욱 경계심이 치민다.
마야도 이들 앞에서는 종이호랑이였다고 한다. 범 앞에 강아지였단다. 고함 한마디에 전의(戰意)를 상실했다고 들었다.
금연화는 아직 뽑지 않은 나머지 검까지 뽑아 들었다.
자하쌍구검이 오랜만에 빛을 봤다.
쉬익!
경쾌하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너무 경쾌한 신법이다.
마야가 말한 귀적무는 아니다. 그녀가 절혼마녀의 귀적무를 못 알아볼 리 없다.
‘이게 도대체!’
금연화는 무슨 신법인지 알아볼 틈도 없이 뒤로 밀렸다.
검을 휘두를 틈도 없었다. 우선 물러서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복면인의 신법은…… 신법이 아니라 원척(遠?) 같았다.
원척(遠?)과 근타(近打).
멀리서 차고 가까이서 때린다.
기본 중에 기본이다. 너무 기본이라서 다시 들으면 새삼 감회가 새로운 말이다.
이토록 간단한 무리(武理)를 절묘한 신법보다 더 뛰어나게 활용하는 인물은 본 적이 없다.
쒜엑! 파파팟!
복면인의 신형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이것 역시 절묘한 신법 때문은 아니다. 무식하게 빠른 몸이 만들어내는 환영이다.
백 리를 달려간다 할 때, 무인은 신법은 펼친다. 말은 큰 폐와 강인한 근력을 사용해서 달린다.
복면인은 후자다. 육신의 힘만으로 이러한 경지를 이끌어낸다.
‘음!’
금연화는 다시 한 번 경각심을 일깨우며 자하풍류신법을 펼쳐 냈다.
스으으읏!
그녀의 신형이 물 흐르듯 흘렀다.
신법이, 초식이 하나로 연결되어 돌고 돈다. 만상(萬象)이 하나가 된다.
파파파팟!
몸 주위에서 폭죽이 터졌다.
복면인의 손에서 일어난 살기가 몸 주위를 빼곡히 에워쌌다.
‘십로체현(十路體現)!’
복면인의 신법을 이제야 알았다.
전설 속의 무학이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옛 무학이다. 사람이 꽃밭 한가운데 서 있을 때처럼, 어느 꽃을 먼저 볼까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사방에서 피어난 수화(手花)가 생명을 향해 너울너울 떨어진다.
피유융……!
금연화의 검에서 화살을 쏘았을 때 들릴 법한 파공음이 일었다.
그녀의 쌍검이 꽃무리를 향해 춤을 췄다. 떨어지는 꽃을 베어내고, 피어난 꽃도 베어내며,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려는 봉오리조차 잘라낸다.
몸 주위에서 활짝 피어났던 수화가 하나씩, 둘씩 사라져 갔다.
“백형검법!”
복면인이 입을 열었다.
“풋! 벙어리는 아니었네.”
금연화는 다시 한 번 숨을 고르며 상대를 쳐다봤다. 순간,
“앗!”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내뱉었다.
복면인이 둘이었다. 한데 지금은 한 명뿐이다. 다른 한 명은 어디 있는가? 등 뒤에?
그녀는 급히 뒤를 돌아봤지만 복면인은 없었다.
그녀와 복면인이 일장 겨룸을 하는 동안 제이성 안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언제 움직였을까?
지금이다. 마지막 수화를 깨뜨릴 때, 잠자코 있던 복면인이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그런 후 벙어리였던 복면인이 말을 했다.
“자하부의 못난이가 백형검법을 자하쌍구검인가 뭔가 하는 거로 바꿔놨다더니만 아니었군. 아주 제대로 된 백형검법이야. 호채마의 무공이 하나같이 절륜하다더니 빈말이 아니었어.”
복면인은 품에서 봉(棒)을 꺼내 들었다.
얼핏 보건대 길이는 겨우 한 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굵기도 엄지손가락 정도다.
무인의 병기라기보다는 음식 만들 때 쓰는 조리도구 같다.
착! 착!
복면인이 단봉을 세게 흔들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삼 척 장검 길이로 쭉 늘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여섯 뼘이다.
한 뼘, 한 뼘…… 다섯 단이 늘어나 모두 여섯 단이 되는 육단봉(六短棒)이다.
현 무림에서 육단봉을 쓰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마야라면 단번에 누군가를 짚어내겠지만 금연화에게는 그만한 경륜이 없다.
“조심해라. 병기를 꺼냈다는 건 널 죽이기로 작심했다는 거니까. 원래는 혼절만 시키려 했지만 네가 백형검법을 사용하니 어쩔 수 없이 죽여야겠구나.”
이건 또 무슨 소리?
자하부와 원한이라도 있나? 아니다. 자하쌍구검을 얕봤으니 자하부일 리는 없고, 백형검법과 사연이 있는 것 같다.
