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85
285
콘의 뇌리에 석상무공을 얻을 때 들었던 환청(幻聽)이 고스란히 틀어박혔다.
“크크크! 크크크큭!”
콘의 입에서 잔인한 살소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너 혼자는 안 되니, 잠시 기다리거라.”
복면인은 콘의 마혈을 제압한 후, 요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수에게 몸을 돌렸다.
“음……!”
그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수의 모습은…… 알몸의 그녀는…… 너무 아름답다. 너무 매혹적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백치다. 백치뿐인가. 색(色)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색녀다.
‘한 번 해?’
그는 유혹을 느꼈다.
콘은 마혈이 제압되어 있으니 발광할 여지가 없다.
북에서 온 놈과 금연화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을 게다. 북에서 온 놈이 심상치 않은 무공을 지녔지만 백형검법 또한 천고에 다시없는 절학이다.
금연화는 백형검법을 십분 깨우쳤다.
당금 무림에서 그녀를 쉽게 어찌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무신이라도 그녀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몇십 수 노고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 여인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니 이것도 모순인가?
세상에 사람은 많으나 이 순간만은 그와 수뿐이다.
‘천락지궁(天樂之宮)을 가진 여자……. 이런 여자는 평생에 한 명 만날까 말까야. 세상 모든 사내를 조루로 만들어 버린다는 요물.’
하물(下物)이 불끈 일어섰다.
여색에 회가 동하기도 오랜만이다. 여체를 아예 잊어버리고 살아왔는데, 수를 보니 참으로 바보 같은 세월을 살아왔다.
이런 여인을 안아보지 않으면 누굴 안으랴. 세상을 무슨 낙으로 살까. 눈앞에 최고의 여인이 발가벗고 있는데 안아보지도 않았다면…… 죽으면서 과연 행복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수를 떠올리며 안타까워하면서 죽지 않을까?
그는 끌려가듯 수 앞에 섰다.
“수…….”
그의 음성이 떨려 나왔다.
“하악!”
수가 달콤한 입김을 토해냈다.
이건…… 이 입김은…… 고자조차도 열기에 들뜨게 만드는 색혼향(色魂香)이다.
입김 속에는 그녀의 침이 담겨 있다. 그녀의 입술을 스치고 나왔다. 혀를…… 아!
그는 수를 와락 껴안았다.
그녀가 방긋 웃었다. 이건 뭔가?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허락이 아닌가. 아니다. 좀 더 적극적이다. ‘저도 기다렸어요. 빨리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는 복면을 벗어 던졌다.
한 눈을 검은 안대로 가린 애꾸다. 코는 매부리코이며, 입술은 반이나 잘려 나가 흉물스럽다.
그에게서는 정기(正氣)보다는 마기(魔氣)가 물씬 풍겨 나왔다.
“후웁!”
그는 수의 입 안에 자신의 혀를 들이밀었다.
수의 혀가 칭칭 감아온다. 달콤한 타액이 물밀듯이 넘어온다. 그녀의 가쁜 숨소리가 귓전을 두드린다.
냉정하던 이성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목마름만 남았다.
투툭! 투투툭!
묶였던 밧줄이 풀어졌다.
적멸주에 타격을 받아 극심하게 손상되었던 경맥에 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투툭! 투툭!
한군데씩, 한군데씩…… 진기가 타통된다. 밧줄이 풀어진다.
“크크! 크크크!”
그는 연신 살소를 토해냈다.
그의 눈은 수를 덮치고 있는 알몸의 사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등을 노려보며 분노의 불꽃을 이글이글 태웠다.
파앗!
임맥(任脈)을 완전히 타통시킨 진기가 회음혈(會陰穴)을 돌아 독맥(督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크크크! 크크크크!”
콘이 살소를 토해낼 때마다 십이경맥(十二經脈)을 묶었던 족쇄가 떨어져 나갔다.
“후후! 후후후후!”
드디어 그의 입에서 살소 대신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헛! 어엇!”
수를 탐하던 사내가 정신을 퍼뜩 차렸다.
콘의 웃음소리가 활활 타오르던 색욕을 단번에 꺼버렸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수가 예뻐서? 아니다. 그만한 여인은 많다. 수가 천락지궁이라서? 합궁(合宮)을 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천락지궁의 묘미를 어찌 알까.
그렇다. 그는 어처구니없게도 구혼음태에 당하고 말았다.
그는 벌떡 일어서려고 했다. 한데 이번에는 수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하악!”
귓가에 달콤한 입김이 어린다.
꺼졌던 색욕이 다시 살아난다. 서서히 피어나는 게 아니라 기름솥처럼 팔팔 끓는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목숨을 노리는 자가 지척에 있는데, 위험하다는 걸 감지했는데…… 그런데도 여체에서 헤어나지 못하다니.
