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42
342
“가아아아아……”
인간의 귀로는 감지하지 못하는 극저음이 새어나왔다.
진기운용이 힘들어질 것이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진기가 아무런 이유 없이 미약해지리라.
쒜에엑……!
검이 날아왔다. 여전히 빠른 검이지만 눈에 보인다.
마야는 처음과 똑 같은 수를 전개했다. 상반신을 반쯤 틀어 젖히며 우수를 내밀었다.
파앗! 푸욱!
처음처럼 검이 옷섶을 그으며 지나갔다.
다른 점도 있다. 칠신녀가 스쳐 지나지 못하고 푹 꼬꾸라졌다.
그녀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이는 분명히 마야의 실수다. 예상보다 빠른 검공에 잠시 흔들렸다. 해서 운집된 진기를 고스란히 쏟아냈고 관수가 살을 뚫고 들어가 단전을 파괴해버렸다.
즉사다.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는 보장만 있었어도 물러섰으리라. 허나 무인들의 싸움에 다음 기회란 없다. 마령음을 눈치 채지 못했으니 당한 것이지 다음에는 이리 쉽게 기회를 잡지 못했으리라.
북검문에 대해 알고 싶었는데,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북검문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두 사람이 죽고 말았다.
쉬익! 쉬이익……!
가벼운 경풍과 함께 이남이녀가 내려섰다.
다담선자와 사천제일룡, 그리고 콘과 수다.
마야가 칠신녀를 쫓는 동안 그들은 새로운 무인들의 수장(首長)을 노렸다.
하나라도 건질 수 있다면……
다담선자가 칠신녀의 시신을 힐끔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는 뜻이다. 사천제일룡도 고개를 저었다. 괜한 사람만 죽인 셈이다.
마야는 잠시 생각했다.
“마야, 여기서 나가야……”
다담선자가 마야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그때,
“수!”
마야가 수를 향해 버럭 고함질렀다.
수가 고개를 쳐들었다.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이런!”
놀란 사람은 사천제일룡이다. 그는 수의 구혼음태가 두려운지 화들짝 놀라 물러섰다.
“콘!”
이번에는 콘에게 고함질렀다.
콘의 입가에 살소(殺笑)가 그려졌다. 그의 검은 더 빨라서 어느새 몸통을 내리찍고 있었다.
“타앗!”
팡! 파팡!
마야는 우렁찬 고함과 함께 일장일권(一掌一拳)을 뻗어냈다.
콘과 수의 몸뚱이가 뒤뚱뒤뚱 물러나더니 둔탁한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그들은 곧 벌떡 일어섰다.
“그만!”
마야의 일갈에 두 사람은 즉시 평정을 되찾았다. 백치의 세계, 망각의 세계로.
“역시……”
마야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콘과 수…… 멸신구관의 석상무공, 육신녀 서군봉을 통해 전수된 구혼음태…… 북천신검의 천광일섬에 대응해서 만들어진 무공이야. 우연히 전해진 게 아니라 치밀한 안배 아래 전수된 거야. 나에게.”
천지가 깜짝 놀랄 소리였다.
제7장 이오안(二五眼) ― 사람의 능력이 모자라다
1
수검은 하오문주를 만났다.
그가 맡은 밀명은 하오문주의 전폭적인 도움이다.
밀명이 단지 그뿐이라면 밀명 축에도 끼지 못한다. 아주 단순한 전갈에 불과하다.
하오문을 혼란에서 건져주고, 그와 건곤사괴의 목숨까지 구해주었다. 꼭 그런 빚이 없다고 해도 마야의 일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도와줄 사람이 하오문주다.
마야의 밀지에는 정확히 하오문주를 찾아 상일문(上一門)을 얻으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었다.
상일문? 상일문이 뭐지? 무림에 그런 문파가 있었나?
상일문에 대한 궁금증이 없었다면 절대 나서지 않았을 게다.
