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10
310
마야는 황초화를 쳐다보며 말했다.
“난…… 늦었다고는 생각지 않아. 하지만 빠를수록 좋긴 해. 괜찮다면 지금 즉시 살겁을 열어주겠나?”
황초화는 웃으며 말했다. 내심을 드러낼 만큼 미숙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괜찮고 자시고 할 게 뭐 있습니까? 낙서 한 번 끼적거리면 되는데. 이만한 일을 해줬으니 이젠 저 놈 미움 안사겠죠?”
절혼마녀의 볼록한 배를 가리키며 한 말이다.
황초화는 대문 밖으로 나가서 담벼락에 낙서를 했다.
짧게 그린 사선(斜線) 하나.
밀마에 정통한 자라도 사선이 의미한 바를 깨닫는 것은 불가능하다. 밀마를 그리는 자와 받는 자가 그때그때 약조를 하기 때문에 기호가 누출될 염려는 전혀 없다.
황초화는 사선에 바짝 붙여서 다른 그림을 그렸다.
직선 하나를 쭉 내려 그은 다음 솜털이 달라붙은 것처럼 잔가지를 빼곡히 그려 넣었다.
‘됐어.’
이제 공격은 시작되었다. 중원 전역에 걸쳐서 대살육이 벌어지리라. 허나 여주부(汝州府)에서만은 어떠한 살인도 벌어지지 않는다. 죽이는 대신 오히려 마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준다. 대살육의 중심에 마야가 있다는 소문을 퍼트린다.
이제 마야는 유계 마인들의 적이 되는 게다.
마야가 살아서 여주부를 떠날 수 있을까? 그럴 것이다. 유계라면 몰라도 여주부에 있는 몇몇 마인들만으로는 마야를 이기지 못한다.
이 싸움은 마야가 이긴다. 무조건 이긴다.
허나 살아남는다 해도 극심한 피해를 볼 건 불문가지다. 그때 준비된 제 이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콘과 독인이다.
마야 대 콘과 독인.
승부는 짐작컨데 양패구상(兩敗俱傷)이다. 어느 쪽도 온전히 상대를 꺾지 못한다.
그 싸움이 끝났을 때, 제 삼의 인물이 나타난다. 여주 마인들을 치기 위해 준비되었던 사람들이다. 살아남은 자는 정도 무림의 연합공격을 받아야 하낟.
마야는 살아서 여주부를 벗어나지 못한다.
황초화는 웃었다.
그는 발길을 옮겨 마로를 걸어갔다.
송택과는 이제 ‘안녕’이다. 마야와도 ‘그만’이다.
마야는 밀마만 적어놓고 다시 들어오리라 생각하겠지만 그럴 필요가 있나. 마야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내는 것이 좋다. 괜히 송택에서 어물거렸다가 뭇 군웅들 눈에라도 띄는 날에는 졸지에 충신에서 역적으로 추락하고 만다.
이제 그만 떠나는 것이 좋다.
마야가 필요했던 것은 타구봉법 때문이다. 잔접이 내주는 정보도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모두 얻어냈다.
잔접은 더 이상 내줄 게 없고, 타구봉법은 손에 익을 대로 익었다.
아직은 타구봉법의 위용을 십분 펼쳐내지 못한다. 매초마다 막강한 내력이 깃들어 있어야 하는데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족하다. 역대 방주들은 말년에 이르러서야 대성(大成)을 말했다. 그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내력을 상당히 보강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루 이틀 사이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남이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 마야는 도와줄 수 있나? 마령음을 써서 진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몇몇 놈한테 들은 기억이 난다.
마야에게 그것까지는 바랄 수 없다. 마야 역시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는 모양이다. 타구봉법의 세기(細技)를 세세하게 알려주면서도 진기 운운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
아쉽지만 어쩔 수 있나.
그렇다. 마야는 천년 역사, 대개방의 비기를 알고 있다. 오직 방주에게만 전수되는 타구봉법을 안다. 그러니 더 죽어야 한다. 꼭 없어져야 한다.
‘이제 끝난 거야. 내일이면 모두 끝나.’
개방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공석인 용두방주에 정식으로 취임할 것이며, 당당히 개방을 이끌리라. 무림에서 유계를 쓸어낸 영웅이 되는 게다.
“떠나는군요.”
“몸을 더럽힌다는 것…… 잠시 진흙 밭에 뒹굴며 놀 수는 있지. 하지만 살 수는 없었던 거야.”
“떠날 걸 알았어요?”
“방금 말했잖아.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어.”
마야와 절혼마녀는 멀어져가는 황초화를 바라봤다.
“클클! 떠나기만 하면 다행이지. 소위 정도란 놈들은 정도란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하거든. 그래서 호의를 베풀어도 으레 ‘어쩔 수 없다’며 칼자루를 고쳐 잡고 죽이려 들곤 하지. 클클!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녀.”
