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40
40
해거름이 지고 망치 소리가 끊긴 후에도 두 시진이나 지나 자정이 가까울 무렵,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바깥문이 열리며 엄청난 거구가 쑥 들어섰다.
그가 들어서니 방 안이 꽉 찬다.
“마야.”
온몸이 근육으로 뒤덮인 거구는 곧장 마야에게 달려가 두 손을 움켜잡았다.
“마야가 온 줄 알았으면 진작 왔을 텐데, 떨거지 새끼들인지 알고.”
“내 저 새끼 심통 부리는 줄 알았다니까. 이놈아, 배고파서 뒤지겠다. 어여 밥이나 처내와.”
“시마, 이 새끼! 대갈통이 제법 여물었나 보지?”
“저 새끼 말하는 싹수 봐라. 똥통에 처박혀 뒈질 놈 같으니. 어여 밥이나 내오라니까!”
“기다려, 자슥아. 마야하고 말도 끝나지 않았는데 끼어들기는. 마야, 저런 놈은 왜 데리고 다니는 거야?”
소립파는 피식 웃기만 했다.
“강을 건너려고?”
“볼일이 있어서. 준비 좀 해줘.”
“준비 같은 건 걱정하지 말고. 얼추 짐작하기로는 남무림과 한판 뜨려는 것 같은데, 사람이 왜 이래. 이런 일에 날 빼놓는다는 게 말이 돼? 이런 쭉정이들 여럿 데리고 가봤자 별 볼일 없다는 것 몰라?”
“오오라! 그러니까 저 떼어놓고 간다고 심통을 부렸다 이거지? 우리한테 부린 게 아니라 겁대가리없이 마야한테 심통을 부린 거네?”
“늙은이, 뒈지고 싶지 않으면 입 좀 다물어라. 응!”
소립파가 거구의 어깨를 툭 쳤다.
“배고파. 밥부터 먹어야겠어.”
“아! 내 정신 봐. 나가자고. 오늘 술 한 번 걸판지게 마셔야지.”
거구는 마야의 손을 꼭 잡고 밖으로 나갔다.
밖은 조용했다.
천여 평에 이르는 넓은 대지에 거주하는 사람이 백여 명은 훨씬 넘을 것 같은 큰 대장간이다. 아니, 차라리 대장간을 업으로 삼고 있는 장원이다.
오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 잠에 들었나?
천만에! 지금 이 순간, 대장간은 죽음의 요새다. 겁없이 담을 넘는 자가 있다면 흔적도 없이 제거되고 말 것이다.
느껴진다. 잔잔한 숨소리…… 살을 저미는 예기…….
금연화, 절혼마녀, 일령이 처음으로 겪어보는 마인들의 조직이다. 전에도 동원된 사람들은 있었다. 천비대에 쫓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었다. 하나 대장간처럼 무공을 갖춘 무인들이 조직적으로 뭉쳐 있는 경우는 처음이다.
‘여긴 웬만한 문파 수준이야.’
밤과 낮이 혼합된 이른 새벽.
이릉성에서 이 리 정도 떨어진 강변에서 분주한 움직임이 일었다.
소립파 일행은 서너 명만이 탈 수 있는 자그마한 소선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올라탔다. 그러나 출발은 하지 못했다.
“마야, 나도 가자.”
거구의 사내가 배 한쪽을 꾹 움켜잡고 놓지 않았다.
“거추(巨槌), 여기를 지키는 일도…….”
“난 그런 것 모르겠고. 마야, 나도 가자.”
“허어! 이러다 날 밝겠어.”
“그러니까 빨리 말해. 같이 가자.”
거구의 사내는 서른 중반쯤으로 보이지만 근육이 워낙 단단해서 젊어 보일 뿐, 실은 마흔을 훨씬 넘겼다. 허리춤에 찔러 넣고 있는 큰 망치가 병기라서 거추라고 불리며, 신장이 거인국에서나 사는 거인처럼 크기 때문에 철탑(鐵塔)이라는 말이 붙는다.
철탑거추(鐵塔巨槌).
