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47
347
잔접은 두 가지 사실을 말해줘야 한다.
첫째, 사부와는 어떤 관계인가.
둘째, 그들 계획은 무엇인가.
가장 기본적이지만 꼭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유계를 치든 북검문을 치든 뭘 하든 할 수 있다.
잔접도 마야에게 볼 일이 있을 게다.
이만큼 키워놨으니 키운 덕을 봐야 할 것 아닌가.
회동은 순조로이 진행될 것이다.
문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아니,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다.
자신을 놔두는 건 선사를 찾기 위해서지만 잔접을 내버려 둔 건 그들이 꽁꽁 숨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십일 잔접은 노출되자마자 죽었다.
오잔접, 칠잔접, 팔잔접도 땅 위로 올라온 즉시 제거되었다.
십이 잔접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곡부인이 마야와 잔접은 연결선이라는 건 그들도 안다. 나머지 잔접들을 끌어내기 위해서 살려둔 것이다.
마야를 죽이면 모든 건 원점으로 돌아간다.
잔접은 다시 숨을 것이고, 마군은 또 다른 마야를 만들어낼 것이다.
잔접은 죽여도 된다. 그들을 죽이면 마군이 나타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이 세상에 마야 혼자 덩그러니 버려졌는데 나타나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잔접은 나타나는 족족 때려잡는다.
잔접은 목숨을 걸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과연 회동이 무사히 치러질까?
그들이 위험에 처했어도 마야는 알 도리가 없다. 깊고깊은 음지에 꽁꽁 숨어있던 사람들이라서 천멸도 살수를 붙여놓을 수도 없다.
안전 유무를 알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양리완의 신기뿐이다.
그렇다. 양리완에게 잔접의 목숨을 맡기고 회동을 강요했다.
“위험이 감지되면 어쩌죠? 살아있는 잔접은 일곱 명. 사방에 흩어져 있을 텐데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은밀히 이동할 게 아니라 신분을 드러내고 당당히 이동하면 돼. 잔접들…… 무명인보다는 상당한 신분일 가능성이 높지. 신분을 드러내고 당당히 이동한다면 쉽게 죽이지는 못할 거야.”
“그것도 소식을 전할 수 있어야……”
“천멸도를 믿을 수밖에. 아무리 빨라도 절반은 잃을 것 같아. 두세 명…… 그 정도만 살아남아도 다행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마야와 다담선자는 양리완이 틀어박힌 밀지를 쳐다봤다.
그녀가 뛰쳐나오는 순간부터 천멸도 살수들의 달음박질은 시작될 게다. 빨리 뛰면 빨리 뛸수록 살아남는 잔접도 많아질 게다.
“수검 뒤에 천멸도가 있는데, 일령은 또 왜 붙였어요?”
흘러가는 말로 물었다.
“훗!”
마야는 웃었다.
“잔접과 마찬가지야. 호채마도 내가 빠지면 제거 대상에 불과해. 그래서 무신과 붙으면 즉시 피하라고 했어. 즉시. 싸우지 말고 즉시. 하오문주도, 수검도…… 피하기만 했으면 죽지 않았을 텐데. 누가 나타나는지만 보면 되는 거였어.”
마야는 몹시 아쉬워했다.
호채마는 싸우지만 않으면 누구든지 피할 수 있다. 그들을 무력으로 잡을 사람은 거의 없다. 무신도 도주만을 염두에 둔 사람을 잡기란 쉽지 않다.
도주의 최종 목적지는 제이성이다.
제이성까지만 가면 안전하다.
사망혈인이 제이성 주변을 지옥의 강으로 만들어놨을 테니까.
“다른 사람들 임무는 뭐예요?”
다담선자는 자신이 보았던 두 장의 밀지를 떠올렸다.
거기에는 궁왕을 죽이라는 명령과 대막삼제를 죽이라는 명령이 적혀 있었다.
“유계 마인으로 짐작되는 자가 있어. 그 자를 미행하는 임무는 마도가 맡았어.”
“……?”
다담선자는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궁왕을 죽이라는 밀지에 비하면 너무 가벼운 명령이다. 더군다나 마도는 밀지를 보는 순간 죽음이라도 예감한 표정이었다.
“그 자는 낭인(狼人) 이야.”
“낭…… 인요?”
유계 마이들 중 낭인은 없었다. 거의 대부분 일정한 직업과 신분을 갖고 은신해 있었다.
“유계 마인이면서 낭인이라면, 마인들을 연계하는 연락책이 아닌가 생각돼. 뒤를 쫓다보면 총단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 그 자는 개방 공격에 살아남았는데…… 그럼 당연히 숨어야 마땅하지. 헌데 아직도 중원을 떠돌고 있어.”
“그렇군요.”
“사망혈인은 제이성을 철옹성으로 만드는 것이야.”
이해할 수 있다. 호채마의 최종 목적지는 제이성이다. 임무를 완수한 후, 혹은 위험에 처했을 때는 즉시 제이성으로 움직이라는 게 마지막 명령이었다.
