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12
312
그럼에도 시험을 반복한 것은 마야라는 인간이 예측 불가하기 때문이다.
만독불침을 깰 자신이 있지만, 또 그만큼 깰 자신이 없었다.
반반의 가능성을 보고 마야에게 달려왔으니 죽음 또한 달게 받을 생각이지만,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살려줄까? 이까짓 독쯤은 쉽게 빨아낼 수 있는데.”
마야가 코앞에 다가서며 말했다.
“유계의 주공을 죽이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나 혼자서는 무리일 것 같아. 한 손이라도 보태준다면 살려주고.”
사천제일룡은 눈을 찔끔 감아버렸다.
살고 죽는 건 차지하고 마야의 말은 아예 틀렸다.
주공이 어떤 자인가? 북검문주, 남도문주와 비견되는 자다. 그러니 독에 대해서도 달통했다고 봐야 한다. 아니, 마야처럼 만독불침일 가능성이 높다.
힘을 보태달라? 어림도 없는 소리……
“쯧! 쓸데없는 자존심하고는……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나를 노려. 단, 내가 싸우고 있을 때만. 그래만 주면 나중에 무공으로 겨뤄주지. 독공 대 음공이 아니라 검공 대 암기. 괜찮은 흥정이지 않나?”
마야의 말이 사천제일룡의 귓가를 간질였다.
정말이다. 사천제일룡은 마야의 말을 꿈속에서처럼 아련하게 들었다. 전신이 갑자기 상쾌해지면서 구름 속을 노니는 듯 붕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해독……’
마야는 그의 대답도 듣지 않고 해독부터 시킨 것이다.
제5장 제일보(第一步) ― 첫 걸음
1
“저 독한 놈!”
“독인이 당했어! 기가 막히군. 독인마저 안 되나? 이놈이고 저 놈이고 모두 뒈져야 할 물건들이지만 그래도 저 놈보다는 독인이 이겨주길 바랬는데.”
“겉보기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다 문드러졌겠지. 독인이 그냥 뒈졌겠어? 독이란 독은 다 쏟아 붓고 뒈졌을 것 아냐. 저놈…… 오래 살진 못해.”
마야가 살아나와 주루 대문에 못질을 하자 여기저기서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속삭인다고 말하는 것이겠지만 마야의 귀에는 곁에서 말한 것처럼 똑똑히 들렸다.
마야가 굳이 못질을 하여 대문을 봉쇄하지 않아도 주루 안으로 들어설 사람은 없었다.
마로를 걸어가던 개가 죽었다. 하늘을 날던 새가 떨어져 죽었다. 벌레들도 죽었다. 주루 주변은 원래 죽음의 사지였지만 마야가 들어갔다 나온 후로는 대문 앞을 걸어가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휴우!”
한숨이 절로 터졌다.
바람이 불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해야 한다. 광풍이라도 불어닥치면…… 어쩌면 여주부 전체가 죽음으로 뒤덮일지 모른다.
사천제일룡이 뿌려놓은 독은 정말 지독했다.
해독방법이 없으니 더욱 절망적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릴 방법도 없다. 마인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이 우르르 죽어나갈 때에서야 부랴부랴 움직일 게다.
독기가 제발 주루 안에만 머물기를 바란다.
뚜벅! 뚜벅!
묵직한 발걸음 소리에 산주는 한쪽으로 물러서서 길을 비켰다.
한때는 남만인들로부터 ‘죽음’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너무도 무력하기만 했다.
그는 콘의 눈길도 맞받을 수 없다. 충실한 노예일 뿐, 인간 대접을 받으려해서는 안 된다.
마야는 콘과 싸우려 한다.
지상 최강의 무인이라고 생각한 콘과 당당히 맞선다. 아니, 콘보다 우위에 있다. 콘과 마야의 관계에서는 거의 대부분 콘이 한 발 물러서는 편이다.
남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죽여야 할 자로 딱 한 사람을 꼽는다.
콘이다. 남만어로 악마라는 뜻이다.
콘을 죽이는 데는 인의(仁義)가 필요 없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할 수 있는 건 모두 동원해서 죽이기만 하면 된다.
반면에 어떤 일이 있어도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
머릿속에 만박(萬博)이 담겨있다는 현자로 계징(系澄)이라 한다.
남만을 이끌어가는 정신적 지주로 시동(侍童)과 함께 남만을 전전하며 싸움은 말리고, 곤란한 문제는 해결해주니 그를 반기지 않는 사람이 없다.
산주는 마로를 걸어오는 마야의 모습에서 계징을 읽었다. 계징이 보였다.
마야가 왜? 마야가 왜 콘을 죽이고 남만을 이끄는 현자의 모습으로 보이는 걸까?
“콘을 죽일 수 있겠나?”
“……”
“콘과 수, 꼭 죽여야 하네.”
“산주.”
“난 염려 말고. 콘이 죽는 순간, 나 역시 이 세상에 없을 테니. 미련없네. 조금도. 남만이라면 모를까, 중원은…… 나 같은 놈이 살기에는 너무 팍팍해.”
