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
3
북검문은 어떠한 입장도 발표하지 않았다.
혈귀대의 명성이나 공적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지만 낮게 내려앉히고자 하면 천랑대의 일개 조일 뿐이다.
북검문은 후자를 선택한 듯 조용하기만 했다.
***
“가보시지 않을 거예요?”
“…….”
“지금 안 보시면 평생 한이 될 텐데…….”
“…….”
“오늘내일 사이로 매장한다던데…… 치잇! 해도 너무했지 뭐예요. 혈귀대주님이 어떤 분인데 겨우 무장(武葬)이 뭐예요, 무장이. 이건 대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과 똑같잖아요.”
금연화(金蓮花)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혈귀대주, 그는 한낱 하급 무인에 지나지 않았던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북검문에서 혈귀대주가 차지하고 있던 영향력은 대단히 컸다. 그의 죽음은 최소한 기둥뿌리 하나쯤은 뽑혀져 나가는 충격이다.
그런데 그의 죽음이 별호조차 없는 무명 무인의 죽음처럼 쓸쓸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해는 한다. 북검문은 북무림이 받을 충격을 최소화시키겠다는 생각에서 그의 죽음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보내서는 안 될 사람이야. 혼례도 치르고, 애도 낳고, 깨가 쏟아지도록 행복을 맛본 후에 잠자듯이 영면에 들어야 할 사람이야.’
행복은 끝났다. 그와 보낸 시간은 꿀보다도 달콤했지만 영원히 머릿속에서만 기억될 추억이 되고 말았다.
“정말 안 가세요? 너무들 하세요. 부주(府主)님이야 북검문주님의 뜻을 좇는다지만 아씨는 연인(戀人)이었잖아요. 어떻게 마지막 가는 길도 안 보세요?”
‘그 사람이 말했어. 자유를 잃은 사람은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행동도 하지 못하고 그저 시키는 일만 죽어라고 해야 한다고. 그래서 용꼬리보다는 닭대가리라도 되어야 한다고. 자유를 잃은 사람의 비애(悲哀)…… 그거겠지. 연인이 죽었어도 향조차 피우지 못하는 운명이.’
금연화는 가슴속 말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고, 펑펑 울고도 싶지만 자하부(紫霞府)의 안위를 생각해서 꾹 눌러 참았다. 슬픈 내색조차도 비치지 않았다.
북검문에서 하급 무인들에게 행하는 무장을 하건 말건, 장래를 약속한 연인이건 말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부중에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참새에게 노림을 당하는 사마귀의 운명인 것을 한낱 시비가 어찌 헤아리랴.
금연화는 손톱이 살 속으로 파묻히도록 으스러져라 주먹을 말아 쥐었다.
혈귀대 여덟 명의 장례는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문상객도 없고, 곡도 없으며, 상여도 없는 장례다. 목관에 몸을 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인 듯 모든 예식이 생략된 조촐한 장례, 무장이다.
장지도 북검문에서 십 리나 떨어진 야산 공동묘지로 정해졌다.
북검문 하급 무인들이 죽을 경우, 거의 대부분 묻히는 곳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관을 실은 마차는 자정에 빠져나가 인시(寅時)에 돌아왔다.
그것으로 끝이다. 혈귀대라는 이름은 무림에서, 북검문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다.
무덤이 너무 많다. 야밤이라서 묘비명을 읽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래도 읽고자 한다면 달빛, 별빛에 의존하여 하나씩 더듬어가는 수밖에 없다.
“새로 생긴 무덤만 찾으면 된다. 흙냄새가 유독 진하게 풍기는 무덤. 떼조차 입히지 않았을 테니, 물기가 마르지 않은 흙더미만 찾으면 된다. 찾아!”
크게 말하지도 않았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듯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어둠 속에서 야조(夜鳥)들이 날아올랐다.
날렵한 몸매에 이 척쯤 되는, 다소 짧은 장검을 두 자루씩이나 허리춤에 매달고 있는 여인들.
여인들이 빠른 속도로 봉분들을 훑어갔다.
새로 생긴 무덤이니 어렵지 않게 찾으리라. 하나 금연화는 자하령(紫霞靈)들이 무덤을 찾아줄 때까지 뒷짐이나 진 채 한가히 기다릴 수 없었다.
그녀도 발을 떼어 무덤들 사이로 들어섰다.
향화라도 올려줘야 한다. 간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가버린 사람이니 할 말인들 오죽 많을까. 향을 피우고 지전(紙錢)이라도 살려주면 혹여 못다 한 말을 건네오지는 않을지.
“인근 오 리 이내에는 쥐새끼 한 마리 없어요.”
야조가 민첩한 신법으로 다가와 옆에 서며 말했다.
금연화는 대답하지 않고 묘들을 훑어갔다.
북무림에서 북검문의 지시는 절대적이다. 금족령(禁足令)을 내리면 문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디뎌서는 안 된다.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아야 한다.
그들의 명을 어기고 찾지 말라는 묘를 찾는 건 큰 모험이다.