“호호호! 당신도 불쌍하군요. 동료들끼리도 신분을 털어놓지 못하는 신세라뇨. 왜 그렇게 살아요? 벌건 대낮에 복면이나 쓰고 다니고. 옆에 동료도 없는데 얼굴이나 보게 복면 좀 벗지 그래요?”
격장지계(激將之計)다.
금연화는 사내를 제압할 방도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이 상태로 다시 싸움을 벌이면 조금 전처럼 방어에 급급할 게 뻔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상대가 육단봉까지 꺼내 든 이상 싸움을 풀어갈 실마리는 잡고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다.
금연화는 격장지계를 사용하면서 한편으로는 십로체현을 파해하기 위해 부산히 머리를 굴렸다.
‘마야라면 보는 즉시 파해했을 텐데.’
콘과 수는 평화로웠다.
두 사람은 오늘도 알몸이었다. 입술을 핥고, 가슴을 만지고, 그러다 흥분이 치밀면 정사를 나눴다.
그들에게 옷이란 소용이 전혀 없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았다.
“우……!”
“하! 하악!”
그들은 인간의 말도 잊었다.
눈짓이 있고, 행동이 있으면 그만이다. 상대의 의사는 행동으로 충분히 감지한다.
가슴을 만지고 싶으면 만진다. 만지는 게 싫으면 손을 때리면 된다.
말은 필요없다.
콘과 수는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었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이 상태가 최선이다.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생각을 갖게 되면 어김없이 살인 충동을 느낀다.
충동이 아니다. 살인을 한다.
차라리 동물이 되어 본능대로 움직이는 게 만인을 위해서 낫다.
“여기 있었군.”
복면인이 콘과 수를 찾아냈다.
“철저하게 무너뜨렸군.”
그는 단번에 콘과 수의 상태를 알아봤다.
그들을 이렇게 만든 건 마야다. 마야가 적멸주로 이들의 인성(人性)을 뿌리부터 파괴해 버렸다.
살기를 없애기 위해서는 유일한 방법이었다지만…… 마야는 세상을 위해서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리라. 콘과 수를 위해서도 이것이 최선일 것이라 생각했으니 이런 일을 한 게다.
마야는 자신이 얼마나 잔인한 짓을 했는지 정말 모르는 걸까?
이들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만들 바에는 차라리 죽였어야 한다.
제이성 제삼실은 말만 방이지 뇌옥이나 다름없다.
창이며 문이 모두 쇠창살로 만들어졌다. 뇌옥을 만드는 데 사용된 쇠도 보통 쇠가 아니라 보검으로도 끊을 수 없다는 묵강한철(墨鋼寒鐵)이다.
복면인은 양손을 활짝 펴서 손바닥이 하늘로 향하게 한 후 진기를 끌어올렸다.
스스스스……!
그는 비 오듯 땀을 흘렸다. 흑색 경장이며 복면이 축축이 젖어 물이 뚝뚝 떨어졌다. 일순,
“타앗!”
그의 입에서 천지를 버럭 일깨우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의 움직임은 말 그대로 전광석화였다. 진기가 가득 운집된 두 손을 쇠창살에 대고 힘껏 열어젖혔다.
투툭! 투투툭!
보검으로도 끊을 수 없다던 묵강한철이 엿가락처럼 늘어졌다.
“타아앗!”
마지막 안간힘인가? 복면인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낸 후에야 간신히 사람이 드나들 만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누군가를 가둘 때는 묵강한철이 최고야.”
얼마나 힘들었는지 찬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는 안으로 들어섰다.
콘과 수는 이상한 기미를 느꼈는지 복면인에게 시선을 맞추고 겁먹은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쯧! 바보 같은 놈. 뱀이 됐으면 다람쥐를 잡아먹어야지 되레 뜯어 먹혀? 한심한……. 그러기에 천무(天武)는 천인(天人)이 지녔어야 하거늘 한낱 범부가 분에 넘친 걸 받았으니 머리가 돌지 않을 수 있나.”
복면인은 가볍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자신의 허리춤을 더듬었다.
그의 손에 길이가 손가락만 한 대침(大針)이 들렸다.
“쉽게 죽을 필요는 없어. 분에 넘치든 넘치지 않든 이왕 받았으면 실컷 쓰다가 죽는 것도 좋지. 살아 있는 모든 생물에는 회광반조(回光返照)가 있으니, 네놈을 살리기는 쉽다. 하나 등잔에 기름을 부어가며 계속 살든지 얼마 남지 않은 기름을 펑펑 소진한 끝에 죽어가든지, 그건 네놈이 알아서 할 일이다.”
복면인은 대침을 콘의 백회혈(百會穴)에 찔러 넣었다.
“끄으으으으……!”
콘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순간,
“누구도, 이 세상 누구도 너를 도와주지 않는다. 너는 마야를 죽여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마야를 죽여야 한다. 반드시 죽여라. 이유 불문하고 마야를 보는 즉시 죽여라. 설혹 네가 죽는 한이 있어도 마야를 죽일 수 있다면 실행하라. 마야를 죽여라. 마야를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