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28
328
자신이 던져낸 화탄이 자신에게 되쏘아져 오고 있지 않은가.
“상피망(橡皮網)!”
뒤로 물러섰던 사천제일룡이 그물을 알아봤다.
그의 손은 어느 새 허리춤을 더듬었고, 유엽도(柳葉刀) 한 자루가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타악!
유엽도는 되쏘아오던 화탄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화탄을 물고 쏘아가던 기세 그대로 밀고나갔다.
꽈아아아앙……!
화탄은 허공에서 작열했다.
섬광이 피어났다. 뜨거운 열기가 몰아쳤다. 엄청난 굉음에 귀가 먹먹해졌다.
잠시 후, 주변을 살펴보자 놀라운 광경이 드러났다.
상피망을 펼쳐 화탄을 되쏘았던 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 위에 나뭇조각들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어서 방금 전까지 배 한 척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하아! 가볍게 하랬잖아요!”
일령이 툭 핀잔을 주었다.
“이게 제일 가벼운 거였는데……”
사망혈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해했다.
사천제일룡이 아니었어도 되돌아온 화탄에 당하지는 않았을 게다. 그물을 맞고 되퉁겨진 것이기 때문에 돌아오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다. 화탄을 되돌릴 것도 많다. 사천제일룡처럼 유엽도는 지니지 않았어도 던질 것은 많다.
누가 무슨 수를 썼어도 사천제일룡과 같은 효과는 냈을 것이다.
화탄은 던져 배 한 척을 침몰시킨 것은 중요하지 않다. 유계 마인들이 어떤 식으로 화탄에 대응하는지 봤다는 게 중요하다.
“상피망은 잘 만들기만 하면 탄력이 고무보다도 더 해. 저놈들도 얼떨결에 상피망을 펼친 듯한데, 작심하고 펼치면 무척 빠르게 날아올 거야.”
결국 화탄도 사용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화탄을 던져낼 수는 있지만, 상피망으로 되퉁긴다고 해도 다시 쏘아낼 능력이 되지만 화탄의 화력이 호채마에게까지 미치는 한은 사용할 수 없다.
호채마를 호위하던 절대 방어막들이 순식간에 걷혀졌다. 왕벌, 독, 화약…… 약한 인간도 강하게 해주는 부산물은 모두 빠져나가고 알몸만 남았다. 육신 하나, 병기 한 자루만 남았다.
달라진 건 없다.
마야 곁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아는 사람들이다. 선택한 길의 끝을 보고 싶으며, 그래서 항시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찾아나선다.
십중팔구(十中八九)라는 말이 있지만 이러한 길을 가는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편안한 죽음을 맞지 못한다. 흔한 말로 객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죽은 동료들을 볼 때도 깊게 슬퍼하지 않았다.
고루쌍마, 철탑거추, 혈유……
당장이라도 옆에서 말을 걸어올 것 같은 사람들이지만 편히 가라 속삭여주었다.
그들만 가는 길이 아니다. 남은 사람들도 조만간 그 길을 따라 간다. 대체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워서 살아남을 공산이 있기는 한 건가? 한두 번도 아니고 수십 번을 싸우고, 그것도 부족해서 목숨이 남아있는 순간까지 계속 싸우겠다는데 어찌 죽지 않겠나.
여기서 죽으나 저기서 죽으나 매한가지다.
오늘 하루 살아남으면 눈뜨고 있는 만큼 무(武)의 길을 한 걸음 나간 것이고, 내일도 살아있으면…… 모르겠다. 허송세월로 하루 해를 넘길지, 누군가와 등에 땀이 베이는 격전을 벌일지. 물론 후자를 원하지만……
꼭 일 대 일의 승부만 벌이란 법은 없다.
지금처럼 어떤 무공을 지녔는지 추측조차 할 수 없는 자들과 드잡이 질을 벌이는 것도 손맛이 무척 좋다.
“후후후!”
마도가 옅게 웃으며 혈염도를 쓰다듬었다.
굳이 흥분을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숨길 필요도 없다.
끼이익! 끼이익! 끼이익……!
유계 마인들을 태운 배는 무심히 다가왔다.
배에 타고 있는 자들도, 노를 젓는 자도 얼굴에 표정이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물론이고 육신의 감각조차 잃어버린 모습이다.
“다담.”
마야가 다담선자를 불렀다.
“걱정마세요.”
다담선자가 양손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한 손에 하나씩, 유엽도 두 자루가 시퍼런 한광을 번뜩인다.
사천제일룡이 던진 것과 같은 종류의 유엽도다.
“봤군.”
“그럼요. 잊을 수 있나요?”
“뭘…… 잊을 수 없어?”
“추명반을 쓰기 전에 납인(蠟人)이 있는지 꼭 살펴라. 이까짓 쇠붙이 하나 받으면서 열 번 넘게 들은 소리라고요. 호호호!”
“열 번?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두서너 번 했나?”
