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46
346
궁왕은 가문이라도 보존했다.
궁왕과 함께 죽은 자의성검은 어떤가. 그의 음양합일광천만붕은 누가 전수받았나.
무신들이 사라져간다. 그들의 절기도 땅에 묻힌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무림이 그런 곳이다.
만사무불통지는 두 손 모아 합장했다. 오랜 지우(知友), 오랜 의제(義弟)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배다.
“누군가 무덤 정도는 만들어 주겠지만 찾아온들 무엇하리. 잘 가시게.”
궁왕에게 해주는 마지막 말이었다.
2
마야는 양리완과 마주 앉았다.
“소저의 신기(神氣)가 필요하오.”
양리완은 냉랭했다. 곡부인을 대하는 마야의 태도에서 섭섭함을 느낀 듯 했다.
“필요하면 줘야 하나요?”
“잔접의 목숨이 달린 일이오.”
마야는 진지했고, 양리완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무슨 말이에요?”
“최대한 신기를 얻어주시오. 가능한 방법은 총 동원해서. 그래야 잔접을 살릴 수 있소. 소저, 아무 것도 묻지 말고 따라주시오. 소저의 능력을 믿고 이번 일을 시작했다는 것만 알아주었으면 좋겠소.”
“잔접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오.”
“말을 끝까지 들어요. 잔접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결코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양리완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양리완은 밀실로 들어갔다.
객잔(客棧)의 후원(後院)을 통째로 빌려서 양리완의 밀실을 만들어 주었다.
밀실 주변은 사천제일룡의 독으로 범벅이 되어 쥐새끼 한 마리 드나들지 못한다.
양리완은 밀실 속에서 온정신을 집중하여 잔접들을 찾을 것이다.
“무슨 일인지 말해주지 않을래요?”
다담선자가 물었다.
요즘 들어 마야가 말해주지 않은 게 몇 가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절혼마녀가 낙화향으로 돌아가는 순간부터 비밀이 생겼다.
마야는 불쑥불쑥 혼자 산책을 다녀온다.
추적자가 많을 때도, 유계 마인들이 들끓을 때도, 개방을 친다는 소문이 무성할 때도 산책은 중단되지 않았다.
동반도 허락하지 않았다.
안위가 염려된다고 말하면 왕벌이 최대의 호법이라고 말해서 말하는 사람을 무색케 했다.
그리고 그 일, 호채마를 분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마야 말대로 사자 무리는 뭉쳐있을 때 강하다. 원래 강하지만 무리로 뭉쳐있으면 어느 놈도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지 않는다. 허나 흩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리에서 쫓겨나 외톨이가 된 수사자가 오래 살지 못하는 이유와도 상통한다.
호채마는 사자들이다.
그들을 갈기갈기 찢어놨으니 당장 생존부터 염려해야 한다.
노리는 사람이 없다면 모를까 천지 사방이 온통 칼을 벼르는 사람들 뿐이라면 조심을 거듭해도 모자란다.
그래도 마야도 서둘지 않았다.
천천히 낙서고를 다녀왔고, 북검문을 쳤다.
얻은 건 없다. 그가 낙서고에서 무엇을 봤는지 말해주지 않으니 모른다. 북검문에서는 칠신녀만 죽이고 돌아왔다. 몇몇 무인들을 더 죽였지만 앞날은 여전히 암울하다.
헌데 이제는 불쑥 곡부인을 찾아 잔접 회동을 열라고 추궁하더니, 잔접들이 위험하다며 신기를 발휘하란다.
도무지 앞뒤를 이어붙일 수 없다.
따라다니더라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나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많이 섭섭했나보군.”
마야가 씩 웃었다.
순간, 다담선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야의 웃음은 늘 이가 안 보인다. 한쪽 입술 끝만 살짝 말려 올라가는 정도에서 그친다. 지금은 이가 드러났다. 많이 드러난 게 아니라 살짝 드러났다.
이런 웃음을 본 적이 있다.
― 다담, 놈이 죽었다네. 웅지를 편다며 중원으로 뛰쳐나가더니 개죽음을 당하고 말았다네.
그때 이런 웃음을 지었다.
“나에게는 그림자가 따라다녀. 십일 잔접의 죽음이 그림자의 존재를 말해주지.”
마야가 입을 열었다.
십일 잔접이 누구에게 죽었느냐는 중요치 않다.
그는 마야를 따라다니면서도 만나기 전처럼 자신을 철저히 은폐했다. 비록 종적이 발각되어 잔접 무리에서는 퇴출되었지만 인간들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는 건 언장은마보다도 훨씬 더했다.
그를 찾을 사람은 없다.
그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한, 그를 찾아 죽인다는 건 불가능하다.
헌데 죽었다. 마도가 방문한 이후에 죽었다.
그림자가 따라다닐 뿐만 아니라 행동까지 개시했다는 증거다.
