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26
326
마야 14
호시중원(虎視中原) ― 중원을 탐욕스럽게 노려보다
제1장 도별기(倒憋氣) ― 말문이 막히다
1
마야가 중원을 다스린다.
광오하다고 할 수 있는 말이 거침없이 흘러나왔지만 그를 제지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야는 너무도 강했다.
마야를 추종하는 무리는 군대와도 맞싸울 수 있을 만큼 화력이 강했다.
그렇다. 이건 무공이라고 할 수 없다. 전력(戰力) 또는 화력(火力)이란 말로 표현해야 한다.
왕벌은 어떤 독충보다도 위협적이다. 사천제일룡은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흑균을 소지했다. 비록 마야는 부인했지만, 한낱 마인의 말을 믿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것뿐이 아니다. 문파 하나 정도는 가볍게 날려버릴 만한 화약도 있다.
마야와 호채마가 지닌 가공할 무공은 제일 나중에 거론된다.
그들은 칠성군 중 세 명을 너무도 손쉽게 죽였다. 개개의 싸움에 긴장이 잔뜩 담겼을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호채마는 살고 칠성군은 죽었다.
말이 안 된다. 믿기지 않는다. 분명히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지만 도저히 이 사태를 받아들일 수 없다.
마야는 무적인가?
무적이다. 그의 앞을 가로막을 사람은 전무하다. 어떤 사람은 북검문을, 또 어떤 사람은 남도문에 눈길을 주었지만 그들은 조용했다. 침묵했다.
장강 싸움을 벌일 때는 늘 선두에 서있던 천하제일문들이 마야에게만은 유독 무력했다.
하물며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중소문파들이야 말해 무엇할까.
무림은 판단력을 잃어버렸다. 칠성군이 무너진 충격은 단순히 몇 명 죽었다는 선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정도무림의 자긍심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대 사건이었다.
무엇을 해야 하나? 구대문파와 연합하여 마야를 칠까? 그러면 될까? 유계는 어쩌나? 괜히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게 아닐까? 유계가 대반격을 개시하면 막아낼 능력이 있을까?
대답은 ‘모르겠다’였다.
어떤 행동을 취하긴 취해야겠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 명, 두 명…… 마야를 추적하는 무인들 중에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문(門)으로 돌아가야겠어.”
“조금 더 따라가 보지. 북검문에서 가만있지 않을 텐데.”
“가만있지 않으면 어쩔 수 있겠어? 유계와 싸우기도 벅찰 텐데, 마야까지 신경이 돌아가겠어?”
“하기는……”
시들해졌다.
마(魔)를 척결하겠다는 정의감도 수그러들었다. 온 힘을 다해도 어쩔 수 없는 절대 강자의 등장에 기운이 빠져나가 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파로, 가문으로 떠나갔다.
남은 사람들도 기운이 빠진 건 마찬가지지만 생각이 조금 달랐다.
도고일장(道高一丈)이면 마고십장(魔高十丈)이라고 했다.
마도가 일어날 때는 불길처럼 거세서 걷잡을 수 없다. 하루아침에 정도를 집어삼킬 것처럼 일어난다. 정도는 무능력하게 느껴지고 마도는 꺾을 수 없는 철벽처럼 보인다.
딱 지금과 같은 상황이다.
허나 지금의 상황을 완전히 뒤바꿔 버릴 천고의 진리가 있다.
마는 결코 정을 넘어서지 못한다.
악(惡)이 세상을 지배할 듯 보여도 결국은 정에 꺾이고 만다.
천년 무림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현재 마야는 하늘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 한다. 그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옛날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한 명도 아니고 일곱 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무신이라 불렸다. 기꺼이 무신이라고 불러주었다. 웃으면서 무신을 반겼다.
그들은 곁에 머물며 안위를 지켜주었다.
반면에 마야라는 절대 강자는 적이다. 그리고 대항할 힘이 없다.
중원 무인들은 북검문을 원치 않았다. 칠성군도 삼뇌도, 이미 죽어버린 십원로의 등장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은 마야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개죽음을 당할 뿐이다.
그들은 무신을 원했다. 그들이 나서기를 고대했다. 절대 강자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절대 강자뿐, 무신이라면 백만대군이나 다름없는 마야 군(軍)을 꺾을 수 있으리라.
“북검문이 발칼 뒤집힌 모양이야. 북검문주가 단단히 칼을 뽑아들었어. 무능력하다 싶은 사람은 가차 없이 잘라버리고 새사람으로 바꾸고 있대. 북검문주가 곧 나설 거야. 그때까지만 기다려보자고.”
남은 사람들은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멀찍이 떨어져 뒤쫓기만 했다.
***
“미안한데……”
절혼마녀는 첫말만 꺼내놓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쏴아아아……!
바람이 온 몸을 쓸고 지나간다.
하늘은 푸르고, 물은 맑다.
“마야.”
