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5
35
삼공자가 궁금해하는 점은 이것뿐이다. 다른 이야기는 관심도 갖지 않으리라. 하지만 명분은 채워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또 알아야 한다.
“상소라는 곳에서 잠사검귀 다섯 명이 죽었죠. 그들을 죽인 자가 혈유, 마야의 수족입니다.”
“혈유라…….”
역시 관심없다. 진지하게 듣는 듯해도 머릿속으로는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적혈구에서 비조선을 타고 건널 때 고루쌍마도 봤죠. 특이한 체형이라서.”
“그리고?”
“경산(京山)에서부터 자하일봉과 행동을 같이했던 노인이 있었고, 기도가 심상치 않은 두 사내도 있었죠.”
“그들이 시마, 마도, 사흡검법을 지닌 자군. 가만! 그럼 그때까지만 해도 추명반은 없었다는 말이네?”
“그렇습니다. 추명반은 합류하지 않은 상태였죠. 추혼검수께서 하선루를 뒤졌는데…….”
“선몽이란 선루를 지워 버린 이야기는 들었고. 다음.”
삼공자는 부드러운 어조로 이야기를 재촉했다. 왜 그렇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당장 마야를 붙잡고 싶은 욕구가 부글부글 끓어오를 텐데.
“마야가 선몽에 있을 때 추명반이 합류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전 그때까지만 해도 시마, 마도, 사흡검법, 추명반은 생각지 못했지요. 혈유와 고루쌍마가 있으니 그에 필적하는 자들일 것이라고. 그래서 말씀드렸다시피 미천한 재주를.”
“철벽구망진이 그렇게 허약했다면 처음부터 삭골망혼진으로 몰아넣지 그랬어.”
“아셔야 할 게 하나 더 있죠. 철벽구망진을 허약하다고 말씀하실 분은 공자님뿐. 그런데 깨졌단 말이죠. 그것도 몰살이라는 최악의 경우로. 천랑대주님.”
만박선생은 ‘공자님’이라는 말을 하려다 천랑대주 쪽으로 화살을 돌렸다. 천비대주나 삼공자와는 우의를 쌓아야 한다. 조그만 자존심도 건드릴 필요가 없다. 하지만 천랑대주는 경계해야 할 자다.
“흑운무를 깔아놓고 잠형신법(潛形身法)을 펼친 후에 무음검(無音劍)을 전개하는 자들과 만났다면 어떤 수를 쓰실지. 단, 일다경 안에 파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만.”
천랑대주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어떤 식으로든 깰 수야 있을 것 같은데, 일다경이라는 시간적 제약이 붙는다면 쉽게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가 알고 있는 철벽구망진은 만박선생이 말한 게 전부가 아니다. 잠사검귀들을 운용하는 묘리에는 팔괘와 구궁의 묘가 깃들어 있다.
“나로선 힘들겠군. 일다경 안에 끝내야 한다면.”
천랑대주가 눈살을 찡그리며 말했다.
“딱 하나. 눈으로 보고 칠 수 있다면 가능하죠.”
“하하! 농담하나. 그럼…… 마야가 흑운무를 뚫고 은신해 있는 잠사검귀를 보았다는 말인가?”
“도가에 자연을 보는 눈이 있죠.”
“만공심안!”
“마야라는 자, 괴상한 자예요. 그가 펼치는 능력이라는 것이 전부 무공이 아녜요. 만약 무공을 지녔다면 어떨까요? 전 끔찍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모두들 벙어리가 되었다.
마령음은 진기의 흐름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다. 만공심안을 무학에 응용하면 쾌검을 둔검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 아무리 빠른 초식이라도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다.
어떤 자라도 그의 앞에서는 삼류무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삼공자 단부동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 깊이 생각하다가 불현듯 생각난 게 있는 듯 말을 꺼냈다.
“사형제들이 올 거야. 마야 건은 사형제가 모두 모이면 다시 이야기하자고.”
“그럼 저 먼저 일어서겠습니다.”
천랑대주는 삼공자의 얼굴을 힐끗 쳐다본 후 몸을 일으켜 장막 밖으로 나갔다.
