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50
350
북검문주와 남도문주는 그제야 평상시 음성을 토해냈다.
‘철저히…… 기선을 제압당했군.’
검을 뽑을 기회조차 말살해버리는 음공이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정말 검을 뽑을 생각을 못했을 게다. 머리를 조아리며 처분만 바랬을 게다.
마야는 만공심안을 펼쳐 마음을 활짝 열었다. 두려움을 힘껏 떨쳐냈다.
“북검남도, 두 분이 어린 후배 하나 협공하자고 여기까지 불러내지는 않았을 것이고…… 용건이 있겠죠. 허나 그 전에 궁금증이 있으니 몇 마디 물어봐야겠습니다. 유계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북검문주와 남도문주의 눈가에 놀람이 스쳐갔다. 그러나 놀람은 곧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역시 마군의 제자답군. 허허! 유계와 어떤 관계냐고 물었는가? 내가 유계의 주공이네. 이 친구도 주공이고.”
“……!”
마야는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관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이들이 유계를 장악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선사가 잘못 알았나? 선사께서는 일 대 일로는 북검문주나 남도문주도 주공의 상대가 안 될 것이라고 말하셨는데 뭘 잘못 알아도 크게 잘못 아신 것 같다.
“궁금할 것 없네. 강자는 늘 공격의 대상이지. 이 친구와 내가 주공을 제거하고 유계를 두 쪽으로 쪼개 나눠가졌네. 그게 벌써 십 년 전 일이지?”
“십일 년.”
“허허허!”
세상이 남북 무림으로 갈려 싸움에 열중하는 동안 북검문주와 남도문주는 전혀 다른 싸움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유계에서 마인들이 왔더군요. 유계로 초빙한다고. 어느 분이었습니까?”
마야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그런 일은 남무림에서 시작되어 북무림까지 이어졌다.
북검문주는 대답 대신 밀봉된 서신 한 통을 꺼내 바닥에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묵직한 돌을 얹었다.
“자네가 궁금해 할 것은 이 안에 다 적어놨네. 우리 둘을 죽이고 살아갈 자신은 있나? 그런 경우가 벌어지면 이 서신을 보면 될 걸세. 그럼 우리 질문만 남았군. 마군은 어디 있나?”
“……?”
마야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신들은 왜 선사의 타계를 믿지 않는 것일까?
선사를 찾는 이유는 자명하다. 방금 전에 북검문주가 자신 입으로 말했다. 강자는 공격의 대상이라고. 유계의 주공을 죽였듯이 선사를 죽이려는 게다.
천수를 다할 나이가 된 것 같은데, 이 나이에도 호승심이 살아있는 것인가? 아니면 수다방법을 가리지 않고 천하제일인이 되고 싶기 때문인가.
“모르는군. 정말 몰라. 허허허!”
북검문주는 허탈하게 웃었다.
“마군…… 원래 숨는 데는 달통했으니까.”
남도문주가 말을 받았다.
“선사이십니다. 돌아가셨습니다. 후후! 돌아가셨다. 돌아가셨다.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리 말해도 안 믿더군요. 생존해계시다는 증거라도 있는 겁니까?”
두 사람은 묵묵히 마야를 쳐다봤다.
다시 머릿속이 벌집처럼 웅웅거린다.
음파로 머릿속을 두들겨 참과 거짓을 구분해 내려는 게다.
“정말이군…… 정말 죽었어. 그럼 갈왕지룡은…… 갈왕지룡은 어떻게 된 건가?”
“하하하! 하하하하!”
느닷없이 마야가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그것 때문에…… 한낱 미물 때문에 선사께서 살아 계시다고…… 하하하! 그렇죠. 갈왕지룡은 선사께서 주신 음식만 먹습니다. 하지만 또 한 사람이 주는 먹이도 먹죠.”
“흑살마녀 말인가?”
“선사와 그 분은 영혼의 합일을 이루셨으니 미물의 눈에는 같은 분으로 보일 겁니다. 하하하하!”
마야는 통쾌하게 웃었다.
반면에 북검문주와 남도문주의 인상은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거보게. 살려두길 잘했지.”
북검문주가 남도문주에게 말했다.
“이놈이 남무림을 휘저을 때 자네 말대로 죽였으면 어쩔 뻔 했나. 우리는 영영 이대로 지내야 하지 않겠나.”
“그렇군. 허허허!”
두 사람은 알지 못할 소리를 했다.
북검문주가 마야를 보며 말했다.
“넌 지금부터 우리 무공의 허점을 찾아야 할 게야. 일견후즉파의 능력으로. 우리 무공을 볼 수준 정도는 되었으니…… 일견식(一見識)이면 되겠지.”
스르릉!
북검문주가 검을 뽑았다. 그리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검초를 전개했다.
쒜엑! 푸욱!
“끄윽!”
마야는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서 느닷없이 전개한 일 검에 옆구리를 꿰였다.
마도가 상처를 당했던 바로 그 부위다.
“천광일섬이네. 봤나?”
‘이 사람들이!’
