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86
286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연화는 걷기 시작했다.
콘이, 수가 어떤 행동을 취할까? 느닷없이 기습을 가해오지는 않을까? 복면인은?
그들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콘이 옷을 입었다.
정상적이다. 차분한 손놀림으로 요대를 매는 모습에서 그가 한때 백치였다는 사실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수도 마찬가지다.
사박! 사박!
옷 입는 소리가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린다.
사단이 벌어졌다. 천하가 발칵 뒤집힐 사단이다. 콘과 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대마두의 탄생을 의미한다.
‘마야에게 연락해야 돼.’
마음만 급하다. 마야도 이런 상황까지는 예측하지 못해서 아무런 대비책도 마련해 놓지 않았다. 따로 연락을 취할 방도가 없다.
‘이대로 보낼 순 없어.’
금연화는 침착해지려고 무진 애를 썼다.
복면인의 상대도 안 됐는데, 콘과 수까지 가세한 마당에 승산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그녀는 몸을 빼낼 방도보다 제이성을 무너뜨릴 방도를 강구했다.
제이성은 크다. 너무 넓다. 여긴 동굴이 아니라 장원이다. 궁궐이다. 입구는 개 한 마리 간신히 들어올 정도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백 명 이상이 십 년은 지낼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이 완비되어 있다.
이걸 무슨 수로 무너뜨린단 말인가.
방법을 찾았다. 복면인들이 들어서며 밀쳐 놓은 기관을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는다. 입구를 봉쇄하는 것이다. 그런 후, 기관만 파괴한다. 그러면 제이성은 영원히 폐쇄된다.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다.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콘과 수를 바깥 세상에 내놓을 수 없다.
옷을 다 입은 콘이 복면인을 쳐다봤다.
“너, 어디서 온 놈이야?”
“부, 북검문.”
복면인이 순순히 대답했다.
“북검문!”
경악한 것은 금연화다. 지금까지 복면인이 잔접인 줄 알았다. 한데 북검문이라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북검문이 마인들의 최후 보루인 제이성을 어떻게 알며, 또 콘과 수를 세상에 내놓으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아냐! 거짓말이야!’
북검문의 누구냐고 물으려 했다. 복면인이 북검문에서 온 사람이라면 그녀가 모를 리 없다. 그가 누가 되었든 한 번쯤은 얼굴을 봤으니 복면만 벗으면 판별이 된다.
불행히도 콘은 복면인의 말을 믿었다. 그리고 그는 금연화보다 한 발 앞서서 말을 했다.
“북검문? 좋아. 마야가 그렇게 죽이고 싶어? 그것도 좋아. 죽여준다. 뭐라고 했더라? 등잔에 기름을 부어가며 계속 살던지, 있는 기름 왕창 쓰고 뒈지던지는 내 할 바라고 했나? 좋아, 좋아. 어쨌든 마야는 내가 꼭 죽일 놈이니까 죽여. 됐지?”
“됐소.”
“그럼 뭐 해? 어서 죽지 않고.”
복면인이 부들부들 떨며 육단봉을 들어 올렸다. 그때,
“쟤, 내가 가질래. 넌 쟤 가져.”
수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그의 눈은 복면인의 아랫도리를 향하고 있었다.
콘의 눈길이 금연화에게 머물렀다.
짜릿한 눈길의 마주침.
금연화는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징그러움과 처녀를 상실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꼈다.
콘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하나 그는 곧 냉정함을 유지했다.
“너, 잊지 마. 내 눈앞에서 다른 놈에게 가랑이 벌리면 찢어 죽여. 저놈, 안 되겠군.”
쉬익!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콘의 신형이 사라졌다.
무섭게 빠르다. 마야가 적멸주를 터뜨리며 비무를 할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백치가 된 상태라서 무공도 반감되었던 것인가? 좌우지간 그때보다 배는 빠른 것 같다.
퍼엉!
금연화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복면인이 육단봉조차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일장을 격타당했다.
“크억!”
그는 피화살을 내뿜으며 뒤뚱뒤뚱 물러섰다.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것으로 봐서 가슴이 함몰된 것 같다. 부서진 뼈가 장기를 꿰뚫은 모양이다.
퍼억!
주먹이 망치처럼 휘둘러졌다.
복면인의 머리는 연한 두부처럼 부서져 나갔다. 부서진 뼈와 살이 튀고, 뇌수가 흘러나왔다.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부서진 머리와 함께 그의 안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졌다.
그의 정체를 확인할 길은 영영 사라졌다.
“쟤, 예쁜데 싫어?”
수는 콘이 무섭지 않은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냄새가 좋아.”
“그럼 쟤 죽여.”
“크크크큭!”
콘이 살소를 토해냈다. 죽이는 데 전혀 문제없다는 웃음이다.
