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37
337
금적금노는 자기 사람을 무척 아낀다.
사람을 쉽게 믿지 않아서 사람을 오래 두고 쓰지 않는다. 허나 믿기 시작하면 곳간 열쇠까지 맡긴다. 유계의 뒤를 캐려면 자물쇠를 채워놓은 듯 입이 무거운 자가 필요할 것이고, 그런 자는 측근 중에서만 찾을 수 있다.
금적금노가 대막삼제라는 별호를 얻어내기 위해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을지 짐작된다.
금적금노만 유계에 대해서 알고자 했던 게 아니다.
중원 남북무림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정보 수집에 대단한 역량을 발휘하는 곳도 많다. 개방을 비롯하여 천비대, 야광 등등…… 그들의 이목을 완전히 따돌리는 건 상당히 어렵다.
금적금노가 한 일은 만사무불통지가 입게 거품을 물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아무도 찾지 못한 자를 금적금노는 어떻게 찾았을까?
그가 마인이기 때문이다.
마야는 유계 마인이 아니다. 어느 집단에 속해 있지도 않았다. 홀홀단신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무림에 나서기 전까지는.
마도나 수검, 시마, 혈유 등등은 강자들과 비무까지 하고 다녔는데도 종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정도인들이 가지 않는 곳만 골라서 다녔기 때문이다.
쥐가 고양이를 피해 다니듯 정도인들의 모습만 비쳐도 몸을 숨겼으니 발각될 리 없다.
고양이도 고양이 나름이다. 병든 고양이도 있고,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도 있다. 그들은 약해서 강한 쥐라면 오히려 잡아 죽일 수 있다.
그런 경우에도 마인들은 몸을 숨겼다. 무조건…… 이유 없이 정도인들만 나타나면 숨었다.
오랜 경험으로 팔 하나만 드러나도, 아니 손톱 한 올만 내비쳐도 집중 공격을 받는 건 시간문제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금적금노는 정보수집의 대가들이 뒤지지 않는 곳을 뒤졌고, 대막 한 가운데서 대막삼제라는 인물을 찾아냈다.
수많은 정보전문가들이 반성해야 할 사건이다.
“그럼 그 대막삼제라는 놈, 꼭 죽여야 되잖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네?”
사천제일룡이 커다란 눈을 끔벅거리며 말했다.
말은 쉽지만 대막삼제가 유계의 자금줄이라면 그를 제거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굳이 어렵기로 따지자면 궁왕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상권은 흐르는 물이다. 항상 움직인다. 또 움직여야 돈이 되지, 움직이지 않으면 있는 것도 나간다.
움직임이 많은 만큼 노출될 가능성도 아주 높은 것이다.
대비책이 아주 강하다고 봐야 한다. 사방천마 정도 되는 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고 보는 편이 낫다.
대막삼제를 제거하는 임무는 결코 만만치 않다.
“가만…… 그럼 궁왕은? 궁왕도 유계와 관계있는 거야? 궁왕은 왜 죽이라고 한 건데?”
“죽여야 할 것 같아서.”
참으로 애매한 대답이다.
사천제일룡은 이유를 더 묻고 싶었다. 허나 그럴 수 없었다. 그들 앞에 강이 나타났다.
“지금부터는 물속으로 이동할 거야. 이삼 리만 흘러갔다가 올라오자고.”
이제는 중원 무림에서 감쪽같이 증발할 차례다.
유계가 숨었던 것처럼 호채마도 숨는다. 두 눈에 불을 켜도 찾아도 찾을 수 없으리라.
마야가 갈대를 꺾어 입에 물었다.
“호채마가 사라졌다!”
중원은 다시 한 번 발칵 뒤집혔다.
호채마를 감시하는 사람은 많았다. 개방이 지척인지라 개방도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마야의 움직임은 곧 개방의 흥망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무림 군웅들도 지켜봤다.
마인들을 척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운집했던 무인들은 거의 대부분 돌아갔다. 마야가 북검문, 그리고 유계와 싸우면서 보여준 신위는 대부분의 무인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남았다.
목숨이 끊어질 것을 각오하고, 정도를 위해 마지막 한 판을 준비하겠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선천적으로 마를 싫어한다. 마인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검을 잡는 사람들이다. 마에 대한 증오가 골수까지 뿌리깊게 박혀서 마인과는 절대 공존할 수 없다.
또 한 부류가 있다.
그들에게는 정과 마의 구분이 모호하다. 명확하게 악행을 저지른 자이거나 패륜적인 무공을 사용하지 않는 한은 마인으로 규정짓지 않는다.
그들에게 마야 일행은 마인이 아니다. 단지 정도 무림에 섞이지 못한 이단자 정도로 생각한다.
그들이 마야에게서 보는 것은 강한 무공이다.
마야는 강하다. 마야를 따르는 무리도 강하다.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 싸우러 올 사람도 강할 것이다.
