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36
336
“이대로 당해야 하는 거야?”
수검이 물었다.
마야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지금 무림은 우리와 개방 싸움에 모든 촉각이 곤두서있어. 우린 개방과 싸우지 않아.”
마야가 방에서 가지고 나온 행낭을 내밀었다.
“이 안에는 밀서(密書)가 들어있어. 무슨 내용인지는 묻지 마. 무조건 믿고 따라줘. 밀서를 뽑으면 혼자 보고 바로 행동해. 이건 장기와 같아. 졸(卒)의 임무가 있고, 차(車)의 임무가 있어. 하지만 모든 아귀가 잘 짜였을 때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게 돼. 어떤 임무를 맡게 되더라도 최선을 다해주고……분명한 건 이 행낭에 들어있는 밀지가 모두 이행되었을 때, 유계가 무너진다는 거야.”
마야의 반격 계획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움직일 곳이 없는데, 유계를 무너트릴 계획까지 세웠다니 정말 놀랍다. 또한 그런 말을 들으니 행낭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해진다. 자기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것까지도 모두 보고 싶다.
‘궁금해도 참아야 돼. 알면 내 일에 방해가 되니 알려고 하지 말라는 거겠지.’
마야의 말에 의문을 품은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이게 우리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르겠다. 우린 사자였어. 사자는 맹수의 제왕이면서도 함께 뭉쳐 다녀서 더욱 적수가 없지. 헌데 이제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 아무래도 함께 다닐 때만은 못할 거야. 각별히 조심들 해.”
“하하! 마야, 아니 궁주. 우리 궁(宮)은 어디 있는 거요? 이건 어찌된 게 궁주란 사람이 수하들에게 궁조차 보여주지 않으니. 유계를 무너트리고 난 다음에 꼭 마궁을 세웁시다. 아니지. 이건 내가 할 말이 아니지. 궁을 꼭 보여주쇼.”
수검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호채마는 서둘지 않았다. 행낭이 탁자 위에 놓여 있지만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은 없었다.
인사를 나눴다. 지난날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중첩된 임무가 없다고 한다. 함께 하는 임무도 없고, 어떤 계획인지 모르지만 홀몸이 되어 무림에 나서야 한단다.
밖에는 이리가 들끓는다. 그중 가장 무서운 사람은 삼원로다.
솔직히 무신이라는 말만 들으면 주눅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몇몇은 영영 보지 못할 게다.
그들은 천천히 마지막 회포들 풀었다.
술과 음식을 즐겼다.
2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오자 마도가 먼저 일어섰다.
“한 명에 하나씩이라고 했지. 가장 힘든 놈이 걸려야 될 텐데. 그나저나 남자, 여자 구분도 없으니 남이 보면 어지간히 사람이 없다고 하겠어.”
“흥! 아저씨! 여자라고 무시하는 거예요!”
일령이 뾰로통하니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너도 그래. 어려서부터 같아 다녀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넌 이제 소저(小姐)야, 소저. 조신하지 못하고.”
“흥!”
마도가 행낭 속에서 밀지 한 장을 꺼내 내용을 살폈다.
생각 같아서는 밖에 나가 혼자 보고 싶다. 굳이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임무를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허나 임무 여하에 따라서 사천제일룡이나 콘, 수를 데리고 가야 한다니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음……!”
무슨 임무인지 마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곧 활짝 웃는 낯으로 바뀌었다.
“어차피 모두 떠나야 한다면 나 먼저 간다. 모두들 몸 성히.”
마도가 모두를 쳐다보며 정중히 포권지례를 취했다.
“아저씨도 몸 성히.”
일령이 언제 삐졌나 싶게 다정히 말했다.
모두 떠났다.
마도의 뒤를 이어 수검이 밀지를 꺼냈다.
마도와 수검은 항상 붙어 다녔다.
검과 도라는 병기 선택에서부터 수련한 무공까지, 두 사람은 항상 앙숙이면서 제일 친한 벗이었다.
이제 떨어진다.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떨어져본다.
“이건!”
밀지를 보던 수검이 깜짝 놀라 경악성을 토해냈다. 허나 그도 곧 표정을 추스르고 모두에게 인사했다.
“살아서 보자고.”
사망혈인도 문을 나섰다.
허리를 절반이나 굽히며 인사하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중한 임무인 듯 보인다.
“쳇! 싱거운 것만 남은 것 아냐?”
일령이 투덜거리며 밀지를 집어들었다.
손을 떤다. 바르르 떤다.
“언니……”
눈물이 가득 맺힌 눈으로 금연화를 쳐다봤다.
“나중에…… 나중에 봐요.”
일령은 떨어지는 눈물을 숨기려는 듯 황급히 뛰쳐나갔다.
모두가 목숨을 건 임무인 듯 싶다. 실망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놀랐다가는 만족한다.
금연화가 밀지를 뽑아 내용을 살핀 후 일어섰다.
“이승에서 받은 은혜, 저승에서라도 꼭 갚을 게요.”
