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05
305
사천제일룡은 미독을 사용하여 진기의 집중도를 관찰했다. 그리고 진기가 일점에 모이는 순간을 노려 환독을 썼다. 천비대주가 순간적으로 일어난 환상을 공격하는 동안, 유유히 진독을 사용하여 목숨을 끊었다.
동귀어진이 일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까지 완벽히 배제한 최고의 공격이다.
“독마……”
죽립인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사천제일룡은 독인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는 인간이 아니라 신의 경지로 접어들었다. 현 무림을 좌지우지하는 무신의 경지가 이렇지 않을까 한다.
그는 무공이 아니라 독공으로 입신했으니 독신(毒神)으로 불려져야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이만한 독공이면 굳이 마독을 쓰지 않아도 세상을 오시할 수 있는데, 그랬다면 사천당문 또한 한 걸음 더 비약하는 계기가 되었을 텐데……
그는 만인의 우상이 될 수 있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도주한 만박선생을 비롯해 천비대 몇 명뿐이다. 그들만 제거하고, 사천제일룡이 마음만 바꾼다면 북무림에서 벌어진 살상은 없던 일이 된다.
때로는 눈에 보이는 족족 죽여대는 잔혹함이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이 얼마나 모순인가.
죽립인은 생각을 오래하지 않았다.
“가자!”
고양이는 배가 고플 때만 사냥을 한다. 뱀도 마찬가지다. 눈 앞에 쥐가 얼쩡거려도 먹이를 먹을 때가 아니면 내버려둔다.
인간은 다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데는 이유가 없다. 사마(邪魔)의 경우에는 재미 삼아 죽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만박선생은 죽음을 예감했다.
‘그 자는 독공 수련 중이었어.’
만반선생이 판단한 사천제일룡의 모습이다.
살아 움직이는 인간을 대상으로 독공을 펼침으로써 온실 속에서 수련한 독공이 아니라 살아있는 독공을 얻고자 한다.
그 수준이 천비대주까지 죽일 정도다.
천비대주뿐이 아니다. 추혼검수, 파암검수, 요명검수…… 십조를 이끄는 검수 중에 여덟 명이 유명을 같이 했다.
검수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옥면검수와 분섬검수 뿐이다. 천비대원은 더욱 처참해서 겨우 일곱 명만이 목숨을 건졌다.
만박선생은 이게 우연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무공이 뛰어나서 산 것도 아니고, 운이 좋았던 것도 아니다.
사천제일룡이 살려준 게다.
왜? 다른 독공을 수련하기 위해서.
그 자는 따라온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한 명씩 죽어갈 것이다.
“비응을 날리게. 내용은 천비대 전멸.”
“방금 전멸이라고……?”
“살기를 포기하게. 그 자는 무공으로 상대할 자가 아냐. 그렇다고 놈을 죽일 묘책이 없는 것도 아니니 개죽음을 당하지는 않을 걸세.”
“그럼 됐습니다.”
“억울해하지는 말게. 나 또한 살지 못할 터이니.”
“선생까지!”
“후후! 그 자가 원하는 건 살아있는 목숨인데, 나라고 업을 피할 수 있을까. 내 죽음까지 써넣게.”
“알겠소이다.”
옥면검수가 비응을 꺼내 왼발에 붉은 천을 매달았다. 그리고 붓과 먹을 꺼내 깨알 같은 글씨로 ‘천비대 전멸, 만박선생 사, 흉수 사천제일룡’이라는 글씨를 써넣었다.
푸드득……!
비응이 힘찬 날갯짓을 하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앞으로 비응은 하루를 꼬박 날아 북검문에 도착할 게다. 천비대의 전멸을 삼뇌와 칠성군과 십공봉에게 동시에 전할 게다.
헌데…… 하늘 높이 날아오르던 비응이 날개를 푹 접더니 화살이라도 맞은 것처럼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비응이!”
“놈이 비응까지!”
옥면검수와 분섬검수는 경악성을 내질렀지만, 만박선생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후후! 성격까지 철두철미. 북검문이 고생께나 하게 생겼군.”
만박선생이 웃는 동안, 두 검수는 재빨리 적선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비응에게 했던 것처럼 발목에 붉은 천을 매달고 붓으로 글씨를 써내려갔다.
“적선서까지 죽일 생각인가? 내버려 두게. 미물이지만 살 수 있을 때는 살게 해줘야지.”
“이 놈은 땅속으로 헤쳐 나가니 지 놈이 어찌 알겠습니까. 적선서라면……”
옥면검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적선서 일곱 마리가 털을 곤두세우며 부르르 떨어댄다.
“이게 무슨!”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중독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적선서들이 풀썩 쓰러지더니 배를 까뒤집고 죽어버렸다.
“이, 이……!”
관심은 적선서에 있지 않았다. 주위 어디엔가 있을 사천제일룡을 찾기에 부심했다.
“흠! 예상보다 훨씬 빠르군.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으면 딱 좋았을 텐데.”
