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17
317
남은 다섯 형제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깔렸다.
황보세가주는 화랑탕귀의 수급을 취했다.
그 대가는 여섯 자식의 죽음이다.
상대를 바꿨다면 어땠을까? 황보육호가 화랑탕귀에게 가고, 가주가 왜좌자를 상대했다면……
황보세가주가 화랑탕귀에게 간 것은 그가 왜좌자보다 강하다고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평가가 옳은지 그른지는 오직 개방만 안다. 개방이 어디서 유계에 대한 정보를 얻었는지 모르지만 원래 광대한 정보력을 자랑하는 개방인 만큼 무공에 대한 평가도 그리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다. 많이 틀렸다.
침통한 일이지만 황보세가는 화랑탕귀와 왜좌자 중 한 명밖에 처리할 능력이 없었다.
황보가주는 화랑탕귀와 무척 힘든 싸움을 했다.
어렵사리 그의 목을 취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자식들에게 이놈을 맡겼다면 되레 당했을 거라는 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개방의 판단은 옳았다.
황보가주는 화랑탕귀를, 황보육호는 왜좌자를 맡아 달라. 박빙의 접전이 되겠지만 결국은 승리할 것이다.
헌데 틀렸다.
황보육호가 죽었다. 그것도 황보세가의 비공에 의해 절명했다. 상처를 보면 안다. 첫째의 가슴을 빠갠 건 벽력신장이다. 둘째는 쾌활삼십장에 당했고, 셋째는 패권을 맞고 머리가 으스러졌다.
왜좌자는 마공을 쓰지도 않았다.
그는 화랑탕귀보다 더 강했다.
상대를 바꿨다면? 물어보나마나다. 그랬다면 황보가의 뿌리는 완전히 끊겼을 게다.
“후후! 말은 좋지. 무자년(戊子年)에 일어난 겁이라 하여 무자겁이라 부르자고? 무자겁…… 무자겁에서 난 내 자식을 모두 잃었어. 마인 한 명을 죽인 대가치고는 너무 비싸잖나. 모두들 들어라. 오늘 부로 우리 황보세가는 장강싸움에서 빠진다. 남도문에서도 탈퇴한다. 남은 힘은…… 남은 힘은 왜좌자에게 집중한다.”
남도문을 굳건하게 받쳤던 황보세가가 빠져나가는 순간이었다.
***
중원에 피바람이 불었다.
어느 한 장소에서 발생한 살인이 아니라 중원 전역에서 일시에 불어 닥친 피의 폭풍이니, 이를 일컬어 겁(劫)이라 한다. 무자년에 일어난 겁이라 하여 무자겁이라 불린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그리고 닷새.
검이 부러지고 도가 부서지는 격렬한 싸움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처음에는 여러 명이 한 명을 공격하는 형태였지만 이틀째부터는 다수 대 다수로 서로 무리를 지어 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몇 명이나 죽었을까?
모른다. 무림에 적을 둔 문파는 모두 가담한 싸움이었기에 사망자를 헤아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림잡아 만여 명 정도가 죽지 않았을까 하고 추산할 뿐이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치밀한 계획 하에 선제공격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유계 마인들을 소탕해내지 못했다는 거다.
강한 무공, 치밀한 조직력, 생사를 초월한 살기.
그들은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충분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 자들은 피곤한 싸움을 했고, 비등할 것이라고 판단한 사람들은 오히려 당하고 마는 현상이 벌어졌다.
유계 마인들은 겨우 이천여 명이 죽었다. 반면에 정도 무림은 네 배에 달하는 팔천여 명이 대지에 몸을 눕혔다.
마인을, 숨겨둔 마공을 너무 간과했다.
겉으로 드러난 그들 모습이 모두인 것으로 착각했다. 아니, 어느 정도는 숨겨진 게 있다고 생각했지만 눈이 부릅떠질 만큼 강할 줄은 몰랐다.
고양이인 줄 알고 그물을 펼쳤는데, 늑대가 나타난 격이다.
개방의 대역사는 두 가지 의미를 남겼다.
무림에 숨어있던 마인들을 지상으로 끌어낸 점은 공(功)이 되었다. 허나 그들을 소탕하지 못함으로써 남북대전과 더불어 유계와도 긴 싸움을 치러한 한다는 과(過)가 남았다.
정도 무림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지난 닷새 동안에 멸문한 문파가 부지기수이며, 구파일방 같은 대문파도 절정고수를 상당수나 잃었다.
중원 무인들은 분노했다.
사형, 사제, 사부의 죽음에 절규했다. 그리고 그들의 분노와 절규는 원망이 되어 북검문과 남도문에 꽂혔다.
“맹주라도 되는 냥 행사할 때는 언제고 사방에서 마인이 날뛰는데 가만있는가!”
“무신은 죽었다. 너무 오랫동안 기름진 음식만 취하다보니 검에 녹이 슬었다.”