절혼마녀는 이번에도 이름만 부를 뿐, 뒷말을 잇지 않았다.
마야는 뱃머리에 서서 푸른 물만 쳐다봤다.
피로 얼룩진 옷에서는 아직도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더러 말라서 검붉은 색을 띄기도 했지만 아직도 새빨간 색이 더 많았다.
한참만에야 그의 입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이대로. 절혼, 내일 이야기 하자.”
절혼마녀는 그의 등을 쳐다보았다.
외로워보였다. 고독이 물씬 풍겼다. 깊은 고뇌의 냄새가 너무도 진해서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다.
“휴우!”
절혼마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마야는 움직이지 않았다.
날이 저물었다. 붉은 해가 서녘으로 뉘엿뉘엿 넘어갔다.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마야는 꼿꼿이 선 채 밤을 맞이했다.
배가 고프다.
많은 사람을 죽인 후라서 갈증도 치민다. 이런 날에는 다른 게 없다. 그저 독주를 퍼붓는 게 최고다.
허나 그 누구도 술병을 들지 못했다.
다른 때와 다르게 너무도 무거워 보이는 마야의 뒷모습이 술병을 잡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야는 무엇을 고민하는 것일까?
고민이라면 송택에 있을 때 실컷 했다. 차후 행로에 대한 계획도 세심하게 세웠다.
새삼스럽게 계획 같은 걸 새로 세울 이유가 없다.
살인 때문인가? 웃기는 소리…… 살인에는 이미 면역이 되어 몇 사람 쳐죽인다 해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죽는 사람은 죽는 것이고, 사는 사람은 사는 것이다. 천하제일미인도, 황제도 죽으면 그만이다. 생명이 육신을 떠나는 순간 한낱 고깃덩이가 되어버린다. 그게 죽음이다.
그럼 뭔가? 칠공자 중 일공자를 죽여서?
이것도 웃기는 소리다. 남무림에서는 제삼무신가의 둘째 공자를 죽였다. 그리고도 앞날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일공자가 아니라 칠공자 전부를 죽였어도 달라질 건 없다.
마야의 고민은 무엇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웬만한 농담쯤으로 풀어낼 고민이 아니다. 마야가 풍기는 번민은 만인의 죄악을 짊어진 듯 무거워 보인다. 그래서 술도 마실 수 없고, 실없는 농담도 애써 자제한다.
“건포(乾脯)라도 먹어야……”
다담선자 힘들게 입을 열었다가 곧 닫아버렸다.
그렇게 마야는 저녁을 굶었다. 밤바람을 맞으며 뱃머리에 서있을 뿐이다.
다담선자조차도 말을 건넬 수 없었다.
마야가 움직였다.
태양이 솟구쳐 세상을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일 무렵이었다.
지난밤은 참으로 지루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오직 뱃전을 두들기는 물소리만 들으며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는 게 이토록 고역일 줄은 미처 몰랐다.
마야가 움직였다는 건 침묵이라는 껍질을 깨고 나와 움직여도 좋다는 신호나 다름없다.
호채마의 눈이 마야의 움직임을 쫓았다.
무엇 때문에 밤을 꼬박 밝혔는지, 이제 무얼 할 건지…… 오랜 기다림에 대해서 답을 들을 시간이다.
마야의 발길이 절혼마녀에게 닿았다.
“미안하다고?”
절혼마녀도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야가 밤을 밝히며 강을 쳐다볼 때, 그녀도 여인의 머리칼처럼 윤기 흐르는 강과 말을 주고받았다.
― 미안해.
― 미안해……
많은 말을 주고받았지만 기억나는 건 미안하다는 말뿐이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마야를 쳐다봤다.
마야가 다시 말해왔다.
“얼마나 미안한데?”
절혼마녀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했다.
“많이. 아주 많이.”
절혼마녀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였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꾹 눌러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야는 절혼마녀를 보듬어 안았다.
“미안해 할 필요 없어. 절대로.”
“제가 뭘 할지 모르잖아요.”
“뭘 하든…… 나는 절혼, 절혼은 나. 우린 일심동체(一心同體). 그럼 된 거야.”
“마야.”
마야를 불렀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됐어. 절혼, 떠나도 돼.”
“네?”
“후후!”
“그, 그걸 어떻게……?”
“절혼의 마음이 무립에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마야!”
“알고 있었지. 알고 있었어. 눈빛이 여려질 때부터.”
“제가 그랬어요?”
마야는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티가 너무 많이 났어. 그래, 갈 곳은 정했고?”
“낙화향으로 가려고요.”
평범한 생각은 아니다. 아이를 가진 여자가 쾌락만 들끓는 곳으로 갈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보통 사람, 보통 환경 같았으면 벼락 같은 고함이 튀어나왔을 게다.
절혼마녀의 고심이 물씬 담겨 있는 한 마디였다.
그녀가 갈 곳은 많다. 세상 모든 곳, 발길 닿는 곳, 처처(處處) 어느 곳이나 가면 된다.