삼공자는 천랑대주가 사라진 후에도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뜨거운 차가 차게 식을 무렵, 삼공자는 상체를 반듯하게 일으키며 형형한 눈길로 만박선생을 쳐다봤다.
“북검문에는 삼뇌(三腦)가 있지.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머리가 너무 많아. 떠드는 사람이 많아서야 배가 산으로 가지. 일뇌(一腦)면 충분하다고 보는데, 자네 생각은?”
‘위험!’
만박선생은 살기를 감지했다.
너무 위험한 말을 단도직입적으로 한다. 대답 여하에 따라서 이 자리에서 목을 벨 수도 있음이다. 죽음을 안겨줄 사람은 천비대주다. 천비대주와 삼공자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은 비밀도 아니니까.
천랑대주가 물러갈 때 조금은 비밀스런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직접 몸통을 치고 나오는 것인가. 삼공자답다. 툭툭 털어놓고 즐기는 것은.
인용을 겸비했다고 알려진 사람, 그에게는 추진력도 있다.
만박선생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천기수사(天機修士)와 육능자(六能子)를 제거하겠다는 말씀처럼 들리는군요.”
상대가 노골적으로 나올 경우 대응 방법은 세 가지다. 이쪽도 탁 터놓는 것이 하나요, 두루뭉술하게 피해가는 것이 둘이요, 암계(暗計)를 심는 것이 셋이다.
만박선생은 네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뜸을 들이는 것.
“바로 그거야. 만박선생이 할 일이.”
“어려운 말씀. 소생에게 무슨 힘이 있다고요.”
“하하하! 이제 와서 발뺌하기는 너무 늦었지. 본문에 있어야 할 만박이 천비대주와 동행한다는 건 나보고 오라는 소리 아니었나? 그 정도 눈치는 있다고 보는데. 왜? 다시 생각해 보니 그릇이 너무 작은 것 같은가?”
“절 너무 높게 보시는군요. 하나 이미 나온 말이니…… 일생일대의 도박 같은데, 공자님을 관찰할 시간쯤은 주실 거로 생각됩니다만.”
“후후후! 나를 관찰하겠다?”
“우선 선물은 드리지요.”
“선물이라.”
“마야면 되실는지.”
삼공자의 눈에 광채가 어렸다.
“좋아. 주는 선물이니 기꺼이 받지.”
“마령음과 만공심안은 얻으실 수 있으신지요?”
“자네가 내게 오는 게 그땐가?”
“마령음과 만공심안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면 승패는 갈라진 것. 망설일 이유가 없죠.”
“얻지 못한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죠. 공자님께서는 망인(亡人)이 되셨을 테니. 제 선물에는 독이 발라져 있는데, 그래도 받으실지.”
삼공자 단부동은 촌각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언제 줄 텐가?”
칠신녀(七神女)를 제외한 사남 일녀, 그들은 삼공자보다 한 시진이나 늦게 도착했다.
천비대가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소식을 늦게 전한 까닭이다. 그러나 그들은 불쾌한 기색을 띠지 않았다. 천비대와 삼공자는 한 몸이나 다름없으니 조그만 불이익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항상 그래 왔다. 정보를 접하는 면에서 삼공자는 늘 한 발 앞서 나갔다. 어떤 경우에는 삼공자만 알고 넘어가는 사건도 왕왕 발생했다.
솔직히 화가 난다.
그래도 참는다. 정보 쪽에서는 뒤지지만 다른 쪽에서 우월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한쪽에서 뒤진 것은 그쪽에서 만회하면 된다.
천랑대주는 호탕하게 웃으며 걸어가 일공자에게 포권지례를 취했다.
“하하! 마야란 놈이 마령음뿐만이 아니라 만공심안까지 펼쳤다는군요. 안으로 드시죠. 만박선생이 자세한 말씀을 해줄 겁니다.”
마흔쯤 되어 보이는 중년인, 일견하기에도 끊고 맺음이 분명해 보이는 일공자 고굉성(顧宏星)이 기분 좋게 웃으며 천랑대주를 반겼다.
