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45
345
곡부인도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
적멸주와 환희마소를 접하는 순간 마야에 대해서 오만 정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가까이 두고 싶은 젊은이였다. 헌데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악마가 되고 말았다.
“흠……!”
곡부인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오문주에게 십비지공을 만들어 준 적이 있다.
최강의 도곤(賭棍)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구비해야 할까? 많은 요소가 있지만 마야는 독심술을 가장 앞에 두었다.
눈빛이 미미한 변화, 입술이 떨림, 콧김의 세기……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반응을 정확히 읽어낼 수 있다면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다.
마야는 곡부인에게 적멸주를 쏘아냈다. 환희마소도 펼쳤다.
그것으로 공포심을 유발시켜 이성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머릿속을 읽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런 건 없다. 인간이 어떻게 남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걸 읽으랴.
느낌은 가질 수 있다. 직감을 따르든 본능을 쫓든 자신이 요구하는 게 상대에게 있다 없다는 구분할 수 있지만 서적을 읽듯이 읽어낼 수는 없다.
마야가 쓴 건 단순한 독심술이다.
곡부인은 잔접과 연락망을 유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녀는 잔접 회동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양소저가 마음에 걸려요. 그녀의 영매술은……”
양리완을 일컫는 말이다.
“영매술이란 기의 흐름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읽을 수 없는 법이지. 그때 난 강한 기파를 흘렸으니, 잔접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받아들일 거야. 양소저가 없다면 불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나온 후 다시 한 번 확인 절차를 거쳤을 테니…… 조만간 잔접 회동이 있을 거야.”
마야는 확신했다.
***
궁왕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삼원로는 자신들이 직접 나서기 전에 많은 무인을 동원했다.
공격이나 추적보다는 행동을 둔화시키기 위한 조처다. 말을 타고 빨리 달릴 수도 없고, 일일이 싸우면서 나아갈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궁왕의 발길을 더디게 만든 후, 최적의 지형에서 완벽하게 잡겠다는 삼원로의 생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발길이 많이 무뎌진 것은 아니다.
무신, 천하제일 궁사라는 위명은 섣불리 다가설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마야는 배를 탔어요.”
일령이 말했다.
그녀는 궁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해 했다.
천멸도주를 납치했다고 들었다. 금연화가 그의 아들을 죽이기도 했다. 또 한 자식은 콘이 되어 마야에게 부림을 받고 있다.
분명히 적이다. 천멸도주가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깍듯이 대하지만 않았어도 그와 말을 섞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게다.
궁왕을 어떻게 대해야 좋은가.
“배…… 좋지.”
궁왕이 찬성했다.
“어디로 갈 건데요?”
일령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도 궁왕은 즉시 말했다.
“제이성. 마도의 보금자리. 복우산으로 가야겠지.”
“안 돼요!”
“……?”
“그곳은 우리만 갈 수 있는 곳이에요.”
“허허!”
궁왕은 웃었다.
일령은 궁왕의 도움이 없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삼원로가 동원한 무인도 뚫기 어렵지만 그 뒤에 삼원로가 있는 게 확실하니 어디를 가겠는가.
그런데도 제이성만은 지키려 한다.
이해할 수 있다. 제이성은 그녀가 가야할 곳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마야의 보금자리다. 마야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쉴 곳이다. 그런 곳을 적인지 아군인지도 모르는 절대 무신에게 가르쳐주고 싶지는 않으리라.
“저게 좋겠군. 저걸 타지.”
궁왕이 강가에 묶여져 있는 어선 한 척을 가리켰다. 많아야 대여섯 명 밖에 타지 못하며, 그것도 강에서 고개를 잡는 배인지라 노를 저어야만 나아간다.
궁왕이 터벅터벅 걸어가 손수 노를 잡았다.
“타지. 제이성까지 바래다 줄 테니. 그것도 싫으면 복우산까지만 바래다주고.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다네.”
일령은 그제야 배에 올라탔다.
무림이 남북으로 갈리어 싸울 경우, 상대편 깊숙이 쳐들어가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싸움의 주도권을 내주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는 지형의 잇점을 가진 반면, 쳐들어간 쪽은 상대가 원하는 대로 이끌려가게 된다. 그러다가 상대가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싸움을 벌이게 된다.
필패(必敗)하지 않을 수 없다.
궁왕이 그랬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배를 몰아간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게 아니었다.
삼원로는 지류(支流)마다 무인들을 둘러세웠다. 궁왕은 충돌을 피하기 위해 다른 수로를 선택했고, 결국은 삼원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여기가 어딘 줄 알겠나?”
천멸도주와 일령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낯선 곳이다. 인근 지리라면 자하부에서 자란 일령이 제일 잘 아는데, 일령조차도 처음 보는 풍경들인지라 아무 말을 못했다.
“황수(遑水) 부근 아닐까요?”
