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9
39
놀란 게 너무 많아서 이제는 놀랄 기력도 없다. 분명한 것은 허풍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금연화 차례.
“자하부에는 자하밀공이 있는데, 성취는?”
‘자하밀공도 알고 있었어.’
“이제 겨우 육성 정도예요.”
“한 달 만에 일성이나 높였다면 겨우라고 할 수 없지.”
“그, 그것까지! 어, 어떻게 성취도까지! 무공을 보인 적도 없는데!”
놀랄 기력이 없다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무공 수준을 정확히 꿰뚫고 있으니 이 사람…… 사람이 아니라 귀신인가!
“자하밀공이 뒷받침된 자하쌍구검이라면 해볼 만해. 요체는 진작 깨달았는데 성취가 더딘 것은 내력이 딸리기 때문이겠지.”
“할…… 말이 없군요.”
“다담.”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다담선자가 백옥으로 만든 피리를 꺼내 건넸다. 아무런 문양도 새겨져 있지 않아서 단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피리다.
“오늘부터 한 시진씩. 매일 이 시간에 여기 와서 운공하도록 해. 장단을 맞춰줄 테니까.”
‘그때 그 능력이야. 마령음.’
삘리, 삘리리리…… 삘리리…….
옥적에서 구슬픈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 여인은 즉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절혼마녀는 사루의 독문심법인 육기일원심법(六氣一元心法)을 운용했고, 금연화는 자하밀공을 끌어올렸다. 일령은 지금까지는 자하공법을 운용해 왔으나 소립파의 충고를 받아들여 공령문의 공령삼기(空靈三氣)를 끌어올렸다.
진기가 폭주한다. 미쳐서 날뛰는 야생마처럼 제어할 수 없는 힘으로 전신 경락을 질주한다.
피리 가락에 묻혀 다담선자의 옥음이 들려왔다.
“의심은 주화입마의 지름길. 의심을 떨쳐 버려요. 진기가 날뛰면 날뛰는 대로 놔두고 길만 열어요.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소로였다면 마차가 다닐 수 있는 대로로 만들어야 해요. 경락을 채울 생각은 버려요. 우선은 넓혀야 채워지는 거예요. 큰 그릇이 빗물을 많이 받듯이. 그 생각만 해요.”
삘리리, 삘리리, 삘리…….
세 여인은 옥적음에 도취하여 점차 자아를 망각해 갔다.
북검문은 허점이 없다. 앞으로 백 년이 더 흐른다 해도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철옹성이다.
“흐흐흐! 내가 누구야. 혈귀대주를 따라다니며 북검문을 내 집 안방처럼 들락거리던 사람이야. 설마 내가 틈을 못 찾아냈겠어? 틈…… 틈은 칠성군에서 찾아야 해.”
언장은마가 자신있게 말했다.
칠성군, 그들은 사형제 간이면서도 상호 견제하는 관계다. 그러한 관계는 한 산에 한 마리만 살아야 할 호랑이가 일곱 마리나 살고 있다는 태생적인 필연에서 비롯되었다.
호랑이들도 새끼 적에는 어미젖을 물며 함께 뒹군다. 장래에는 서로가 난적이 되겠지만, 현재까지는 어느 사형제나 다름없이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나 더 이상은 아니다. 그들 사이에 노골적인 반목이 시작되고 있다. 새끼 호랑이가 컸다고 제 몫을 챙기기 시작했다. 북검문주가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논리를 폈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반목을 시작할 수 있었다.
북검문주는 꾹 억누르고 있던 칠성군의 야망에 뜨거운 불을 지폈다. 삼원로, 삼대주, 십공봉, 칠성군이 모인 자리에서 후계 구도를 발표한 것이다.
강북무림을 이끌 사람은 하늘이 정한다. 혈육이라도 하늘의 보살핌이 없다면 문주가 될 수 없다. 능력을 보여라. 그리고 운을 기다려라. 북검문도의 신망을 얻고, 북무림의 동조를 얻어라. 불협화음을 적대 감정으로 발전시켜서는 안 된다.
철저한 약육강식, 자유 경쟁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칠성군 중 후계 구도에 가장 근접했던 사람은 칠신녀(七神女)였다.
그녀에게는 큰 후광이 있었다. 북검문주의 손녀라는 후광은 어떤 힘이나 머리로도 능가할 수 없는 최고의 배경이다. 그런 연유로 북검문도 대부분이 차기 북검문주는 그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북검문주의 일성(一聲)이 터진 후에도 그런 생각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북검삼뇌는 문주의 진위를 파악하기에 고심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의 입에서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떨어졌다.
칠성군은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먹이부터 노리는 것은 당연하다.
일공자(一公子)는 북검문에서 가장 강한 힘, 천랑대를 먹었다. 북검문의 명을 받드는 천랑대지만 일공자의 허락이 없는 한 대원 한 명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공자(二公子)는 천랑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천검대를 삼켰다.
표면적으로 현재까지는 일공자와 이공자가 후계자에 가장 근접했다.