끝장이다. 살소가 터진 다음에는 반드시 죽음의 손이 떨어진다. 복면인조차 피해내지 못한 빠름이니, 자신은 그야말로 손 놓고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금연화는 즉시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다음 깊이 허리를 숙였다.
“소녀, 주인님들이 깨어나시길 기다렸습니다.”
“……!”
콘과 수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쳐 갔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들은 이토록 얼토당토않은 말을 들었음에도 반신반의(半信半疑)한다. 비웃음을 던지거나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를 해야 정상이 아닌가.
‘역시!’
“소녀, 목욕물부터 데우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금연화는 허리를 숙인 채 앞으로 걸었다.
콘과 수의 곁을 스쳐 지났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과연 살수가 뻗어올까 아닐까.
“목욕물 데운다는데?”
“크크큭!”
콘과 수는 금연화의 뒤를 따라왔다.
비로소 한숨이 돌려진다. 복면인이 어떤 방법으로 콘과 수를 백치 상태에서 꺼냈는지는 모르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다. 멀쩡해 보이다가도 치기 어린 어린애로 돌아가곤 한다.
현실 파악도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자신들에게 시비(侍婢)가 있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제이성에서 목욕을 하다니. 그들은 이곳이 어디인지조차 모른다.
금연화는 마도가 머물던 방으로 안내했다.
제이성의 중추는 마야가 머물던 곳이다. 하나 그곳은 위험하다. 보아하니 콘은 예전으로 돌아가서 ‘마야’란 말만 들으면 살기를 띠운다. 철천지원수처럼. 그런 사람을 마야의 체취가 배어 있는 방에 집어넣는다는 건 사서 위험을 자초하는 행위다.
“끙! 끙!”
방에 들어서자마자 수가 콧등을 찡그리며 냄새를 맡아댔다.
“사람이 있었어. 아주 맛있는 놈이야.”
순간, 콘의 눈길이 매섭게 쏘아졌다.
“소녀에게 죽음을! 도, 도둑들이…… 사람도 많고 무공도 높아서 소녀는 도저히…….”
금연화는 털썩 무릎까지 꿇었다.
콘이 말했다.
“목욕물 준비해라.”
목욕물 준비할 틈이 어디 있는가.
그녀는 재빨리 입구로 돌아왔다.
복면인의 시신이 방금 전까지 치열한 싸움이 있었고, 살육 또한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금연화는 복면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기관을 해체했는지 살폈다.
금쪽같은 시간이 흘렀다. 한시가 급한데 일다경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나 될까?
길어야 반 시진이다. 반 시진이 넘어도 목욕물이 준비되지 않으면 콘이나 수가 이상함을 느낄 것이고, 그녀를 찾아 나설 게다. 그들은 어디부터 올까? 생각해 볼 것도 없다. 이곳이 아니면 어디랴.
‘시간이 없는데…….’
마야와 함께 일 년 넘게 생활하면서도 발견해 내지 못한 걸 한 시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에 찾아낸다는 건 애당초 무리였다.
하나 지성이면 감천, 그녀는 단서를 찾아냈다.
복면인들은 기관을 열었지만 흔적도 많이 남겼다. 굳이 흔적을 지울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커다란 바위 아래로 가느다란 철사(鐵絲)가 눈에 띄었다.
철사는 철통(鐵桶) 안으로 이어졌으며, 철통은 바깥으로 연결되었다.
밖에서도 기관을 움직일 수 있다.
들어오고 나감에 자유가 있었다. 안에서 막을 수도 있고, 밖에서 닫아걸 수도 있으며, 그 반대도 가능하다.
완전 폐쇄도 가능하다. 기관만 파손하면 된다.
기관을 알게 된 금연화는 조금 더 큰 희망이 생겼다.
살 수 있다.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밖에서 복면인들이 열었던 기관을 찾아 다시 닫으면 된다. 그리고 기관만 파괴하면 콘과 수를 영원히 가둬둘 수 있다.
망설일 이유가 있을까? 없다.
그녀는 바위 사이로 몸을 들이밀었다. 한데,
“어디 가?”
‘헉!’
금연화는 느닷없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상대는 등 뒤까지 따라붙었다. 음성이 바로 등 뒤에서 들렸다.
이토록 가까이 접근하도록 까마득히 몰랐다니.
‘콘!’
“크크크! 금연화, 네가 언제부터 시비였니? 뭐? 소녀? 주인?”
‘알고 있었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어!’
“아무리 맛있는 떡도 계속 먹으면 물려. 안 그래? 너 같은 계집을 건드리지 않으면 사내가 아니지. 흐음! 너도 냄새가 아주 좋구나.”
콘의 손길이 어깨를 더듬었다.
어깨가 떨렸다. 사시나무처럼 온몸이 떨렸다.
“응? 크크! 크크큭! 너 처녀구나. 마야 이 새끼, 고자 아냐? 너 같은 걸 옆에 두고 어떻게 참았지? 그놈 그거 아주 쓸개 빠진 놈이네. 크크큭!”