그림자가 언제부터 따라붙었을까? 혹시 혈귀대주의 죽고 자신이 놈의 무덤을 찾을 때부터 아닐까? 이 모든 게 혈귀대주의 한 판 연극에서부터 시작되었다면, 그리고 어떤 목적에서든 자신을 이용할 생각이었다면 그때부터 따라다는 것이 타당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오래전이다.
배를 타고 가면서 하룻밤을 꼬박 밝히며 이 생각에만 몰두했다.
그때 마침 절혼마녀가 낙화향으로 간다는 말을 비쳤다. 언장은마도, 시마도……
마야에게는 자신이 생각이 맞는지 시험해 봐야만 했다.
“그럼 언장은마는?”
“낙화향에 갔어야 하나 천멸도로 갔지.”
중원 제일의 자객집단, 천멸도.
현재 천멸도를 이끌고 있는 종청호는 즉시 응답했다.
그 순간부로 호채마를 미행하는 부류가 하나 더 늘었다. 마야가 주문한 건, 호채마를 쫓아달라는 것이었기에.
마도가 십일 잔접을 방문했을 때, 호채마는 인근에 와있었다. 그들 중 몇 명은 마도를 뒤쫓았고, 결과적으로 십일 잔접이 죽는 모습을 지켜봤다.
모두 다 지켜봤다.
하오문주와 수검이 죽는 것도 봤다.
물론 나서지는 않았다. 마야에게 신신 당부 받은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호채마 중 누가 죽든, 누가 위험에 빠지든 결코 나서지 말라는 것이다. 손만 뻗으면 구함을 줄 수 있어도, 주위에 사람이 없어도 절대 은신하라는 부탁 아닌 명령이다.
천멸도 살수는 단 하나뿐인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일령이 천멸도주를 만났을 때도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천멸도주가 위험스러워 보일 때도……
호채마와 관련하여 무림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대소사가 마야 귀에 전달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다담선자까지 속이고 혼자 간직했던 마야의 비밀이다.
“수검이 결국…… 믿을 수 없군요.”
수검을 죽인 사람이 자의성검이라면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녀가 믿을 수 없는 건 수검의 죽음이다. 그가 죽었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그녀는 도리질하며 수검에 대한 생각을 애써 떨쳐냈다.
무림에서는 누구나 죽을 수 있다. 죽은 사람을 애통해하고 잊지 않지만 그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잔접이 위험한 건 왜……?”
“전에 잔접의 능력을 알아봤을 때, 별게 없더라고. 무림사를 이끌어갈 자들은 아냐. 유념할 건 잔접처럼 비밀스럽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없다는 것. 비밀이 있다는 건 숨길 게 있다는 뜻이지. 비밀이 크면 클수록 숨기는 것도 큰 것이고. 잔접 같아지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잔접은 누구를 피해 숨었냐를 찾아야 한다.
“중원 무림 전체.”
“중원 무림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되는 것이 뭘까?”
“……”
다담선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마인의 경우에는 너무나 많다. 곁에서 찾자면 시마의 녹혈마공도 중원 무림 전체를 속여야 한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알게 되면 집단 추적을 당할 마공 중에 마공이다.
“나는 어때?”
“예?”
“대장장이가 쇠를 단련시키듯 날 끌고 다녔다면 어떨까? 잔접의 목적은 날 멸신구관으로 밀어 넣는 거지. 그러자면 일단 남무림으로 가야 하고.”
“혈귀대주의 죽음은?”
“멸신구관으로 가는 시발(始發).”
“석신(石身)에 걸릴 건 어떻게 알고?”
“목갑. 저주의 자오법신. 목갑이 내 품에 있는 한, 적당한 환경만 조성하면 난 언제든 자오법신에 걸리게 되는 거지. 곤란한 건 사부와 잔접을 연결시키기는 거였는데…… 인정(認定)이라는 말, 알아? 뭐뭐를 인정한다. 사부와 잔접 사이에 모종의 연관이 있다고 인정하니까 생각이 술술 풀리더라고.”
사부가 준 목갑, 혈귀대주의 죽음…… 전혀 상관없는 두 가지 사실이 이렇게 연결되었다.
“멸신구관은 미안하지만 날 위해 만든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난 입구에 들어서면서 왕벌을 얻었어. 몸도 무적으로 변하고. 만공심안까지 완벽하게 깨우쳤지. 한 고비, 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기연을 만났으니 정말로 환골탈태 한 거지.”
그 말은 사실이다.
멸신구관에 들어가기 전과 후를 비교해봤을 때 마야의 무공은 일취월장(日就月將)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사부님과 같은 경지가 된 거야. 남은 건 몸에 주입된 무공과 기연들이 하나로 용해될 시간. 후후! 난 석상무공도 나를 위한 안배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라고. 그건 콘을 위한 안배였어. 콘의 머릿속에 주입된 ‘마야를 죽여라’는 심명(心命) 때문에 콘은 나에게 올 수밖에 없고, 난 콘과 싸워야 했지. 수의 등장도 똑같아. 서군봉은 어떤 식으로든 잔접과 연관 있을 걸? 사천당문에 있어야 할 수많은 독이 그녀의 손에 있었던 점, 구혼음태가 그녀에게 전수된 점.”