그녀가 갈 곳은 없다. 마야의 여인은 아무 이유 없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여도 죄악이 되지 않는다. 마(魔)를 선택한 여인이니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불쌍치 않다.
세상에서 절혼마녀가 가장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은 마야 옆자리다. 마야에게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죽을 위험은 증가한다.
허면 왜 떠나려고 하는가?
피! 피가 싫어졌기 때문이다.
평생을 술과 피와 향락과 음모 속에서 살아왔다. 죽을 곳도 술자리나 사람 발길이 끊어진 으슥한 곳이라고 생각해왔다.
술과 피와 육체적인 쾌락은 그녀와 어울렸다.
이제는 싫다. 사람이 죽는 것도 싫고, 피가 튀는 것도 싫고, 죽으면서 내지르는 비명소리는 더더욱 듣기 싫다.
하지만 마야 곁에 있으면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한다. 보기 싫어도 보아야만 한다.
피 냄새가 싫다고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떠날 수는 없다. 비명소리가 듣기 싫어서 죽을지도 모를 위험 속에 목숨을 내던지는 건 미친 짓이다.
그녀는 그런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마야는 이해했다. 이유는 오직 하나, 태아 때문이다. 곧 태어날 아이에게는 비명 소리를 들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마야 곁을 떠난다고 했을 때 가장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 낙화향이다. 낙화향은 그녀의 평생이 담긴 곳이다.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고, 오가는 사람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다.
숨을 때나 싸울 때나 어느 쪽을 선택하든 세상에서 가장 유리한 곳이다. 그녀가 원하기만 하면 백 일이고, 천 일이고 피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이다.
“낙화향…… 좋지. 좋을 거야. 먼저 가 있어. 일이 끝나면……”
절혼마녀는 배시시 웃었다.
“맛있는 술 담가놓을 게요.”
절혼마녀는 오랜 고심 끝에 돌발적 발언을 했지만 놀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표정과 행동에서 그녀의 마음을 익히 읽었던 탓이다.
그녀는 떠날 사람이었다. 지독한 환경에서 자라왔고, 나름대로 독한 성품도 지녔지만 근본적으로 그녀는 피비린내와는 어울리지 않는 여인이었다.
살인도 할 수 있고, 잔혹한 수법도 펼칠 수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 항상 악(惡)과 살(殺)을 심어놓고 사는 마인이 되지는 못했다.
그런 사람은 또 있다.
다담선자가 그렇고, 금연화도 마찬가지이며, 일령도 선(善)이라는 글자를 벗어던지지 못한다.
모두가 무림에서 떠날 사람들이다.
사내들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무공이 좋고, 싸우는 것이 좋아서 기꺼이 마인을 택했지만 이런 식으로 보보마다 살인을 딛고 살아야 한다면 머지않아 정신이 황폐해질 것이다.
마인이라면 살인을 할수록 기운이 나고 즐거움이 샘솟아야 하는데 호채마는 그러지 못했다. 전형적인 마인들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호채마 모두 검을 접고 한적한 곳을 찾아 은거해야 할 사람들이다.
절혼마녀는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계를 가장 먼저 깨닫고 물러선다고 보는 편이 맞다.
더 이상 간다는 건 무리다.
자칫하다가는 정말로 마인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영원히 인간의 심성을 다시 찾을 수 없는 마녀가 되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알고 물러선다고 할 때는 보내주어야 한다. 어떤 관계가 되었든, 얼마나 필요한 사람이든 인간으로 남기를 바란다면 웃으면서 배웅해줘야 한다.
“내가 따라가지. 여기서는 별 소용도 없고…… 낙화향에 굴만 몇 개 뚫어놓으면 최소한 일신은 지킬 수 있어. 절혼마녀가 만만한 여인도 아니고.”
언장은마가 말했다.
“클클! 굴만으로는 부족하지. 한 사람쯤은 목숨을 걸어줘야 해. 마야, 그건 내가 적임일 것 같은데…… 끌끌! 사실 낙화향에 가면 술은 실컷 마실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자네 따라 다니면 다 좋은데 뱃속에 술 벌레가 지랄발광을 하니 견딜 수 있어야지.”
시마가 말했다.
시마 역시 투지(鬪志)가 사라진지 오래다.
늙었기 때문이 아니다. 절혼마녀처럼 피가 지겹기 때문도 아니다. 녹혈마공을 흑혈마공으로 발전시킨 순간부터 무공이 뿜어내는 매력을 거의 느끼지 못한 듯 했다.
모순되게도 녹혈마공으로 이룰 수 있는 최절정 봉우리에서 만족함을 느껴버린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흑혈마공으로 꺾지 못할 상대도 있을 터인데, 겨루려고 하지 않는다. 최정상에 올라섰으니 무신이라는 사람들과도 한바탕 드잡이를 벌이고 싶을 텐데, 아무런 욕구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