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21
321
기껏해야 흑균이나 쓰는 무리와 무슨 말을 하랴. 또 그에 동조하는 자신은 무인이라고 할 수 있나.
그는 마지막 남은 신념, 정을 위해 마를 뿌리 뽑는다는 신념 하나로 흑균을 쓸 생각이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랴. 마인 한 명 죽이는 것이 삼층 석탑을 세우는 것보다 더한 공덕일지니.
마음이 이러니 제발 건드리지나 마라.
천랑대주는 칠성군을 보기 싫었다. 천검대주도 보기 싫고 천기수사도 싫었다.
그는 일어나 걸어나갔다.
“흑균에 전염되면 움직이지 못할 터, 그때 화공을 펼칠 겁니다. 어차피 흑균은 불에 태워야 사라지니.”
등 뒤에서 천기수사의 음성이 들렸다.
***
북검문은 마야를 향해 천천히 올라왔고, 마야는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남서쪽으로 내려갔다.
북검문은 개방도로부터 끊임없이 마야의 소식을 전달받았고, 마야는 하오문도를 통해 북검문의 현위치를 파악했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알았다. 서로를 의식하며 일로 직진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양쪽 모두 싸움을 피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반기는 인상마저 풍겼다.
무림의 이목도 집중되었다.
한쪽은 북무림을 대표하는 무인들이고, 다른 한쪽은 남북 무림을 제집처럼 휘젓고 다닌 마야다.
어느 쪽이 되었든 끝장이 나야 할 싸움이다.
서로의 전력도 비슷하다. 이쪽에서 보면 이쪽이 낫고, 저쪽에서 보면 저쪽이 나으니 뭐라고 단정할 수 없다.
관심있는 무인들이 마야를 따라서, 북검문을 따라서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하남성 최남단 당하(唐河)의 풍수(灃水)에서 맞부딪쳤다.
2
중원 무림이 마인을 증오하는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유계와의 싸움에서 큰 타격을 받은 게 결정적이다. 마인이라면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자들로 여겼는데, 강성한 힘으로 오히려 정도 무림을 밀어붙이고 있는 점도 악영향을 끼쳤다.
북검문과 마야의 싸움에서 마야가 이기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을 누가 건널 것인가도 관심사였다.
하룻밤 노숙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것도 지리를 먼저 파악했다는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강을 건너는 쪽이 불리했다.
북검문은 당당히 무공으로 싸울 것이다. 허나 마야는 함정을 파지 않겠나. 북검문이 배를 타면 안 된다. 한참 강을 건너고 있을 때 공격받지 말란 법도 없고. 그러니 마야가 강을 건너야 한다.
군웅들의 생각은 똑 같았다.
“마야! 죽는 마당에라도 떳떳해라! 그래도 마야라는 이름을 쓰는 놈이 비겁하게 암수나 써서야 되나! 강을 건너라!”
“이놈아! 정정당당하게 싸워! 또 독을 쓸 거냐!”
“네 놈은 독 아니면 벌이지? 창피한 줄 알아!”
군웅들이 마야를 포위했다.
마야가 강가에서 노숙했기 때문에 포위하기도 쉬웠다.
그들은 밤새도록 야유를 퍼부었다. 간혹 돌멩이를 던지거나 기습적으로 화살을 쏘기도 했다.
잠을 못 자게 해서 신경을 곤두세워 놓으려는 의도 같았다.
마야는 푹 잤다. 호채마도 신경 쓰지 않고 깊은 휴식을 취했다. 콘과 수는 말할 것도 없다. 두 남녀는 자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잠을 청했다.
큰 싸움을 치러본 사람은 신경을 곤두세울 때와 가라앉힐 때를 안다. 자잘한 선동에 마음이 흐려질 때는 훨씬 지났다. 눈앞에 검을 들이밀어도 웃을 수 있는 사람에게 야유 정도는 아낙네들 수다 정도의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날이 밝자, 마야는 배에 올랐다.
풍수는 그리 큰 강이기는 하되 강 건너가 빤히 보인다. 마야 일행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오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하다.
천검대 검수 백 명이 강가에 포진했다.
마야가 배에서 내리는 즉시 공격을 가할 심산이다. 싸움은 먼저 걸되 끝장을 볼 생각은 없다. 지시받은 대로 적당히 밀고 당기며 시간을 끈다. 천랑대가 자살 싸움을 벌이기 전까지.
“자식들, 아침이나 먹고 올 일이지.”
“내버려둬. 죽고 싶어서 안달났나보지.”
천검대 검수들은 농담까지 주고받았다.
천랑대주는 강둑에 서서 이런 모습을 모두 지켜봤다.
‘썩었어.’
천검대는 혹독하지 않다. 마야 같은 강적을 앞에 두고도 여유만만하다.
이들은 진정 모른다. 마야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천랑대주는 마야를 겪어봤다. 옛날, 마야가 장강을 건너기 전에 어떤 식으로 추적을 따돌렸는지 안다.
