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49
349
순간, 마야의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퍼뜩 스쳐갔다.
‘뇌력금황기를 펼치면 진다!’
일견후즉파가 이런 면에서 좋다. 혈일뢰는 담담히 손을 들어올렸을 뿐인데, 간단한 손동작 하나만 보고도 그것이 뇌력금황기의 파해수법임을 알아봤다.
쒜엑!
드디어 마야의 신형이 허공에 띄워졌다.
그는 한 번의 도약으로 하늘을 점했다.
뇌력금황기는 번개의 힘을 빌려서 완성된다. 마야의 뇌력금황기는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이지만 효용이 극대화되려면 역시 번개의 이치를 따라야 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양강검(陽剛劍)이야말로 뇌력금황기의 진수다.
“하하하! 뇌력금황기. 금뢰(金雷)인가. 내건 혈뢰(血雷)라네.”
혈일뢰는 발로 툭 차서 땅에 떨어진 검을 주웠다. 그리고 두 발을 힘껏 굴러 신형을 띄웠다.
금뢰인가, 혈뢰인가.
초식 싸움이 아니다. 진력(眞力) 싸움이다.
쒜엑! 쒜엑!
진력이 가득 담긴 검은 서로를 향해 부딪쳐갔다. 진력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피할 공간이 없다. 진력이 너무 강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뭉개지고 만다.
순간, 마야는 명뇌인을 끌어올렸다.
뇌에서 일어나 육신을 지배하니 뇌천력(腦天力). 겉으로 표출되는 힘이 아니라 육신만을 제어하니 암력(暗力). 진기를 이용하지 않고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니 염력(念力). 육신이 천참만륙(千斬萬戮) 짓이겨져도 밝은 신지를 유지할 수 있으니 명뇌인(明腦引).
꽈앙!
혈뢰와 금뢰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검이 부서져 나갔다. 모래처럼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쒜엑!
혈일뢰의 손이 쑤욱 앞으로 다가왔다. 뇌력금황기를 뚫고 뻗어온 혈수다.
꽈앙!
혈수는 사정없이 가슴을 격타했다.
육신을 금강불괴로 만든다는 흑살마녀의 녹광성초가 아니었던들 그의 가슴은 구멍이 뻥 뚫리고 말았으리라.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녹광성초도 살가죽만을 보호할 뿐, 장기는 보호하지 못한다. 거대한 충격이 오장육부를 뒤흔들었으니 정신이 아득해지고 눈에서 불이 번쩍 튀긴다.
마야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허나 이미 머릿속 가득히 자리 잡은 명뇌인이 모든 고통은 허상일 뿐이라며 다독인다. 참을 수 있다고. 거짓 고통이니 꿈에서 깨어나듯 정신만 차리면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쉬익!
뒤늦게 발출된 마야의 손이 혈뢰의 가슴에 닿았다.
탄(彈)? 아니다. 격(擊)? 아니다. 충(衝)? 아니다. 오귀 중 잡귀의 영매술(靈媒術)이다.
스스스스스……!
혈일뢰의 진기가 모래밭에 물 스미듯 빨려왔다.
멸신구관에서 지겨울 정도로 몸에 붙인 사술이다. 흡혈고인의 정혈을 빨아당겼고, 미염흑매, 적선태의 절독에서 몸에 이로운 기운을 끌어당겼다.
사람의 몸에서 진기를 빨아당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크읏!”
혈일뢰의 인상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우리 사이에 어떤 은원이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은원인지 모르겠소.”
적멸주가 쏘아졌다.
혈일뢰의 두 눈이 뒤집어졌다. 검은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고 흰자위만 가득해졌다. 이미 정신을 놓고 있다는 증거다. 적멸주가 제대로 먹히고 있다는 반증이다.
고막을 틀어막았던 공부가 풀어졌다. 진기가 빨려나가면서 혈뢰신공이 무너진다.