무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느 무덤이 방금 만든 무덤이고 일 년 전에 만든 무덤인지 분간이 가지를 않는다. 죽은 사람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온 산이 무덤 천지이니 어느 천 년에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찾아야 돼. 오늘 못 찾으면 내일. 내일도 못 찾으면 모레. 꼭 찾아야 돼. 물어볼 거야.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이기에 그렇게 가버렸냐고. 골치 아픈 계집 떼어놓고 가버리니 속 시원하냐고.’
그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죽음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그도 죽는구나. 검에 찔리기도 하고, 화살에 관통당하기도 하는구나.
시간은 화살처럼 흘러갔다.
공동묘지를 찾았을 때가 유시(酉時). 지금은 해시(亥時)를 지나 자시(子時)로 접어든다. 달빛이 하늘 한복판에서 빛나고 있으며, 풀벌레 소리가 스산하게 들린다. 그때,
쨍그렁!
무엇인가 사발 깨지는 소리와 흡사한 소리가 그녀의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그녀의 몸은 일시에 굳어졌다.
짐승이 내는 소리인가, 사람이 흘린 소리인가. 사람이라면 이 늦은 시간에 공동묘지에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혹시 북검문 무인들이 잠복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정말 그렇다면…….
금연화는 다급히 옆에서 따라오는 여인을 쳐다봤다.
여인은 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시, 죽음과 같은 정적이 흘렀다. 다른 곳을 뒤지던 자하령들도 소리를 들었는지 숨소리를 숨겼다.
금연화는 촌각이 십 년이나 되는 듯 길게 느껴졌다. 그 짧은 시간 안에 한 가지 결정을 내려야 하기에 시간은 더욱 더디게 갔다.
이윽고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손을 들어 목을 가로 그었다.
옆에서 따르던 여인이 인상을 찡그리며 또 한 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만은 안 된다는 뜻으로. 하나 금연화의 가늘게 찡그러지는 미간(眉間)을 보는 순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쌍검을 뽑아 들었다.
사아악……!
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왔지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장검들은 검신에 윤기가 흐르도록 갈고 닦는 법인데, 여인이 뽑아 든 검은 거무튀튀해서 전혀 빛이 나지 않았다.
부스럭!
몸을 뒤척이는 듯한 소리가 또 들려왔다.
사람이 확실하다. 짐승이 흘리는 소리와는 전혀 다르다.
금연화는 신경을 곤두세운 채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쏘아갔다.
쉬익! 쉭쉭쉭……!
사방에 흩어져 있던 열 명의 야조도 토끼를 노리는 독수리가 되어 목표점으로 달려들었다.
무덤을 다섯 열 정도 거슬러 올라갔을까?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두 사람을 찾아냈다. 봉분을 등에 지고 누워 술을 마시고 있는 노인과 그 옆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청년.
척! 척척척……!
이십여 개의 검날이 두 남자의 전신에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손아귀에 일 푼이라도 힘이 가해지면 여지없이 피분수가 솟구칠 형국이다.
노인과 청년의 행동이 뚝 멈춰졌다.
노인은 놀란 눈으로 어둠 속에서 나타난 여인들을 두리번거리며 쳐다보았고, 청년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담담한 표정으로 몸에 달라붙은 검신을 쳐다보았다.
금연화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인이 아니다. 무림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일단 그것만으로도 안도의 숨을 내쉬기는 충분하다.
북검문 무인이라면 제거하려고 했다. 북검문 무인들을 죽이는 것은 자하부를 백척간두(百尺竿頭)로 내모는 행위이지만, 죽이지 않으면 자신들이 이곳에 온 사실이 알려지니 그에 못지않은 질책을 받는다. 그러잖아도 자하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북검문인데.
살아 있는 자는 눈이 있어서 볼 수 있지만 죽은 자는 몸으로만 말해야 한다.
금연화는 몸으로 말하지 못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이들은 무인이 아니다. 죽이든 살리든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조금이라도 불안한 느낌을 주거나, 북검문에 말을 흘릴 기미가 있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죽이리라.
노인은 눈여겨볼 것도 없다.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병자다. 전신이 비루먹은 망아지처럼 비쩍 말랐고, 눈두덩이 검푸르게 변색된 것을 보니 양기(陽氣)가 거의 소진되었다.
한마디로 노인은 일 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으리라.
노인은 무덤에 몸을 기대고 비스듬히 누워서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봉지(封紙)를 뜯지 않은 술독이 세 개나 있고, 조금 먼 곳에는 아직도 주향이 물씬 풍기는 술독들이 수북이 깨져 있다.
그녀들의 청각을 자극했던 소리는 술독이 깨지는 소리였다.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말술을 들이켜고 있으니 정말 죽음이 멀지 않았다.
청년은 눈여겨볼 만하다.
잘 다듬어진 몸이다. 근육이 뛰어나지만 섬세하고 부드러워서 보기 좋다. 머리를 풀어헤친 산발한 모습이라서 얼굴은 볼 수 없다. 하나 꽤나 준수한 용모를 지닌 듯하다.
반면에 행색은 영락없이 부랑자다.