‘위 상(上)’으로 미루어보면 하오문의 반대 개념인 것 같은데, 하오문과 대치되는 문파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마야는 상일문만 얻으면 천하를 굽어본다고 했다.
도대체 상일문이 무엇이기에 마야가 그토록 극찬한단 말인가.
수검은 한달음에 하오문주의 비밀 은거지를 찾아왔고, 그와 대면했다. 그리고 용건을 말했다.
“상일문? 그런 문파도 있었나? 마야가 잘못 안 것 아닌가? 난 처음 듣는데……”
하오문주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흔쾌히 승낙하거나, 아니면 고심하거나…… 헌데 아예 부인하고 있지 않은가.
“문주!”
“마야는 잘 있는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문주!”
“어허! 이 사람, 귀청 떨어지겠네.”
“마야에게 이러실 수 있소!”
“뭐가 이러고 저래? 상일문이라는 문파를 들어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난생 처음 듣는 문파를 들먹이며 주라 말라 하면 뭐라고 말하나?”
하오문주는 진심을 말하는 듯 보였다.
믿지 않는다. 마야의 말은 천명(天命)이나 다름없다. 하늘이 거짓을 말할까. 하오문주를 지목했다면 분명히 하오문주에게 답이 있다.
“문주.”
“허어! 이 사람 난 정말 모른다니까.”
“내게 마야는 벗이자 주인이오.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 분은 마궁의 궁주이고, 난 궁도요.”
“말하려는 게 뭔가?”
하오문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 분이 명했소. 상일문을 얻으라고. 난 얻어야 하오.”
“그건 이미 몇 번을 말했지만……”
수검은 손을 들어 하오문주를 제지하며 말했다.
“얻지 못하면 난 궁도로써 자격이 없소. 해서 이 일에 관계된 모두를 죽일 심산이오. 문주, 날 막으시오. 첫 검은 문주를 향할 것이오. 아니, 문주를 보호하는 울타리부터 쳐야겠군. 건곤사괴와 나와의 싸움이 벌어질 거요. 다음은 문주가 되겠고. 문주마저 날 막지 못하면 이후에 하오문은 대살성을 만나게 될 것이오. 내 목숨이 붙어있는 한, 하오문도는 이 땅에 얼굴을 내놓고 살지 못할 것이오.”
“협박인가!”
“협박 같은 건 할 줄 모르는 사람이오. 할 필요도 없었고. 내가 말한 건 진실이오.”
“상일문을 알지 못한다는데도……”
“마야의 뜻을 전했소. 알지 못한다면 찾아내시오.”
하오문주는 내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로 처음 만난 사람처럼 아무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눈길로 담담히 쳐다보았다.
“수검, 꽤 자신 있나 보군.”
“검이라면.”
“난 자네가 건곤사괴도 뚫지 못할 것으로 보네만.”
수검은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아버렸다. 자신은 할 말을 다했으니 받아들이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는 소리였다.
“마야도 참 안타깝군. 겨우 수검 따위로 상일문을 얻겠다는 생각을 했다니.”
‘겨우?’
수검은 눈을 떴다. 가만히 있고자 하나 눈썹을 꿈틀거린다. 자신에게 ‘겨우’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데, 그 중에 하오문주가 있을 줄은 몰랐다.
밀지 마지막 구절이 떠오른다.
상일문을 얻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가능성이 십중팔구라고. 무신도 상일문만은 얻지 않으려고 한다고.
그 말이 맞았다.
상일문이 도대체 어떤 곳인가? 어떤 곳이기에 무신마저 죽음을 생각할 정도인가.
‘겨우’라는 말을 붙여도 상관없다.
“상일문을 알고 있소?”
“검부터 보자.”
“……?”
“건곤사괴! 수검의 사흡검법은 일명 무적검이라고도 불린다. 십분 신중히 상대하라!”