언제 나왔는지 시마가 한 마디 거들었다.
“죽여라. 공격 명령이군요. 이것저것 따져보다 명을 내릴 줄 알았는데…… 경륜이 너무 부족해요.”
다담선자가 황초화의 밀마를 보며 말했다. 아무도 파악하지 못한 밀마를 그녀가 읽어낸 것이다.
“호호호! 다른 것도 써놨네요. 재미있는 발상이에요.”
시마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다담선자의 말뜻은 뭔가? 조급해하며 당장 공격명령을 내리라고 다그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 않은가. 또 황초화는 공격 명령 외에 뭘 써놨단 말인가?
모든 게 궁금하기 짝이 없다.
“개방에 잔접이 있는 탓이겠지. 그가 눈과 귀를 가렸으니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어도 좋겠다 싶었던 거지.”
마야가 태연히 말했다.
“우리에게도 잔접은 있죠. 지금 우리가 하려는 일, 어쩌면 우리의 눈과 귀도 이미 막혔는지 몰라요. 그런 뜻에서 잔접은 일단 떨쳐내는 게……”
“그러지.”
“도대체 지금 무슨 소리들을……”
시마는 궁금증을 묻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멀리서 곡설연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마야와 다담선자가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한 기색을 띄었다.
눈치 빠른 시마가 두 사람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하랴.
“공격 명령이 내렸으니…… 어찌 내 코에는 벌써부터 피냄새가 전해지는 것 같으이.”
바람따라 흘려보내는 말이었다.
회합이 열렸다.
송택에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모였다. 발이 잘린 이후로 땅속에서만 지내던 언장은마도 나왔고, 구석진 곳에 숨어 화약만 다루던 사망혈인도 나왔다.
모두들 낯빛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얼굴들이 왜 그래? 긴장 풀어.”
마야가 툭 던지듯 말했지만 긴장이 풀고 싶다고 풀어지는 건가. 전설의 유계를 제거하는 대역사가 시작되었는데 어찌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
“알다시피…… 유계와 싸움이 시작되었어. 물이 엎어진 거야. 다시 주워 담을 순 없지.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은 열 둘, 많지는 않지만 하나같이 절정고수들이야.”
“어느 놈이든 상관없어. 첫 번째 놈은 무조건 내가 맡아.”
수검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마야는 그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곡설연에게 말을 건넸다.
“곡부인, 뒤에 남으셔야겠습니다.”
“우릴 너무 얕보는 것 아닌가? 내 몸 하나는 지킬 수 있다네.”
“뒤에 남으셔서 잔접과 연락을 취해주세요. 잔접의 도움이 절실할지 모릅니다.”
“흠!”
“두 소저도 함께 남는 게 좋을 겁니다.”
양리리와 양리완은 할 말이 없었다. 중년부인은 잔접이니만치 무공이 탁월하지만 두 여인은 그렇지 못했다. 특히 양리리의 경우에는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곡설연은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세. 잔접의 도움이 필요하거든 주저 말고 연락을 취해주게.”
곡설연과 양리리, 양리완 자매가 떠나갔다. 멀리 간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지켜보다가 십 리 정도의 간격을 두고 뒤따라 올 것이다.
마야는 곡설연에게 했던 것과 똑 같은 부탁을 숨어있는 열한 번째 잔접에게도 했다.
잔접의 도움이 절실할 때를 대비해서 뒤를 밟아달라고.
상대하려는 자들이 절정 마인인 만큼 사오 리 정도 떨어져서 따라와 달라고. 곡부인이 십 리 간격을 두고 있으니, 그 뒤를 밟아도 괜찮을 것이고.
열한 번째 잔접은 흔쾌히 승낙하고 떠나갔다.
유계와 정도 무림의 대충돌이라는 큰 사건 앞에서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기는 힘들었으리라.
잔접들은 쉽게 떨궈졌다.
2
“우리도 떠나야지?”
마도가 혈염도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서둘 필요 없어.”
마야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곡부인과 이야기할 때는 금방이라도 싸움을 벌일 것처럼 눈에 불을 켜더니 지금은 너무도 태연했다.
“지금 이 순간, 죽어가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많은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하지만 여주부에서만은 죽는 사람이 없겠죠. 개방 후개께서 친절하게 배려를 해주셨으니.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내일까지는 아무도 죽지 않을 거예요.”
다담선자가 말했다. 그녀도 태연했다.
모두 침묵했다.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모종의 사연이 있음을 짐작하니 궁금증이 태산 같이 쌓여가지만 마야가 스스로 말해줄 때까지 기다렸다. 만약 말해주지 않으면 알아서는 안 되는, 아는 사람이 적을 수록 좋은 비밀 사안이리라.
마야가 차분히 말했다.