마야를 지켜본다는 건 절대 고수들의 싸움을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절대 강자들의 싸움.
생각만 해도 전율이 치민다.
평생 한두 번 볼까 말까한 진풍경을 볼 수 있을 게다.
그들은 생각하는 바는 달랐지만 마야에게서 한 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마야는 기현 객잔에 들었고,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노닥거렸다.
거기까지는 모두 봤다.
새벽녘에 한두 명 나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단다. 객잔을 나와 모두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서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단다. 마야가 안에 있으니까 다시 돌아오리라 생각했단다.
그렇다. 사람들은 마야를 보았지 호채마를 보지 않았다.
마야만 움직이면 모두 움직이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움직여도 마야가 앉아있으면 움직이지 않은 거다.
드디어 마야가 움직였다. 당연히 지켜보는 눈들도 따라 움직였다.
마야가 있고, 다담선자가 있으며, 사천제일룡이 있다. 거기에 콘과 수까지 함께 한다. 먼저 간 사람들이 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은 마야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까.
그들이 증발해 버린 건 강에 닿았을 때다.
강가에서 머뭇거리는 것까지 봤는데,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갈대밭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궁금해도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다. 수색? 어림도 없는 소리다. 현재 마야는 독 오른 뱀이나 마찬가지다. 누구든 다가오기만 하면 베어 넘긴다. 다가오지 못하도록 독을 뿌려놨을 수도 있다. 마야 근처에 간다는 건 자살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군웅들은 사시(巳時)를 넘기고서야 마야의 증발을 눈치 챘다. 그리고 그제야 먼저 사라진 마인들을 찾아 나섰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마야는 어디로 갔나? 개방을 치러 간 건가? 정면승부 보다는 암살을 택한 건가? 용두방주나 장로들을 암살할 생각인가? 그래서 숨었나? 마야는 언제나 정면승부만을 별였으니 치사한 방법은 쓰지 않을 것 같은데.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개방은 더욱 바싹 긴장했다. 개방도란 개방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 사방을 쏘다녔다. 사람이 사는 곳은 물론이고 도저히 다닐 수 없을 것 같은 곳까지 샅샅이 뒤졌다.
마야와 호채마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제5장 이목장(耳目長) ― 정보가 빠르고 많다
1
사람들을 떼어놓고 은밀히 이동하는 것도 닷새가 지났다.
하루 이동거리는 지극히 짧았다. 평범하게 걸으면 두 시진 정도면 도달할 거리를 하루에 걸쳐서 걸었다.
닷새 동안 걸었어도 하루거리도 안 된다.
어림짐작으로 개방 총단이 있는 개봉부 부근이 아닌가 싶다.
마야는 마인들만 다니는 길 없는 길만 택해서 걸었다.
다른 때와 달라진 건 없었다. 헌데 정오쯤 되었을까? 마야의 행동이 굉장히 조심스러워졌다. 걸음을 떼어놓을 때도 젖은 창호지 위를 걷는 것처럼 온 신경을 기울였다.
“여기가 어디예요?”
다담선자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앞을 주시했다.
별로 주의할 건 없었다. 초가(草家)가 십여 호쯤 되는 산골 마을이 있기는 한데, 특별히 주의할 건 없어 보였다.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여태껏 수백 번도 더 지나친 어느 마을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독룡. 독을 쓸 수 있을까?”
이제 산골 마을은 더 이상 평범한 마을이 아니다. 특별히 주의해야 할 마을이 되었다.
“뭐? 후후! 새삼스럽게 왜 이래? 이럴 때 써먹으려고 질질 끌고 다닌 것 아냐? 어디다? 저기다?”
사천제일룡이 산골 마을 가리켰다.
“저 마을은 위장이야. 정작 중요한 건 마을 밑에 있어. 상당히 넓지. 저 마을보다 대여섯 배는 클 거야. 내가 아는 건 이것뿐이야. 마을에 몇 명이나 있는지, 지하로 어떻게 들어가는지 아무 것도 몰라. 그러니 살상하지 말고 혼절만 시켜줘. 아주 은밀히. 보초에게 이상이 생기면 즉각 지하에 경고를 울리게끔 되어있는……”
“저, 저게 실존했다니!”
사천제일룡은 경악했다. 너무 놀라 방금 전에 마야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잊어버렸다. 아니, 듣지도 못했다. 그의 눈과 머리는 온통 산골 마을에 집중되어 있었다.
“알아보았군.”
“알아보다마다. 알아보다마다. 십충반악진(十衝反握陣). 십충반악진. 십충반악진……”
사천당문은 독과 암기로 유명하지만 기관진식 또한 중원 제일이다.
사천제일룡이 기진(奇陣)을 알아보는 건 당연하다. 마야가 알아보는 것보다 그가 먼저 알아봤어야 한다.
“저게 십충반악진이예요?”
다담선자도 놀라서 쳐다봤다.
