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38
338
“후후! 해낼 줄 알았어.”
마야는 사천제일룡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생각대로라면 산골 마을은 텅 비어있어야 한다. 숨이 붙어있는 것은 모조리 깊은 잠에 취해 있어야 한다. 사람을 노리고 뿌린 독이지만 개나 닭, 오리 같은 집짐승들에게도 영향이 미치니 마을 전체가 공동묘지처럼 음산하고 적막해야 한다.
마야는 더욱 조심스럽게 걸었다.
한 발 떼어놓고 한참을 두리번거린 다음 또 한 발을 내딛었다.
“너무 조심하는 것 아녜요?”
“마을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이 오가는 것 봤어?”
“아! 그러고 보니……”
“아마 곳곳에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 거야. 위험을 가하는 함정이 아니라 지하 사람들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겠지. 뭐든 의심나는 것은 건드리지 마. 돌 하나도.”
다담선자는 뒤를 돌아봤다.
제일 염려되는 건 콘과 수다.
그들은 이지가 없다. 생각을 할 줄 모른다. 무조건 뒤만 쫓아온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의’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마야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무엇인가 있다. 움직이면 안 된다.
마야는 조심스럽게 허리를 숙인 후, 손으로 땅을 살살 훑어냈다.
무엇인가 나오는 것 같다.
조금 더 땅을 훑자 동아줄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땅에다 동아줄을 매설해 놓은 것이다.
“부토(腐土)?”
사천제일룡이 마야 옆으로 다가가 땅을 살폈다.
동아줄이 매설되어 있는 땅은 다른 곳에 비해 색깔이 조금 옅었다. 물론 차이라고 해봐야 자세히 관찰했을 때야 드러날 정도로 미미한 것이다.
손으로 만져보면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땅이 아니라 솜을 만지는 것처럼 푸석거렸다. 허공에 대고 입으로 불면 솜털처럼 날아갈 것 같았다.
“개방을 다시 봐야겠는데. 부토는 무척 가벼워서 그냥 깔아놓기만 하면 바람에 흩어져버려. 그래서 흙과 배합하는데…… 조금만 잘못해도 기대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동아줄을 밟으면 안 된다. 밟는 순간 부토가 푹 꺼지며 동아줄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그 끝에는 불문가지, 경종 같은 것이 매달려 있으리라.
“눈에 보이는 화살은 피할 수 있는 법이지. 알았으니 됐어.”
마야는 땅을 살피며 걸었다.
초옥에는 남여가 널브러져 있었다.
각 초옥마다 남여 한 쌍이 거주한 듯하다.
차를 마시다가 독에 당한 듯, 탁자에 놓인 찻잔에는 아직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남여의 나이는 마흔을 갓 넘은 것 같다. 손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고, 머리는 혹 투성이다. 목숨을 내놓고 실전 수련을 통해 타구봉을 연마한 흔적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허리춤에는 타구봉이 꽂혀있다. 집안 곳곳에도 타구봉이 여러 개 발견되었다. 마루에도, 부엌에도, 침상에도…… 언제 어디서든 손만 뻗으면 타구봉을 짚을 수 있게끔 만반의 준비가 갖춰져 있다.
놀라운 것은 두 남녀의 반응이다.
쓰러지기 직전에 이상한 기미를 눈치 챘는지, 타구봉을 잡아채고 있었다. 타구봉을 꽉 잡은 손에 집착이 남아있다. 혼절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한 흔적이 보인다.
그 외에는 이상한 점이 없다.
개방도처럼 누더기를 걸치지도 않았다. 부엌에는 각종 야채가 그득하다. 항아리에는 쌀도 하나 가득 담겨 있다.
개방도가 걸인 생활을 하지 않고 정착 생활을 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여자 개방도가 없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서처럼 십여 명씩이나 한꺼번에 모여 있던 적도 없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찾았다.