“고생한다는 소리는 들었네. 단문협 건은 끝났는가?”
“소제가 하는 일인데 빈틈이 있을 리 있겠습니까. 자하일봉이 단문협에 들어와 제사까지 지내고 가는 수모만 겪지 않았어도 개운할 텐데, 꼭 똥 싸고 밑 안 닦은 것마냥 찜찜합니다. 하하하!”
“그게 어디 자네 탓인가. 천비대가 그 정도 일은 해줬어야지. 쯧! 천비대도 한물 간 모양이야. 들어가지. 마야란 놈이 어떤 놈인지 들어나 보세.”
일공자는 장막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뒤를 삼남일녀가 뒤따랐다.
이, 사, 오공자. 그리고 육신녀(六神女).
육신녀는 들어가려다 말고 천랑대주를 보며 한마디 했다.
“천랑대도 수련을 더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천랑대의 첨봉(尖峰)들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촌각도 버텨내지 못하는지. 그러다 허수아비라는 소릴 듣겠어요.”
“말이 지나치시오!”
“천랑대가 허수아비가 되든 개똥이 되든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북검문의 명예는 지켜주세요. 한낱 마도 놈들에게 휘둘려서야 북검문도라고 할 수 있어요?”
한기가 풀풀 날리는 이십대 중반의 여인, 서군봉(徐軍峰). 천랑대주에 비하면 십여 년이나 나이 차가 난다. 그러나 뼈를 얼리는 얼음 조각들이 쏟아져 나오는 그녀의 눈은 천랑대주를 같은 눈높이에도 두지 않았다.
천비대주는 죄인이 되었다.
추적해서 잡지 못한 자가 없다는 천비대의 역사에 오점을 남긴 최초의 대주가 되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는 당당했다. 자신을 문책할 사람은 문주이지 그 제자들은 아니다. 칠성군과 대주가 상하 관계인가? 아니다. 서로 존중하는 사이이지 간섭할 권리는 없다.
무시하는 측면도 있다.
칠성군이라는 거창한 호칭으로 불리지만, 그들이 한 일이란 무공 수련이 고작이다. 직접 땅을 밟으며 땀을 흘린 사람은 자신들이다.
운이 좋아서 무신들에게 무공을 하사받은 자들.
천비대주는 속내를 숨긴 채 그간의 경과를 담담하게 말했다.
빠진 부분은 없다. 사실 파악을 끝낸 후일 테니, 숨겨봤자 사람만 치졸해진다.
“마야가 자하일봉에게 접근한 이유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나?”
이공자 도건평(陶建平)이 표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눈매가 날카로운 삼십대 후반의 사내. 머리숱이 거의 없고, 피부가 거무튀튀해서 더욱 강퍅해 보이는 사람.
그의 심성은 마도에 더 어울린다 싶을 정도로 잔인하다.
“그놈들은 일가붙이가 없는 놈들이라서 파악하기가…….”
“너 천비대주 맞아!”
살기를 품고 쏟아져 나온 호통이 천비대주의 말을 가로챘다.
천비대주는 울컥했다.
그러면 뭐 하나.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을. 문주의 총애를 받는 사람들이고, 무공도 최강을 달리는 절대고수들인 것을.
천비대주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말문을 닫았다.
“지금 마야란 놈은 어디 있어?”
“단문협에서…… 삼십 리 떨어진 옥천산(玉泉山)에…… 있습니다.”
“몇 놈이나!”
“그 사람들 그대로…… 열한 명입니다.”
“박살났다던데 그래도 뒤를 밟을 생각은 했나 보군.”
천비대주는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잡았다. 만박선생이 제때 끼어들지 않았다면 한마디쯤 했을 게다.
“이공자님, 제가 잠시 말씀을. 제게 잠사검귀가 있다는 것은 아실 테고. 잠사검귀 일대가 몰살당했으니 허튼 수야 쓰지는 못하죠. 힘으로 부딪치는 것은 무리, 하지만 뒤만 밟는 정도는 충분한 아이들입니다.”
