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97
297
“폐관묘에 출입할 수 있는 자는 두 명뿐입니다. 조사해 보죠.”
“그리고…….”
“예, 듣고 있습니다.”
용두방주의 음성이 점점 미약해졌다. 말하는 것조차 힘에 부친 게다. 하기는 지난 십 년 동안 오늘처럼 많은 말을 한 적도 없었다.
“저 아이…… 마야. 꼭 죽이게.”
용두방주는 다시 한 번 다짐을 주었다.
“쉬셔야겠습니다. 기력이 많이 쇠잔해지셨어요.”
취옹개가 덕지덕지 기운 이불을 끌어 올려 용두방주의 가슴을 덮어주었다. 그때,
“허! 흡!”
용두방주가 괴이한 숨소리를 냈다.
“방주! 방주!”
취옹개가 이불을 덮다 말고 황급히 진맥했다. 하나 그의 얼굴은 곧 참담함으로 일그러졌다.
“운명하셨소.”
“어찌 이럴 수가! 어찌 이리 허무하게!”
용두방주 곁에 있던 팔비개와 죽적개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방주! 방주!”
광화자와 옹홀개도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엉금엉금 기어 방주 곁에 이르렀다.
“조용히 하게. 싸움 중이잖나.”
취옹개의 잔잔한 일갈에 네 장로는 숨죽여 울음을 토해냈다.
방주의 죽음은 조용했다.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주화입마를 당해 쓰러지던 순간부터 항상 준비해 오던 죽음이다. 그렇다. 방주의 최후는 이렇게 종결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잠시 후에 일어났다.
“컥!”
비급에 몰두해 있던 담뢰가 갑자기 거센 숨을 토해내더니 풀썩 꼬꾸라졌다.
“이런!”
“주화입마!”
어찌 이런 일이!
장로들은 즉시 담뢰를 일으켜 앉혔다.
취옹개가 명문혈(命門穴)을 맡았다. 팔비개는 백회혈(百會穴)을, 옹홀개는 회음혈(會陰穴)에 장심을 갖다 붙였다. 죽적개는 양발 용천혈(湧泉穴)을 움켜잡았고, 광화자는 양손 노궁혈(勞宮穴)을 꾹 눌렀다.
“시작하네.”
취옹개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눈을 감았다.
쏴아아아아아……!
진기가 밀려든다. 사방에서 밀려든 진기가 경맥을 거슬러 올라가더니 단전에서 맞닥뜨린다.
꽈앙!
일차 충돌이 일어났다.
“후웁! 시작!”
취옹개는 잠시도 여유를 두지 않고 두 번째 진기를 쏘아냈다.
쏴아아아아! 꽈앙!
담뢰의 몸이 거센 충격에 꿈틀거렸다.
“후웁! 시작!”
세 번째 진기 주입이 시작되었다.
담뢰의 몸이 용두방주 옆에 뉘어졌다. 한 사람은 죽은 자요, 한 사람은 사지가 마비된 자다.
“휘유! 사정이 이러니 싸움은 미룰 수밖에 없겠소.”
“그건 안 됩니다. 방주님의 유훈이 놈을 죽이는 거였습니다. 죽여야 합니다.”
옹홀개가 즉시 반박했다.
“개방의 중심이 무너졌소!”
취옹개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용두방주가 유명을 달리하고, 후개까지 주화입마로 정신을 놓아버렸으니 개방을 이끌어갈 사람이 없다. 이럴 경우, 장로들은 장로 전체 회의를 통해 차기 방주를 선출해야 한다.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타구봉법이 무사하지 않은가. 비급일망정 실전(失傳)되는 비극은 막지 않았는가. 용두방주가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타구봉법을 비급에 적을 생각은 어떻게 했으며, 후개가 무공을 수련하는 자리에 장로를 들이는 파격적인 행동은 어찌했겠는가.
“이렇게 합시다.”
팔비개가 입을 열었다.
“다른 장로들까지 전부 소집하는 데는 한 달 정도가 걸릴 겁니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이 일을 비밀에 붙이고, 마야를 몰아붙입시다. 그때까지야 결판이 나겠죠.”
“놈도 살과 뼈로 이뤄진 인간인데 먹지도 자지도 않고 싸울 수야 없겠지.”
광화자가 이를 갈며 말했다.
“마야는 나에게 맡기게. 지금은 싸울 때가 아냐.”
“그렇게는 못하오이다!”
옹홀개까지 반대했다.
“마야를 죽이지 못한다면 내가 개방을 떠나겠네. 그럼 됐는가? 지금은 개방을 정비할 때야. 싸울 때가 아니네. 방금 한 달이라고 했는가? 한 달이면 승부가 날 거라고? 허허허! 잘못 알고 있군. 놈은 언제든지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네. 놈에게 사술이 있다는 건 생각하지 않는가? 놈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어도 사술을 쓰지 않고 개방 무공만 사용한다고 확신하나? 우리 중에 놈을 잡을 사람이 있는가? 누구든 말해보게.”
