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88
288
이제 그녀를 상대하는 사람은 귀적무만 조심해서는 안 된다. 그녀의 눈부터 피해야 한다. 절대 눈길을 마주쳐서는 안 된다.
절혼마녀는 천사검을 뽑았다.
츠츠츠츳!
검이 느릿하게 나아간다.
너무 느린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달려든 불나방은 폭발적으로 터져 버린 검광에 피떡이 되었다.
절혼마녀는 무풍지대를 걸었다.
그녀에게 달려들던 자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갑자기 병기를 내려놓고 순순히 죽음을 맞이했다.
“쯧! 무지막지하게 덤비면 어쩌자고. 무공으로 겨뤄서 안 된다는 건 이미 알지 않았나.”
횃불이 밝혀지며 창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다담선자를 우선 가둬두라고 지시한 자다.
“무당파(武當派)군요.”
다담선자가 노인의 도복을 응시하며 말했다.
“빈도 청양자(淸陽子)라네.”
노도인이 신분을 밝혔다.
청양자…… 한때는 대단한 지략가였다. 법가(法家)의 일맥을 이었다는 소리도 있다. 북검문이 창건되고, 삼뇌(三腦)가 북무림을 좌지우지하기 전까지는 그가 바로 북무림 제일의 병법가였다.
이제야 비로소 맥없이 당한 이유를 알았다.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제게 덮어씌운 쇠그물…… 저만 노리고 특별히 만든 건가요, 아니면 만들어진 진을 사용한 거예요?”
“허허! 진이란 게 무엇인가. 물처럼 흘러야 되는 거라네. 딱딱하게 굳어 있으면 안 되지. 사실 각 문파에 있는 절진이란 건 하나의 합격술에 지나지 않아. 상황에 맞게 현장에서 즉시 짜낸 진이야말로 진짜 진이라네.”
다담선자만을 노린 진이었다.
절혼마녀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그녀를 잡은 방법은 달랐을 게다.
“청양자께서는 저흴 막을 생각인가요?”
다담선자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왜 나섰겠나.”
“그럴 수 없을 거예요.”
“허허허!”
청양자는 웃었다.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물씬 풍겨 나왔다.
“죄송해요, 마야.”
다담선자가 ‘마야’라는 이름을 꺼냈을 때, 두 여인을 둘러싸고 있던 군웅들은 일제히 동요했다.
그들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마야다. 마야가 왔다. 절대무적을 자랑하는 마야가 왔다. 개방의 사천왕을 석상으로 만들어 버린 마야가 자신의 여인들을 구하러 왔다.
생각만으로도 피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때다. 청양자가 부르르 떨더니 급히 말했다.
“물러섯! 물러섯! 빨리! 빨리 물러섯!”
그의 외침은 빨랐지만 사신(死神)의 손짓 또한 빨랐다.
파아앗! 쒜에엑! 파파파팟!
공격은 동서남북 네 군데서 시작되었다.
흑빛 운무에 몸을 허용한 사람들은 병든 닭처럼 핑그르르 쓰러졌다.
쉬익! 착! 스읏! 착!
수검의 발검, 운검, 착검 소리는 상당히 귀에 거슬린다.
그러나 가장 지독한 사신은 따로 있었다.
“호호호! 호호호호!”
그녀는 미친 듯이 웃었다. 기기묘묘한 신법을 펼쳐 군웅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손가락으로 살짝살짝 혈도를 짚었다.
“아아악!”
그녀에게 꼬집힌 사람은 천지가 떠나가라 비명을 내질렀다.
전신 혈도가 터져 나가는 고통은 칼로 살점을 한 점, 한 점 도려내는 고통에 버금간다. 그것도 순식간에 몰아쳐 오니 정신이 아득해지며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몰랐다. 정작 가장 무서운 것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가운데 전신을 난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아아아아아…….”
군웅들은 죽음을 보면서도 병기를 들 힘이 없었다.
2
여주성에서 무인들이 사라졌다.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언장은마의 팔과 다리를 잘라내고, 마야의 두 여인을 납치한 대가는 엄청났다.
밤새도록 살육이 이어졌다.
검을 든 자는 싫던 좋던 마인들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만 했다.
결국 무인들은 여주성을 떠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군웅들 중에 청양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중요치 않다. 소림승도 있었고, 개방도도 있었으며, 화산, 무당, 곤륜, 종남…… 각 문파의 문도들이 두루 망라되어 있었지만 어느 특정한 문파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여주 싸움은 의기에 찬 무인들이 마인들을 도륙하려고 했던 사건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덕분에 마야의 악명은 더욱 높아졌다.