금연화나 절혼마녀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별호지만 시마나 마도, 수검 등을 발아래 두고 있는 듯한 말투로 미루어보아서는 최강자 중에 한 명이 분명하다.
그가 막무가내로 따라가겠다 졸라대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마야를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또 무인으로서 지닌 무공을 마음껏 드러내고픈 욕구도 있다.
살아오기 힘든 길이라는 건 그도 안다. 알면서도 무인이기에 따라나서려는 심정은 오죽 절박한가.
마인이기에 무공을 익혔으면서도 평생 숨어 살아야 한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무공을 쓸 일은 없을 게다. 설혹 이 길이 죽음의 길이라고 해도 한 번쯤 마음껏 무공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리라.
지난밤, 그는 술을 마시는 내내 마야 곁을 떠나지 않았다. 첫 잔을 들면서부터 따라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마지막 잔을 들 때까지. 협박이 통하지 않자 물러설 줄 알았더니 정반대로 태도를 바꿔 졸라대고 있다.
“한 사람 때문에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어. 지금처럼.”
“절대 복종하면 되나?”
“휴우! 못 말릴 사람이군. 배는 어떻게 할 거야?”
작은 소선에 그가 탈 자리는 없다. 그가 타면 다른 사람들이 다 내려야 할 정도다.
“흐흐흐! 그런 건 걱정을 붙들어 매. 이 새끼들! 빨리 배 안 가져와! 시간없어, 이놈들아!”
철탑거추의 표정이 비로소 환해졌다.
스으윽! 스으윽!
소선 네 척은 자욱하게 피어난 물안개를 헤치고 나아갔다.
철탑거추의 완력은 감탄스러웠다. 그는 혼자 노를 젓고 있는데도 두 사람이 노를 젓는 다른 소선들보다 항상 앞서 나갔다.
“저런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아예 문파를 만드는 것도 괜찮겠네요.”
금연화가 철탑거추를 쳐다보며 말했다.
마야 곁에 모인 사람들은 비록 인원은 십여 명을 웃돌 뿐이지만 지닌바 무공은 중원을 쩌렁 울린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문파를 창건한다면, 기반을 굳건히 구축한 문파라도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그들이 정도인일 경우에 한하는 말이겠지만.
“호호호! 저 사람들 앞에서는 그런 말 하지 마. 약 올린다고 생각할 거야.”
절혼마녀가 부지런히 노를 저으며 말했다.
“언니, 마야는 어떻게 고칠 수 없는 거예요?”
다담선자는 쓰게 웃으며 노 젓는 일에만 열중했다.
“비록 자하부와 인연은 끊었지만 필요한 약재는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방법이 있으면…….”
“없어.”
금연화는 말이 막혔다.
그와 같이 행동하면서 늘 궁금했던 문제, 그가 무공을 익혔느냐 익히지 않았느냐에 대한 해답을 찾아냈다. 동혈에서 석 달간이나 같이 생활했는데 무엇인들 알아내지 못할까.
마야는 선천적으로 특이한 체질을 타고 태어났다.
경맥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기가 잘 통하지 않는다.
임신 중에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는 음식이나 약초를 잘못 복용한 탓이라고 하는데…… 기형아가 태어나는 경우는 있어도 마야처럼 경맥이 굳은 채 태어나는 아이는 없지 않은가.
마야는 무공을 수련할 수 없다. 진기를 이끄는 것은 좁은 골목길에 홍수가 밀어닥치는 것과 같은 현상을 일으킨다. 주화입마(走火入魔)는 불문가지고, 목숨을 잃을 가능성도 높다.
기가 막힌 노릇이다.
다른 사람의 진기를 북돋워 주기도 하고 감소시킬 수도 있으면서 정작 자신은 진기를 끌어올리지 못하니 말이다.
그가 펼치는 능력은 초능력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가 무공을 수련했다면…… 단연 으뜸이지 않을까? 어쩌면 북검문주나 남도문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신들은 칠순을 넘어선 고령이지만, 마야는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청년이니 무림사에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을 절대기재가 아닌가.
생각할수록 아깝다.