“…….”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마야가 개방 무공만 사용한다면 승산이 있지만 사술까지 쓴다면 대책이 없다. 사천왕까지 꽁꽁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했는데, 누가 맞서랴.
사술이란 마술과 같다. 속임수만 알아내면 언제든 부실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놈의 속임수를 간파하지 못했다.
취옹개 말대로 시간이 필요했다.
“마야를 놓아주겠네.”
“…….”
이번에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참으로 원통한 일이다. 비분강개할 일이다.
“이 비급은 방주님 유해 밑에 놓고, 세 명씩 짝을 이뤄 지키는 것으로 하세.”
취옹개가 비급을 용두방주 시신 밑에 집어넣었다.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팔비개와 죽적개, 그리고 상처 입은 옹홀개가 먼저 시신을 지키기로 했다.
모두 빠져나간 관제묘에 세 사람만 남았다.
순간, 세 사람은 눈빛을 빛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자 팔비개가 재빨리 용두방주의 가슴 부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다.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이번에는 목을 비롯해서 겨드랑이까지 샅샅이 훑었다.
아무것도 없다. 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팔비개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스며 나왔다.
예상한 죽음, 예상한 주화입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주는 괜히 주화입마에 걸린 것이 아니다. 운공 중에 암산을 당해서 잘못될 수밖에 없었다.
암산을 당했는데 흉수를 찾지 않았겠는가? 찾았다. 범위를 상당히 좁혔다.
폐관묘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여섯 명뿐이다. 용두방주와 후개가 두 명이다. 방주 폐관 시 꼭 보고해야만 하는 중대 사안이 있을 경우에 한하여 출입이 허가된 취옹개가 한 명이다. 그리고 수발을 들어주는 오결제자 세 명이 마지막이다.
용두방주와 장로들은 오결제자들은 열외시켰다.
그들의 무공으로는 방주를 암산할 수 없다. 아무리 운공 중이라고 해도 목숨이 걸린 문제이니만큼 반격이 없을 수 없다. 당시, 방주를 암산한 자는 반격을 피해냈는데, 오결제자였다면 피할 수 없었다.
결국 모든 혐의는 취옹개에게 돌려졌다.
하나 취옹개는 방주가 암산을 당하는 시간에 섬서성(陝西省) 화산파(華山派)에 있었다.
암산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실마리가 끊긴 것은 아니다. 용두방주에게는 마지막 한 수가 남아 있었다. 흉수는 부상만 입혔지 목숨을 거둬가지는 않았다. 충분히 죽일 수 있었는데도 죽이지 않았다. 왜?
개방 방주만이 수련할 수 있는 타구봉법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용두방주에게는 기회가 있는 셈이다.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방주가 죽고, 후개가 개방을 이어받는다면 흉수가 어떻게 행동할까? 가만히 있을까? 타구봉법을 후개에게 전해주는 광경을 목도하면 어떤 행동을 취할까?
반반의 가능성이 있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면 흉수는 단순히 용두방주를 폐하고 후개를 밀어주는 자일 것이다. 후개까지 화를 입는다면 틀림없이 타구봉법을 노리는 자일 게다.
어쨌든 확인할 가치는 있다.
방주의 회복 가능성이 전무하니 목숨을 아껴 무엇 하랴.
마야의 출현, 개방의 참패, 열네 명의 장로 중 아홉 명이 모여 있는 상황은 용두방주로 하여금 계획을 실행하게 만들었다.
걸리면 좋고 걸리지 않아도 손해는 없다는 심산이었다.
방주는 후개에게 타구봉법을 전수했다. 그리고 장로들을 불러 모았다. 마야를 꼭 죽이라는 당부 정도면 모두를 한자리에 모을 명분은 충분했다.
한데 죽었다.
방주의 몸에 손을 댄 사람은 취옹개뿐이다. 역시 취옹개가?
담뢰는 어떻게 했을까? 도대체 무슨 수법을 썼기에 모두가 있는 앞에서 주화입마를 시켰을까? 모두들 방주의 죽음 때문에 정신을 놓아서 못 본 것일까?
아니다. 똑똑히 지켜봤다. 애통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취옹개의 손끝, 발끝 어느 한 부분 놓치지 않았다.
취옹개는 손을 쓰지 않았다. 의심받을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의심해 왔지만 취옹개는 아니었다.
그럼 오결제자 중에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의 조력을 구하지 말란 법이 없다. 외인을 끌어들였을 가능성이 충분했는데,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취옹개에 너무 집착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자, 조력자는 방주의 임종을 지켜본 다섯 장로 중에 한 명일 공산이 크다. 담뢰가 암산을 당하고 말았으니까. 모두 취옹개만 쳐다볼 때, 그자는 유유히 손을 썼으리라.