“동생은 뭐였어요?”
금연화를 말함이다.
다담선자는 아직도 금연화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녀는 떠나면 ‘꼭 완수할게요’라는 말을 남겼다. 궁왕을 죽이라는 명령만큼이나 힘든 명령이었을 게다.
“흑살마녀 보호.”
“네?”
“유계가 날 공격했어. 몇 번 공격하면서 나와 호채마의 무공을 세심히 살폈을 거야. 지금쯤 대응책을 강구했겠지. 후후! 한동안 잠잠했지? 유계가 다시 나타나면 우릴 이길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어. 그렇다면 남만에 있는 흑살마녀도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한 것뿐이야. 나와 선사에 관련된 모든 걸 지울 생각일 테니까.”
“일령은요.”
다담선자가 가장 먼저 묻고 싶은 것을 가장 나중에 물었다.
마야는 상일문을 몹시 중하게 여기는 듯하다.
다른 임무는 한 사람씩 배정했는데, 유독 상일문을 열라는 임무에만 두 명을 배치했다.
북검문 무신이 상일문을 움켜쥐었다. 이것 역시 상일문이 중하다는 걸 말해준다.
단순히 누가 나타나는지 보려고 한 행동은 아니다.
“그냥…… 혹시나 해서. 하오문주와 수검이 그런 선택을 하리라고는……”
마야는 이야기의 방향을 돌렸다.
묻고 싶은 건 많다. 말해주지 않은 것도 많다.
궁왕을 왜 죽이라고 했는지. 호채마 중에서 궁왕과 부딪칠 경우,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궁왕과 천멸도주는 어떻게 해서 그 시간에 그 장소에 나타나 일령을 도울 수 있었던 건지.
허나 깊이 묻고 싶지는 않다. 말하고 싶을 때 말해줄 터이니까. 또 물어볼 틈도 없었다.
“위험! 위험해요!”
양리완이 고함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제9장 시층루(屍層累) ― 주검이 첩첩이 쌓이다
1
동묘묘(董苗苗)는 북검문 주사(廚師)다. 그녀는 북검문 식솔 천여 명의 식사를 담당한다.
그녀의 유명세는 과거 천랑대주나 천비대주에 못지않다.
북검문이 원하는 식재료는 까다롭게 선별되지만 납품이 허락되기만 하면 시중보다 배는 더 많이 받는다.
당연히 사람들은 천랑대주는 몰라도 그녀는 안다.
그녀는 가마를 타고 길을 나섰다.
보는 사람마다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녀도 상냥하게 답례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활짝 웃으며 정다운 말을 건넸다. 그러나 그녀의 안색은 딱딱하다 못해 돌처럼 굳어있었다.
낯선 자들이 주위를 둘러쌌다.
우연이 아니다. 상당한 무공을 지닌 자들이 이십여 명이나 나타난 노골적으로 에워쌌다.
그녀는 몸을 편히 뉘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녀가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어찌 모를까. 빠져나갈 수 있는지 막다른 골목인지는 눈 감고도 알 수 있다.
완벽하게 걸려들었다.
이십여 명이 은연중에 펼친 만극검진(挽極劍陣)은 그녀의 도룡검법(屠龍劍法)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는 있지만 결국 패할 것이다.
선자불래(善者不來)요, 내자불선(來者不善)이다. 자신 없는 자는 찾아오지 않는다.
“시장이나 한 바퀴 돌고 돌아가자.”
그녀가 가마꾼에게 말했다.
성 밖에는 준마가 대기해 있지만 이들을 끌고 잔접 회동에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약속된 모임이 아니면 위험한 것을……’
“가아아아아……”
마야는 마령음을 쏟아냈다.
“크윽!”
양리완이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감싸쥐었다.
‘참아야 하오. 잔접의 생명이 소저에게 달렸소. 어서 정신을 집중하시오!’
심언(心言)이 그녀의 마음을 후려쳤다.
“끄으윽!”
그녀는 머리가 깨어지는 듯한 두통을 참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가아아아아아……”
마야의 마령음이 사정없이 머리를 후려쳤다.
고통스러운 건 두통만이 아니다. 진기가 물 끓듯 팔팔 끓는다. 진기가 아니라 뜨거운 불덩이다. 경맥을 시원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온 몸을 태운다.
“가아아아아……”
마령음은 끊임없이 다가왔다.
그녀는 정신을 집중했다. 잔접의 생명이 자신에게 달렸으니 참아야 한다.
그녀는 낯모르는 사람, 낯선 광경이 떠오를 때마다 마야가 전하라는 전언(傳言)을 보냈다.
‘아니야……’
동묘묘는 몸을 꿈틀거렸다.
이상한 느낌이 든다. 이대로 돌아가면 죽음뿐이지만 가마를 타고 당당하게 나아간다면 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삶은 없다.
목숨이 아까운가? 죽음이 두려운 겐가?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거지?
‘음! 아닌데……’
또 같은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조금 더 자극적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이 그려졌다. 북검문 주사라는 신분을 십분 활용하여 당당하게 나아가면 이들도 본색을 드러내지 못할 게다.
