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48
348
남무림에서 출발한 잔접 중에는 불행히도 생존자가 없었다.
천멸도 살수들이 돌아왔다.
“남도문 무인입니다.”
“남도문이더군요.”
그들은 모두 같은 소리를 했다.
천멸도 살수들은 살해 장면을 보지도 못했다. 남무림은 목숨을 구해주려고 달려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천멸도 살수들은 죽은 자들을 살폈고, 몸에 난 도흔(刀痕)으로 남도문 도법을 알아봤을 뿐이다.
일접도 죽었다. 마야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줘야 할 사람이었는데.
이제 잔접은 끝났다. 살아남은 네 명은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
마야가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까지 추진해왔던 일들을 말해주기 바랍니다. 흩어진 일들을 모아보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겠죠.”
이접은 유계를 살폈다. 전국에 퍼져있는 유생들 중 최측근을 선정하여 이유 없는 살인, 폭행, 실종을 은밀히 조사하게 했다. 조사하지 못하더라도 신분이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명을 받든 채. 그래서 탄생한 것이 개방에 전해준 살명부였다.
취옹개는 개방의 정보를 이용하여 무림 동태를 살폈다.
무림에 관한 모든 정보가 취옹개의 손에서 흘러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동묘묘는 북검문을 살폈다. 그렇다고 북검문에 대한 정보에 눈독들인 건 아니다. 그랬다가는 천비대의 이목에 걸려들었을 게다. 천비대가 어떤 사람들인데 그들을 속일 수 있었겠나.
동묘묘는 오직 무신의 동태에만 신경을 썼다.
주사라는 그녀의 신분은 무신의 식사를 직접 담당하게 했고,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곁눈질을 하기에 용이했다.
십이 잔접 곡부인의 역할은 사뭇 달랐다.
그녀는 오직 보모 역할만 주어졌다. 양리리, 양리완 자매를 잘 키우는 것이다. 특히 양리완의 경우에는 세속의 때를 묻히지 마라는 엄명까지 받았다.
곡부인은 특이한 경우지만 잔접은 전무림을 한 눈에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럼 이들은 어떻게 모였나? 잔접들 사이에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데, 이토록 비밀스런 행사는 어떻게 해서 하게 되었나?
여기서 공통된 말 하나씩이 튀어나왔다.
― 마군.
호양 최보군은 마군과 학문을 겨룬 적이 있다. 그들은 사흘 동안 격론을 벌였고, 서로에게 깊이 감복했다. 마군이 세인들로부터 지탄을 받을 지라도 호양에게는 둘도 없는 지우가 된 것이다.
취옹개는 무공을 배웠다.
개방도라면 누구나 개방의 무공을 배운다. 허나 누구나 장로에 오르는 건 아니다. 세월이 흐른다고 장로 직을 수여받는다면 개방 장로는 넘쳐나고 있을 게다.
취옹개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사제지연(師弟之緣)은 맺지 않았지만 거의 사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깊이 맺어졌다.
동묘묘는 요리를 전수 받았다. 그녀가 북검문에 들어가 주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마군 덕분이다.
곡부인에게도 마군은 간여했다. 바로 양리리, 양리완 자매를 데려와 그녀의 품에 안겨준 사람이 마군이다.
‘사부……’
십일 잔접이 어떻게 해서 마령음을 지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들도 틀림없이 마군과 모종의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럼 됐다. 사부와 연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사람들은 보호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진작 알았다면, 아니 조금만 일찍 눈치를 챘더라면……
선사는 왜 잔접을 만든 것일까? 잔접을 이용해서 무엇을 얻으려던 것일까?
“유계는 현재 암암리에 활동 중이네. 마도와 제사추령(第四芻靈)이 백중산(百重山)에 모습을 보였는데, 아마도 마도가 미행한 것 아닌가 싶네만?”
“유계가 백중산에 있습니까?”
“유계는 두 군데에 있네. 백중산에 하나가 있고, 남무림 석문산(石門山)에 하나가 있지.”
“주공은 어디 있습니까?”
“허허! 그게 말일세…… 아직까지 주공을 본적조차 없다네. 사실 이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유계인들 우리 사람이 없겠나. 사람을 심어놨지. 헌데도 주공에 대한 말은 한 글자도 들을 수 없었다네.”
“있기는 있는 겁니까?”
“있지. 있으니까 유계가 통제되고 있는 것 아니겠나.”
마도는 제사추령을 따라 백중산에 가있는 것 같다.
엄한 고생을 했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목숨을 건 것 아닌가.
조금 더 일찍,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잔접 회동을 했더라면 죽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마도도 헛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낙서고에는 뭐하러 갔나?”
취옹개가 물었다.
역시 알고 있었다. 하기는 낙서고에 남겨진 흔적으로 사천제일룡을 추론해 내는 건 쉬웠으리라.
“북검문주는 뭐하고 있는지, 남도문주는. 사부님은 살아계신지. 나는. 혈귀대주는. 뭐든 하나라도 손에 잡히는 게 있는지 보러 갔죠.”