“지금 당장은 죽이지 않으면 죽겠기에 죽이오만…… 무엇때문에 죽이는지 정녕 모르겠소.”
마야의 우수가 혈일뢰의 심장에 꽂혔다.
펑! 펑!
콘과 수가 다시 나뒹굴었다.
두 사람은 일어서지 못했다. 눈과 코와 입에서 검붉은 선혈이 줄줄 새어나오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심한 내상을 당한 것 같다.
쒜엑! 쒜에엑!
검 두 자루가 통천서패를 후려쳐갔다. 한 자루는 허리를 베어갔고, 다른 한 자루는 두 다리를 노렸다.
통천서패에게는 콘과 수 이외에도 세 여인이 더 달라붙어 있었다.
공격을 가한 사람은 일령과 천멸도주였고, 다담선자는 뒤에 서서 추명반을 만지작거렸다.
쒜엑!
백발백중, 일격필살의 추명반이 날았다.
까앙!
추명반은 오명을 남겼다. 통천서패를 격중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무상금강권이 실린 수격(手擊)에 오히려 튕겨 나가기까지 했다.
쒜엑! 쒜에엑!
일령과 천멸도주가 다시 공격했다.
세 여인의 합공은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온 것처럼 완벽했다. 바로 이주회첨진이다. 마야의 호법을 서면서 낮이고 밤이고 손발을 맞춰왔던 최고의 호위진법이다.
“하하하!”
통천서패는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하!”
마야도 웃었다.
두 사내가 웃었지만 웃음의 의미는 사못 달랐다.
통천서패는 자신감이 담겨있을 뿐이었지만 마야의 웃음에는 진기를 가일층 상승시켜주는 마령음이 담겨 있었다.
쒜에에엑! 쒜에엑!
두 여인의 검공이 급격하게 빨라졌다.
“엇!”
통천서패는 깜짝 놀란 듯 급히 무상금강권을 쳐냈다. 순간,
쒜에엑!
또 하나의 추명반이 다담선자의 손을 떠났다. 먼저 것과는 상대가 안 되는 빠름이다. 육안으로는 식별조차 되지 않는다.
퍼억!
무상금강권의 권력이 뚫렸다. 급히 몸을 트는 바람에 목을 꿰뚫지는 못했지만 팔 하나는 떼어냈다. 무신의 팔을…… 다담선자가 떼어낸 것이다.
쒜엑! 쒜에엑!
천멸도주의 검이 등을 노렸다.
통천서패는 쉽게 당하지 않았다. 바로 몸을 비틀어 피해내며 오른 발로 무상금강각을 펼쳤다.
그때, 또 한 자루의 검이 정확히 통천서패의 등을 꿰뚫었다.
“크윽!”
통천서패는 신음을 내뱉었다.
“파공음이 두 개면 검도 두 개. 선배님, 팔을 잃은 충격이 크셨나 봅니다.”
천멸도주가 사근사근 말했다.
쒜엑!
통천서패의 숨을 끊은 일격은 일령의 손에서 펼쳐졌다.
“수검의 빚이에요. 사람은 틀리지만 같은 삼원로이니…… 복수한 것으로 할게요.”
“허허! 허허허!”
통천서패는 가슴 정중앙을 꿰뚫은 검과 등에서 뚫고 들어와 복부로 삐져나온 검을 쳐다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콘과 수는 절명했다.
기막힌 일이지만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일령과 천멸도주 역시 같은 운명을 면치 못했다는 판단이다.
마야가 혈일뢰는 죽이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촌각이다. 헌데 그 촌각에 통천서패 역시 콘과 수를 비롯하여 지척에서 검을 휘두르던 두 여인까지 죽일 수 있었다.
아니, 다섯이 처음부터 달려들었다면 상황이 조금 달랐을지 모른다.