천라지망이라 일컫던 포위망도 가볍게 빠져나간 자다.
그 싸움에 천랑대주는 있었다.
하물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다.
‘불나방이야. 불을 보고도 죽는 줄 모르고 뛰어드는.’
이해할 수 없는 건 천기수사도 이 정도는 읽을 수 있을 텐데, 천검대를 계속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다.
천검대는 일령과 절혼마녀를 상대하려고 한다.
그게 될까? 두 여인만 상대한다면서 배에서 내리는 즉시 공격한다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급공을 받으면 너나 할 것 없이 싸우게 되어 있다. 호채마 전부가 천검대에 달라붙는다는 뜻이다.
천검대의 전멸은 불 보듯 뻔하다.
천랑대주는 천기수사를 힐끔 쳐다봤다.
천기수사는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그의 얼굴에서 생각을 읽어낸다는 건 불가능했다.
“일대, 이대. 너흰 싸워라.”
천랑대주가 묵직한 어조로 명을 내렸다.
“감사합니다!”
“죽어서 뵙겠습니다!”
두 대주가 포권지례를 취했다.
천랑대주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다.
각대는 십오 조이며, 각 조는 열세 명이다. 거기에 대주와 대주 휘하의 직속 무인 네 명까지 합하여 딱 이백 명이 일대다.
일대, 이대가 나서면 사백 명이나 된다.
오합지졸도 아니다. 장강싸움을 통해 크고 작은 상처를 열 개 이상 새긴 투귀(鬪鬼)들이다.
천기수사는 이들까지도 흑균에 노출시키라고 했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
“천검대가 무너질 때까지 기다려라. 그건 너희 싸움이 아니니. 천검대가 완전히 무너지면 가차 없이 너희 싸움을 시작해라. 유감없도록 실컷 싸워봐.”
“존명!”
천랑대주는 마지막 일대, 사대주를 쳐다봤다.
“넌 나와 함께 하자.”
“알겠습니다.”
사대주가 포권지례를 했다.
무인이 흑균을 보유한채 싸움을 벌인다? 이보다 치사한 싸움이 어디 있는가.
천랑대의 자부심을 송두리째 등지는 행위다.
허나 한다. 마야를 죽이는 일이라면 한다. 자신들이 나설 때는 천랑일대와 이대가 몰살한 후이니 적개심도 강렬하게 타오를 게다.
천랑사대 이백 명이면 흑균을 퍼트리기에 충분하다.
천랑대주는 호로병 열다섯 개를 펼쳐놓았다.
“각 조장에게 하나씩 주도록. 천랑일대, 이대가 전멸하는 즉시 한 모금씩 복용한다.”
천랑대주는 호로병이 열다섯 명의 조장에게 넘어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봤다.
마야가 배에서 내리고 있었다.
“크!”
단 한 마디의 일갈이 풍수 싸움의 서막을 올렸다.
쒜엑! 쒜에엑!
제일 먼저 허공을 가른 건 화약도 독도 아니었다. 천하에서 가장 빠른 병기, 다담선자의 추명반이었다.
“크윽!”
“악!”
천검대 검수 두 명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펄쩍 뛰어올랐다가 나가떨어졌다.
그들의 목은 거의 잘려나가 덜렁거렸다.
순간, 천검대는 얼어붙었다. 두 발이 땅에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휘익! 쒜에에엑! 쒜에엑!
호채마가 먹이를 발견한 범처럼 훌쩍훌쩍 뛰어내리더니 천검대 사이를 파고들었다.
“이건 육령 것.”
파앗!
일령의 옥수가 살점을 살짝 꼬집었다. 죽음의 손, 염화옥수다.
경혈을 쥐어잡힌 검수는 극심한 충격에 입을 쩍 벌리더니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원래 염화옥수는 순간적인 죽음을 유도한다. 침으로 사혈(死穴)을 쿡 찔러 죽이는 것처럼 통증을 느낄 사이도 없이 절명한다.
일령은 염화옥수를 제대로 펼치지 않았다. 경혈을 터트리기 전에 일 푼의 내력을 덜어냈다. 일부러 극심한 충격을 끌어낸 것이다. 죽는 자는 불붙은 부지깽이가 살점을 지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을 게다.
“이건 구령 것.”
파앗!
목덜미를 잡힌 검수가 부르르 떨더니 쓰러졌다.
마도의 혈염도는 피를 뽑아냈다. 수검의 검도 연신 검집을 들락거렸다.
그러나 그 어떤 공격보다도 콘의 공격은 무서웠다.
쒜엑! 싸악! 쒜에엑! 싸악……!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살을 베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비명은 그와는 상관없는 소리였다. 소도에 찔린 자가 비명을 토해낼 때, 그의 소도는 다른 자를 찌르고 있었다.
호채마 중 싸움에 나서지 않은 사람도 절반이나 되었다.
사천제일룡이 나서지 않았고, 사망혈인과 시마도 배 위에서 지켜만 봤다. 다담선자도 추명반을 날린 이후로는 공격을 멈추고 마야 곁을 지켰다.