암산을 한 자와 타구봉법을 알아내 외부에 흘린 자는 같은 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자는 마인인가? 왜 타구봉법을 마군에게 전했을까? 그리고 방주를 살려둔 이유는 무엇일까? 진작 죽이고, 후개까지도 제거하고 개방을 움켜쥐었어야 정상이지 않은가.
다른 목적이 있다. 개방을 혼란에 빠뜨려야 할 이유가 있으리라.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끔,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게끔 만들려는 게다.
“없어, 없어.”
팔비개가 탄식을 토해냈다.
용두방주의 몸에는 바늘구멍조차 없다. 살해 의혹을 제기할 어떤 근거도 없다.
용두방주는 개죽음을 당한 것인가.
용두방주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장로들의 면면을 살폈다. 이미 뱃속에 회충이 몇 마리 들었는지까지 아는 사람들이지만 다시 한 번 살폈다. 그리고 자신을 절대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 세 사람을 골라냈다.
그들이 지금 용두방주의 시신을 지키는 팔비개, 죽적개, 옹홀개다.
세 사람에게는 개방을 이 지경으로 만든 원흉을 찾아낼 책임이 있는 것이다.
설마 방주가 자연사한 것은 아니겠지.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방주가 죽는 순간에 담뢰까지 자연 주화입마한 것은 아니겠지.
취옹개와 방주가 철저히 믿은 세 사람을 제외하면, 남은 사람은 광화자뿐이다.
광화자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
한 가지, 용두방주가 헛죽음을 했으며, 담뢰 역시 애꿎은 희생자라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취옹개네.”
“마야요.”
“그만 하고 가게. 길을 열어주겠네.”
취옹개가 방주의 신물인 취옥장(翠玉杖)을 번쩍 들어 올렸다.
개방도는 울분을 토하면서도 취옥장의 권위를 거슬리지 않았다. 그들은 대타구진을 풀고 길을 비켰다.
마야는 그때까지 사용하고 있던 옹홀개의 타구봉을 내던졌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오늘 밤, 자정. 자룡(子龍)과 만나세.”
취옹개 곁을 스쳐 지날 때 들릴락말락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보다 더 작은 음성이 들려왔다.
개봉부에는 조운(趙雲) 조자룡(趙子龍)을 모신 사당도 있다.
황하를 바라보는 언덕에 아담하게 세워졌으며, 현재도 그의 무운(武運)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참배하여 향을 살린다.
마야는 다담선자와 일령, 양리리는 객잔에 남겨두고 저녁 무렵부터 황하 강변을 어슬렁거렸다.
그의 뒤에는 어김없이 개방도들이 뒤를 따라붙었다. 굳이 따라붙었다고 말할 것도 없다. 보보(步步)마다 거치적거리는 사람들이 개방 거지들이다.
저녁이 되어 황혼이 강변을 누빌 무렵에는 주먹밥을 꺼내 먹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유시(酉時)에서 술시(戌時)로, 술시(戌時)에서 해시(亥時)로 넘어갔다. 그리고 약속한 자시(子時)를 향해 치달렸다.
순간, 마야의 신형이 어둠과 동화되더니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엇! 놈이 없어졌다!”
“멀리 못 갔어! 빨리 찾아!”
개방도가 분주히 움직일 때, 마야는 천멸도의 은신술을 펼쳐 사당을 향해 나아갔다.
그는 정확히 자시정(子時正)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운을 모시는 사당이다.
안에는 작은 모닥불이 피어 있고, 대여섯 명의 거지들이 빙 둘러앉아 있다.
작은 소리로 속삭여 오기에 은밀히 만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뜻밖이다.
그들은 마야를 보고도 별반 놀라지 않았다.
“어서 오게.”
낯익은 얼굴, 취옹개가 자리를 권했다.
마야는 그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술이 있다. 고기도 있다. 잔칫집에서 얻어온 듯 병간(맞干:과자)도 놓여 있다.
“들게.”
“용건이나 이야기합시다.”
싸움 끝이다. 좋은 말을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다.
취옹개는 싸움 같은 것은 없었던 사람처럼 태연히 말했다.
“자네가 개방을 찾아온 이유를 들어보고 싶어서 불렀네. 단지 싸우러온 것뿐이라면, 이야기할 게 없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게.”
마야의 눈이 번쩍 신광을 토해냈다.
마야가 돌아간 후, 개방 장로들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유계를 치는 데 협조해 달라는 뜻밖의 말을 들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럼 뭔가? 마야를 적으로 간주해야 하나, 아니면 마도를 벗어나려는 배반자쯤으로 생각해야 하나.
“방주님에게 조금만 융통성이 있었어도 싸움은 없었을 텐데.”
취옹개가 많은 죽음을 아쉬워했다.
개걸산 싸움으로 개방도는 많은 손해를 봤다. 죽은 자가 무려 서른두 명이고, 부상자는 삼백여 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