마야의 경맥 문제는 단순히 무공을 수련하지 못한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도 진기는 지닌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미미한 진기가 꾸준히 경맥을 타고 흐른다. 의원이 침이나 뜸을 놓는 것도 경맥을 자극하여 진기의 흐름을 조절하려는 행동이다.
보통 사람도 그런데 아예 진기가 막혀 있으니…… 결과는 자명하다. 이대로 몇 년만 더 지나면 생기(生氣)가 바닥난다. 지금도 원정(原情)이 극심하게 손상된 상태이니 시간이 지날수록 생기 소멸은 가속화되리라.
미온적이나마 생명을 연장시키는 방법은 있다.
매일 꾸준하게 추궁과혈(推宮過穴)로 전신 혈도를 풀어주는 방법이 있고, 음양교합(陰陽交合)을 통해 양기를 활성화시키는 것도 한 방편이다.
이런 방법들도 꺼져 가는 불꽃을 막을 수는 없다. 단지 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려 주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마야는 동혈에 있을 적에도 이틀이 멀다 하고 격렬한 정사를 벌였다.
회음(回音)이 심한 동혈이니 그들이 내뱉는 숨소리나 신음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해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인상을 찡그렸다. 횟수가 거듭될 때는 마인이니 체면 따위는 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사연을 알게 된 다음에는 울적한 마음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벌이는 정사이니 즐거워야 하지 않나.
마야와 다담선자에게는 체면이나 허례를 따질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목숨을 이어가는 구명줄이었다. 마야보다는 마야를 살리고 싶은 다담선자의 절박한 마음이 절절이 새어 나오는 신음 소리였다.
병이 있으면 약도 있다고 했는데…….
“경맥…… 경화(硬化)가 심한가요?”
“걷는 것도 힘들 거야. 온몸이 부서지는 통증에 시달릴걸?”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데요?”
일령이 마야가 타고 있는 소선을 쳐다보며 말했다.
“고통을 달고 사니까 익숙해진 거지.”
다담선자는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속마음은 결코 담담하지 않으리라. 천 길 바다 속에 약이 있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뛰어들 여자다.
절혼마녀가 묵직해지는 분위기를 바꿨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여자들끼리 있는 것도 처음이네.”
“정말 그러네요. 벌써 넉 달 가까이 함께 지냈는데 여자들끼리는 처음 모였어. 그렇죠?”
일령이 새삼 신기한 것을 발견한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참 재미있는 여자들이야. 목적으로든 마음으로든 마야에게 의지하는 것도 같고,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도 같고, 며칠 후면 세상 모든 사람이 적이 된다는 것도 같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 중 먼저 가는 사람이 있으면 남은 사람이 반드시 복수해 주기로 해. 어때?”
절혼마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세 여인을 쳐다봤다.
“그래요, 언니.”
금연화가 제일 먼저 동조했다.
그녀는 자하부의 금지옥엽, 다른 두 명은 기녀이며 또 한 명은 수족이다. 금연화는 자신이 제일 먼저 찬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한 발 앞서 나갔다.
“복수를 해준다는 건 그만큼 아끼고 사랑한다는 거잖아요. 우리끼리는 마음을 합쳐요. 세상에 믿을 사람은 우리밖에 없잖아요? 우리 친혈육처럼 아끼는 거예요. 어때요?”
“저는…….”
일령은 쭈뼛거렸다.
금연화를 모시던 몸으로 의자매를 맺자는 말과도 같은 주인의 말을 좇기는 어려웠다.
금연화가 일령을 마음을 읽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넌 이제 우리 막내야. 네 성명절기는 선유비조신법과 염화옥수잖아. 넌 공령문의 후인이니 자격이 충분해. 왜? 언니라고 부르기 싫어?”
“아씨…….”
“언니. 언니라고 해.”
“어…… 언…… 니.”
일령은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들어 가는 음성으로 말했다.
철탑거추가 속도를 확 줄였다.
절혼마녀와 다담선자가 노를 잡은 배도 속도를 늦추고 긴장된 표정으로 전면을 응시했다. 마도, 수검, 시마, 언장은마가 탄 배는 스르륵 미끄러져 절혼마녀의 배에 바짝 붙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배는 한 척뿐이다.