어디에서부터인가 길을 잘못 들었다.
복우산으로 가는 게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흠……! 허허! 걸려들었군. 이 친구들, 그냥 세월을 먹은 게 아니었어. 허허!”
궁왕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삐걱! 삐이걱……!
궁왕을 노를 저었다.
배의 방향이 틀어진다.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강변에 갖다 붙이고 있다.
“선배님, 지금 뭘……?”
“잘 들어라. 내 할 일은 여기서 끝난 것 같구나. 강변에 도착하거든 어디 갈 생각하지 말고 바로 숨어라. 귀식대법(龜息大法)을 펼쳐 숨을 완전히 죽이고, 체온까지. 생기를 조금이라도 드러내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게다. 그렇게 최소 삼 일을 버텨라.”
“선배님!”
“허허!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
삐걱! 삐걱……!
노 젓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귀를 간질였다.
세상은 조용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고, 새 소리나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배가 강가에 도착했다.
“내 말 명심하거라.”
그 말을 끝으로 궁왕은 비호같이 달려나갔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궁왕은 연달아 은형시를 쏘았다.
화살 한 대에 두 명, 세 명이 꿰뚫렸다. 바위도 부셨고, 나무도 뚫고 나갔다.
전통에 있는 화살을 아낌없이 쏘아냈다.
밀려오는 무인은 너무 많았다.
그들은 전통적인 싸움을 원하지 않았다. 죽음만이 존재하는 방식, 악마의 싸움을 원했다.
공포도 모르는 듯 했다. 옆에서 사람이 죽게 되면 은연중에 쳐다보게 되어 있는데, 이들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달려들기만 했다.
궁왕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가서는 자를 쏘아죽일 뿐이다.
전통이 비었다.
궁왕은 마지막 화살 한 대를 손에 쥐었다.
궁왕의 손에 들린 화살은 곧 검이다. 찌르고, 베고, 후려치고…… 검의 속성을 고스란히 지녔다.
삐이익!
멀리서 호각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물밀듯이 달려들던 무인들이 독기어린 눈빛을 쏘아내며 물러서기 시작했다.
궁왕은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사방에서 풍기는 피냄새를 맡지 않으려는 듯, 죽음의 그림자를 보지 않으려는 듯.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약간 느린 걸음이다. 산책을 하는 듯 여유롭다.
“궁왕. 허허허! 반갑네. 이렇게 보게 되는군.”
삼원로가 다가왔다.
필패의 지형에서 필패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만났다.
자의성검이 말했다.
“궁왕. 이제 그만 끝내세. 서로 너무 피곤하지 않았나. 알려주게. 마군은 어디 있나?”
“허허허! 그래도 마군은 두려운가 보이.”
“정을 위해서 마를 제거하는 것뿐이네.”
“쯧! 죽을 날이 지척인데 아직도 그놈의 정마(正魔) 타령인가.”
“허허! 득도한 자네와는 다를 수밖에. 큰놈이 비명횡사해도 가만있고, 막내 놈이 콘이 되어 날뛰어도 일어설 줄 모르고. 아니지, 아냐. 피 끓는 심정을 억누르고 참았던 게지. 무엇 때문인가? 우릴 제거하려는 속셈 때문이 아닌가? 피차 똥통 속에서 뒹구는 건 마찬가지인데 뭘 그리 고고한 척 하나.”
궁왕은 활을 들어올렸다.
“내게는 화살 한 대가 남았네. 그리고 수련만 했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절학 하나가 있네.”
“일관(一貫). 다른 이름은 필요 없다고 했지. 일관이면 된다고.”
“일관을 보여줄 셈이네.”
삼원로는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에게 보여줄 참인가?”
궁왕은 자의성검을 주시했다.
자의성검이 검을 뽑아들며 말했다.
“내게도 자네와 같은 경우가 있지. 수련만 했지 써본 적이 없는 검학이 있네. 알고 있나?”
“음양합일광천만붕(陰陽合一狂天卍崩).”
“허허허! 초식명이 그게 뭐냐며 비아냥거리더니 그래도 잊지는 않고 있었네 그려. 허허!”
자의성검이 음양전도의 기수식을 취했다.
궁왕은 담담히 화살을 활에 재웠다.
혈일뢰와 통천서패는 좌우로 갈라져 진기를 끌어올렸다.
궁왕와 자의성검의 싸움이 어떻게 끝나든 간에 궁왕을 놔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물씬 풍겨 나왔다.
궁왕은 개의치 않았다. 이미 예상했던 터이다.
“타앗!”
자의성검이 먼저 신형을 쏘아냈다.
천지(天地)로 갈라진 검이 정중앙에서 합일되더니, 육신마저 흡수해버렸다.