피도 인정도 없는 악마.
병기를 소지한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구분치 않고 무조건 죽이는 살인마.
무인들은 여주성을 포위한 채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경계했다.
무공으로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후인지라 화약이나 암기, 독, 노방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사방을 차단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청양자가 있었다.
“나갈 길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이제는 더 도움을 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진걸 대신 정도를 파악해 온 하오문도 두 명이 쩔쩔매며 말했다.
“곤란한 점이라도 있어요?”
다담선자가 물었다.
지독한 살육을 펼친 여인치고는 너무도 담담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은 남의 일이라는 듯 태연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오문도들은 더욱 움츠러들며 말했다.
“저희들도 꽁꽁 숨어야 합죠. 눈에 띄는 대로 족치는 바람에 설치고 나다닐 수가 없어요.”
“그렇겠군요.”
“여주를 빠져나가려다 잡힌 수만 무려 이백입니다. 저놈들, 아주 살판났어요. 쓰레기들을 치운대나 어쩐대나. 저흰 더 이상…….”
“알았어요. 수고했어요. 참! 문주님 소식은 들었어요?”
“그게…….”
하오문도는 우물쭈물했다.
“괜찮아요. 말해봐요.”
“본 문에 관한 일은 발설하지 말라는…… 그렇다고 저희가 뭘 아는 건 아닙니다. 아무것도 몰라요. 알아보려고 하니까 그런 명이 떨어지지 뭡니까.”
거짓은 아니다. 이들은 소식을 들을 처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런 명이 내려왔다는 것은…… 하오문주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고 봐야 한다. 하오문이 다른 자에게 장악되지 않는 한 그런 명이 내려올 수 없다.
“몸조심하세요.”
다담선자는 하오문도들을 돌려보냈다.
하오문도가 송택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후, 다담선자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이제 창끝이 반대로 돌려졌네요.”
“저들은 선택했을 뿐이야.”
마야가 담담히 말했다.
여주에 있는 하오문도는 대부분이 진걸의 직속 수하들이다.
진걸은 모주가 된 후, 자신의 뜻에 동조하는 문도를 직접 선발했다.
그들이 이들이다. 이들은 진걸의 배반을 미리 알았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또한 무림 군웅들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호채마를 감시했을 공산도 크다.
이들은 여주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마야에게는 더 이상 협조할 수 없다고 공언했다. 자신들은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다고.
천만에! 그들은 계속 활동한다.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호채마를 감시하리라. 정도무인들에 대한 모든 것을 샅샅이 파악해 준 것처럼 호채마에 관한 것이라면 아침에 무얼 먹었는지까지 캐내서 군웅들에게 갖다 바치리라.
하오문은 마가 아니라 정을 선택했다.
그들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버려 둘 수도 없다.
선악(善惡)의 구분이란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세상에서 활불(活佛)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도 내게 나쁜 짓을 하면 악인이 되는 것이고, 숱한 사람을 죽인 살인마도 날 도와주면 선인이 된다.
“시마, 얼씬거리는 자들이 없게 해주세요.”
마야는 모르는 사람도 아니니 넉넉한 마음을 베풀고자 했지만 다담선자는 그럴 수 없었다.
싸우는 중이다. 나라로 말하면 전시(戰時)다. 이럴 때 적에게 관용을 베풀어서 어찌하겠다는 건가. 송양지인(宋襄之仁)을 보일 생각인가. 적은 적일 뿐이다.
“흐흐! 그건 걱정 마.”
시마도 다담선자의 말에 동의했다.
“말씀드린 건 어때요?”
“다 매설했소. 누구든 담을 넘는 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오.”
사망혈인이 장담했다.
“언장은마 소식은요?”
“아직 못 찾았어. 어디선가 치료를 하고 있을 텐데, 돌아와 봤자 짐이 될 게 뻔하니 혼자 숨어서 치료하는 것 같아. 좌우지간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곰탱이라니까.”
수검이 툴툴거렸다.
싸움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그리고 많은 싸움을 이겼다. 한데 이겨도 이긴 게 아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사라진다. 고루쌍마, 철탑거추가 죽었고, 언제까지나 옆에 있을 줄 알았던 혈유마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제는 땅속에 숨어 살기에 가장 오래 버틸 줄 알았던 언장은마까지 상했다.
이렇게 한 명씩 다치고 죽다가 끝날 게다.
“더 기다려야 돼요?”
다담선자가 마야에게 물었다.