“허억! 아아아아!”
그는 고개를 발딱 뒤로 젖히고 괴로운 비명을 토해냈다.
양물을 통해 정액(精液)이 빠져나간다. 쏟아진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끊임없이 쏟아진다.
이러지 않았다. 그는 이토록 양이 많지 않았다.
천락지궁이 오므라드는 그의 양물을 다시 움켜잡았다.
“안 돼! 안 돼! 안……!”
그가 수에게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쓸 때, 위험은 급속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후후후! 후후!”
이제는 완전히 인간다운 웃음이다.
반인반마(伴人伴魔)!
제대로 이루어졌다. 그는 인간의 육신을 지녔으되 마인의 심성으로 살아가리라.
‘늦었어.’
이제는 용을 써도 헤어날 재간이 없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찢어발긴 흑색 경장에서 대침을 꺼냈다. 그리고 수의 백회혈에 틀어박았다.
“아아아악!”
수가 고통에 겨워 비명을 토해냈다. 순간,
푸욱!
사내는 수의 천락지궁보다 훨씬 뜨거운 무엇이 등을 뚫고 들어오는 걸 감지했다.
‘으으으……!’
비명은 토하지 않았다. 그건 최후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간단한 일일 것이라 생각하고 왔다가 죽는 것만 해도 우스운데 비명까지 지른다면 말이 되나.
그래도 할 바는 다했다.
수는 잠시 괴로울지 모르지만 고통이 끝나고 나면 콘과 짝을 이뤄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갈 게다.
그는 수의 가슴에 머리를 떨어뜨렸다.
2
복면인이 육단봉을 든 후부터 금연화는 연신 물러서기에 급급했다.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손발은 어지러워지고, 호흡은 가빠졌으며, 진기는 바닥을 드러낸다.
만상의 도를 하나로 집약시킨 백형검법이지만 육단봉의 공격에는 너무도 미약하게 무너져 버렸다.
아직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게 다행이다.
다행? 싸움에 그런 게 있을 리 있나. 금연화의 목숨이 진작 끊어지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그건 하늘이 도와서가 아니라 복면인이 손속에 사정을 남겼기 때문이다.
쒜에엑! 쉐엑!
바람이 분다.
“헉!”
금연화는 생각할 것도 없이 자하쌍구검을 휘둘렀다.
복면인이 왼쪽으로 신형을 이동했다. 육단봉은 등을 후려쳐 온다.
여기서 당연히 생각나는 건 왼손에 든 검으로 육단봉을 막음과 동시에 신형은 반쯤 돌리는 거다. 그리고 오른손에 든 검으로 가슴팍을 찌른다.
방어는 성공할 것이고, 공격의 성공 여부는 오직 빠름에 달렸다. 공격이 무위로 끝나면 복면인은 뒤로 물러설 게다.
누가 빠른가? 물러서는 게 빠른가, 찌르는 게 빠른가.
금연화는 어떤 수도 쓰지 않았다. 왼손을 획 뒤집어 검을 등 뒤로 돌렸다.
까앙!
등 뒤에서 육단봉과 검이 부딪쳤다.
금연화는 반탄력을 이용해 앞으로 쏘아나갔다. 아니, 육단봉의 강력한 힘에 떠밀려 나갔다.
“으음!”
격돌을 할 때마다 신음을 토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이번 격돌에서는 특히 진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너무 강력한 힘이다. 거센 충격이 밀려와 오장육부를 뒤집어놓는 듯하다. 뱃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너무 힘들어 헛구역질이 나온다면 말 다한 게다.
이 싸움은 이길 수 없다.
복면인은 백형검법의 면면을 살피고 있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다른 식으로 공격을 해오기 때문에 각기 다른 백 가지 형태가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백형검법의 모든 형식이 건네지는 건 시간문제다.
금연화는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억지로 힘으로 부딪쳤고, 결과는 극심한 내상(內傷)으로 이어졌다.
“쉽게 갈 수 있는데 어렵게 가는구나.”
“한 가지만…… 백형검법과 무슨 은원이 있는 거죠? 백형검법의 주인으로서 죽더라도 알고 죽어야 하는 거 아녜요?”
사실 알 필요가 없다.
무림의 은원이란 바다와 같아서 한없이 넓고 깊다. 삼대(三代), 사대(四代)를 이어져 내려온 복수도 있다. 이런 걸 모두 알려 하다가는 머리에 쥐가 난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맞는 말일 게다. 무림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싸움이 벌어지니까 말이다.
“진기를 추스르려는 얄팍한 수. 허허! 좋다. 추스려라. 그래야 힘을 내서 싸우지.”
복면인은 싸움을 하다 말고 시간까지 넉넉히 주었다.