“콘과 수를 꼭 죽여야 하는 이유가 있소?”
산주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여기 온 건……?”
“콘과 수는 칼이오. 잘 갈린 칼.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명검으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소?”
“그, 그런!”
산주는 말문이 콱 막혔다.
세상에 이런 엉뚱한 발상이 어디 있는가. 달리 콘이 아니다. 살아있으면 사람들에게 해만 되었지 득이 되지 않는 인간이기에 콘이라 부른다.
어디 쓸 사람이 없어서 콘을 쓰려고 하는가. 아니, 콘을 쓰겠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이건 큰 실수다. 이래서는 안 된다.
“마야! 콘은……”
“쉿! 그만……”
마야가 나직이 말하며 산주의 완맥(腕脈)을 거머쥐었다.
순간, 그의 손에서 청량한 기운이 물밀듯이 밀어닥쳤다. 아니다. 정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전신을 순환하던 진기가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급속도로 빨려나갔다.
헌데 말 못하게 상쾌해졌다. 마음은 날아갈 듯 둥둥 띄워지고, 몸도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내가 손을 떼면 다섯 호흡 안에 십 장 밖으로 물러나야 돼. 그렇지 않으면 이 재미난 싸움을 구경하지 못할 거야. 셋에 손을 떼겠어. 하나, 둘, 셋!”
마야는 정말 셋을 세자마자 손을 뗐다.
산주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백치가 되었는데 떠올릴 생각이나 있으랴.
그는 마야의 말을 충실히 들어 단숨에 십 장 밖으로 물러섰다.
‘독인!’
그는 그제야 자신이 독인의 독에 중독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야는 흡인신공(吸引神功)과 비슷한 종류의 무공을 펼쳐서 단숨에 해독시켰을 뿐만 아니라 본신진기까지 충실해지도록 도움을 줬다. 단순히 해독만 했다면 아무런 증세도 느끼지 못했을 게다.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는 건 내공 증진에 도움을 받았다는 뜻이다.
‘저, 저 자는 사천제일룡!’
산주는 그제야 한 사람을 발견해냈다. 그는 객잔 기둥에 몸을 기대고 서있었다.
그가 사천제일룡이다.
독인의 등장을 알았을 때, 사천제일룡일 것이라는 추측은 했지만 확신은 하지 못했었는데, 눈으로 직접 확인까지 하게 되었다.
느낌이 남다르다.
그는 정도의 표상이었다. 협사(俠士)의 풍모가 물씬 풍겨나는 정도의 영웅이었다. 헌데 지금은 바뀌었다. 온 몸에서 음침한 기운이 풍겨난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쯤은 파리처럼 죽일 수 있는 살기가 전신을 휘감고 있다.
그를 본 사람이라면 악마를 떠올릴 게다.
또 한 명의 콘이다.
‘사천제일룡을 제거하지 못했나? 그럼 독인과의 싸움도 마무리 짓지 않은 상태에서 콘과?’
산주는 털썩 주저앉았다.
자진을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이 싸움에서 마야는 죽는다.
콘만 상대한다면 우세하다 할 수 있으나 수까지 가세하면 비등한 싸움이 된다. 거기에 독인까지 곁들여지면 필패 형국이다.
마야가 아니라면 누가 콘을 제거할 수 있을까? 북검문주? 남도문주? 그들을 어디 가서 찾나. 남무림이 초토화될 때에도 남도문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천랑대가 피떡이 되어 날아갔어도 북검문주는 코빼기조차 비치지 않는다.
콘을 막을 자가 없다면 자진하는 게 속 편하다.
‘콘을 지옥으로 이끌기 위해 남만을 벗어났거늘……’
그는 하늘을 쳐다봤다. 참 푸르다.
쒜에엑! 쒜엑! 쒜엑!
콘이 칼을 휘두르는 반경은 시간이 흐를수록 짧아졌다.
“호호호! 호호호호! 호호호호호!”
수의 웃음소리는 반대로 점점 길어져 장소성(長嘯聲)이 되어갔다.
마야는 간드러지는 웃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피리소리처럼, 아름다운 노랫가락처럼 음률을 이해하고 즐기려는 마음을 가졌다.
콘의 단술(斷術)은 콘과 거의 흡사한 단술로 받아쳤다.
서로가 긴장을 한 고삐만 늦추면 바로 황천길로 달려갈 위험천만한 박투(搏鬪)다.
콘의 도법에 대해서는 환히 꿰뚫는다. 천변만화(千變萬化), 변화무쌍(變化無雙)한 도법이다. 일정한 틀이 없어서 반사적으로 받아쳐야 한다. 허나 첫 칼이 휘둘러질 때 십여 초 앞이 보인다면 여유를 가져도 좋을 터이다.
일견후즉파인 그가 무수히 겪어본 도법을 피해내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을 속인 게 되리라.
마야는 콘과 수의 합공을 풀어낼 파해법이 준비되어 있었다.
푸욱!
마야의 소도가 콘의 아랫배를 깊숙이 찔렀다.