세 여인은 콘과 수가 형편없이 무너질 때에서야 뛰어들었다. 가만 놔두면 즉사하겠지만 달려들었다. 이미 콘과 수의 능력이 바닥으로 떨어진 후였으니 통천서패의 입장에서는 이 대 일로 싸운 것이요, 그 후에는 삼 대 일의 싸움이 되었던 것이다.
“사망혈인, 두 사람을 묻어줘. 한 무덤에. 이 사람들…… 서로를 정말 좋아했어. 백치가 된 후에도 콘은 수만 찾았어. 수가 구혼음태를 펼치면 어떻게 알았는지 달려와 상대를 죽이더라고.”
낙서고에서 보인 콘의 행동은 제정신으로 돌아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때였다.
“마, 마야……”
다담선자가 무엇을 봤는지 떨리는 음성으로 마야를 불렀다.
마야는 다담선자가 쳐다보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사람이 깃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두 발이 묶여서 꺼꾸로 매달려 있다.
마야가 신음처럼 이름 하나를 흘렸다.
“마도!”
제10장 이오자(二五仔) ― 망할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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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대에 묶여 축 늘어진 사람이 마도인지 아닌지는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손에 묶고 있는 도는 분명히 핏빛 혈염도였다.
상황을 정리하기가 어렵다.
삼원로가 유계 마인들을 데리고 나타나는가 하면, 유계 총단을 찾으러 갔던 마도는 깃대에 매달려 나타났다.
유계와 북검문이 동시에 나타난 것만은 틀림없다.
마야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잠깐! 함정이라도……”
곡부인이 급히 만류했지만 마야는 벌써 깃대까지 달려가 마도를 끌어내리는 중이었다.
다행히도 마도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마야는 손을 명문혈에 대고 진기를 불어넣었다.
옆에 누가 있어도 상관없다. 북검문주나 유계의 주공이 쳐와도 괜찮다. 당장은 마도부터 살려야겠다.
마야의 의지는 확고했다.
일령과 천멸도주, 그리고 다담선자는 즉시 삼방을 점한 채 호법에 나섰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휴우!”
마야는 깊은 숨을 토해내며 손을 뗐다.
마도는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 명문혈을 통해 불어넣은 진기가 거침없이 기경팔맥을 휘돈다. 상처가 크지 않다는 뜻이다.
마야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마도의 몸에 머물렀다.
오른쪽 갈비뼈 밑으로 파고든 검상이 눈에 띈다.
무척 깨끗하다. 원래부터 그런 상처를 안고 태어난 사람처럼 살결이 일그러지지 않았다. 검을 쑤신 흔적이 없는 것이다.
검은 쑤셨으나 내장의 손상은 최소화시켰다. 그런 점으로 보아 죽일 의도는 없었다.
마치 ‘내 솜씨 어때?’하고 자랑하는 듯 보였다.
오른쪽 허벅지도 베였다.
깊고 큰 상처다.
아마도 마도는 이 상처 때문에 평생 절름발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상처를 들여다보자면 놀라운 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 허벅지 상처는 공을 무척 많이 들였다. 마도를 묶어놓고 온 정성을 다해 칼질을 했다.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다. 느리게 그어진 도흔이며, 대도(大刀)를 사용하였으나 소도(小刀)를 사용한 것처럼 정교하다. 혈맥은 건드리지 않고 신경만 끊었다.
죽일 생각은 없으나 고이 보낼 생각도 없다는 뜻이다.
두 상처는 각기 다른 사람이 전개했다.
목을 걸고 내기해도 좋다. 한 사람 솜씨는 아니다.
‘북검문주, 남도문주.’
세상에 이와 같이 검과 도를 깨끗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은 그 두 사람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때, 마야의 머릿속에 환청이 울렸다.
― 와라. 혼자. 동백산(桐柏山) 방성(方城)으로. 길을 걷다보면 만나게 될 터이니.
‘음공?’
자신이 쓰는 것과 유사한 형태다. 아니, 유사한 정도가 아니라 똑같다. 소리가 옆에서 말한 듯 뚜렷하게 전달된다는 점에서는 자신보다 한 수 위다
‘방성.’.