만박선생이 행낭을 풀어 확 뒤집었다.
잡다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작은 돌도 있고, 나무도 있고, 뼛조각도 있다. 하나같이 무당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물건들이다.
만박선생은 자신이 앉은 자리에 홍색 돌을 놓았다.
가볍게만 보이던 만박선생의 행동이 신중해진 것은 그때부터다. 뼛조각을 들고 일어선 후 꼼꼼하게 거리를 재며 이 장 앞으로 가더니 땅 깊이 묻었다.
다음은 목각인형……
만박선생이 모든 작업을 마치는 데는 반시진이 족히 걸렸다.
그동안 사천제일룡의 공격은 없었다. 적선서가 죽은 것으로 보면 지척에 있을 터인데, 만박선생이 할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인지 조용하기만 했다.
“됐어. 다행히 시간을 주었군.”
만박선생이 손을 툭툭 털며 말했다.
“무공에 자신이 붙은 자들은 정정당당이라는 걸 좋아하지. 그래서 송양지인(宋襄之仁)이 되는 줄도 모르고 준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후후! 여유가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말을 했을 때, 난 시간이 충분할 걸 예상했어. 지금 거의 반 시진 정도가 지났지만 한 시진이 걸렸다 해도 자넨 기다렸을 거야. 안 그런가?”
허공에 대고 한 말이다.
대답이 들려왔다.
“준비가 끝났다니 됐어. 무슨 놀음인가 볼까?”
만박선생의 행동이나 잡물들의 형태로 보아서는 주술 쪽으로 생각하기 쉽다. 조금 더 깊이 봐준다면 진법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
사천제일룡은 성큼성큼 걸어왔다.
모두들 만박선생의 행동을 눈여겨본 만큼 유효거리를 잘 안다.
만박선생이 가장 멀리까지 갔던 거리는 일곱 걸음이다. 반대로 말하면 사천제일룡이 일곱 걸음 안에만 들어서면 주술인지 진법인지 모를 게 발동한다는 소리다.
사천제일룡이 그런 점을 빤히 봤으면서 안으로 들어설까?
그는 일곱 걸음 밖에서도 사람을 죽일 능력이 있다. 바람만 잘 맞으면 백 장 밖에서도 살상할 수 있다. 무작위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이고자 하는 사람만 딱 집어서 죽일 능력을 갖췄다.
사천제일룡이 일곱 걸음까지 다가와 만박선생을 쳐다봤다.
만박선생은 웃었다. 자신 있으면 들어와보라는 듯 사람 신경을 건드리는 묘한 웃음이다.
“하수(下手)군. 함정에 걸려달라고 부탁하는 수준이라면 만박선생이라는 이름을 진작 떼어냈어야지.”
“상수 중에 상수지. 함정인 걸 눈으로 봤으면서도 들어서지 않을 수 없으니까.”
“꽤 자신하는군.”
“이게 뭔 줄 아나?”
만박선생이 땅에 묻은 것과 똑 같이 생긴 청옥돌을 들어보였다.
잡물들 중에 하나다.
“이게 뭔지 궁금하면 들어설 수밖에. 날 먼저 죽일 수는 있겠지. 그래도 들어서야 돼. 소심하기 이를 데 없어서 들어서지 않는다 해도 캐내기는 해야 돼. 후후! 그마저도 하지 않을 텐가?”
사천제일룡의 눈에 불이 붙었다.
‘걸렸어! 들어선다!’
‘들어설 거야!’
곁에서 지켜보던 옥면검수와 분섬검수는 같은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이 지켜보기에도 사천제일룡의 의중은 환히 드러났다.
“잡술 따위!”
사천제일룡이 일갈을 내지르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의 손에서 붉은 가루가 흩어져 나왔다.
무서운 가루다. 가루에 닿은 풀이 순식간에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조약돌도 검게 그을렸다. 땅도 검게 탔다.
독인들 사이에서 못 태울 게 없다고 알려진 화독(火毒)이다. 순간!
꽈앙!
사천제일룡의 코앞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은 연이어졌다.
꽈앙! 꽈아앙……!
천번지복(天飜地覆), 세상이 분분이 피어오른 흙먼지로 새카맣게 뒤덮였다.
“사은림(死隱林)!”
죽립인이 침통하게 말했다.
그들은 참으로 잔혹한 집단이다. 어린아이가 가지고 노는 목각인형에 화약을 심었다. 부모와 아이를 한꺼번에 죽이기 위해서. 붉고 푸른 옥돌도 조심해야 한다. 잘 깎아서 패물로 만들면 딱 좋겠다 싶은 순간 새하얀 섬광이 육신을 앗아간다.
만박선생이 꺼낸 잡물은 사은림에서 유출된 죽음의 마물들이었다.
사천제일룡을 화약을 태워버리려고 화독을 뿌렸다. 기름에다 불을 지피는 우를 범한 것이다.
만박선생은 이 모든 것을 예측했으리라.