온 마을을 이 잡듯 뒤지며 기관 장치가 있는지, 통로가 있는지 살폈다.
놀랍게도 마야 일행은 아무 것도 발견해내지 못했다.
사천제일룡의 해박한 지식은 아무 가치가 없었다. 마야의 심안(心眼)도 단단한 흙을 뚫지 못했다.
“가아아아……”
마야는 마령음을 토해냈다.
박쥐는 음파로 사물을 구별한다. 쏟아낸 음파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으로 거리를 계산해 내고, 음파가 얼마나 넓게 퍼졌는지로 크기를 알아낸다. 음파의 변형으로는 온기(溫氣)를 감지해내고, 모든 것을 종합하여 먹이 여부를 판별한다.
마야는 집안 곳곳에 마령음을 쏘아냈다.
집안에서 아무런 느낌을 얻지 못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어때요?”
물을 것도 없다. 마야의 얼굴에서 무엇을 발견했을 때의 밝음이 보이지 않는다.
마야는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미간을 만지며 고민했다.
“어때요?”
이번에는 사천제일룡에게 물었다.
진법에 관해서만은 마야와 비등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사천제일룡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진법을 알고, 건축을 아는 그가 지하로 통하는 입구 하나 발견해내지 못했다.
다담선자도 개방을 다시 봤다. 이런 곳이 있다는 자체로 개방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수!”
마야가 수를 불렀다.
다담선자는 깜짝 놀라 마야를 쳐다봤다. 사천제일룡도 급히 마야를 쳐다봤는데,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수는 감각도, 이성도 없는 목석처럼 뚜벅뚜벅 걸어왔다.
“마야, 안 돼요. 이건…… 수를 쓰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벌어져요. 마야도 마찬가지에요. 강을 건널 수는 있지만 돌아올 수는 없어요. 수를 쓰는 것만은……”
“방법이 없어.”
다담선자는 짤막한 한 마디에 입을 다물었다.
마야의 심정을 읽을 수 있다.
근래 들어 마야는 무척 조급해 한다.
아마도 개방이 유계 공격에 실패한 후부터다. 그때부터 생각이 깊어지고 번민이 늘어났다. 지금 여타의 방법을 고려치 않고, 더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대뜸 수를 쓰겠다는 것은 조급함의 절정이다.
마야는 사천제일룡을 쳐다봤다.
“휴우! 정말 수를 쓸 거야?”
“……”
“자기 것 자기가 쓰겠다는데 누가 뭐라나. 마음대로 해. 이놈 이거 꽤 근사하게 죽겠군. 정혈(精血)을 끝없이 쏟아내며 죽는 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죽음이야.”
사천제일룡은 손가락을 툭 튕겼다.
잠시 후, 초옥 안에 있던 일남일녀가 혼절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사내는 머리가 아픈지 손을 들어 머리를 짚었고, 여인은 목이 뻐근한지 머리를 휘휘 내둘렀다.
“난 나가 있을게. 나도 수 앞에서는 한낱 수컷이라.”
사천제일룡이 밖으로 나갔다.
다담선자도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벙긋거리다 가벼운 한숨만 내쉬며 나갔다.
‘알아. 하지만 할 수 없어. 여기서도 해답을 못 찾으면 차라리 무림과 단절하고 은거하는 게 나아.’
세상은 혼란스러웠다.
머리를 정리하고 또 정리해도 두서가 잡히지 않았다.
이대로 간다면 죽음이 확실시된다. 두려운 건 아니지만 개죽음을 당할 필요는 없다.
돌아가는 사정을 살펴보면 혈귀대주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 듯하다. 잔접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스스로 죽었다. 궁왕이 활을 쏘았지만 자진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면에서 궁왕도 혈귀대주와 연관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궁왕 같은 자가 장강을 넘어 단문협에까지 올 리가 없다. 그토록 경거망동할 수는 없다.