천기수사가 오판한 것도 있다.
절혼마녀는 낙화향이 변고에도 불구하고 싸움에 나서지 않았다.
그녀는 싸움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등을 돌리고 푸르른 강을 보며 아름다운 시조를 읊조렸다.
그녀의 상태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열 번을 죽어다가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천검일대 백 명이 몰살당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반각이었다.
그렇다고 싸움이 끝난 건 아니었다.
척! 척! 척! 척……!
엄청난 수의 무인들이 대오를 갖추고 일사불란하게 걸어왔다.
“천랑대. 동생, 나가.”
다담선자가 말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안 후,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물 한 모금 먹지 않던 금연화가 검을 들고 배에서 내렸다.
“쯧! 쉬게 하지.”
시마가 지나가는 말처럼 했다.
“아뇨. 동생은 화풀이할 때가 필요해요. 그동안 너무 참았어요. 여기서도 참으면 병나요. 언제까지 노실 거예요? 나가세요.”
“쯧! 괜히 말을 꺼냈군.”
시마가 툴툴거리며 나섰다.
수는 명을 받지 않았는데도 피 냄새를 맡으니 싸우고 싶은지 몸을 들썩거렸다.
“여한 없이 싸워라!”
일갈이 천지를 울렸다.
천랑대 사백 명과 배에서 내린 여섯 마인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천랑대는 사나웠다. 늑대라는 말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악착스러웠다. 그들은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검을 휘둘렀다. 즉사다 싶은 순간에도 검초 두어 개를 펼친 후에야 조용해졌다.
풍수는 혈수(血水)로 변했다.
무려 오백여 명이나 죽었다. 그들이 흘린 피가 내를 이뤄 흘렀다. 강변은 시신으로 뒤덮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목불인견(目不忍見), 대참상이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여섯 마인은 악귀로 둔갑했다.
일령과 금연화는 여인이 아니었다. 청초하다거나 귀엽다거나 아름답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피범벅이 되고, 내장이나 뇌수를 뒤집어 쓴 몰골은 꿈에 볼까 두려울 지경이었다.
사내들은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마도, 수검, 시마…… 그들에게서 인간다운 면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두 눈을 보고 있자면 맹수에게 물어뜯기는 착각이 일어났다.
모순되게도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콘이 가장 깨끗했다.
병기를 섞지 않고, 단 일도에 싸움을 끝내며, 피가 빠져나올 틈도 주지 않고 다른 상대를 공격해가는 쾌속공격이 인간다운 모습을 지켜주었다.
“아!”
군웅 중 누군가가 탄식했다.
천랑대는 잘 싸웠지만 너무도 현격한 무공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양떼가 숫자만 믿고 범에게 달려든 격이니 주검이 널려진 건 당연한 결과였다.
강둑에 서서 마지막 일인이 쓰러질 때까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던 천랑대주는 하늘을 향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그의 광소가 오랫동안 주검들 위를 맴돌았다.
그가 웃을 때, 한쪽에서는 한 무리의 무인들이 확실한 죽음을 선택했다.
그들은 조장이 넘겨주는 호로병을 입에 대고 한 모금씩 삼켰다.
맛은 몰랐다. 쓴 것 같기도 하고, 신 것 같기도 하다. 삼킬 때 구역질이 치밀 수도 있다고 했지만 끅끅 거리는 구역질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한이 너무 깊었다.
대(隊)는 달랐어도 형제라는 의식으로 유대감을 맺어왔던 동료들이 힘없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피눈물을 흘렸다.
웃음을 멈춘 천랑대주가 호로병을 들어 꿀꺽꿀꺽 삼켰다.
그는 한 병을 다 마신 후 천랑대원을 돌아봤다.
“우리는 사십구일 동안 머문다는 중유(中有)에도 들지 못하고 곧바로 지옥으로 떨어질 터. 모두 지옥에서 만나자. 나보다 뒤쳐지는 놈은 각오하도록!”
“먼저 가 있겠습니다!”
천랑대원은 힘차게 고함친 후, 마인들을 향해 돌진했다.
천랑대원들이 마지막 이별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바람이 분다.
비릿한 냄새도 풍긴다. 비가 내릴 때 맡아지는 비 냄새 같기도 하고 피 냄새 같기도 하다.
기분은 썩 좋지 않다. 단지 옅은 냄새만 맡았을 뿐인데 헛구역질이 치민다.
“이건…… 균? 흑균!”
사천제일룡이 제일 먼저 흑균의 존재를 눈치챘다.
“흑균?”
마야가 놀라서 되물었다.
“흑균! 흑균!”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사천제일룡은 두 마디를 연속으로 내뱉은 후, 숨을 멈췄다.
― 흑균이다. 숨을 멈추고 배로 돌아와라. 조용히, 천천히. 눈치 채지 않게 조심조심. 사망혈인과 사천제일룡은 교대해주는 척 해. 다담, 절혼. 강심(江心)으로 빠져나갈 준비를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