마야는 잠시 망설였다.
혼자 오란다. 가야 하나? 가야 한다. 같이 갈 사람도 없다. 호채마의 무공은 이미 봤지 않은가. 통천서패 한 명에게 쩔쩔 맬 정도라면 같이 가도 짐만 된다.
방성은 일명 초장성(楚長城)이라고 불린다.
초나라 때 지어진 산성이다. 강을 두 개나 안에 두었으며 다섯 개 현(縣)을 아우른다.
초장성이라고 하지 않고 방성이라고 말한 것은 방성산(方城山) 쪽에 있는 산성을 말함이리라.
“다담, 도주.”
마야의 부름에 두 여인이 돌아봤다.
“다담은 제이성을 정비해줘.”
“알았어요.”
“도주, 도주의 벽추검(碧秋劍)을 빌릴 수 있을까?”
순간 두 여인은 움찔했다. 마야의 말뜻을 어찌 모르랴.
“마야!”
“나도 무인인데, 검 한 자루는 제대로 된 걸 가지고 가야지.”
“어디로?”
마야는 싱긋 웃었다.
말해주지 않는다. 가로막아도 간다. 그나마 간다는 말이라도 해주고 가니 얼마나 다행인가. 남몰래 살짝 빠져나갈 수도 있었는데.
“돌려줄 거야?”
“……”
마야는 대답 없이 일어섰다.
두 여인에게는 상당히 절망스러울 게다. 허나 사실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마야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한 상대이니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 따위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기다릴게요.”
다담선자가 다가와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자, 가져가! 안 가져오면 너 대신 여기 있는 다담을 괴롭힐 거야. 알았어!”
천멸도주가 벽추검을 던지듯 건네주었다.
***
산성 좌우로는 큰 나무들이 빼곡했다. 옛날에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나무를 잘랐을 터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길게 놓인 돌무더기만 남아있다.
혼자 사색하며 걷기에는 딱 좋은 길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한참을 걸었다.
중간에 몇 번이고 천멸도 살수들을 돌려보내는 수고도 해야 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고 해가 떨어질 무렵, 드디어 모닥불을 발견했다.
모닥불 가에는 노인 둘이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두 노인은 선풍선골(仙風仙骨)의 풍모를 지녔다. 인간 세상 사람이 아니라 선계에서 내려온 듯 우아함과 정중함과 포근함이 모두 풍겨나왔다.
마야는 거침없이 걸어가 모닥불을 끼고 앉았다.
“마야요.”
첫마디였다.
“허허! 난 양학산이라고 하지.”
북검문주 북천신검, 이 시대 최고의 무인이 바로 옆에 앉아있는 노인이다.
다른 한 노인은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다. 그래도 안다. 그가 패왕도법의 주인인 남도문주임을.
“혈일뢰를 일합에 죽이더군. 잘 봤네.”
북검문주는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아직 멀었어. 까딱하면 되려 당할 뻔 했짢아.”
남도문주가 툭 쏘았다.
“허허! 나이를 감안해야지. 자넨 이 나이에 뭘 했나? 혈일뢰 같은 고수와 만났다면 필패했을걸!”
“후후후!”
두 노인이 말하는 동안 마야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할 말은 없었다. 허나 있다고 해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벌집처럼 윙윙 울린다. 범종 안에 가둬져 있는데, 바깥에서 마구 두들기는 것 같다.
‘마령음…… 적멸주! 흑! 마령은……’
북검문주는 음성에 마령음을 실었고, 남도문주는 적멸주를 담았다.
절대 패자인 두 노인은 마야처럼 특이한 능력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허허! 젊은 사람이 정신 없나 보군.”
“그만하세. 이러다 정신 나갈라. 자네도 검을 뽑을 생각일랑 하지 말게. 그래봤자 일초지적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