마야는 비로소 남도문주와 북검문주의 의도를 눈치챘다.
북검문주와 남도문주에게는 불행이고, 마야에게는 다행인 사건이 있다. 바로 자의성검은 궁왕이 동귀어진한 일이다.
마야는 북검문주의 말을 들은 순간 같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을 떠올렸다.
이들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싸우면 동귀어진 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이긴다는 건 불가능하다. 해서 제 삼자를 통해 무공의 우열을 가리려는 게다.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짓이지 않은가.
마야는 솟구치는 핏물을 꿀꺽 삼켰다.
생사의 기로다. 이들은 너무 강하다. 심신이 멀쩡해도 당하지 못할 거목이다. 하물며 지금은 일검까지 당했다. 그가 자랑하던 마령음이나 적멸주는 이들이 더 능숙하게 사용한다.
도무지 승산이 없다.
그렇다고 마냥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마야는 바짝 긴장하며 말했다.
“봐, 봤소.”
순간, 북검문주와 남도문주의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
“정말 파해법을 봤느냐!”
남도문주의 입에서 거센 되물음이 흘러나왔다. 그의 음성은 잔잔하게 떨리고 있었다.
“천광일섬의 파해법은……”
“그만. 이제 자네 차례네.”
북검문주가 남도문주를 쳐다봤다. 찰나,
쉬익!
남도문주가 느닷없이 마야의 목덜미를 움켜쥐더니 등 뒤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자신도 벼락같이 물러섰다.
쒜엑!
북검문주의 검도 곧바로 뒤따랐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움직임이 일자마자 검을 뻗어냈다.
“살고 싶으면 말해라. 파해법은?”
마야의 멱살은 어느새 남도문주의 손아귀에 잡혀있었다.
“급상(急上), 첨(尖), 첨(尖), 첨(尖), 완류(緩流).”
남도문주는 즉시 말을 알아들었다.
패왕도법이 펼쳐졌다. 마야의 말대로 급상, 위로 뻗어 올라가 천광일섬의 검로를 가로막았다.
첨첨첨!
대도로는 매우 펼치기 힘든, 급상의 상태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직첨(直尖)이 연속으로 세 번이나 떨쳐졌고, 마지막으로 완만히 흐른 도결이 육신 한 복판으로 쏘아져갔다. 바로 그 순간,
퍽! 푸욱! 사아앗!
종류가 다른 세 가지 기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남도문주의 대도는 북검문주를 베였다. 그가 노렸던 부위를 정확히 갈랐다. 심장에서부터 폐까지 깊숙히 베어냈다.
북검문주의 천광일섬도 남도문주의 심장을 꿰뚫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남도문주는 바보가 아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천광일섬을 파해하기 위해 밤잠을 설쳤다.
마야가 파해법을 일러주었을 때, 그는 ‘바로 이거다!’하고 무릎을 쳤다. 모두들 빠름만 보았는데, 마야는 검로(劍路)를 보았다. 인간이 쳐내는 검은 관절의 움직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천광일섬이 뻗어올 수 없는 사각에서 패왕도법을 전개하는 것이니 백전백승이다.
헌데 동귀어진이다.
마지막 순간에 미약하나마 진기가 빠져나갔다.
혈일뢰를 죽였던 영매술이 남도문주에게 펼쳐졌다.
마야를 잡은 게 잘못이다. 그와 살을 맞댄 게 실수다. 평생 최대의, 잊지 못할 치욕이다.
“후욱!”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고 털썩 주저앉았다.
***
― 삼 장을 오르면 삼 장 만큼 밖에 못보고, 백 장을 오르면 백 장만큼 밖에 못 보는 법. 우린 천 장 높이에서 무공을 볼 줄 아는 자가 필요했다. 그것도 일견후즉파의 능력을 가진 자가.
서신의 시작이다. 또한 욕심의 시작이다.
북검문주와 남도문주가 노린 건 천하제일인이다. 같이 나눈 세상이 아니라 혼자 독식하는 세상이다.
제일 먼저 마군을 죽였다. 허나 완전히 죽이지는 못하고 섣불리 건드리기만 했다.
마군은 깊은 상처를 입고 도주했다.
그 후, 잔접이 탄생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마군의 짓이다.
북검문주와 남도문주는 잔접의 탄생을 지켜봤다. 그들이 마야를 키워 북검, 남도를 상대하려 한다는 것까지 알아냈다.
두 사람은 마야를 지켜봤고, 일견후즉파의 능력에 탐욕을 느꼈다.
탐욕, 그렇다. 일견후즉파를 잘만 이용하면 무림을 독식하는 길이 열린다.
알지 못하는 것은 마군의 행방이다. 중원 곳곳을 뒤져도 마군만은 찾아내지 못했다.
알고 있는 정보는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다.
북검문주는 마야의 벗인 혈귀대주를 핍박했다. 남도문주는 우직한 궁왕을 이용했다. 그들에게 유계의 실체, 자신들의 또 다른 신분을 알려주고, 잔접의 존재까지 은근슬쩍 넘겼다.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혈귀대주의 죽음, 마야의 등장, 그리고 멸신구관에 들기까지……
마야가 멸신구관에서 나왔을 때도 두 사람은 서둘지 않았다.