“……”
다담선자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칠신녀의 무공은 구혼음태와 콘의 무공을 접목한 것과 흡사했다.
이는 북검문주의 무공이니, 멸신구관을 만든 사람은 북검문주를 노렸다고 봐도 좋을 성 싶다.
확실히 콘에게 수가 주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암중의 힘이 세상을 이끌었다.
마야가 겪었던 모든 곤란 뒤에는 잔접이 있었다.
왜? 잔접의 행동은 마야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목표도 뚜렷해졌다. 북검문주다. 아무 것도 모른 상태에서 북검문주와 부딪쳤다면 십 중 십 당했을 터이지만 지금은 다르다. 최소한 절반의 승률은 점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혈귀대주는 잔접과 결탁하여 자신의 문주를 죽이려 한 것인가? 왜? 북검문주의 상대로 만들기 위해 남무림을 휘젓게 만든 건 너무 무모하지 않았나? 그냥 곱게 멸신구관으로 들여보낼 계책도 많았을 텐데.
그렇다. 마야를 저주의 자오법신으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마야는 어쩔 수 없이 멸신구관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마야라면 남몰래, 은밀히 멸신구관에 다녀올 수 있었다.
남무림을 휘젓게 만든 이유가 있어야 한다.
마야가 말했다.
“제삼무신가가 남도문에서 떨어져 나왔어. 궁왕이 천멸도주를 데리고 북무림으로 들어서기 전이야. 제이무신가도 임자 없는 무주공산이 되었지. 남도문은 해체된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 일이!”
“헌데 남도문은 더 강해졌어. 제일무신가가 저력을 드러내자 제이, 제삼 무신가의 공백쯤은 말끔히 메워버린 거야. 대단하지 않나?”
북검문과 같은 형태다.
북검문도 옛 무인들이 모조리 도륙되었을 때 새로운 무인들이 나타났다. 남도문도 같다. 총단 무인과 제이, 제삼무신가 무인들이 지리멸렬하자 제일무신가 무인들이 본연의 힘을 드러냈다.
“하오문에 상일문이라는 게 있어. 그들은 무림의 숨겨진 비사를 낱낱이 꿰고 있지. 발설하지 않을 뿐. 헌데 나 같으면…… 그런 사람들을 두고 보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 그래서 건드렸지. 누가 튀어나오나 하고.”
“대가가 너무 커요.”
하오문주와 수검이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죽었다면 정말 큰 대가를 치른 거다.
“아니. 대단한 일을 해줬어. 아주 큰 일을.”
“삼원로가 튀어나와서요?”
“그때까지만 해도 자책감이 컸어. 괜한 일로 죽었다고. 헌데 일령이 궁왕을 만나고, 궁왕은 삼원로와 싸우고. 그 일을 보면서 확연히 깨달은 게 있어.”
“뭔데요?”
“궁왕을 공격했던 무인들은 강에서 우릴 공격했던 무인과 같은 종류야. 정신을 반쯤 빼놓고 다니는 광자(狂者)들.”
“유계!”
다담선자는 깜짝 놀랐다.
“유계와 북검문은 연관이 있어. 헌데 전에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
“남도문과 사방천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그럼 유계가 북검남도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궁왕과 삼원로가 싸운단 말이지. 유계가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취하는 건가?”
“북검문과 남도문은 개방이 유계를 칠 때 수수방관했어요. 어쩌면…… 유계의 피해가 크지 않은 건 이미 정보가 누설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군요.”
“큰 구도로는 사부와 잔접 대 유계, 북검문, 남도문이고 작은 구도는 북검문과 남도문의 대립. 헌데 한 가지 절대 의문이 드는 건 이런 구도라면 북검문이나 남도문이 날 왜 가만뒀느냐는 거야. 제거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렇군요. 하지만 그 문제라면 해답을 줄 사람이……”
다담선자는 이제야 왜 마야가 곡부인을 몰아붙였는지 알았다.
지금까지의 면면을 분석하면 추측은 할 수 있다.
북검문주와 남도문주가 무엇을 노린다는 것이다. 그건 언젠가 남만에서 만사무불통지가 말한 사부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이미 돌아가신 선사를 아직 살아있다고 여긴다면.
선사를 왜 노리느냐는 차후 문제다.
아니, 그것 역시 짐작할 수 있다.
마군은 마도 역사상 최강의 무인이다.
무신 두세 명이 합공을 펼쳐야 할 정도로 강하다.
마군이 살아있다면 북검문주나 남도문주의 전설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
평생동안 일군 명예가 사라지는 건 일순간이다.
그들은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로움을 느끼고 있다. 허니 잔접과 마야를 지켜보면서 선사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면 살려둘만한 가치는 있다.
물론 추측이다. 허나 실제로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사람이 있다. 잔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