고루쌍마가 노를 잡고, 혈유와 마야가 경계를 맡은 배.
남무림의 경계망도 북무림만큼이나 철통같다. 북무림은 그나마 경계 형태를 알고 있으니 비교적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남무림의 경계망을 아는 사람은 마야와 혈유밖에 없다.
언제부터인가 마인들은 넓은 지역을 오가지 못했다. 성(城) 주변에서 얼씬거리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발이 넓다는 사람이 성(省)을 누비는 정도다.
초강자들은 그나마 많이 다녔다. 그래 봤자 북무림 혹은 남무림에 국한된 움직임이었지만.
많이 움직이다 보면 시비가 붙을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싸움이 벌어져 혹여 무공이라도 펼치게 되면 곧바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게 된다.
정도무림이 공고하게 뭉친 시점에서 마인들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꼴이 되었다.
쭉쭉 뻗어나가던 소립파의 배가 갑자기 뚝 멈췄다. 그와 동시에 무엇인가가 뱃전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혈유다.
쉭쉭쉭쉭……!
독수전이 허공을 가른다.
예전 같으면 비명 소리를 듣고 난 다음에야 알아챌 공격이지만 이제는 공기가 물결처럼 너울지는 느낌이 전해진다.
“크윽!”
“컥!”
물안개 저편에서 답답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적이닷! 북무림 놈들이닷!”
비명 소리는 즉각 경계 태세를 최강으로 끌어올렸다.
“지금이야! 어서!”
절혼마녀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담선자를 비롯하여 금연화, 일령은 눈 깜짝할 순간에 강물 속으로 잠수해 버렸다.
절혼마녀는 신속한 동작으로 심지에 불을 붙였다.
타타탁……!
불꽃이 화약을 가득 담은 상자를 향해 빠른 속도로 타 들어갔다.
“하앗!”
두 발에 진기를 가득 담아 배가 앞으로 쏘아져 가도록 밀쳐 냈다. 그리고 그녀도 다른 사람들처럼 강물 속으로 스며들었다.
꽈앙! 꽈아앙!
첫 번째 폭발은 소립파의 배에서 터졌다.
가장 앞서 나갔던 배는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들던 남무림 배들 한가운데서 폭발했다.
꽈아앙! 꽈앙! 꽈왕!
절혼마녀의 배, 철탑거추의 배, 마도의 배 모두 폭발했다.
그들의 배는 포위망 외곽을 건드렸다. 그러잖아도 중심부에서 터진 폭발에 당황하던 무인들은 바깥쪽이 얻어맞자 좌우로 쫙 갈라졌다.
더 이상의 폭발은 없었다.
2
자하부주는 나이 쉰에 이르러서야 자하밀공을 십성까지 수련할 수 있었다.
금연화는 단 두 달 만에 사성을 끌어올려 십성에 이르렀다.
마야 덕분이다. 마령음을 들으며 진기를 운용하자 경맥이 터져 나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비정상적인 운공법.
일반적으로 그런 현상이 일어날 경우, 폭주하는 진기를 제어하지 못하고 이끌려 간다. 그리고 끝내는……. 가는 대롱에 장강의 물을 쏟아 붓는다면 터져 나가는 수밖에 더 있는가. 경맥이 터지고 가닥가닥 끊겨 즉사하게 된다. 요행히 즉사를 면해도 식물인간이 되어 삶을 마쳐야 한다.
한데 희한하게도 마령음을 듣는 순간 경맥이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질긴 심줄이 되었다. 진기가 밀려들면 밀려드는 만큼 쭉쭉 늘어났다.
하루, 이틀…… 횟수가 반복되면서 경맥은 늘어난 상태에서 고정되어 갔다. 작은 시냇물에서 큰 강이 된 것이다.
그 차이는 엄청났다.
똑같은 진기를 사용해도 파괴력이 전보다 서너 배나 증가했다.
일거에 많은 진기를 쏟아낸 결과다.
그러면 단전은 어떤가? 단전에 쌓인 진기가 많지 않다면 진기는 순식간에 고갈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