마야의 무공이 자신들과 비슷한 경지까지 올라서야 한다. 패왕도법과 천광일섬을 알아보려면 그와 비슷한 무공을 지녀야한다.
일견후즉파는 상대를 꺼꾸러트리기 위한 도구다. 즉, 남도문주의 무공, 북검문주의 무공을 보고 파해법만 찾아주면 된다.
그래서 유계의 무인들이 동원되었다.
마야에게 실전감각을 높여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무공을 점검하기 위해서.
명목으로는 유계의 주공이 도움을 청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럴 이유는 아무 것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마야를 곤란하게 만들면 마군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제자가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어느 사부가 나서지 않으랴.
결과적으로 남도문주와 북검문주는 자신들을 동귀어진시켜 줄 사람을 찾은 것이다.
마야는 서신을 구겨버렸다.
이게 뭔가? 단 두 사람의 탐욕 때문에 장강 싸움이 끊임없이 벌어졌단 말인가. 자신이 그 많은 사람을 죽인 것도 단지 상승 무공을 읽어달라는 주문이었단 말인가.
“망할 놈들!”
마야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2
유월 십사 일.
절혼마녀는 득녀(得女)했다.
갓난아이는 뼈마디가 너무 가늘어 조금이라도 세게 잡으면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두 손으로 꼭 껴안는 것도 불편하다. 금방이라도 목이 뒤로 젖혀지며 뼈가 상할 것 같다.
낙화향? 아니다. 복우산 제이성이다.
마야는 방성에서 돌아오는 즉시 절혼마녀를 불러들였다. 시마도, 언장은마도…… 편히 쉬고 싶은 사람은 모두 불렀다.
제이성은 정말 편히 쉴 수 있는 안락처다.
“세상이 시끄러운 모양이야.”
시마가 지나가는 말로 했다.
그럴 것이다. 유계 마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들과 정도 무인들 사이에는 끊임없이 살육전이 벌어진다. 북무림은 구파일방이 중심에 섰고, 남무림은 오대세가가 주축이 되어 마도 토벌을 벌이고 있다.
장강싸움은 잊혀진지 오래다.
정신 잃은 자들이 미친듯이 난동을 부리는데 장강 싸움을 벌일 틈이 어디 있는가.
그들보다 더 무서운 자도 있다. 유계를 이끌었던 초고수들이다. 그들의 무공은 정말 놀랍다. 대문파 장로들도 쩔쩔 맬 정도로 강하다. 그리고 마인이다.
사람들은 북검문주와 남도문주를 찾았다. 삼원로를 찾고, 만사무불통지와 궁왕을 찾았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무신들은 일제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자신들의 기반을 고스란히 놓고 육신만 사라졌다.
칠대무신의 실종.
당대 무림의 최대 사건이다.
“마도는 어디 있답니까?”
마야가 아이를 어르며 물었다.
“떠돌아다니고 있겠지 뭐. 지금 같은 시기야 마도에게는 최고겠지. 발끝마다 차이는 놈들이 죽일 놈이니.”
제이성에 모인 사람들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시큰둥했다.
“마야.”
다담선자가 들어왔다.
“나가보세요. 반가운 손님이 왔어요.”
“손님? 누구?”
“금소저요. 남만에서 이제 돌아오는 길이래요.”
“아!”
마야는 아이를 다담선자에게 넘겨주고 대청으로 나갔다.
여전히 아름답고 청초한 금연화가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말 들었어요. 이제 정말 끝났네요.”
그녀는 여독에 지친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방금 뭐라고 했소!”
“떠나셨다고요.”
“아니, 아니. 그 전에!”
“글쎄요. 얼핏 봐서. 이마에 큰 혹이 튀어나왔다는 것밖에는 기억나지 않아요. 왜요?”
마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부님이…… 살아계셨어.”
마야는 이제야 북검문주와 남도문주가 왜 그토록 바보같이 행동했는지 깨달았다. 그들만이 아니다. 삼원로도 그렇고 만사무불통지나 궁왕도 그랬다.
그들은 항상 마군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다.
그 짐만 없었다면 마야 정도는 장강을 넘는 순간 제거되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혈귀대주의 무덤에 나타나는 순간 죽었을 지도.
아닌가? 그래도 일견후즉파에 대한 탐욕이 도사리고 있나?
사부가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살아있다.
내가 살아있으니 조심해라.
내가 복수의 칼을 갈고 있다. 나에게 검을 꽂은 자……
‘사부……’
마야는 제이성 천정에 뚫린 작은 공간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
“제자 하나 독특하게 키우시우.”
“놈들이 먼저 덤벼들었잖아.”
“그래봤자 저 놈…… 무림에 뜻이 없는데.”
“그래도 세상 사람들은 잊지 않아. 그놈…… 무패(無敗)야.”
“좋겠수.”
“좋지.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