일공자와 이공자가 북검문주 자리를 놓고 다툰다면 양패구상(兩敗俱傷), 누구도 쉽게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입장이다.
삼공자는 천비대를 쥐었다.
힘으로는 천랑대와 천검대를 능가할 수 없지만 전 중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졌으니 그를 빼놓고는 후계자를 말할 수 없다.
일, 이, 삼공자가 가진 힘은 북검문의 무력이다.
무력을 가질 수 없었던 사형제들은 다른 힘을 취했다.
사공자(四公子)는 십공봉(十供奉)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북검문과 뜻을 같이하는 문파 중에서 가장 강한 문파 열 곳에서 보내온 조력자들.
그들의 무공은 칠성군과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그들이 가진 권위는 칠성군과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는다.
오공자(五公子)에게는 육능자가 있다.
권력 구도에 초연한 듯 오직 무공 수련에만 매진하고 있지만, 북검삼뇌라는 육능자의 지원을 받는 사람이니 언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화약고다.
북검삼뇌의 맏형 격인 천기수사, 그는 육신녀(六神女)의 아버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데 더 말해 무엇 하랴. 육신녀의 일거수일투족에는 천기수사의 입김이 들어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칠신녀(七神女), 그녀에게는 아무도 없다.
무력도 없고, 지낭(智囊)도 없으며, 인맥(人脈)도 놓쳤다. 아니, 취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형제 간의 암투는 골육상쟁(骨肉相爭)과 다름없다며 차라리 사형제 중 한 사람을 지목하여 힘을 실어주라고 북검문주에게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가 삼대를 취하려고 했다면 가능했다. 천기수사야 육신녀의 아버지이니 제쳐 놓더라도 육능자나 권력 다툼을 혐오하여 외지로만 떠도는 만박선생은 그녀 곁에 머물 가능성이 컸다.
십공봉은 더욱 처신의 폭이 좁았다. 그녀가 발빠르게 움직였다면 제일 쉽게 취할 수 있는 세력이었다.
칠신녀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북검문주도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
칠성군의 권력 계승 다툼에는 일절 간여하지 않았다. 문주뿐만이 아니라 삼원로도, 비밀리에 문주와 삼원로를 호위한다는 미지의 세력도 칠신녀와 다른 제자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강북무림을 이끌 만한 재목임을 스스로 입증하라. 북검문주라는 지상 최강의 자리가 눈앞에 있다.
칠성군의 최대 당면 과제다.
그런 권력 구도에 이상 기류가 발생한 것은 혈귀대주가 등장하면서부터다.
그는 일개 무사로 입문하여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왔다.
북검문주의 무공을, 삼원로의 무공을 배운 것도 아니면서 감당할 수 없는 강자로 성장했다.
혈귀대주의 잠재력은 무한해 보였다.
정식으로 인정된 대(隊)도 아닌 비공식적인 혈귀대의 대주이지만, 조금 더 성장하여 무류검법을 밟고 서면 북검문주의 눈에 띄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공공연하게 팔공자(八公子)는 혈귀대주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하니 웃어넘길 일도 아니었다. 또한 그는 수많은 싸움을 통해 능력을 입증했으니, 팔공자가 되어 문주의 무공까지 전수받으면 가장 강력한 도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혈귀대주가 죽었을 때, 칠성군에게 쏘아지는 의심의 눈초리도 일면 이해할 만하다. 일곱 명만으로도 머리가 욱신거리는데 또 한 명이 들어서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더욱이 북검문이 단문협을 봉쇄하기까지 했으니 세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길이 없다.
세인들의 입방아처럼 혈귀대주를 시기한 누군가가 함정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일까? 혹자는 아니라고 한다. 너무도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함정이라는 것이다. 또한 남도문의 힘을 빌어서 혈귀대를 몰살시킨 일은 북무림을 팔아먹는 행위인데, 무엇이 아쉬워서 그리 큰 모험을 하느냐는 거다.
진실은 칠성군만이 알고 있다.
분명한 것은 혈귀대주의 죽음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 한, 칠성군 중 누구도 입방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럼 칠성군이!”
금연화는 격동을 이기지 못했다.
“칠성군은 아냐.”
소립파가 금연화의 격정에 찬물을 끼얹었다.
“음모란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어야 가치있어. 당장 화살을 받게 되어서야 음모라고 할 수 없지. 혈귀대주…… 못난 그놈만 죽이려고 했던가, 칠성군의 발목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그놈을 죽였던가, 아니면 둘 다 노렸던가.”
소립파는 미간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어쨌든 이건 북검문 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 약점이 될 것 같네요.”
절혼마녀가 말했다.
마인들보다는 북검문을 잘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만큼 북검문의 행사가 은밀한 탓이다.
그런 사실을 파악해 낸 언장은마는 또 어떤 사람인가.
이쪽이고 저쪽이고 대단한 사람들이다.
마도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냉정하게 말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지. 북검문이 북무림을 장악한 지 삼십 년이야. 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썩은 것도 아냐. 다담, 북검문의 진정한 힘이 뭐지?”
다담선자는 하얀 이를 살며시 드러내며 웃었다.