마야가 누구를 기다리는지 안다. 잔접이다. 잔접이 멸신구관의 실마리를 움켜쥐고 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혈귀대주를 죽인 자는 궁왕이다. 그럼 궁왕만 죽이면 되지 않나. 독조림, 상조문, 철사문을 멸문시켰으니 궁왕만 제거하면 친구의 복수는 끝난다.
무공은 어떤가? 궁왕이 무신이라지만 마야 또한 그에 버금간다. 청양자를 비롯한 무인들이 여주에서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지리멸렬하여 패퇴한 것이 좋은 예다.
당금 무림에서 마야를 어찌할 사람이 몇이나 되랴.
그럼 싸우면 되지 않나. 궁왕과 겨뤄서 친구의 복수를 하면 끝나는 게 아닌가.
멸신구관을 누가 만들었고, 석상 무공이 어쨌고, 콘이 어떻고…… 그런 일들을 캐내서 뭘 얻겠다는 건가. 하오문이 정파에 붙으면 소매치기가 인정받는 세상이라도 된다는 건가? 그런 일들을 캐내서 해결하면 마도가 정도와 섞이기라도 한다는 건가?
세상은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는 법이다.
이제 그만…… 여기서 접고 싶다. 정 마지막 복수까지 하고 싶다면 궁왕과 싸우면 된다. 그 이상은 오지랖이다.
호채마는 지쳐 가고 있었다.
목적이 있는 싸움을 하고 싶은 게다.
북검문, 남도문처럼 뚜렷한 문파를 만드는 것도 좋다. 형식에 불과하지만 마궁이 마련되어 있으니, 마궁의 위용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도 뜻깊다.
죽더라도 의미있는 죽음이 낫지 않겠나.
마야는 침묵했다.
일어난 일들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모든 일이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아떨어진다.
혈귀대주는 뛰어난 자였다. 칠성군이 아니면서도 그들을 위협하는 위치에까지 올라갔다.
북검문에서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자는 많았다.
하나, 그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궁왕이 직접 나서서 활을 쏠 만큼 위협적이지는 않다.
수상한 냄새는 거기서부터 피어올랐다.
자신은 친구의 죽음에 즉시 개입했으나 궁왕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상조문이나 독조림을 상대한 것도 천멸도 살수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림없었다.
그랬다. 당시 자신의 능력은 아주 미미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무공은 펼칠 수도 없는 몸이었으니 기껏 한다는 것이 차도살인(借刀殺人)이다. 따르는 마인들을 최대한 강하게 키워서 그들로 하여금 복수하게 하는 게 고작이었다.
묘한 것은 궁왕을 만난 후에 바로 석신(石身)이 되었다는 거다.
금연화에게 문제가 있지는 않다. 문제가 있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목갑이다. 신경도 쓰지 않고 있던 목갑이 기가 막힌 시점에서 그의 몸을 석신으로 만들었다.
무공을 얻기 위해서, 자오법신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 멸신구관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멸신구관은 지독했다. 아니, 조금도 지독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백이면 백, 죽을 수밖에 없는 관문이다. 하나 오귀의 절학을 모두 익히고 있는 그에게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관문이었다.
흡혈고인, 미염흑매, 적선태…… 공포스러운 죽음의 존재들이 그에게는 오히려 영약이나 진배없었으니 죽으려야 죽을 수가 없었다.
우선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 석신을 풀고, 영약을 주어 몸을 치유시켰다.
멸신구관은 정확히 그를 치료하는 도구였다.
그럼 석상무공은 어떤가?
그것 역시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콘이 얻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완전한 몸을 얻은 그가 석상무공까지 익혀서 그야말로 탈태환골(奪胎換骨)하여 세상에 나왔어야 한다.
한데 콘이 석상무공을 얻었다.
여기서 준비된 안배가 조금 틀어졌다. 아니다. 석상무공을 만든 자는 마야가 얻지 못하고 제삼자가 얻을 것까지 염두에 두었다. 그래서 또 다른 장치를 가해놨다.
‘마야를 죽여라’는 주문이 그것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콘은 마야를 죽이기 위해서 몸부림쳤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마야가 그를 찾지 않아도 그가 마야를 찾게 된다는 뜻이다.
마야는 살기 위해서 싸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일견후즉파의 능력이 발휘되어 콘의 무공을 흡수한다.
석상무공이 콘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해졌다.
혈귀대주의 죽음에서부터 석상무공을 얻기까지가 하나로 쭉 이어져 있다.
마야는 그다음을 알고 싶은 거다.
석상무공을 익힌 후에 뭘 해야 하는가.
그 해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잔접뿐이다.
잔접이 아닐지도 모른다. 짐작도 하지 못하는 자가 개입되어 있을 수도 있다. 단지 잔접이 멸신구관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잔접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