대답을 듣고자 물은 게 아니다. 다담선자 역시 너무 놀라서 되물은 것이다.
각 초가는 무작위로 세워졌다. 산골 마을을 보며 어떤 질서나 규칙을 찾기는 어렵다. 아무 곳에나 기분 내키는 대로 집을 지어 반듯한 골목을 찾아 볼 수 없다.
밖에서 봤을 때 그렇다.
마을 안에서 보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한 집을 네 집이 경호한다. 각기 엇갈려서 한 집을 네 집이 본다. 그렇게 열 집이 서로를 주시한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복잡한데 더 복잡한 구도가 있다.
각 초가는 네 집을 보는 이외에 다른 한 곳을 더 주시한다.
바깥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들길, 논, 밭…… 주어진 방향을 주시한다. 열 집이 사방 열 곳을 보며, 주시하는 각이 서로 겹쳐서 삼십육 방을 모두 본다.
한 마디로 은밀히 잠입하기 위해서는 열 집을 한꺼번에 폭삭 주저앉혀야 한다.
헌데 그것도 문제가 있다.
땅위에 세워진 초가 열 집은 말 그대로 보초들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지하에 숨겨져 있으며, 보초 하나가 당하면 즉시 경계령이 발동된다.
십충반악진은 잠입을 불허하는 철통같은 방어진이다.
“어때? 가능하겠어?”
“곤란하게 됐군.
천하의 사천제일룡이 난감해 했다.
십충반악진의 경이로운 점은 초가 열 개의 간격에 있다.
현존하는 어떤 화약이나 독 또는 암기도 열 집을 한꺼번에 무너트릴 수 없다.
“죽이는 것도 안 되고, 혼절만 시켜야 된다 이거지. 십충반악진을 상대로…… 독을 쓴다. 후후후! 독마(毒魔)와 천진(天陣)의 대결이라. 후후후! 주어진 시간은?”
“얼마든지 써. 남는 게 시간이니까.”
“지금부터 말 걸지 마. 숨소리도 내지 말고.”
사천제일룡은 활활 타는 눈으로 산골 마을을 노려보았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거예요?”
“독룡은 해낼 거야.”
“방법이 있군요?”
“십충반악진의 곡로(曲路)에 해답이 있어. 바람도 십충반악진을 통과할 때는 휘어가. 여기에 주안점을 두고 하독하는 거야. 여기서 하독하면 신방(申方:서남서)이 제일 먼저 닿겠군. 반 시진 후에 쓰러지게끔 미독(微毒)을 쓰고, 재빨리 이동하여 저쪽 능선에서 하독하면 인방(寅方:동남동)이 닿을 거야. 여기서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해서 중독(中毒)을 쓰면 이다경 후에 쓰러지겠지. 인방을 노린 독은 신방을 거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이렇게 네 군데만 점하면 일시에 쓰러트릴 수 있어.”
“세상에! 잊을만하면 일견후즉파를 생각나게 만드네요.”
다담선자는 감탄을 토해냈을 뿐, 사천제일룡에게 달려가지 않았다.
독룡은 아직 숙제를 못 풀었다. 십충반악진을 노려보며 끙끙댄다. 하지만 말해줄 수 없다. 독, 암기, 기관진식에 있어서만은 천하제일이라고 자부하는 사천당문의 긍지를 세워주어야 한다. 그것이 마야가 원하는 것이란 걸 안다.
다담선자는 움직이는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저기가 어디에요?”
“개방.”
“개방요? 저기가요?”
“낙서고(落書庫)라고 들어봤어?”
“낙서고요?”
다담선자는 말을 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촌로(村老)들이나 살 초가에 개방도가 있다는 것도 기문이다. 개방도가 번듯한 집을 가졌다니. 낙서고라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짐작컨대 서고(書庫)인 모양인데, 개방과 서고가 어울리기나 하나.
“낙서고가 뭐하는……”
다담선자는 말하다 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사천제일룡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앉은 자리에서 한참을 꿈지럭거리더니 벌떡 일어나 치달렸다.
눈길이 자연스럽게 사천제일룡을 쫓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마야는 네 군데만 점하면 십충반악진을 무너트릴 수 있다고 했다.
사천제일룡은 한 군데를 더 점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셈을 잘못했다. 마야가 틀렸다면 다행이지만 사천제일룡이 틀려서 과수(過手)를 둔 것이라면 몇몇 초가가 예상보다 빨리 무너질 수 있다.
이것도 사천제일룡이나 되니 과감히 손을 쓴 것이지 다른 사람 같으면 엄두도 내지 못했으리라.
바깥에서는 초가 안의 사정을 전혀 알 수 없다. 몇 명이나 있는지, 누가 있는지, 내공은 어느 정도인지…… 중독에 필요한 기본 사항들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하독을 한다는 건 큰 모험이다.
하독을 끝낸 사천제일룡이 달려왔다.
“끝났어. 바람 세기로 봐서…… 반각 정도만 기다리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