“어쨌든 이번 일격은 유계로써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고…… 상당한 타격을 받을 건 자명해. 그 선을…… 다담과 난 사 할로 봤어. 사 할 정도만 제거하면 대 성공이야.”
이게 무슨 소리인가? 모두들 유계 마인들의 몰살을 예상하고 있다. 중간에 화를 피하는 자가 있어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어쨌든 남북 정도 무림이 모두 동원된 일이지 않은가.
개방은 정보를 다루는 데 능통한 문파다. 비밀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도 안다. 그런 만큼 일을 획책하는데 있어서도 보안 하나만큼은 철두철미하게 유지하리라.
황초화가 자신감을 내비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게다.
헌데 사 할만 죽여도 다행이라니?
“유계는 눈치가 빨라. 벌써 몸을 피한 자도 있을 거야. 아니면 대응책을 강구해 놓았거나. 어쨌든…… 이번 일로 유계는 정면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게고, 그 상대는 정도 무림이 될 거야. 후후! 그런 면에서 개방에 빚을 진 거지.”
“사 할만 죽고 육 할이 건재하다면…… 크크! 정도 무림은 이제 큰 일 났군.”
언장은마가 즐거워했다.
그 말이 맞다. 이제부터 유계와 정도무림은 본격적으로 물고 물리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 유계란 곳이 정정당당하게 무공 대 무공으로 겨루는 걸 즐기지 않고, 암살과 계략을 서슴지 않으니 앞으로 정도 무림은 만성 두통을 달고 살아야 할 게다.
“우리에게 맡겨진 열두 명은 누구야?”
시마가 물었다.
마야는 미소를 띠며 품에서 책 한 권을 끄집어냈다.
“이건 곡부인이 전해준 유계 명단 중 한 권이야.”
“한 권? 개방에 전부 전해준 게 아니었나?”
마도가 깜짝 놀라 물었다.
“이건 전해줄 수 없었지. 이걸 전해줬다면 이번 일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어. 우리에게 맡겨진 열두 명은 이 안에 있어. 이 책에는 열두 명 외에도 서른다섯 명의 마인이 더 있어.”
“모두 마흔 일곱?”
“유계의 주공이 그 중 한 명이에요. 마흔 여섯 명 중 사방천마보다 약한 자는 없어요.”
다담선자가 보충설명을 했다.
“잔접은 우리 역량으로 최대한 처리할 수 있는 한계가 열두 명으로 봤어. 그래서 우리에게 열두 명을 맡긴 거고…… 나머지는 개방에서 맡아야 하는데……”
마야가 말을 끊었다.
호채마는 여인이 네 명에 사내가 다섯 명이다. 마야까지 합하면 딱 열 명이다. 사망혈인과 언장은마는 싸움에서 뺀다 하더라도 절정고수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 여덟 명에 이른다.
그들이 처리할 수 있는 한계가 겨우 열두 명?
그렇다면 다른 서른다섯 명을 개방에 맡겼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죽여야 할 상대가 하나같이 절륜한 자들이니 맞상대를 고르는 데만도 일이 년은 썩혔을 게다. 고른 사람들이 전부다 싸워주는 것도 아니고.
“마…… 흔 일곱. 엄청 많군.”
시마가 중얼거렸다.
유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현재로써는 잔접이다. 그들이 내린 판단이니 틀릴 리 없다.
결국 개방이 벌인 싸움은 단기전으로 끝날 수 없고 장기전으로 변모했다는 소리가 된다.
개방은 큰 실수를 했다.
마야가 명단을 모두 건네지 않을 경우를 셈에 넣지 않았다.
“이제 남무림과 북무림은 두 가지 싸움을 동시에 병행해야 해요. 남북대전은 계속 지속될 거예요. 더불어서 유계와도 싸워야죠. 시작은 개인 대 개인으로 했지만 결국은 유계 대 정도 무림의 싸움이 될 거예요. 기습을 가한 건 정도 무림이지만 유계가 조금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될 거고요.”
“그건 좀 그렇다. 아무리 정도가 맥 빠졌다고 해도 천년 무림인데, 안 그래?”
수검이 마도에게 동의를 구했다.
마도도 생각이 같은지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장장 싸움 때문에 유계가 유리하다는 거예요. 정도는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반면에 유계는 마음 내키는 대로 공격할 수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군.”
“그럼 우리 할 일은 뭐야?”
수검과 시마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완벽하게 숨는 것.”
다담선자가 짤막하게 말했다.
“북검문과 남도문은 숨은 밑천을 모두 내놓아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무림은 구파일방, 오대세가를 중심으로 새 판이 짜여져. 무신들이 활약하지 않으면 더 이상 따르지 않는다는 거지. 후후! 북검문주, 남도문주. 두 사람, 무림 태산북두로 잘 지내왔으니 그만한 수고는 해야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