“북검문주와 삼원로죠. 그들 네 사람이면 북검문을 쓸어버리고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거예요.”
다담선자의 말에 세 여인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후후! 달리 무신이 아니지. 무신이라는 소릴 들을 정도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했어야지. 그래도 이건 큰 성과야. 북검문 간자를 찾아내는 정도는 할 수 있겠어.”
“그것참…… 노괴물도 쓸 데가 있네. 이런 정보는 어디서 캐왔댜.”
동혈 저편에서 음침한 괴소가 들려왔다.
“시마…… 넌 죽는다. 내 손에.”
“썩을! 저 소리 좀 안 들으면 속이 후련하겠다니까.”
“그만.”
소립파의 한마디는 나직했지만 뭇사람의 입을 막아버렸다.
“떠날 준비들 해.”
고대하고 또 고대했던 말.
“그래, 이판사판 부딪쳐 보자고. 북검문 놈들이라고…….”
수검이 검을 꾹 움켜잡으며 말했다. 그러나,
“북검문은 나중에. 우선은 장강을 건넌다.”
“장강?”
“개를 때려야 주인이 나타나는 법이지. 단문협 혈사에 가담했던 자들을 흔들다 보면 그 자식을 팔아먹은 놈도 나타나게 될 거야. 지금 당장은 북무림에서 할 일도 없고.”
두 달이라는 예정보다 한 달이 더 늘어나 석 달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제6장 도장강(渡長江) ― 장강을 넘어
1
천비대가 무서운 점은 한 번 낙인찍은 사람은 십 년이 지나도 주의를 거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립파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면서 이릉 성내로 들어섰다.
단문협과는 불과 삼십 리 거리. 이릉에서 ‘악!’ 하고 소리 지르면 곧바로 단문협에서 ‘억!’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릉에 들어설 때는 적혈구로 들어설 때와 같은 방법을 취했다.
성 밖에 있는 공동묘지에서 지하로 들어갔고, 수십 개의 미로를 거쳐 밀마(密碼)를 주고받은 다음에야 안전한 곳으로 들어섰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반대편에서 나온 사람들이 들어온 길을 더듬어가며 흔적을 지웠고.
“한두 사람이 엮여 있는 게 아니네요?”
금연화는 편안하게 물었다.
지난 석 달간이나 동혈에서 같이 지냈으니 눈빛만 봐도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마인들이라는 사람들과도 거리낌없이 지낼 수 있고, 누구보다도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소립파도 멀리 있는 사람 같지 않다. 그가 무뚝뚝하게 대해도 개의치 않고 농담을 건넬 정도는 되었다.
“강을 건널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 되니까. 장강과 황하(黃河). 이런 식이 아니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강을 건널 수 없어.”
“슬픈 이야기네요.”
“비참한 이야기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는 거예요?”
“정말 궁금하네. 몇 놈이나 될까? 한 만 명 될까?”
시마도 말은 했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이, 그것밖에 안 될라고. 이만은 넘을 것 같은데?”
혈유가 위로 통하는 문을 열어젖히며 말했다.
이릉과 적혈구는 달랐다.
적혈구에서는 술 냄새와 풍악 소리가 오감을 자극했지만 이릉은 망치질 소리만이 고막을 두들겼다.
땅땅! 땅!
망치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오는 것으로 보아서는 상당히 큰 대장간인 듯싶다.
밖에 나갈 수 없다는 정도는 눈치로 안다.
제법 넓은 방이지만 열한 명이 기거하기에는 비좁다고 할 수밖에 없는 방에서 어떻게든 견뎌내야 한다.
“뭐 이래? 안에 들어오면 따뜻한 물에 목욕 좀 하려고 했더니.”
일령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정자산에 들어갈 때만 해도 초여름이었는데, 벌써 가을로 들어서 낙엽이 나뒹군다.
‘아버님은 어떻게 지내실지…….’
자신에 대한 소문은 들으셨을 게다.
마인과 어울려 다니며, 북검문 무인들을 가차없이 도륙하고 있다고. 어쩌면 그보다 훨씬 심한 말을 전해 들으셨을지도 모른다. 소문이란 왕왕 진실보다 과장되는 법이니까.
걱정이 태산 같으시겠지. 영원히 정도로 돌아올 수 없는 딸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무너지시겠지.
하지만 지금까지는 약과다.
딸자식이 장강을 넘어 남무림을 휘젓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욱 마음이 편치 않으실 게다.
장강을 넘는다.
북검문의 간세가 누군지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혈귀대주를 직접 손댄 원흉을 죽이는 것도 중요하다.
남과 북이 대치 상태이니 남무림의 행동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혈귀대주 역시 남무림 무인들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죽여가며 명성을 쌓았으니 할 말이 없다. 음모, 계략, 함정…… 온갖 술수들이 총동원되는 마당이다.
살지 죽을지 모르는 길이다.
사는 것보다는 죽을 가망이 더 많은 길이다.
장강…… 건너는 것도 어렵지만 돌아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지켜봐 줘. 이제부터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