당황한 사람은 수검이었다. 하오문주가 진짜 싸울 생각인 줄은 몰랐다.
“문주! 내 검은 살검이오!”
수검의 말은 필요없었다.
이미 건곤사괴가 나타났다. 그들은 정중히, 아주 정중히 하오문주를 향해 포권지례를 취했다.
“문주님, 만수무강하십시오.”
“만수무강은…… 이제 죽을 날이 내일 모렌데. 먼저들 가있게. 내 곧 따라감세.”
“내세에 인연이 또 된다면 다시 한 번 문주님을 보필하고 싶습니다. 좋은 분 만나 한 세상 잘 살다 갑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우이. 잘 가시게.”
수검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이들의 대화는 이별이다. 죽음의 예고다.
하오문과는 이럴 사이가 아니다. 하오문주와 마야의 관계만 보더라도 결코 칼부림을 할 사이는 아니다. 건곤사괴만 하더라도 서로 웃고 떠들던 때가 엊그제다.
이들을 동료로 생각했지 적으로 생각한 적은 없다.
헌데 이들은 싸우고자 한다. 상일문이, 상일문이 무엇이건데.
창! 차앙……!
검이 뽑혔다.
건곤사괴를 동서남북 사방을 점했다.
“이해하시오. 일 대 일의 승부는 무리라고 생각되니 합공을 펼쳐야겠소.”
“정말 싸울 생각이오?”
“조심하시오. 마야가 전수해준 십비지공이 우리 건곤사괴에게도 흘러들었으니.”
정말 싸울 생각이다. 그것도 목숨을 걸고 단 일합의 승부를 걸고자 한다.
이런 싸움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파팟! 쒜에엑! 철컥! 철컥……!
검곤사괴의 검은 굉장히 부드러웠다. 거의 직각으로 꺾이는 검도 물이 흘러내리듯 급함이 없었다.
그들은 합공의 대가였다. 동서가 공격하면 남북이 방어를 해주었고, 북동이 공격하면 남서가 방어를 맡았다. 둘은 공격하고 둘은 방어했다. 하지만 누가 공격하는지, 어느 쪽이 방어를 맡았는지 실제로 검이 터져나오기 전에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수검은 무려 사십팔 검이나 쏟아냈다.
열두 번의 공방이 지나갔다는 소리다.
수검의 사흡검법은 무척 빨라서 건곤사괴가 일합을 쳐내는 동안 사검(四劍)을 쏟아낼 수 있었다.
분명히 검속으로 따지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지만 합공의 묘리가 지극히 심오하여 평형상태를 맞춰놓았다.
“쯧!”
혀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에서 관전하던 하오문주가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쒜엑! 쒜에엑……!
검이 다가온다. 물 흐르듯 부드럽게 쏟아진다. 좌우의 검, 남북의 검은 거침없이 흐른다. 앞뒤, 동서의 검은 사방을 차단한다. 공격과 방어를 읽었다.
‘승부!’
창! 쒜엑! 창! 쒜엑……!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와 검광을 뿌린 후, 다시 검집으로 들어가길 네 번 반복했다.
“뭐해!”
수검은 하오문주의 일갈에 얼떨떨해졌다.
건곤사괴를 죽였으니 이제 하오문과의 결전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상일문이라는 것도 얻기는 틀린 노릇이고……
마음이 참담한데 하오문주는 삽을 들라고 재촉한다.
“빌어먹을 놈! 죽일 땐 죽이더라도 묻어는 줘야 할 것 아냐. 그래, 그동안의 정리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
수검은 검대신 삽을 잡았다. 그리고 묵묵히 땅을 팠다.
“상일문이 열리면 어떤 일을 당하는지 들었지?”
하오문주가 건곤사괴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무신도 얻기 싫어한다는 것만 알고 있소.”
“그게…… 꼭 그렇게 말할 것만은 아냐. 얻기 싫어한다는 표현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데, 무신의 경우에는 무서워서가 아니라 지저분해서 얻기 싫은 걸 거야.”