그녀는 마야를 쳐다보며 살며시 미소를 베어 물었다.
“어려운 일인 것 같군.”
“완수할 게요.”
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연화가 산주를 보며 말했다.
“중원에 더 있을래요?”
“갑자기 왜……?”
“전 남만으로 가요. 같이 안 갈래요? 마야나 언니랑 가고 싶으면 그러고요.”
산주는 마야를 쳐다봤다.
사천제일룡이나 콘, 수처럼 그에게도 선택권이 없었다.
사천제일룡은 약조에 따라 합류한 사람이다. 명을 받들어야 하는 입장인 게다. 콘과 수는 이지를 상실했다. 단독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누군가가 이끌어줘야 한다.
산주는 입장이 전혀 달랐다.
그는 남만의 제왕이었다. 남만을 호령했다. 하지만 지금 선택권이 없는 것은 그의 무공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홀로 내보냈을 경우, 십 리도 채 못가서 죽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마야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그는 보기 드물게 밝은 웃음의 지으며 일어섰다.
“중원 땅은 물부터 맞지 않아서…… 가겠습니다. 후의(厚意), 잊지 않겠습니다.”
산주는 무릎을 꿇고 대례를 취했다.
마야는 앉은 자세 그대로 대례를 받았다.
남만 풍습에 따르면 생명의 은인이나 노비가 주인을 배알할 때 대례를 취한다. 대례를 피하는 건 절을 하는 당사자를 모욕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마궁이 세워지면 놀러오세요.”
다담선자가 웃으며 말했다.
“동생, 우리 술 안 마셔봤지? 나중에 실컷 마셔보게.”
“그래요, 언니. 나중에 꼭 마셔요.”
금연화와 산주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멀어져갔다.
“다담 차례야.”
마야가 행낭을 내밀었다.
다담선자는 웃기만 했다. 행낭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저까지 속일 거예요?”
“……”
“저와 상공 것까지 밀지는 모두 일곱 장. 밤새 쥐어짠 계획은 몇 개죠? 여덟 개 아닌가요?”
“다담, 그게 무슨……”
“지금 저들에게 건네준 밀지는 사실 구명책 같은데, 틀려요? 언뜻 보면 지극히 위험해보이죠. 정말 위험할 수도 있어요. 그만한 일이 아니면 떠나지 않을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그게 어떤 일이 되었든 상공이 하려는 일보다는 죽을 위험이 덜한 거죠. 아녜요?”
“다담!”
“행낭 안에 있는 밀지 두 개 중 어느 것을 뽑아도 상공과는 상관없잖아요. 상공은 다른 일을 할 거니까요.”
“하하하! 다담, 그건 너무 억지야.”
“그래요?”
다담선자는 행낭에서 밀지 두 장을 한꺼번에 꺼냈다. 그리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활짝 펴보였다.
“그럼 말해줄래요? 누가 독룡과 함께 가죠? 어느 거에도 독룡과 함께 가라는 말은 없네요? 아! 콘과 수도 있죠? 두 사람도 데리고 가야 할 텐데, 누가 데려가요?”
“뭐야, 이거! 다 사기였어?”
옆에서 지켜보던 사천제일룡이 불쑥 끼어들어 밀지를 읽었다.
― 궁왕(弓王) 살(殺).
한 장의 밀지에는 단 석 자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내용이었다.
“미쳤군. 미쳤어. 이걸 일령 같은 애가 뽑았으면 어쩔 뻔 했나. 일령과 궁왕? 미쳤어. 미쳤어. 가만…… 이게 가짜? 궁왕을 죽이는 게 가짜라고? 그럼 뭐야? 다른 놈들은 무슨 임무를 받은 거야? 죄다 이런 거야? 설마 무신 일곱 명을 모두 죽이겠다는 건 아니지?”
사천제일룡은 횡설수설하며 두 번째 밀지를 읽었다.
― 대막삼제(大漠三帝) 살(殺).
사천제일룡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첫 번째 밀지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두 번째도 그와 버금갈 줄 알았다. 만사무불통지 정도 죽이라는 명령이 아닐까? 아니면 삼원로 중 한 명을 지목할 수도 있고.
‘대막삼제’라는 별호는 처음 듣는다.
별호에 ‘대막’이 들어가니 사막 어딘 가에 터를 잡은 자 같은데, 별로 유명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몇 번이고 별호를 되뇌어 봤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대막삼제란 자가 누구인가?
대막삼제가 누구인지 모르니 말을 할 수 없지만 호채마 모두가 선택할 수 있었던 임무이니 녹녹한 자는 아닐 것 같다.
어쨌든 이 중 하나는 다담선자의 몫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야 차지였다.
다담선자 대 궁왕? 궁왕의 활과 다담선자의 추명반 싸움인데, 냉정히 말하면 다담선자 쪽이 조금 밀리고 좋게 봐주면 양패동사로 끝날 공산이 크다.