“봤나?”
“몇 개는 봤습니다.”
“북검문주는 북검문에 없네. 한 십 년 된 것 같은데…… 북검문에 없은지 말이야.”
동묘묘가 말했다. 그때,
꽝! 꽈앙! 꽈아아아앙……!
제이성 밖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2
“저, 저 미친놈들!”
사마혈인이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인해전술(人海戰術), 무지막지한 인해전술이 복우산 한 복판에서 벌어졌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매설된 화약이 폭죽처럼 솟구쳤다. 산지사방에 불덩이가 난무했다. 흙먼지와 돌가루가 뿌연 연막을 피워냈다. 그래도 그들은 달려오는 걸 멈추지 않았다.
“유계 마이들이야.”
마야가 말했다.
유계 마인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마야를 유계로 데려가기 위해 나타났던 마인들은 무신도 겁내지 않을 만큼 무공이 강했다. 실질적으로 무신과 싸우기도 했다.
강에서 ‘전략(戰略)’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타난 자들부터 이상해졌다. 지능도 떨어질 뿐 아니라 무공도 약하다. 아니다. 지능이라고 할 수 없다. 공포심 자체를 제거해보린 것 같다.
이들은 장애를 뚫기 위해 만들어진 소모품이다.
꽈앙! 꽈아앙……!
사망혈인이 만들어 놓은 철옹성은 너무 간단하게 무너졌다.
화약과 독은 상극이다. 독은 불에 태워지기 때문에 화약이 있는 곳에는 독을 풀지 않는다.
단 한 사람, 화약에 독을 접목시켜 상승작용을 일으킬 줄 아는 사람이 있다. 사천제일룡이다.
쉬익! 꽈앙!
사천제일룡은 사망혈인이 건네준 화약에 독을 묻혀 내던졌다. 화약은 터졌고, 화약 본래의 파괴력보다 훨씬 더 큰 살상력을 보였다. 화약이 터지면서 태워지지 않는 독분이 흩날린 것이다.
그것도 잠시, 사천제일룡은 강에서 유계 마인들과 싸울 때처럼 무기력해졌다.
마인들 옷깃에 염수화가 꽂혀있다.
사천제일룡을 종이호랑이로 만드는 유일한 물건이 나타났다.
“쳇! 저 놈들은 툭 하면…… 무슨 놈의 염수화가 무더기로 튀어나와. 재배라고 하나? 재배…… 그렇군. 숙부님은…… 염수화 재배에 성공했어.”
당문의 한 사람으로써 기뻐해야 할 일이다. 허나 염수화 재배 기술이 외인에게 흘러나갔으니 차후 당문은 이로 인해 상당한 난관에 봉척할 것이다.
“풋!”
사천제일룡은 웃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자신이 지금 사천당문을 염려하는가? 금독을 무더기로 훔쳐 나온 주제에? 무림에서 금기시하는 혈마지신을 성취한 놈이?
“물러서.”
마야가 말했다.
사천제일룡은 듣지 않았다.
문득 염수화와 혈마지신이 충돌하면 누가 이길까 하는 의문이 치솟았다.
꺾여본 적이 없는 독의 절정과 어떤 독이든 흡수하는 신비의 꽃.
“마야, 너 참 운 좋다.”
“……?”
“너 역시 살과 뼈로 이뤄진 인간이야. 끊임없이 두들기는 데는 금강불괴(金剛不壞)고 뭐고 없어. 후후후! 혈마지신은 널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인데, 너 정말 운 좋다.”
“독룡!”
마야가 소리질렀을 때, 사천제일룡은 앞으로 질주해나가고 있었다.
두둑! 두두두둑……!
막힌 경혈이 풀린다. 봉맥(封脈)이 뚫린다. 꾹꾹 눌러뒀던 혈마지신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온다.
“모두 피햇! 안으로 들어갓!”
마야의 외침이 한쪽 귀로 들어왔다.
‘후후후! 후후후후!’
사천제일룡은 웃었다.
마야가 놀라 소리쳤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를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마야가 피하라고 고함칠 정도로 인정해줬으니 독공에 매진한 보람을 느낀다.
꽈아아아아앙……!
터진다. 혈마지신이 움직인다. 거세게 분출되던 혈마지신의 독기가 육신을 찢고 터져나간다.
‘됐어. 됐어.’
사천제일룡은 마지막 생각을 떠올렸다.
제이성은 멀리서 보면 백색 바위덩어리처럼 보인다.
그곳에 한송이 흑화(黑花)가 피어났다. 백색 바위를 시커멓게 물들인 흑화는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휼…… 륭해.”
들것에 몸을 뉜 중년인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두 다리는 잘려나가 있었다. 혈마지신의 독기 때문이다. 다리가 썩어 들어가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혈마지신의 마지막을 보았다.
당문이 탄생시키고자 한 독인 최고의 경지다.
조금만 천천히 수련해서 독마가 아닌 독성의 경지에 이르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천제일룡은 그럴 수 있었는데. 허허! 언제나 이런 기재가 또 나올까.