마야와 다담선자는 태연히 말을 주고받았다. 허나 듣는 사람은 답답했다.
두 사람의 말로 미루어 보면 다담선자의 날개 또한 꺾였다는 뜻이지 않나. 보아하니 추명반을 쓰지 못하는 상황 같은데, 이런 경우를 언제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답답한 것은 그 때문이 아니다.
사천제일룡이 속수무책이고, 사망혈인도 그저 두 눈 뜨고 멀거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다담선자가 추명반을 쓰지 못한다?
여기서부터는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 유계 마인들은 호채마 개개인의 무공을 낱낱이 파악했고,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을 들고 왔다.
일령의 선유비조신법을 잡을 대책은 뭔가? 금연화의 자하쌍구검, 백형검법은 어떤 식으로 봉쇄할까? 마도의 혈염도법은, 수검의 사흡검법은?
모르긴 몰라도 완벽한 대비책이 갖춰져 있으리라.
저들은 바보가 아니다. 승산이 없는 싸움을 벌이러 온 것도 아니다. 정도 무인들처럼 무공만으로 겨룰 생각도 하지 않는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이는 것만 능사로 여긴다.
“납인이라는 것…… 말뜻을 짐작컨대, 밀랍인간이라는 뜻 아니오?”
수검이 다가오는 마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물었다.
“맞아요. 밀랍인간이긴 한데 조금 달라요. 생명이 있는 인간이 아니라 생명 없는 인형이에요. 추명반이라는 게 끈이 달린 것도 아니고 여러 사람 중에 몇 사람만 콕 짚어서 죽일 수 없거든요. 날아가는 사선(死線)에 걸린 사람들은 모두 건드릴 수밖에 없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밀랍인형이면……”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추명반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인형에 틀어박힌다.
단순히 밀랍으로 만든 인형이 아니리라. 인간의 뼈와 힘줄도 간단히 끊어버리는 추명반인데 밀랍쯤이야. 분명히 밀랍 속에 추명반의 속도를 죽일 수 있는 무엇인가가 들어 있을 게다.
“그걸 아는 사람이 몇 사람이 되오?”
수검이 다시 물었다.
“거의요. 솔직히 전 마야와 저만 아는 줄 알았어요.”
이야기를 더 나눌 필요가 없다. 끝났다. 다담선자의 절대 비밀을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 또한 같은 선상에 놓였다고 봐야 한다.
무공의 파해법이 흘러나갔다.
오래 생각할 시간도 없다. 당장 칼부림을 해야 하는데, 저들이 모든 걸 알고 있으니 어찌 해야 하는가.
무공의 숙련도, 진기의 우위…… 파해 무공을 짓누를 수 있는 요소는 지녔지만 한두 명에게만 통할 뿐이다. 많이 봐주어도 십여 명을 넘지 못한다.
싸움 상대가 파해 무공을 지녔을 때와 지니지 않았을 때의 승산은 천지차이다.
“마야, 이런 말을 묻기는 뭐하지만……”
마도가 힘들게 운을 뗐다.
“없어.”
마야는 마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했다.
“일견후즉파의 능력을 지닌 자는 단언컨데 중원 무림에 나 혼자야. 과신이라고 해도 좋고, 오만이라고 해도 좋지만 싸우는 모습만 보고 파해법을 만들어 내는 자, 본 적이 없어. 두 번째 물음. 파해법, 잠결에라도 입 밖에 낸 적 없다.”
마야는 묻지도 않은 것까지 대답했다.
물론이다. 마야가 그랬다고 생각해 본적은 꿈에도 없다. 지금 목에 칼을 맞고 죽어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궁금한 것은 누가 마야와 같은 능력이 있느냐이다. 일견후즉파라는 능력이 머리만 좋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무공만 강하다고 생기는 것도 아닌데 마야 외에 또 어떤 천재가 있는 것일까.
웃긴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야를 데려가지 못해서 안달했던 이유가 바로 그 일견후즉파 때문이라는 거다.
유계 주공이 주화입마라도 걸린 줄 알았는데…… 무공을 대성하지 못해 무림에 나서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마야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유계에 진정한 일견후즉파가 존재한다면 이제 마야는 필요없다.
회유하여 유계로 데려갈 것이 아니라 죽여 없애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유계에 또 한 명의 일견후즉파가 있는 건 사실인 것 같다. 그로 인해 유계의 난제가 싹 풀렸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다가오는 마인들의 얼굴에 살기가 그득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럼 적멸주도?”
금연화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독룡이 실패하는 즉시 시전해 봤는데……”
벌써 사용해 봤다? 놀랍지 않은가. 적멸주를 썼는데 이토록 멀쩡하다니. 이건 놀랍다 못해 경이적이다.
적멸주나 마령음은 귀가 열린 사람에게나 통한다. 비록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청각을 두드리는 것만은 틀림없다.
다가오는 사람들은 듣지 못한다. 그래서 적멸주가 흘러들어가지 못했다.