옷은 허름하다 못해 상거지 꼴이다. 수십 년은 빨아 입지 않은 듯한 누더기를 걸치고 있으니 보기 싫은 것은 차지하고 역겨운 냄새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다.
금연화는 촌각도 지나지 않아서 두 사람의 모든 것을 파악해 냈다.
“오밤중에 공동묘지에서 술을 마신다? 뭐 하는 놈들이냐!”
냉기가 풀풀 날리는 음성이었다.
“저, 저흰 수, 수묘인(守墓人)인뎁쇼.”
노인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더듬더듬 대답했다.
수묘인? 수묘인이 이 시간에 공동묘지 한복판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하늘을 천장으로 삼고 공동묘지를 구들장 삼아서 잠이라도 청할 생각이었단 말인가.
금연화는 청년의 손에 눈길을 주었다가 무릎 부근으로 옮아갔다.
손에는 작은 소도(小刀)가 들려 있다. 무릎 부근에는 작은 널빤지가 놓여 있다.
일령이 재빨리 널빤지를 빼앗아 금연화에게 내밀었다.
‘무슨 짓들을 하고 있…….’
갑자기 숨이 막혀온다. 널빤지를 보는 순간 세상이 정지했다. 오감(五感)을 비롯하여 모든 신경이 가닥가닥 끊어진다. 몸을 움직일 수 없고, 말을 할 수 없다.
혈귀대주(血鬼隊主) 지(之) 묘(墓).
“이…… 이건…… 너, 너희…… 뭐 하…… 뭐 하는…….”
“저흰 수묘인인뎁쇼.”
노인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너, 너희는 북검문이…….”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는다. 북무림에 어떤 자가 있어서 이들처럼 대담하게 묘비를 세울 수 있단 말인가. 북검문이 세우지 않은 묘비를. 혈귀대주의 묘비를.
“휴우! 저희 같은 수묘인들의 눈에는 죽은 사람은 모두 똑같습죠. 왕후장상이나 거지나…… 죽어서 땅속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구별은 있습죠마는, 실은 숨이 끊어지는 순간부터 주검이 가져가는 건 아무것도 없습죠.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그저 맨몸뚱이 땅에 묻는 것뿐인데.”
수묘인다운 말이다.
“묘를 만들면 어떻고 들짐승 밥이 된들 어떻습니까. 썩어 문드러지는 게 육신인데. 그래도 굳이 묘를 만드는 것은 잊지 않겠다는 약속인데…… 약속을 할 바에는 확실하게 해주는 것이 좋습죠.”
“그래서 묘비를 세워준다? 북검문이 세우지 않은 묘비를?”
“사, 살려만 주시면 두 번 다시는…….”
“마저 해.”
“네?”
“묘비를 만들란 말이야!”
기적적으로 묘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수묘인을 만났다. 천만다행이다. 자신들이 찾으려고 했다면 한 달을 찾아도 못 찾을 뻔했다. 수묘인 말대로 묘비조차 없는 묘인데 어떻게 그를 찾을까. 새로 만든 무덤이 딱 여덟 개라면 모르는데 무려 사십여 개에 이르니.
비록 허술한 장례를 치르기는 했지만 혈귀대는 역시 북검문의 중추였다. 진묘(眞墓) 여덟 개를 만들기 위해 가묘(假墓)를 서른두 개나 만든 것이 혈귀대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금연화는 흙더미만 쌓아 올려진 초라한 무덤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혈귀대주(血鬼隊主) 지(之) 묘(墓).
수묘인이 부실하게 만든 널빤지를 얻기 위해서 그토록 험한 싸움터를 전전했던가.
향을 사르려고 했다. 지전을 태우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비어지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린다.
‘어쩌자고…… 어쩌자고…… 이렇게 누워 있는 건가요? 내가 보고 싶지 않나요?’
꿈이었으면…… 이게 꿈이었으면…….
시간이 화살처럼 흘러갔다.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투정도 부리고, 성질도 내고, 애원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든 깊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속이 풀리도록 실컷 울기도 했다.
사람을 잃는다는 게 이렇게 큰 고통일 줄 몰랐다. 가슴이 찢어지다 못해 이글거리는 불길에 녹아 새까만 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증오라는 새로운 불길이 솟구친다.
금연화는 눈물을 닦았다.
‘오늘만 울고 울지 않을 거야.’
날이 밝아온다. 그는 가고 없건만 태양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얼굴을 내민다.
금연화는 몸을 일으켰다.
무덤을 찾았으니 자주 찾아올 수 있다. 그가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달려올 수 있다. 그의 몸은 옆에 없지만 마음이 남아 있기에 같이 있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또 올게요. 낮에는 오지 못하고 밤에만 올 거예요. 언젠가는 낮에도 찾아올 수 있겠죠. 잘 있어요.”
금연화는 내일 또 만날 사람처럼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음에 올 때는…… 활짝 웃을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을 죽인 사람들…… 누가 되었든…… 그자의 머리를 들고 올게요. 북검문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제가 할게요. 당신의 복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