자신과 콘, 수와 마야 대 궁왕.
이건 그림이 된다. 오히려 저울추가 이쪽으로 기운다. 천하의 궁왕이라도 이 네 명의 조합 앞에서는 어쩔 수 없으리라.
아니다. 이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식보고 아비를 죽이라는 법은 없다.
콘은 제외해야 한다.
만약 다담선자가 대막삼제를 골랐다면 마야는 어쩔 수 없이 궁왕을 쳐야 되는데, 콘을 데리고 간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역시 사기다.
“뭐하자는 거야.”
사천제일룡이 밀지를 툭 내던졌다.
모두들 비장한 표정으로 떠났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꼭 다시 만나자는 말을 인사로 남겼다.
그 모든 게 사기라면 어떤 심정들이 될까? 가장 마지막에 떠난 금연화는 남만까지 가야 되는 모양인데, 사기로 그 먼 길을 보낸다는 게 말이 되는가.
사천제일룡이 기막혀 할 때, 다담선자는 뚫어지게 마야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야가 담담히 말했다.
“때로는…… 때로는 말이야, 다담. 알아도 모르는 척 할 때가 좋은 거야. 후후! 다담 눈을 속일 수 없었다니 의외야. 어디서 실수했지? 완벽했는데.”
“상공은 먼 곳을 쳐다봤지만 전 상공만 쳐다봤거든요.”
다담선자의 말에는 성냄도, 실망도 담겨있지 않았다. 평소처럼 포근하게 말했다.
“그거였군. 여자의 직감.”
“사랑하는. 사랑이 빠졌어요.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눈이 멀지만 마음은 활짝 열려요. 이 사람이 고민하고 있구나. 혼자 있고 싶어 하는구나. 나를 원하는 구나. 말하지 않아도 촉촉이 적셔와요.”
“다담, 나 혼자 가게 해줄 수 없나?”
“삶과 죽음. 함께 해요.”
마야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을 벙긋거렸다.
말은 새어나오지 않았다. 마령음으로 전한 것도 아니다.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다문 것이다.
한참동안 다담선자를 지켜보던 마야가 힘들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가장 큰 약점은 다담이야.”
“어멋! 그래요! 몰랐네요.”
다담선자의 음성이 몰라보게 밝아졌다.
“그럼 가지.”
마야가 일어섰다.
“어디로요?”
“북검문.”
“옛?”
생글생글 웃으며 일어서던 다담선자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사천제일룡도 마찬가지다. 투덜거리다 말고 눈을 부릅떴다.
“우리가 가지 않으면 그들이 와. 기왕 맞이할 거라면 우리가 선택하자고.”
마야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휘적휘적 걸어갔다.
“대막삼제가 누굽니까?”
“못 들어봤어요.”
“밀지 봤죠?”
“얼핏요.”
“궁왕을 죽이라는 것하고, 또 하나가 대막삼제를 죽이라는 거였는데, 대막삼제란 인물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저도 마찬가지예요. 처음 들어봤어요.”
사천제일룡과 다담선자는 느닷없이 불쑥 튀어나온 낯선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알지 못하는 인물을 죽이라는 임무가 떨어졌으면 어떻게 수행할까?
대막삼제가 어디 사느냐부터 수소문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보가 많은 곳을 기웃거려야 한다. 아니면 무림인에 대해 정통한 자를 찾아가거나.
정보가 많은 곳은 있다. 허나 어느 곳도 기웃거릴 입장이 아니다.
결국 만사무불통지 같은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무림사에 정통한 사람, 당금 무림은 물론이고 구시대의 인물에 대해서도 해박한 정보수집가.
무림인은 무림인이 가장 잘 안다. 아니다. 잘 아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무인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나 연관있는 사람만 알지 저 멀리 대막이나 천축에 있는 무인까지는 알지 못한다. 평생 가도 만나지도 못할 사람인데 알 필요가 없지 않은가.
동서를 가로지르고, 남북을 관통하는 폭넓은 정보는 행상(行商)들이 더 낫다.
상인(商人)!
거상(巨商) 이약도(李躍濤)!
오귀궁의 오귀와 함께 멸신구관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사람!
대막삼제는 상인과 밀접한 연관이 있지 않을까? 거상 이약도와 어떤 관계가……?
“마야, 잠깐만! 잠깐만 쉬었다 가자고!”
사천제일룡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마야를 불러 세웠다.
“도대체 대막삼제가 누구야?”
마야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내던지듯 툭 말했다.
“유계의 자금줄.”
“뭣! 그, 그걸 어떻게?”
“다담도 모르겠어?”
마야가 뒤돌아 다담선자를 보며 말했다.
“우리에게도 장사 잘 하는 사람이 있죠. 금적금노. 유계 자금줄을 찾으라고 시켰군요?”
“멸신구관에 갈 때부터 찾으라고 했지. 상당히 오래 걸렸어. 다친 사람도 많고. 유계의 뒤를 캔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지 뼈저리게 느꼈다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