궁왕의 눈에는 자의성검이 보이지 않았다. 빠르게 다가오는, 어떤 중병(重兵)으로도 파괴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대무적의 검 한 자루밖에 보이지 않았다.
검신합일(劍身合一)이다.
자의성검은 검으로 이룰 수 있는 최고봉에 올랐다.
쒜엑!
팽팽하게 당겨졌던 시위가 출렁거렸다.
활은 날아갔다. 빙글빙글 돌며 아무런 느낌도 담지 않은채 평범하게 날아갔다.
위력에서는 평상시 쏘아대던 은형시가 훨씬 낫다. 은형시가 발출하는 파공음은 만음(萬音)을 제압한다. 은형시에서 뿜어내는 경기(勁氣)는 담대한 사내도 털썩 주저앉게 만든다.
일관의 화살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탁! 타타타탁……!
화살과 검이 부딪쳤다.
그 순간 화살이 요술을 부렸다.
검과 부딪치자마자 화살 깃 부분이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조금 도는 정도가 아니라 멀리서도 확연히 보일 만큼 큰 원을 그리며 돌았다.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순식간에 검을 부수고, 검자루를 뚫고, 손목을 짓이기고 들어가 심장마저 꿰뚫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자의성검 역시 그냥 당하지는 않았다.
부서진 검편(劍片)이 흩어지지 않고 앞으로 쏘아졌다. 검을 산산조각낸 화살도 검에 깃든 경력만은 어쩌지 못했다.
“큭!”
“우욱!”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신음을 토해내며 물러섰다.
자의성검의 가슴은 뻥 뚫려 있었다.
궁왕은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허나 곧 붉은 핏물이 전신 곳곳에서 스며나왔다.
“우리 셋이 한꺼번에 달려들든 일 대 일로 싸우든…… 한 명은 죽었을 것. 자네 역시 마찬가지. 우리에게 걸린 이상 살 생각은 포기했을 것.”
“음양합일광천만붕. 이름값을 합디다.”
“일관. 아주 좋았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봤다.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선 자세 그대로 서로를 쳐다보며 숨을 거뒀다.
혈일뢰와 통천서패 역시 침묵했다.
무신들끼리 싸우면 결과가 뻔하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 수가 없다. 권각(拳脚)으로 싸운다면 먼저 혼절하는 사람이라도 나올 터이지만, 병장기를 들고 싸우면 양패동사(兩敗同死)밖에 없다.
그래서 피해왔는데, 그토록 부딪치지 않으려고 주의했는데.
산 두 사람은 죽은 두 사람을 지켜보며 언제까지고 서있었다.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은 또 있었다.
커다란 죽립(竹笠)으로 얼굴을 가렸으나 길게 늘여진 백염(白髥)이 노인임을 말해준다.
그는 어깨에 낚싯대를 걸쳤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대나무 낚싯대다.
“마군의 덫에 걸리면 죽음 밖에 없는 것을. 궁왕, 자넨 마군을 도왔다고 생각하겠지만 마군은 자넬 먹이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네. 자네 역시 죽이고 싶은 자 중에 하나일 뿐인 게지. 차도살인. 알겠나? 차도살인인 게야. 허허허!”
만사무불통지였다.
그는 모든 걸 남겨두고 혈혈단신으로 훌쩍 떠나왔다.
마군의 힘이 중원을 짓누르고 있다. 조금이라도 퍼덕거렸다가는 가차 없이 죽고 만다. 목숨을 부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나 죽었소 하고 복지부동하는 거다.
사실 만사무불통지 같은 사람에게 삶과 죽음은 중요하지 않다.
웅지를 펴기 위해서 검을 들었고, 십팔만 리 중원 땅을 휘젓고 다녔다.
이제와 새삼스럽게 목숨이 아까울 리 없다.
할 일이 없어졌다는 것, 죽어라고 꿈지럭거려도 마군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이 그를 방랑객으로 만들었다.
제이무신가? 어떻게든 꾸려나갈 게다. 조금 더 야망있는 놈이 가주직을 차지할 게고, 나름대로 어려움을 헤쳐 나갈 것이다.
그래봤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무신이 빠진 제이무신가는 곧 다른 자의 먹이가 되고 만다.
그에 반해 제삼무신가는 독자적인 가문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궁왕에게는 딸과 아들이 있다.
콘은 어디선가 죽을 것이고…… 둘째 독궁 강경승이 제삼무신가를 끌어갈 게다.
그리고 마야가 주선한 파락호와 살림을 차린 딸이 있다.
키 오 척, 몸 무게 마흔 관, 타타파두라는 흉명을 지녔던 강희향.
강경승 아니면 강희향, 둘 중 한 명에게 일관이 전수되었을 게다.
만사무불통지는 강희향을 생각한다.
강희향의 괴력은 세 오빠를 훨씬 능가한다. 궁왕의 궁술을 이어받을 수 있는 최적은 신체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