잔접, 혈귀대주, 궁왕은 하나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자신을 끌어냈는가? 자신이 무슨 역할을 한 건가? 무엇을 원하는가?
모르겠다. 도무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는 영문도 모른 체 유계와 북검문, 남도문의 정예들을 맞이해야 한다. 무신이 직접 나설 수도 있다. 삼원로와는 이미 손을 섞어봤으니 또 다시 죽이러 나타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대로 질질 끌려갈 수는 없다.
다소 인성을 잃는 한이 있어도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곳, 이곳에서 머릿속을 정리해야 한다.
“수!”
수를 불렀다.
말에는 감정이 담겨 있다. 명령이 들어있다.
사르륵……! 사륵……!
수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백옥같이 매끄러운 어깨선이 드러난다. 우윳빛처럼 뽀얀 살결이 수줍은 듯 배꼼 고개를 쳐든다.
“웃! 너흰……!”
“저, 적!”
방금 혼절에서 깨어난 두 남녀는 화들짝 놀라 일어섰지만 수를 본 순간 머릿속이 텅 빈 목석이 되고 말았다.
“아아…… 아아……!”
입으로 신음이 토해진다. 눈은 광채를 잃고 몽롱해지며, 뜨거운 열기가 몰려 빨개진다.
‘용서를……’
마야는 수의 등 뒤로 돌아가 독맥(督脈) 중 신주혈(身柱穴), 영대혈(靈臺穴), 명문혈(命門穴)을 연달아 가격했다. 신주혈은 오푼의 힘으로, 영대혈은 삼푼으로, 명문혈은 칠푼을 사용하여 송곳을 틀어박듯 쑤셔넣었다.
“칵!”
수가 악을 쓰듯 비명을 토해냈다.
파아아아……!
전해진다. 느껴진다. 전율이 치민다.
온 방안이 수의 요염함으로 가득 찼다. 공기 속에 베여있는 건 달콤한 욕정의 향연(香煙)이다.
“하악!”
두 남녀가 거친 비음을 쏟아내며 정신없이 달려와 수를 껴안았다.
사내는 수의 귓볼을 핥았다. 여인은 입술을 빨아들였다. 손으로는 가슴을 더듬었다.
그들에게는 이성(異性)과 동성(同姓)의 구분이 없었다. 그 순간,
“갈(喝)! 정신 차리지 못할까! 이까짓 것으로 임무를 망각했느냐! 낙서고를 지켜야 하느니! 낙서고로 들어가야 하느니! 빨리 움직이지 못할까!”
벽력같은 고함이 두 남녀의 고막을 후려쳤다.
적멸주다.
소리는 단순한 고함 이상이다. 음파는 피부를 자극하고, 자극은 뇌리로 전해져 공포와 두려움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낸다.
두 남녀는 화들짝 놀라 물러섰다.
흐리멍덩함과 경악이 반복적으로 교차되었다.
발길은 부엌으로 향하려 하지만 눈길은 수에게 머물러 떨어지지 않는다.
“수!”
손가락으로 부엌을 가리켰다.
수가 사뿐사뿐 걸었다.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완벽한 나신에서는 농익은 육향이 물씬 풍겼다. 십이성에 이른 구혼음태가 욕정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크윽!”
두 남녀는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수는 걷는다. 두 남녀도 질질 끌려간다. 입술을 빨고, 가슴을 만지고, 비소(秘所)를 더듬으며 걷는다.
“갈!”
다시 한 번 적멸주가 천둥처럼 터졌다.
두 남녀는 깜짝 놀라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허나 수에 대한 미련 또한 놓지 못했다. 아궁이 속과 수에 대한 갈망 사이에서 갈등했고, 수를 선택하고 말았다.
‘저곳…… 이라니!’
마야는 아궁이 속을 들여다보며 피식 웃었다.
정말 기발한 발상이지 않은가. 아궁이 속에 비밀통로를 만들어 놓았으니 어떻게 발견하랴.