“천비대가 아니고 잠사검귀들이 따라붙었다는 건가? 쯧! 밥버러지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으니.”
‘넌 언젠간 내 손에 죽어.’
천비대주는 눈을 감아버렸다.
육신녀 서군봉이 차게 굳은 얼굴로 만박선생을 쳐다보며 말했다.
“본문에 있어야 할 만박선생이 왜 여기 있는 거죠? 거취를 결정한 건가요?”
만박선생은 옅은 웃음을 띠었다.
“저같이 둔한 사람을 어디에 쓴다고요. 받아주실 분이나 있으실지. 우연히 적선서가 죽었다는 소리를 접했죠. 호기심이 치밀더군요. 어떤 자가 적선서를 죽일 수 있을까 하고. 아! 제가 말하는 것은 보통 무인들의 경우죠. 사실 적선서 같은 영물을 죽일 만한 무인은 흔치 않으니까요.”
“호기심뿐인가요?”
“어딜요.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는데, 놈이 움직이는 꼴을 보니 조직적이더군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달려들어 봤는데. 하하하! 아시다시피 창피만 톡톡히 당했어요.”
“그럼 이젠 본문으로 돌아가실 건가요?”
육신녀는 심문이라도 하듯 날카롭게 물었다.
만박선생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아직은 돌아가고 싶지 않군요. 이렇게 망신을 당해서야 체면도 서지 않고. 어느 분이 마야를 쫓으실지. 마야와 한두 마디쯤은 나눠봐야 되지 않겠어요? 제 아이들이 뒤를 쫓고 있으니, 길도 제가 안내해야 되겠죠.”
그제야 사남일녀는 날카로운 눈빛을 풀었다. 그리고 내내 침묵만 지키던 삼공자의 눈가에는 웃음기가 살짝 드리워졌다.
‘자, 시작해 볼까. 첫판이 무림의 운명을 건 도박이라면 나도 운이 좋은 편이지.’
만박선생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2
향화가 끊긴 지 오래된 절은 들쥐들로 들끓었다. 머리가 떨어진 불상은 거미줄로 뒤덮여 세상의 무상함을 말해준다.
“밤이슬만 피하면 됐지 뭘 더 바라. 객지에 나와서 호강할 생각한 것도 아니고.”
시마는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바닥에 나뒹구는 불상 머리를 베개 삼아 드러누웠다.
소립파도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다담선자는 소립파의 옆 자리를 차지했다. 그의 팔을 베고, 그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지만 두 사람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요?”
“아니.”
“이걸로 되겠어요?”
“…….”
“후회 안 하겠어요?”
“…….”
“처음 봤어요. 마야께서 우는 것.”
“그만 자.”
“저한테 그러셨죠. 가가 때문에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사랑이면 옷을 벗으라고. 기다려 줄 테니 세상에서 제일 깊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자신이 들 때 오라고.”
“그랬나?”
“전 그 말 잊지 못해요. 가가 품에 안긴 날이잖아요.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깊이를 잴 수 없는 사랑을 받는데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 여자는 없을 거예요. 혈귀대주라는 분, 가가께는 그런 친구 아니었어요?”
“그만 해. 피곤해.”
두 사람의 대화는 끊겼다.
소립파의 삶, 인생, 사랑…… 어떤 것인지 짐작된다.
그런 사랑이기에 남들이 보는 앞에서도 껴안고 잠들 수 있으리라. 그토록 치열한 삶이기에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행동도 할 수 있는 게다.
세 여인은 한쪽 구석에 다소곳이 앉아 각자의 생각에 잠겨들었다.
금연화는 소립파만 생각했다.
혈귀대주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그의 힘이 필요하다. 어떻게든 힘을 얻어야 하는데, 당사자는 제 갈 길로 가잔다. 먼 길을 따라오며 사정을 거듭해도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소립파를 얻지 못하면 무엇을 해야 하나.
남무림으로 가서 그가 열거한 문파들을 초토화시켜야 하는데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상조문, 철사문, 독조림이 만만한 문파도 아니고, 궁왕 강창도는 무신으로 추앙받는 사람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