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31
331
독이나 암기는 결코 우열을 논할 수 없다.
꿩 잡는 게 매라는 말처럼 목표를 제거할 수 있는 게 가장 강한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농부를 죽이는 데는 세침(細針) 하나면 된다. 세침까지도 쓸 필요가 없지만 굳이 무엇을 써서 죽여야 한다면 세침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경우, 농부에게는 세침이 가장 강한 무기가 된다.
마야를 죽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동원해야 할까?
아무 것도 없다. 당문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마야를 죽이지 못한다. 그나마 한 가닥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 혈마지신의 폭발이다.
사람마다, 상대마다 쓰는 독이 각기 다르다. 암기가 다르고,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다.
‘숙부가 유계에게 줄 것이……’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이 숙부가 누굴 상대하느냐이다.
마야인가, 자신인가?
만독불침인가, 혈마지신인가?
물어볼 것도 없이 자신이다. 혈마지신이다.
허면 혈마지신을 죽일 방도는 무엇인가? 독이나 암기 중에서 고르라면?
염수화는 혈마지신의 독기를 어느 정도 막아낸다. 앞에 일대(一隊)나 이대(二隊) 정도는 쉽게 죽이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염수화를 젖히기가 쉽지 않다.
혈마지신이라고 해도 무한정으로 독기를 흡취당한다면 견딜 재간이 없다.
독기를 풀어낸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
결정적인 일격을 가해야 한다. 마야도 있고, 다담선자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근접전으로는 어림도 없다. 원거리에서 공격하되, 결정타 한 방을 날려야 한다.
숙부는 독이 없다. 당문을 떠날 때는 많은 것을 가져왔지만 자신과 싸우면서 모두 소진했다. 무엇을 만들든 강북에서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지옥겁화…… 금황린…… 원거리…… 파쇄노…… 파쇄노! 지옥겁화! 천붕흑우(天崩黑雨)!’
사천제일룡의 안색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사천당문에 천고의 절학이 있다. 당문이 사천 땅에 자리 잡은 이후, 단연 으뜸으로 손꼽히는 절기다. 어떤 사람은 사천 당문하면 꽃비를 연상한다.
만천화우(滿天花雨).
인간이 암기로 펼쳐낼 수 있는 최상의 절기다.
두 손, 열 손가락으로 떨쳐내는 암기가 무려 삼천여 개.
눈 깜빡할 순간에 방원 십여 장을 죽음의 도가니로 만들어버리는 가공할 절기다.
만천화우만 건재했다면 중원에 무신은 일곱 명이 아니라 여덟 명이 되었으리라.
아니, 이런 말은 필요 없다. 소림사도 그렇고, 화산파, 무당파도 그렇고 대문파란 곳치고 천하를 떨쳐 울릴 절기 한두 개쯤 안 가지고 있는 문파는 없다.
현재 사천당문은 만천화우를 완벽하게 재현해내지 못한다.
기재란 사람들이 불철주야 수련하고 있지만 턱 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점은 살 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운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문주를 비롯하여 장로, 원로라는 사람들도 최강의 걸작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탄생한 것이 천붕흑우다.
인간의 손으로 만천화우를 펼치지 못한다면 기관장치의 힘을 빌어서 재현해 보자는 의미에서 개발되었다.
죽통 같은 곳에 암기를 담아 허공으로 쏘아내면 꽃비가 내리는 건 당연하다.
헌데 문제가 생겼다. 기관장치를 사용하면 발사되는 힘이 너무 강해서 필요 이상으로 높이 솟구친다는 것이다.
사람을 겨냥해서 직접 발사하는 것보다 못하다면 굳이 만천화우를 고집할 이유가 무엇인가.
만천화우가 최강 절기로 자리매김한 것은 절대적인 조건, 피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암기를 맞고 사느냐 죽느냐는 차후 문제다. 일단 맞아야 한다.
오랜 연구 끝에 천붕흑우가 탄생했다.
만천화우와 결과가 똑같아서 그야말로 완벽한 재현이라는 찬사를 얻기도 했다. 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될 뿐만 아니리 여러 단계에 걸쳐서 완성되는 관계로 실효성 면에서는 가치 없다는 정반대의 평판도 함께 얻었다.
천붕흑우는 한때 불같이 일어났지만 곧 사장되고 말았다.
그 천붕흑우가 이곳에 나타났다.
사방에 둘러친 상피망은 움직임을 죽이는 수단이다. 강심이라는 지형조건도 천붕흑우를 펼치기에는 최상이다. 하늘로 날아갈 수 없고, 땅 속으로 꺼질 수도 없다.
물속으로 뛰어들 수는 있다. 동물의 살을 최고의 먹이로 여기는 물벼룩, 흘공흘조(吃空虼蚤)가 두렵지 않다면.
마인들이 펼쳐낸 게 천붕흑우가 맞다면 지금쯤 강에는 흘공흘조가 가득 뿌려져 있을 것이다.
다음 수는 파쇄노와 지옥겁화로 펼치는 백화만무(百花滿舞)다.