“무신은 나서라!”
닷새가 되던 날 반응이었다. 그리고 이틀이 더 지나 칠주야로 접어들 무렵에는 자구책들이 쏟아졌다. 그것은 탈퇴였다.
“우리 하북파(河北派)는 북검문에서 탈퇴한다. 장강에 배치된 무인들을 모두 거둬들일 것이며, 차후 북검문의 어떠한 협조요청도 거부할 것이다!”
하루 동안 북검문과 남도문에서 탈퇴 선언을 한 문파만 이 할에 이르렀다. 북검문이 혹은 남도문이 주도하는 싸움에 힘을 보태지 않겠다는 뜻이다.
북검문과 남도문은 북검문주와 남도문주가 세운 문파이기도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북무림과 남무림의 연맹 중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두 연맹의 주된 관심사는 장강싸움을 승리로 이끌고 상대를 척결하는 것이었다.
각 문파가 연맹에서 탈퇴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장강 싸움도 그만 두겠다는 뜻이며, 더 이상 북무림을 혹은 남무림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삼십 년 동안 이어온 적대관계가 쉽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비록 탈퇴는 했어도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적으로 간주하는 마음은 여전할 게다.
허나 오랜 숙적과 싸우는 것보다 훨씬 선급한 문제가 생겼으니 바로 마인들을 죽이는 일이다.
대체로 연맹을 탈퇴한 문파들은 죽여야 할 자가 뚜렷하게 정해진 경우가 많다. 황보세가처럼 만사를 제쳐놓고 반드시 죽여야 할 자가 생겼다.
그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문파의 전력을 분산시킬 수 없는 상태이니, 장강 싸움에 힘을 보태고 싶어도 여력이 없는 것이다.
삼십여 년 동안 고정되었던 중원 판세에 큰 변화가 불기 시작했다.
제7장 광간아(光桿兒) ― 꽃잎이 다 떨어진 꽃
1
삼원로는 북검문에서 북동쪽으로 십 리 정도 떨어진 대홍산(大洪山)에서 밤을 맞이했다.
날씨가 흐려서 별은 없다. 허나 그리 기분 나쁜 하늘은 아니다. 우울함이나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한두 시진쯤 넋 놓고 지켜볼 적막함이 숨어 있다.
휘이잉!
밤바람이 옷깃을 스쳐갔다.
날이 많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산속에서 맞이하는 밤바람은 아직도 매섭다.
자의성검 석존무, 혈일뢰 울건평, 통천서패 진혜력.
세 사람은 산정(山頂)에 오른 지 두 시진이 지나가도록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다.
자의성검은 나무 밑에 앉아 묵상에 잠겼다.
몇 날 며칠이 지나건 대각(大覺)을 이루기 전에는 일어설 것 같지 않았다. 그가 대도(大道)를 추구하고 있다면.
혈일뢰는 산 아래, 드넓게 펼쳐진 평원을 쳐다봤다.
해가 지기 전부터 보기 시작해서 세상이 완전히 어둠으로 물든 다음에도 계속 지켜봤다.
통천서패 진혜력만 팔자 좋게 드러누워 코를 골았다.
잠든 시간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산정에 올라선 다음에 곧바로 잠을 청하기 시작해서 시간이 자시(子時)에 가까워진 지금까지 자고 있다.
그때, 멀리서 폭죽이 솟구쳐 올랐다.
가는 불똥을 떨구며 높이 높이 솟구친 폭죽이 하늘 한 복판에서 아름다운 문양을 그려냈다.
얼마나 팔자가 좋은 놈이기에 자정에 이르도록 불꽃놀이를 할까.
거리나 위치로 보아 부수(富水)는 아니고 장수(漳水)에서 뱃놀이하는 한량이 쏘아올린 폭죽이다.
쒜에에엑! 파아앗!
하얀 색, 노란 색, 붉은 색, 푸른 색…… 오색찬란한 불꽃이 밤하늘에 그림을 그렸다.
“소제(掃除).”
혈일뢰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소제…… 소제인가.”
자의성검이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통천서패의 코골음 소리도 뚝 그쳤다. 뿐만 아니라 어느 틈엔가 몸을 일으켜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고 있었다.
파파팡……!
불꽃 세 개가 연이어 올랐다.
“마야!”
“마야……”
혈일뢰와 자의성검이 동시에 말했다.
“크크! 어쩐지 그놈과는 한 판 하게 될 것 같더라니. 결국 마인이란 이름을 뒤집어쓰고는 오래 버틸 수 없는 모양입니다. 대형의 뜻이 이러하니.”
“후후! 오늘 같은 날에는 얼굴 좀 볼까 싶었는데.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가서야 대형 얼굴을 볼 수 있는가 봅니다.”
혈일뢰가 등을 돌리며 말했다.
불꽃놀이가 끝났는지 폭죽은 더 이상 솟구치지 않았다.