‘어처구니없는……’
무인다운 생각은 아니다. 차라리 호쾌하게 싸워서 스스로 빠져나가겠다는 생각보다 못하다.
그녀는 몇 번을 뒤척였다.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가 일으키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가마꾼에게 명했다.
“시장으로 가지 말고 성 밖으로 가자.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싶으니 대로(大路)로 가고.”
그 시간, 두 부류의 천멸도 살수들은 숨이 턱에 닿도록 치달렸다.
양리완의 머릿속에 그려진 풍경은 대기하고 있던 화공(畵工)에 의해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졌다. 그림은 곧 곡부인에게 전해졌고, 곡부인은 잔접의 신분과 풍경을 연결시켜 한 곳을 지목했다.
잔접을 구하라는 임무를 띄고 천멸도 살수들이 즉시 달려갔다.
잔접을 상대하기 위해 나타난 무인들은 초절정고수가 아니다.
일파의 장문인은 노출이 심하다. 사생활은 물론이고 공적 생활까지 거의 노출되는 편이다.
장문인이나 문주 중에 잔접은 없다.
무공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말할 수 있다. 잔접은 일정 수준 이상의 무공은 탐내지 않는다. 고수라고 소문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다. 아무래도 널리 알려진 자는 주목받기 마련이니까.
잔접 중 무림의 고수는 드물다. 대신 그들은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그들 중에는 학자(學者)도 있고, 동묘묘처럼 주사를 하기도 한다. 위협보다는 존경받는 업(業)을 택한 것이다.
그런 점이 이번 일에 상당한 위협으로 작용했지만 반대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잔접을 해하고자 동원된 무인도 절정고수는 아니라는 거다.
천멸도 살수로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
또 한 부류의 천멸도 살수도 움직였다.
그들은 먼저 떠난 천멸도 살수를 뒤쫓았다. 은밀히, 숨어서.
그들이 파악할 것은 잔접을 죽이고자 하는 자들이 어디서 왔느냐 하는 거다.
마야는 마령음을 그쳤다.
“헉헉! 헉……!”
양리완은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힘들어했다.
“수고했소?”
“전……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이걸로 된 건가요? 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할 거예요. 그 먼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생각을 전하다니.”
“생각이 아니오. 신기요. 소저가 아니었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소.”
양리완은 고개만 끄덕일 뿐, 대답할 힘도 없다는 듯 축 늘어졌다.
“휴우! 어떻습니까?”
곡부인에게 물었다.
“북무림에 세 명, 남무림에 넷. 북무림은 가능하겠지만 남무림까지는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싶네.”
“……”
마야는 침묵했다.
북검문에서 잔접을 죽이고자 사람을 보냈다. 남도문도 마찬가지다.
북검문과 남도문이 마군과 잔접의 적이라는 가정은 확실해졌다. 이제 남은 건 유계다. 유계 무인도 동원되었는가? 잔접이 겨우 일곱 명뿐이니 유계까지 나설 필요는 없었을 게다.
“곡부인, 잔접이 나에게 관심을 쏟은 이유를 정말 모릅니까?”
“거짓이 아니네. 일접(一蝶). 일접만이 그 이유를 아네.”
“일접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다담선자가 물었다.
“아무도 모르는 거지. 잔접이 원래 그렇네. 자신이 맡은 일 외에는 알지 못해. 철저한 점조직이지. 조직만 점이 아니라 맡은 일도 점이야. 일접이 살아있기를 고대하게.”
곡부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도 출발합시다.”
마야가 일어섰다.
모두가 모이기로 한 곳, 일부는 먼저 가 있는 곳, 복우산 제이성으로 간다.
제이성에는 몇몇 사람들이 먼저 와 있었다.
일령이 있었고, 천멸도주의 모습도 보였다.
마야는 그녀들의 손을 한 번씩 잡아주는 것으로 반가움을 대신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수만 마디의 위로와 격려가 눈빛에 담겨 흘러나갔다.
“말씀하신대로 이행했습니다. 어떤 놈이든 이곳으로 오려면 목숨 십여 개로는 부족할 겁니다. 멸신구관 못지 않은 곳으로 만들라고 하셨죠? 하하하! 직접 둘러보십시오.”
사망혈인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마야는 사망혈인의 손도 꼭 잡았다.
온 사람도 있지만 오지 못한 사람도 있다. 온 사람과 반가움을 누리기 전에 오지 못한 사람에 대해 묵념이라도 해야 한다.
하루, 이틀…… 기다림의 시간이 지난 후, 생존한 잔접들이 제이성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북무림에서 출발한 이, 삼, 육접은 모두 무사했다.
이접은 섬서(陝西) 유림(儒林)의 거두(巨頭)인 호양(好陽) 최보군(崔寶群)이다.
그가 잔접이리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삼접은 개방의 취옹개로 마야도 일면식이 있다.
육접은 북검문의 동묘묘, 그녀는 한 팔이 잘린 상태이기는 했지만 목숨에는 지장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