탈출도, 폐쇄도 틀렸다. 강간당하고 살해당하는 일만 남았다.
콘은 간사한 위인이다. 수 앞에서는 수만 위하는 척한다. 그조차도 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천락지궁과 구혼음태가 합쳐졌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사내의 탐욕도 지우지 않았다. 수가 없는 곳에서는 마음껏 욕구를 채우고 싶어한다.
수가 알면 안 되리라. 하니 일이 끝난 후에는 당연히 죽일 게다.
‘차라리 자진을.’
금연화는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짚어갔다.
임맥(任脈) 중 목과 가슴을 잇는 천돌혈(天突穴)을 파괴하면 살길이 없다.
‘죽으면 끝나.’
그녀는 죽지 못했다.
어깨의 거궐혈(巨闕穴)에서 짜릿한 느낌이 들더니 팔이 마비되어 버렸다.
그녀는 눈을 감고 혀를 깨물었다.
한데 이것조차도 마음대로 안 된다. 목 옆, 부돌혈(扶突穴)에 타격이 가해지니 혀조차 움직일 수 없다.
특이한 점혈법(點穴法)이다. 타격당한 곳에서 진기가 쏟아져 들어와 목표로 한 곳에 이르더니 순식간에 마비시킨다.
“넌 아주 괜찮은 여자야. 뭐라고 할까? 너를 가지면 내 몸이 정화될 것 같아. 아주 깨끗하게. 수는 날 진흙 속으로 끌어들이지만, 넌 몸에 묻은 진흙을 털어줄 것 같아. 크크크! 더러운 음기에 찌든 놈들한테 넌 하늘이 내려준 보물이야.”
‘명상(明相)!’
왜 갑자기 명상이라는 말이 떠오를까.
마야는 자신의 상이 명상이라고 했다. 아주 맑은 상이라고.
이어지는 말도 우습다. 유계의 주공이 청상(淸相)이니, 부인으로 맞기 위해 무슨 수든 쓸 거란다.
그랬나. 자신의 몸뚱이는 마인들의 악기를 씻어주기 위해서 존재했던가.
음기에 찌든 몸을 씻어준다면…… 그래, 가져라. 그리고 씻어라. 깨끗이.
금연화는 또르륵 눈물을 떨궜다.
콘이 마기를 씻어낸다면, 수에게서 벗어나 정도를 걷는다면 이 또한 복(福)이지 않나.
“음! 못 참겠군.”
콘의 손이 육봉을 더듬었다.
아프다. 그렇잖아도 우락부락한 손인데 너무 거세게 쥐어온다. 여인을 배려하는 마음 따위는 애당초 없다.
그때, 금연화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콘이 느닷없이 손을 치우더니 펄쩍 뒤로 물러섰다.
‘왜?’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쉬익!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뒤를 이어 이보다 반가울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뭐 해?”
수였다.
“그렇게 가지고 싶었어? 호호호! 내가 가지라고 했잖아. 난 정말 괜찮다니까. 가지려면 가져.”
수의 행동은 말과는 사뭇 달랐다.
금연화에게 손만 대면 자신이 떠나 버리겠다는 의지가 물씬 풍겼다.
콘은 금연화에게 손을 내밀 수 없었다.
“따라 나와!”
그가 앞장서서 큰 바위를 돌아 밖으로 나갔다.
틀렸다. 콘이 바깥 세상으로 나갔다.
수가 그녀의 팔을 움켜잡으며 귓속말을 했다.
“내가 네년을 모를 것 같아? 넌…… 나와 상극이야. 널 몰라봤을 것 같아? 왜 널 순순히 따라간 줄 알아? 시간이 필요했어. 정신이 돌아올 시간. 어떤 놈이 머리에 수작을 부렸는데, 아직 완전히 깨지 못한 상태였거든. 지금은 아냐. 멀쩡해.”
금연화는 등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송곳으로 척추를 찔린 느낌이다.
“으윽!”
“넌 이곳에서 죽어줘야겠어. 천천히 죽어, 천천히. 어차피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수가 팔을 놓자 금연화는 썩은 짚단처럼 무너졌다.
움직일 수 없다. 전신이 마비되었다. 손가락은커녕 고개조차 돌릴 수 없다.
쿠쿠쿠쿵!
큰 바위가 움직였다. 제이성이 바깥에서 폐쇄된 것이다.
제5장 무사망(無事忙) ― 괜히 바쁘다
1
다담선자는 부지런히 토굴을 훑어 나갔다.
언장은마는 치밀한 편이다. 그는 땅속에서만은 제왕이지만 자만한 적이 없다. 제일 큰 적은 방심이란 걸 알기 때문에 뒤처리도 깨끗하게 한다.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지나간 길을 덮지 않고 고스란히 내버려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