똑같은 지옥겁화가 아니다. 앞으로 쏘아질 것은 상피망에 바른 것보다 열 배는 정순하게 제련된 것이라 허공에 대고 쏘는 순간 하얀 불꽃을 보게 된다.
하얀 꽃비가 너울너울 떨어질 때, 상피망과 흘공흘조에 둘러싸인 건 모조리 태워진다.
“살 길이 없어. 발악이라도 하고 싶으면 사망혈인보고 지닌 것 모두 한꺼번에 터트리라고 해. 지금! 우린에겐 살 길이 없을 뿐 아니라 시간도 없거든.”
사천제일룡은 침울했다.
숙부에게 졌다. 역시 숙부가 한 수 위다.
모두가 쓸모없다고 버린 천붕흑우를 이토록 완벽하게 쓸 수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자신은 어떤가? 이토록 위급한 순간에 혈마지신을 펼친다 한들 얼마나 쓸모 있는가.
헌데 마야가 숨 막히는 말을 해왔다.
“천붕흑우, 맞나?”
사천제일룡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마야를 쳐다봤다.
“사람 질리게 하는 데는 도가 텄군.”
“지옥겁화를 봤을 때부터 혹시나 했지. 절대 마와 손잡지 않을 사람이 유계와 손잡았고, 마인이라면 원수처럼 미워하는 사람이 지옥겁화를 사용할 정도라면……”
“그래, 내가 죽일 놈이야.”
“물속에는 흘공흘조, 상피망을 사방에 둘러쳐 벽을 만들고…… 이제 남은 건 백화만무뿐인가?”
“천붕흑우를 어떻게……?”
마야는 천붕흑우를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안다. 실전에서는 쓸 수 없다고 하여 당문 사람들도 거들떠보지 않는 절학이건만 정작 외인인 마야는 세세하게 연구한 듯 하다.
“포위를 아나?”
마야는 뜬금없이 물어왔다.
세상에 포위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포위망을 천라지망(天羅地網)이라고 하지. 아나?”
천붕흑우는 천라지망에 바탕을 두었다.
만천화우는 한 사람이 던져낸 암기가 자연스럽게 천라지망을 형성해 압박해 들어가지만, 천붕흑우는 천라지망부터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여러 단계를 거친다.
그걸 알면 뭐하는가. 너무 알아버린 것을. 지금은 천붕흑우가 완성되기 직전이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백화만무를 맞이해야 한다.
마야가 말했다.
“세상에 완벽한 천라지망이란 없어. 포위는 할 수 있어도 잡기는 어렵다는 거지. 마도! 수검!”
마야의 외침을 들었는가! 마도와 수검이 쏜살같이 치달리며 소선들 사이를 누볐다.
포위망이 찢긴다. 천라지망 한 귀퉁이가 갈라진다.
‘저, 저곳이! 저곳이!’
사천제일룡은 입을 쩍 벌릴 뿐 말을 잇지 못했다.
화아아아악!
소선에 탄 마인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백색 화무(花霧)를 쏘아냈다. 너무도 아름다운 하얀 불꽃이다. 또한 호채마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살화(殺火)다.
사천제일룡은 백화만무가 진정 아름답게 보였다.
공격자의 입장이 아니라 방어자의 입장에서 백화만무를 본 것도 처음이지만 아름답게 느끼기까지 할 줄은 진정 몰랐다.
탈출로가 있을 때, 백화만무는 대낮에 펼친 불꽃놀이였다.
제3장 불점아(不點兒) ― 아주 작다
1
마야가 탄 배는 난파선이나 다름없게 변했다. 여기 저기 온통 부서지고 뜯겨졌다. 불에 타거나 그슬린 곳도 많다. 사실 멀쩡한 곳을 찾기가 더 어렵다.
가라앉지 않은 것이 용하다.
“몇 명쯤 되나?”
마야가 침통한 음성으로 물었다.
강에는 많은 시신이 떠다녔다.
도에 베이고, 검에 찔리고, 암기에 격중되고…… 죽은 원인은 각기 달랐지만 부시독(腐屍毒)에 중독된 사람처럼 급속하게 살이 썩어 들어가고 있다는 점은 같았다.
강물은 석 달 이상 걸려야 될 정도의 부패를 두어 시진 만에 끝내놓고 있었다.
“천 명은 훌쩍 넘을 것 같은데……”
마도가 대답했다.
그의 모습은 악귀나 다름없었다. 머리며, 얼굴이며, 옷이며 붉은 피가 낭자하게 번져있어서 살짝만 움직여도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다. 남자고 여자고 가릴 것 없이 배 위에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핏빛 일색이었다.
유계 마인들은 끝없이 몰려왔다.
처음에는 이백여 명 정도에 불과했다. 헌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수가 늘어나더니 종래에는 얼마나 되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한 시진, 두 시진, 세 시진……
병기를 얼마나 휘둘렀는지, 얼마나 죽였는지, 무슨 초식을 사용하고 있는지, 진기의 흐름은 어떤지……
모든 걸 망각하고 죽이는 데만 열중했다.
유계 마인들은 물러갔다.
강에는 천여 명쯤 되는 시신들이 둥둥 떠다닌다.