‘지저분?’
“하오문…… 휴우! 하오문에서 얻어 들인 정보는 전부 길거리 정보일세. 정통 정보가 아니라 오고가며 흘린 소문들을 주워 모으는 정도지. 일장일단이 있어. 이런 소문이 어떤 때는 정통 정보보다도 신빙성이 높아. 떠돌이들 일은 떠돌이들이 가장 잘 알거든.”
수검은 무덤을 판 후, 건곤사괴의 시신을 끌어내렸다.
“가만…… 마지막 가는 길이니 술 한 잔 줌세. 자, 수고들 했네. 잘들 마시고 가게나.”
하오문주는 건곤사괴의 시신에 술을 뿌렸다.
“됐어. 덮어줘.”
수검은 흙을 덮기 시작했다. 하오문주의 이야기도 이어졌다.
“우린 정통정보를 갈망했어. 소위 말하는 고급 정보. 고관대작(高官大爵)들 밖에 모르는 정보. 장로 이상만 알고 있는, 혹은 장문인 밖에 모르는…… 그런 정보를 얻기 위해 백여 년을 소비했네.”
‘상일문!’
“그들은 세상 곳곳에 퍼져있다네. 후후!”
상일문과 하오문은 하나다. 하오문에서 비밀리에 만들어 떼어놓은 게 상일문이다. 헌데 뭔가? 하오문주의 음성에 자조(自嘲)가 담겨있다. 회의(懷疑)라고 할까?
“처음에는 활발하게 활동했지. 귀중한 정보도 속속 들어오고. 헌데 원래 밀작(密雀)이란 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아닌가. 문주의 부인이 된 여자도 있고, 대문파에 기명제자가 되기도 했는데…… 하나 둘 신분이 드러나 처형당하기 시작했지. 그건 그래도 괜찮아. 좋은 신분을 얻은 자들 가운데 변절자가 나오기 시작한 거야. 그들은 하오문 출신이란 게 밝혀지기를 꺼려했어. 자네 같으면 어찌했겠나?”
아는 사람은 모두 죽인다. 자신이 죽이기 곤란하면 다른 사람을 시킨다. 차도살인(借刀殺人), 무림 문파에 터전을 다졌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방법이다.
“지금은 완전히 잊혔어. 하오문에서 상일문을 아는 사람도 없고, 그들도 하오문은 새까맣게 잊었고. 일대(一代)는 다 죽었고, 이대나 삼대가 조금 살아있는데…… 그 자들 나이가 예순은 훌쩍 넘었을 게야.”
수검은 혼란스러웠다.
상일문의 실체가 그것뿐인가? 그럼 아무 가치가 없는 것 아닌가.
“마야는 그들을 협박해서 정보를 캐내라는 것인데, 가능하겠나?”
“제가 알 만한 사람 한 명만 말해주시면……”
상일문의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 마야가 왜 이런 일을 시켰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미 뿌리가 끊긴 조직인데 다시 캐내서 무얼 하자는 건가.
“예를 들어주기엔 소림사가 낫겠지?”
“소림사에도?”
“천불전주(千佛殿主) 지광(知光) 대사(大師). 이제는 말할 수 있겠나? 자네 같으면 어찌할 건지?”
“지, 지광…… 대사!”
수검은 깜짝 놀랐다.
지광대사가 하오문 출신이란 말인가? 소림사에 위장 입문하여 하오문에 정보를 빼돌려? 그러다 신분이 상승하고, 소림 무공에 익숙해지면서 하오문이 거치적거렸겠지. 하오문에서 얻는 것보다 소림사에서 얻는 게 훨씬 컸을 테니까.
지금에 와서 옛날 일을 들춘다면 어찌할까? 하오문에 협조하는 것보다 얼토당토않은 누명을 씌워 제거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아주 큰 도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