사실 조금만 머리가 뛰어나다면, 그리고 사천제일룡의 성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다면 이런 짓을 하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쉽다. 하물며 그는 북무림에서 가장 머리가 좋다는 삼뇌 중 한 사람이다.
사천제일룡의 상태는 몹시 나쁘다.
전신이 불에 그을렸고, 내장은 폭발로 뒤엉켰다.
그나마 이 정도인 게 천만다행이다. 진 밖에서 화독을 뿌렸기에 화약 한 개에 난타 당했을 뿐이다. 두어 걸음만 안으로 옮겨놓았다면 사지가 온전치 못했을 게다.
만박선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옥면검수, 분섬검수, 그리고 천비대원 몇 명도 여기 저기 뚝뚝 떨어져 있는 살점들로 존재했음을 알릴뿐이다.
이제 칼자루는 죽립인에게 넘겨졌다.
죽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천제일룡을 죽이려고 장강을 넘어왔다. 촌수로는 조카인 혈육을 죽이려고 먼먼 길을 헤쳐왔다.
조카란 놈은 사촌들을 두 명이나 무참히 죽였다.
길 가에 뿌려놓은 독을 건드린 것에 불과하니 그의 책임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 직접 살인이 아니고 간접 살인이다. 하지만 당문의 금독(禁毒)을 훔쳐갔기에 벌어진 일이다. 치명적인 금독이 아니었다면 죽을 사람도 아니었다.
당문십기 중 두 명이 쓰러졌을 때, 사천제일룡과 당문과의 인연은 끊어졌다. 아니, 그가 금독을 지니고 당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는 당문이 꼭 죽여야 할 위험인물이 되었다.
이제 손아귀에 들어왔다.
온 몸이 불에 그슬린 채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를 죽일 기회는 지금뿐이다. 의식을 회복한다면 되레 당할 지도 모른다. 십중팔구 당할 것이다. 당문십기의 독술도 뛰어나지만 요 며칠 사이에 보여준 사천제일룡의 독공은 정말로 눈부셨다.
생각해보라! 천랑대와 더불어 북검문의 두 기둥이라고 일컬어지는 천비대를 종이호랑이처럼 찢어발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당문십기가 모두 나서도, 사천당문이 나서도 불가능할지 모를 일을 그는 혼자 해냈다.
‘독신…… 독마……’
죽립인은 갈등했다.
독신이라면 당문을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 주겠지만, 독마라면 당문을 멸문으로 이끌 것이다.
사천제일룡은 독신인가, 독마인가.
모든 것은 사천제일룡의 마음에 달렸다.
그가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당문으로 돌아간다면 독신이 되는 것이지만, 지금 이대로 북무림을 휘젓는다면 독마가 된다.
허면 독마를 제어할 방도는 있는가?
없다. 당문십기가 지닌 독으로는 사천제일룡을 제압할 수 없다.
가장 쉬운 방법은 지금 죽이는 것이다.
독신이 출현하지 않았어도 사천 당문은 건재했다.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고, 더욱 뛰어난 독공과 암기들을 창안해 낼 것이다.
모험을 할 수도 있다.
사천제일룡이 설득되어 돌아가기만 한다면……
사천제일룡은 원래 심성이 착했다. 어른을 섬길 줄 알고, 형제나 사촌간의 우애도 깊었다.
마음을 돌릴 가능성은 열려있다.
죽립인은 결정했다.
“포박하자.”
“넷?”
“그리고 치료해.”
“이놈은!”
“시키는 대로 해!”
“휴우!”
다른 죽립인이 긴 한숨을 내쉬며 옷을 벗겨나갔다.
독인을 사로잡았을 때 제일 먼저 할 일이 발가벗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빨을 검사하고, 손톱, 발톱을 꼼꼼히 살펴서 독분(毒粉) 하나라도 털어낸다.
귓속과 항문도 살핀다.
밀랍에 감싸인 독액 한 방울이면 일파를 멸문할 수도 있다.
죽립인들은 세심하게 검사했다.
옷은 화약과 불길에 그슬려 벗겨내기만 하면 되었다. 손톱과 발톱에 독을 숨겼어도 강한 불길에 태워졌으리라.
그래도 검사했다. 천비대주를 죽인 독술이라면 백 번, 천 번 조심해도 모자란다.
검사를 마친 후에는 두 손과 두 발을 결박했다.
치료는 그런 후에야 시작되었다.
“숙부.”
“네놈에게 혈연이 있더냐!”
“후후! 쫓아오는 줄 알았습니다. 끄응! 몸이 화끈거리는 걸 보니 화상이 깊었던 것 같군요. 철골연(徹骨軟)을 발랐으면 빨리 나았을 텐데, 뭘 바른 겁니까?”
“너 같은 놈 때문에 명약을 소진할 필요가 있더냐.”
“하기는…… 이걸 어쩝니까? 당문에서 가져온 것들, 모두 재가 되어 버렸군요. 독이며, 암기며. 후후후! 모두 다 말입니다.”
“마물들뿐이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었지. 네 목숨만 거두면 그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