삼원로의 대화도 불꽃놀이가 시작되기 전처럼 뚝 그쳤다.
***
북검문 십공봉은 그들에게 전해진 서신 한 장 때문에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북검문의 문주이자 천하제일인으로 추앙받는 북검문주 양학산의 친필 서신이다.
내용은 간결했다.
삼뇌를 도와 마인을 제거하라.
정도인이라면 당연히 할 일이다. 굳이 서신으로 협조를 부탁하지 않아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병기를 잡아야 한다.
너무도 당연한 협조 요청이지만 십공봉은 선뜻 응할 수 없었다.
구파일방은 북검문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가려고 한다. 정식 지침이 내린 것은 아니지만 본문이 어떤 길을 가려고 하는지 짐작 못할 사람들이 아니다.
척하면 착이다.
북검문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려는 이 시점에서 각파의 장로인 십공봉이 북검문과 함께 마인 척결에 나선다면 본문 동도들의 입장은 어떻게 되는가.
참으로 난감해진다.
그렇다고 북검문주의 서신을 받고도 침묵할 수는 없는 일.
결정할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다. 마인 척결에 나설 것이냐, 모두 떨쳐버리고 본문으로 귀향할 것이냐. 밤새도록 갑론을박 토론을 벌였지만 결론이 날 리 없었다.
하나는 본문이 여전히 북검문과 뜻을 같이한다는 걸 만인 앞에 공표하는 것과 다름없고, 다른 하나는 마인 척결이라는 대이상(大理想)을 제쳐두고 자파의 이익에 연연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선택이 쉽지 않았다.
“십공봉이라는 직위를 버리고…… 자연인으로, 무인으로 마인척결에 나섭시다.”
이것 역시 이미 나왔던 의견이다.
십공봉의 직위라는 게 버린다고 버려지는 것인가. 자연인으로 병기를 들었다지만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보겠는가. 십공봉이 전선에 나섰다고 보지 않겠는가.
“모두 각파로 돌아갑시다. 북검문이 이 지경이 되도록 북검문주께서 얼굴도 비치지 않는데, 우리가 괜히 나설 게 뭐 있습니까?”
이 의견 역시 십공봉이 한 번씩은 입에 담았던 말이다.
북검문은 누가 봐도 초라해졌다.
만박선생이 죽어서 삼뇌라는 틀이 깨졌으며, 천비대가 몰살당해 눈과 귀가 가려졌다.
북검문의 입지는 땅에 떨어진지 오래다.
남아있는 천랑대도 온전치 않다.
이게 모두 콘과 독인이 벌인 일인데, 북검문은 아직까지도 그들을 징치하지 못한다.
징벌하고 싶어도 능력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북검문은 북무림을 관장한다고 보기에는 너무 초라해졌다.
이제 북검문에서 그나마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십공봉과 칠성군 뿐이다. 천랑대가 남아있긴 하지만 이미 사기가 땅에 떨어진 상태이니 어디에 써먹으랴.
상황이 이 지경이 되어도 북무림 무인들이 북검문을 지켜보고 있는 건 오로지 무신 네 명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북검문주와 삼원로.
사실 그들이 없다면 남무림과 싸움을 벌일 수 없다.
누가 있어서 남도문주를 막을까? 만사무불통지와 궁왕은 누가 막을까. 천신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을 누가 상대할까.
헌데 삼원로는 행방이 묘연하고, 북검문주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다.
십공봉의 고민은 여기 있었다.
북검문을 버리고 자구책을 강구해야 하나, 계속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려야 하나.
북검문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북검문 안에서 상황을 지켜본 십공봉이다. 그런 연유로 구파일방은 십공봉의 선택에 따라서 행동을 같이 할 공산이 크다.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되어질 선택은 개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파일방의 선택이 될 게다.
십공봉, 그들에게 구파일방의 차후 행보까지 걸머져 있는 것이다.
“휴우!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 우선은 서신의 뜻을 쫓아야 하지 않겠소.”
신중론자의 의견도 개진되었다.
“어떨 것 같은가?”
천기수사가 물었다.
“이미 짐작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움직일 겁니다. 문주님의 위상은 저들이 거역하기에는 너무 큽니다.”
육능자가 답했다.
“어디부터 쳐야 할꼬?”
“……”
“일벌백계(一罰百戒)가 될 수 있는 곳이면 딱 좋은데. 그런 곳이 어디 없을까?”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천기수사가 말을 했을 때는 이미 구상이 끝난 후이다.
“경산(京山)에 사람 좀 보내야겠어.”
‘자하부!’
육능자의 눈가에 웃음이 흘렀다.
천기수사는 늘 자하부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금연화가 마야를 따라간 후부터. 이제 마인 척결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싫은 사람들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저들이 나서면 되겠군요.”
“머리가 있어야지. 자네가 해주겠지?”
“후후후!”
육능자는 웃었다.
“참 고단한 노릇이야. 남의 머리 노릇하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