푸욱! 푹!
다시 빠져나온 소도는 옆구리를 찌른 후에 급히 빠졌다가 등을 꿰뚫었다.
“하악!‘
콘의 입에서 비릿한 단내가 풍겼다.
마령음과 적멸주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그에게 수의 구혼음태는 어린아이가 조막손으로 안마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콘의 석상 무공은 마도의 감각검과 수검의 사흡검법을 수정, 보완해주면서 고심을 거듭했던 무공과 흡사했다. 거기에 당사자와 실전경험까지 풍부하게 쌓았다.
콘과 수에게 무림 천적이 있다면 바로 마야였다.
파앗!
“아악!”
수가 교성 대신 비명을 토해냈다. 소도는 콘의 피를 잔뜩 묻힌 채 수의 아랫배를 깊이 찔렀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다시 소도를 빼낸 마야는 주춤거리는 콘에게로 향했다. 번개보다 빠르게, 섬광을 무색케 하며.
파앗! 파아앗!
콘은 한쪽 무릎을 털썩 꿇었다.
종아리를 베고 지나간 검이 허벅지까지 긁어놨으니 천하의 콘이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마야는 방향을 돌렸다. 이번에는 수다.
세 사람의 격전은 팽팽했지만 일단 균형이 무너지자 겉잡을 수 없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만!”
콘이 비명 아닌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은 수를 향하고 있었다. 피범벅이 된 수의 배를 아픈 눈으로 쳐다봤다.
“내가 죽으마!”
콘은 소도를 들어 자신의 가슴을 힘차게 찔러갔다. 허나 그는 찌르려는 시늉만 했을 뿐, 급속히 빠져나가는 혼(魂)을 부여잡지 못하고 털썩 쓰러져 버렸다.
“콘!”
수는 굉장히 큰 충격을 받은 듯 봉목(鳳目)을 부릅떴다.
콘이 죽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듯 했다. 지금까지처럼 자유분방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콘……”
다시 콘을 부르는 그녀의 음성은 미약했다.
그녀도 콘을 따라서 서서히 쓰러져갔다.
사천제일룡은 약속을 지켰다.
마야가 싸우는 모든 상대에게 독을 쏟아 붓고 있다.
콘이 당했고, 수가 당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즉각 알아차렸으련만 마야와의 싸움이 너무 팽팽했던 탓이라 반응이 늦었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손을 쓸 시간이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마야는 너무 쉽게 콘과 수를 제압했다.
이건 엄밀히 말해서 마야 혼자 싸운 게 아니라 사천제일룡과의 합작품이라고 해야 옳다.
마야는 품에서 목갑을 꺼냈다.
장침(長針)에서부터 곡침(曲針), 세침(細針)까지 아홉 종류의 침이 들어있는 침갑(針匣)이다.
‘용서를……’
침을 든 손이 바르르 떨렸다.
세상에 태어나서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자부한다. 사람을 죽일 때도 정당한 이유는 항시 있었다. 법을 집행하는 판관(判官)에게 물어봐도 정당하다는 판결을 얻어낼 자신이 있다.
이번 일은 다르다. 이번 일이야 말로 마인이 아니면 행할 수 없는 악행이다.
‘용서를……’
그는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손에 든 침을 콘의 영대혈(靈臺穴)에 오 촌 깊이로 찔러 넣었다.
영대혈은 뜸을 뜰 것이며 침을 놓지 말아야 한다.
마야는 침을 썼다. 그것도 곡침을 썼다. 오촌 깊이로 밀어 넣은 다음 가볍게 돌려 옆을 팠다.
침갑에는 구침(九針)이 열두 조나 있다. 모두 백팔 침이다.
마야는 하나씩, 하나씩 백팔 침을 모두 썼다.
시간이 한 시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백팔마혼(百八魔魂)!”
사천제일룡이 심히 놀란 듯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악행을 저지르는 마인이라고 늘 편안하고 즐거운 건 아니다. 악행을 저지를수록 인과응보(因果應報)를 염려하며 불안해하곤 한다. 거의 대부분은 술과 여자와 도박과 살인으로 자신의 행동을 잊고 살지만 문득문득 불안감이 치밀 때가 있다.
그래서 마인들은 세를 형성한다.
수하를 거두어 두목 행세를 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비슷비슷한 자들끼리 모여 의형제를 맺는 경우도 상당수다.
백팔마혼, 정확히 말해서 백팔마혼침자법(百八魔魂針刺法)은 그런 마인들이 창안해 낸 악술(惡術)이다.
효용은 지난 기억을 깡그리 말살 시켜 완전한 백치로 만드는 것이다. 부작용은 사망이며, 성공률은 삼 푼이 채 안 되는 죽음의 시술법이다.
백팔마혼침자법은 마도는 물론 정도 무인들까지 관심을 가졌다.
마인은 오직 충성만 하는 수하를 거두기 위해서 침법을 썼고, 정도 무인들은 마인을 죽이지 않고 완전한 새사람으로 변모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침법을 연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