이들은 어떤 방법을 사용했을까?
단순히 귀마개를 한 정도로는 적멸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실낱 같은 틈만 있어도 음파가 기어들어간다.
아예 고막을 터트려버린 둣하다.
마야에 대한 대비까지 철저히 했다는 뜻이다.
그럼 콘이나 수에 대한 대비도?
수에 대한 대비는 한 것 같다. 다가오는 자들이 살기만 띄울 뿐 여타의 감정 표현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이지를 죽인 것 같다.
여색에 흔들릴 여지를 싹둑 잘라버렸다.
오로지 무공만 남았다. 그것도 초식이 환히 드러났으며, 파해 무공까지 창안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속 편할 무공만.
“마야, 한 마디 할 것 없어?”
마도가 답답해서 말했다.
마야는 싱겁게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싸워야지.”
제2장 전도수(錢到手) ―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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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익! 휘이익! 탁! 타악……!
해적들이 범선을 침탈할 때처럼 갈고리가 날아와 꽂혔다. 배를 끌어 당긴다기 보다는 마야의 배와 자신들의 배를 하나로 묶어서 요동을 없애려는 의도다.
마야는 승선하려는 의도를 빤히 보면서도 내버려두었다.
굳이 줄을 끊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싸움을 피할 수 없고, 남은 것이 무공뿐이라면 이쪽 역시 요동을 줄이는 쪽이 좋다. 변수를 최대한 줄인다는 의미에서 흔들림이 없는 것도 괜찮다.
“죽이는 거지?”
사천제일룡이 물어왔다.
“후후후!”
마야는 대답 대신 웃었다. 너무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아서 얼음처럼 차게 느껴지는 웃음이다.
“그럼 시작할까? 독이 통하지 않는다고 두 손 놓고 있으면 말이 안 되지.”
쒜엑! 쒜에엑!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 가득히 새까만 운무가 피어났다. 순식간에 피었다가 지는 흑화(黑花)다.
“크윽!”
“카아악!”
십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발버둥 치더니 힘을 잃고 풀썩 쓰러졌다. 뱃전으로 무너지는 것도 힘든지 강으로 빠지는 자도 보였다.
“암기라고 다 같은 암기가 아닌 것. 같은 칼도 요리사는 채소를 썰지만 백정은 소, 돼지를 잡지 않는가!”
쒜에엑!
다시 한 무리의 흑화가 피어났다.
“아아악!”
비명은 어김없이 터졌다.
마인들은 십여 명 정도 밖에 타지 못하는 소선(小船)을 이용했다.
사천제일룡의 흑화는 배 한 척에 있는 사람들을 전멸시켜 버린 것이다.
“우모침(牛毛針)도 저리 쓰니 신병(神兵)일세.”
마도가 감탄을 토해냈다.
사천제일룡이 암기를 던져내는 수법은 신기에 가까웠다. 사람이 무려 백여 개에 이르는 우모침을 던져낸다는 것도 감탄스럽거니와 살상 범위를 배 한 척에 고정시키고 고루 펼쳐내는 광경은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가 노린 배는 죽음의 배가 되었다. 배에 탄 사람치고 죽음을 벗어나는 사람이 없었다.
“십 대 일의 싸움이군. 이거 괜찮은데? 마야.”
수검이 상황을 판단한 끝에 마야를 불렀다.
사천제일룡의 공격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생각지 않았던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마야 일행은 큰 무리만 봤다. 배를 타고 오는 마인들 모두와 싸울 생각만 했다. 그런데 사천제일룡은 배 한 척씩을 무너트리고 있다. 전체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십여 명과 싸우는 것이다.
좋은 싸움이지 않은가.
계속 이런 싸움을 유지해 나가야 하지 않겠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다가오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이쪽에서 먼저 쳐나가면 된다. 적의 배에 뛰어올라 십 대 일의 싸움을 유도하면 된다.
수검은 마야의 의중을 물은 것이다.
마야는 아무 소리도 묻지 않았다. 그러고도 수검이 부른 뜻을 알아챘다.
“어차피 각개 싸움이니까. 우리 초식을 알고 있는 자들이란 건만 항시 염두에 둬.”
“좋지.”
“잊을 리가 있나.”
마도와 수검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그리고 누가 많이 죽이나 내기라도 한듯 뱃전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저희도……”
금연화도 수검과 같은 뜻으로 말을 내비쳤지만 대답은 뜻밖에도 반대였다.
“배는 우리의 구심점이오. 구심점을 잃어버리면 아무래도 힘을 못 쓰지. 좌측을 맡아주시오.”
마도나 수검은 믿고 금연화는 믿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마음은 일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런 쪽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좋아요. 한 명도 올라서지 못하게 하죠. 일령!”
“마야, 우리 내기 할래요? 마야는 언니와 함께 우측을 지켜요. 우린 좌측을 지킬게요. 저놈들, 먼저 올라서게 하는 쪽이 지는 거예요.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