불 꺼진 아궁이가 아니다. 아직도 장작이 활활 타고 있는 불붙은 아궁이다. 아마도 일 년 열 두 달 동안 한시도 꺼진 적이 없으리라. 쉬지 않고 타고 또 탈 것이다.
두 남녀 중에 한 명은 사주경계를 하고, 다른 한 명은 불길을 죽이지 않는데 온 정신을 집중할 것이다.
유사시, 아궁이를 맡은 사람은 불길 속에 손을 집어넣어 쇠고리를 당긴다.
엄청난 극통이 치밀 것이다.
이들은 극통과 공포를 이겨내도록 훈련받았다. 그런 즉, 신호를 전달한 즉시 목숨마저 끊었을 가능성이 높다.
두 남녀는 알몸이 되었다. 수와 한 덩이가 되어 뒹굴었다. 수의 육신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는지 내기라도 하는 듯 치열하게 사랑했다.
‘미안하지만……’
마야는 손을 들어올렸다.
두 남녀의 머릿속은 마구 뒤엉켰다. 수를 떼어내도, 마령음을 토해내 제 정신을 일깨워도 정상적인 인간으로 돌아오지는 못한다. 그래서 다담선자가 그토록 이것만은 안 된다고 했던 게다.
구혼음태는 정혈이 고갈되어 죽을 때까지 욕정을 이끌어내는 마물이다.
차라리 살수를 쓰는 게 저들에게는 편한 죽음이리라.
그때, 마야조차도 깜짝 놀란 일이 벌어졌다.
쒜에엑!
어느 틈에 날아왔는가, 어느 틈에 손을 썼는가!
알몸이 되어 구혼음태를 발산하고 있는 수 앞에 한 사내가 섰다.
그는 손에 짧은 단도를 들었다. 두 남녀의 백회혈(百會穴)을 찔러 즉사시켰다. 그리고 영원을 기약하는 눈으로 수를 쳐다본다.
“수……!”
“콘……!”
사내는 수를 불렀고, 수는 콘을 불렀다.
그들의 욕정은 아궁이 속의 불길이 무색할 만큼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2
마야는 아궁이에서 불을 빼내는 대신 장작을 더 집어넣었다.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기관장치가 눈에 보인다고 해도 손을 집어넣는 건 어림없었다.
“참으로 지독한 놈들일세.”
사천제일룡이 혀를 찼다.
출입구는 애당초 없었다. 죽은 두 남녀는 지하로 내려갈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들이 아는 거라고는 불구덩이 속에 손을 집어넣어 쇠고리를 당기는 것뿐이었다.
쇠고리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누군가가 잡아당기면 연결된 줄을 통해 경종이 울린다.
또 하나의 역할은 온도에 있다. 빨갛게 달궈진 쇠가 식을 경우, 변고가 발생한 것으로 간주하여 경종을 울린다.
지상과 지하가 완벽하게 분리되었다.
지상에 있는 사람은 지하로 내려가지 못하며, 지하에 있는 사람도 올라오지 못한다. 쇠고리에 연결된 경종만이 그들을 연결해 준다.
같은 문도끼리, 같은 곳에서 폐쇄된 생활을 하는 사람끼리 서로 얼굴도 모른다는 게 지독하지 않은가. 어쩌면 이토록 철저히 희생만을 강요할 수 있으며, 또 고독하고 지독한 임무를 순순히 받아들인 사람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장작을 다 집어넣고 오긴 했지만 오래 가진 않을 거예요. 빨리 방책을 강구해야겠어요.”
다담선자가 부엌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열 집 중 어느 한 집도 빠져서는 안 된다. 모든 아궁이에 불길이 활활 타올라야 한다. 쉽게 오가지도 못한다. 땅에 매설된 동아줄을 피해 다녀야 한다. 실수로 건드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만사휴의(萬事休矣)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