“대답해 주마. 백형검법과 무슨 은원이 있나…… 없다. 사실 백형검법을 처음 보는데 은원 운운할 것도 없고. 난 지상 최고의 검법으로 백형검법을 꼽는다. 백형검법의 장점이라면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고, 순식간에 절정으로 이끌어준다는 거다. 백형검법의 요체만 제대로 파악하면.”
그는 금연화의 목숨을 손바닥 안에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백형검법의 백 가지 형(形)을 파악한 후 죽이자.
그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금연화는 숨을 크게 들이쉬어 들끓는 진기를 진정시켰다.
참으로 큰 모순이다. 백형검법을 사용하면 검법이 노출되고, 사용하지 않으면 속수무책으로 죽는다. 그나마 유일한 길은 빨리 진기를 추스른 후에 백형검법으로 승부를 내는 거다. 아! 그러면 또 백형검법이 노출되는 건가? 어떻게 싸워야 하나.
“네가 금궁을 죽인 것도 우연이 아냐. 금궁의 무공이 약해서도 아니고. 그 싸움이야말로 백형검법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싸움이라고 봐야겠지. 철부지 소녀를 단숨에 절정고수로 만들어놨으니까. 난 이 백형검법을 지상에서 지워 버리려고 한다. 이런 무공이 존재하면 고수의 가치가 떨어져. 십 년, 이십 년 고련(苦練)할 생각은 하지 않고 백형검법 같은 무공만 찾게 될 거야. 지상에 있으면 안 되는 무공이지.”
반드시 죽이려는 이유치고는 요상하다.
상관할 것 없다. 금연화는 진기가 안정되자 제자리에서 가볍게 통통 뛰었다.
“뭐 해? 안 싸워?”
“뭐! 허허! 허허허!”
복면인은 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중에도 파해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십로체현은 다시 펼쳐지고 있었다.
이혈환혈(以血還血), 이아환아(以牙還牙).
피는 피로 돌아오고, 이는 이로 돌아온다.
복면인의 공격 또한 백형검법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인간이 펼칠 수 있는 모든 동작은 백형검법에서 파생한다.
금연화는 복면인과 똑같은 공격 방식을 취했다.
쉬익!
육단봉이 머리를 쳐온다.
다른 때 같으면 물러서거나 막았다.
그럴 필요 없다. 어차피 질 싸움이라면 손해라도 입혀야 한다.
쉬익!
금연화는 똑같이 머리를 내려쳤다.
자신의 머리는 으깨질 것이나 복면인의 머리 또한 갈라질 게다.
스스슷!
복면인의 신형이 옆으로 비틀렸다. 금연화의 검을 피하면서 육단봉을 내려치는 모습이다.
금연화도 즉시 따라 했다. 몸을 비틀면서, 검은 그대로…….
십로체현은 신기한 신법이다. 하지만 자하풍류신법 또한 신묘막측하다.
“허!”
복면인이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흘리더니 뒤로 물러섰다.
“철저한 동귀어진(同歸於盡). 이건 자하풍류신법만으로는 안 되고…… 내 공격을 꿰뚫어 보는 안공(眼功)이 있어야 하는데, 물론 즉시 따라 할 수 있는 순발력도 필요하고 말이야.”
“적에게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죠. 죽일 수 있으면 죽이는 것이고, 아니면 당하는 거겠죠. 제가 어떤 식으로 싸우든 탓할 게 있나요?”
“허! 허허!”
복면인이 웃었다.
금연화는 웃지 못했다. 아니,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눈은 더 이상 떠질 수 없을 만큼 부릅떠졌다.
“네 표정은 뭐냐? 꼭 염라대왕을…….”
복면인은 말하다 말고 느닷없이 옆으로 신형을 날렸다.
저벅! 저벅!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알몸의 일남일녀가 다정히 손을 잡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여인의 가슴과 배는 피로 흥건하다.
여인이 흘린 피는 아니고, 누군가 쏟아낸 피처럼 보인다.
“콘…… 수…….”
복면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크크크!”
두 사람을 발견한 콘은 먹이를 잡은 맹수처럼 즐거워했다.
그가 손을 들어 복면인을 가리켰다.
“너. 거기서 꼼짝 마.”
또렷또렷하다. 완전한 인간의 말이다. 말은 못하고 괴성만 지르던 콘은 사라졌다. 옛날 남만에서 석상 무공을 갓 배웠을 때의 그와 똑같은 모습이다.
이상한 건 복면인의 태도다.
이건 뭐랄까? 고양이 앞의 쥐라고 할까? 콘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정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옷이 없다. 가져와.”
금연화에게 한 말이다.
‘도대체 이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백치가 되었던 콘과 수가 왜 멀쩡해진 걸까? 싸움을 벌이는 도중에 암암리 사라진 복면인이 열쇠를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