빨리 부패한 것은, 실은 흘공흘조가 먹어치운 것이지만, 하얀 뼈를 드러내고 있어서 비위 약한 사람은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온 세상이 적이군.”
사천제일룡이 말했다.
그는 지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뱃전에 두 손 두 발을 활짝 펴고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현재 그의 몸에는 단 하나의 쇠붙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암기란 암기는 모두 써버렸다. 하다못해 손에 들고 있던 유엽도까지 던져낸 후, 마인들의 검을 탈취해서 검공을 펼쳤다.
사천제일룡이 구사하는 검공을 보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북검문과 싸울 때는 정도가 적, 싸움이 끝나고 나니까 이번에는 마인이란 놈들이 죽이겠다고 달려들고. 온 세상이 적이야, 검을 든 놈은 모두 적이야.”
옛날부터 그랬다. 호채마에게 벗은 몇 되지 않았다. 중원을 통틀어 몇 명이나 되는지 숫자로 제시하는 게 어렵지 않다면 말 다한 것 아닌가.
정도 무인도, 마인들도 호채마와는 어울리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마야를 추종하는 무리들과는 상종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유계가 공격해 올 거라는 건 어떻게 안 거야?”
수검이 물어왔다.
마야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두 눈을 지그시 내리감으며 말했다.
“북검문과 남도문. 이 두 문파를 떼어놓고 생각하면 안 돼. 북무림, 남무림을 따로 생각할 수 없듯이 북검문과 남도문도 같은 운명이야. 흥하면 같이 흥하고 망하면 같이 망하고.”
모두 조용히 귀를 귀울였다.
이것이야 말로 마야가 밤을 꼬박 밝히며 생각한 것이다.
“북무림이 탈태환골(奪胎換骨)을 한다면 남도문은 가만히 있을까? 아니 모르긴 몰라도 남도문 역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거야. 무신 삼가(三家)로 대변되는 체제에서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는 문주 중심체제로 전환했을 거야.”
마야의 말을 듣고 있고, 믿으면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싶다.
지금 마야는 제이무신가와 제삼무신가의 멸문을 말하고 있다. 제일무신가로의 흡수 혹은 병합이라고 해도 좋다. 어느 쪽이든 만사무불통지와 궁왕의 가문은 소멸되었음을 의미한다.
마야가 말을 이었다.
“어느 세력이나 마찬가지지만…… 뭐든지 새로 개편했을 때는 내부부터 다지는 것이 순리야. 밖에 일을 처리하는 건 내부기반이 다져졌을 때나 가능한 것이고.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우릴 치기 위해 문도를 보낸다면, 그건 상대하기 쉽지. 불안한 구석이 있는 자들과는 싸우기 쉬워.”
말은 쉽지만 생각하기는 어렵다.
마야는 눈과 귀가 막혔다.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일도 모를 정도로 중원 소식이 꽉 막혔다. 개방은 예전에 떨어져 나갔고, 하오문의 정보조차 전해지지 않는 실정이다.
민가(民家)에 들리지도 못한다.
태반이 부풀려진 소문조차 전해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북검문과 남도문의 일을 짐작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설혹 짐작하거나 추측되는 일이 있어도 확신이 서지 않으니 행동에 보탤 수 없다. 불확실한 판단에 기인한 행동은 자칫 큰 실수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마야가 한 말들은 북검문 천비대나 남도문 야광처럼 정보에 치이는 기관들이 몇 십 번에 걸친 사실 확인까지 끝낸 후에야 발설할 수 있는 중차대한 사항이다.
“유계가 올 것도 예상했는데……”
마야는 말한 적이 있다. 유계가 공격해 오면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고.
힘든 싸움을 치렀다. 허나 이 정도라면 견딜 수 있다. 강에 수많은 주검이 떠다니고 있지만 아직도 싸울 힘은 충분하다.
“유계가 왔으니…… 휴우! 앞으로는 정말 힘든 싸움이 될 거야.”
또 그 소리다. 힘든 싸움이 될 거라는. 힘들기는 하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닌데.
“유계가 왔다는 건 북검문과 남도문이 유계의 출현을 양해했다는 뜻이거든.”
“뭣!”
“뭐라고요!”
모두 놀랐다. 경악성을 내질렀다. 좀처럼 대화에 끼어들지 않던 금연화까지 되물어왔다.
유계가 북검문, 남도문과 사전 조율이라도 했다는 건가? 정도 무림이 마인을 용납했다는 말인데, 이게 말이 되나!
만약 이 말을 마야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했다면 단번에 핀잔을 들었을 게다.
“이런 말을 하는 근거, 있지. 첫째, 큰 싸움은 우리가 한 게 아냐. 중원 무인 대 유계의 싸움이었어. 헌데 유계는 중원 무림에 반격을 가하지 않고 우릴 쳤어. 둘째, 유계가 공공연히 모습을 드러냈는데 북검문이 나서지 않아.”
유계 마인들은 수십 년이란 세월을 숨어 살았다. 한 마디로 중원 무인들 눈을 속이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는 말이다. 허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천여 명이나 되는 자들이 한 곳에 출몰할 수 있다는 건 좀처럼 납득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