그는 독단을 삼켰다.
유계에 남아있는 염수화는 없다. 상피망도 모두 제거했다. 이 자리, 복우산에서 사천 당문의 반역도는 깨끗이 정리된다.
‘잘 했다. 잘 했어. 화…… 당화야.’
그는 오랜만에 조차의 이름을 부르며 편히 눈을 감았다.
뚜벅! 뚜벅……!
굽이져 흐르는 핏물을 밟고, 수 업이 나뒹그는 살덩이를 밟고 두 사람이 걸어왔다.
뚱뚱한 사람과 다부진 체구의 흑의인.
두 사람은 세상을 발아래 굽어보는 듯 오연했고, 또 그럴 자격이 있었다.
“콘, 수!”
마야는 콘과 수를 불러 통천서패를 가리켰다.
“크크!”
콘이 수를 쳐다보며 기이한 웃음을 터트렸다.
수는 요염하게 웃었다. 일순, 하늘에서 선녀가 하강하지 않았나 싶을 만큼 눈이 부셨다.
“크크크!”
콘이 달려 나갔다. 수도 달려 나갔다.
마야는 혈일뢰를 향해 걸어갔다. 걷다가 발에 채이는 검 한 자루를 주워들었다.
누구의 검일까? 처음 이 검을 잡았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삼척장검은 잘 다듬어져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혈일뢰가 빙긋 웃었다.
멸신구관을 함께 하며 서로에 대해 알만큼 안 사이다.
“콘과 수는 오래 버티지 못할 거요. 그래서 나도 빨리 끝내야겠소.”
“오래 버티지…… 못한다? 어느 새 무공을 읽는 경지에 이르렀구나. 빨라도 너무 빨라. 네가 수련한 과정을 책자로 기술할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성무공이 탄생할 듯 싶구나.”
“과찬. 한 가지만 묻겠소. 북검문주와 유계 주공은 어떤 사이요?”
“허허허! 마군은 어디 있느냐?”
“……”
“대답을 못하는구나. 허허! 넌 정말 마군이 죽은 줄 알고 있었어. 거짓이 아니라 진심이었어. 허허허! 진작…… 진작 죽였어도 됐는데. 앞수를 내다본다는 것…… 너무 많이 내다봐도 실책이 나와.”
혈일뢰의 음성에 후회가 묻어났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소.”
‘가아아아아……’
벌써 공격은 시작되었다.
“적멸주. 좋은 공부지. 너처럼 특이한 능력을 지닌 사람만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 배 아파.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배웠을 거야.”
혈일뢰는 흔들리지 않았다.
적멸주가 청각을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 소리를 차단하는 봉청술(封聽術)은 쓴 듯 싶다.
그러가나 말거나 마야는 계속 적멸주를 쏟아냈다.
콘과 싸울 때의 경험을 살렸다. 콘은 소리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적멸주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허나 음파는 계속 머리를 두들겼고, 결국 극고음과 극저음의 파동이 평형을 깨트렸다.
입가에는 환희마소를 담았다.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미소다.
진기로는 뇌력금황기를 끌어올렸다.
‘화위양성소생(火為陽盛所生), 위열지원(為熱之源), 열위화지성(熱為火之性). 열위온지점(熱為溫之漸) 화위열지극(火為熱之極)……’
불은 양(陽)의 생(生). 열과 근원이 같고, 열과 같은 성질을 지녔다. 열이 점차 뜨거움을 더해가니, 불이 열의 궁극이다.
마음은 활짝 열었다. 만공심안(滿空心眼)이다. 도가에서는 삼목(三目)이라고도 부른다.
마야가 지닌 모든 무공이 한꺼번에 밀집되었다.
펑!
“카아악……!”
옆에서 싸우던 수가 처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나뒹굴었다.
수의 구혼음태는 통천서패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콘의 가공할 빠름도 절대자의 눈에는 전혀 낯선 게 아니었다. 한두 번쯤은 겪어봤던 빠름이었다.
북천신검의 천광일섬을 봤을 것이고, 남도문주의 패왕도법도 견식했을 터였다.
싸우는 방법을 안다.
퍽! 퍼억!
무상금강권이 콘의 가슴에 작열했다.
콘은 잠시 주춤하더니 곧 다시 달려들었다.
수도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어느 사람 같으면 혼절하고 남은 타격이다. 허나 이지를 상실했기에 누구보다도 삶에 대한 본능에 충실하다. 살고 싶으면 일어나 싸워야 한다는 걸 안다.
저들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
“선배, 묻고 물을 게 없고 죽고 죽일 것만 남았다면 시작하는 게 어떻습니까?”
“시작은 벌써 하지 않았나? 난 계속 공격받고 있는데 말이야.”
“그럼.”
마야는 검을 추켜올렸다.
어찌된 영문인지 혈일뢰는 그의 무공을 잘 알고 있다. 적멸주에 가미된 환희마소도 담담히 받아낸다.
통천서패가 콘과 수의 무공을 알듯 혈일뢰도 자신의 무공을 꿰뚫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