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51
51
마야 3
요명유명(要命有命) ― 죽일 테면 죽여라
제1장 수인몽(囚人夢) ― 갇힌 사람들의 꿈
1
장사성(長沙城)은 지난 이천여 년 동안 문화, 역사의 중심지였던 고성(古城)이다.
마차는 덜그럭거리며 반듯하게 닦인 장사성 석로(石路)를 통과했다.
돌팔매질은 멈췄다. 욕설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눈빛은 증오와 분노로 팔팔 끓고 있는데 행동은 극도로 자제했다.
그들은 침묵했다. 마차가 석로에 들어선 직후부터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분노 또한 표출하지 않았다.
남도문주에 대한 예의다.
최소한 남도문이 본문을 두고 있는 장사성에서만은 싸움과 욕설을 삼가야 한다.
장사성은 남무림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다.
마인들 따위가 발길을 들여놓을 곳이 아니다. 더군다나 남무림을 발칵 뒤집어놓은 마인들이라면 성문 밖에서 효수하여 만인의 본보기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
여느 때 같았으면 마차가 성문으로 들어서지도 못했다. 남도문 무인들이 굳이 손을 댈 필요도 없다. 분노가 깃든 돌팔매질이 생명을 빼앗고도 남는다.
이번만은 지극히 예외 중에 예외다.
그들도 마령음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신비 절륜한 기공(奇功).
잘하면 북무림을 단번에 무너뜨리고 지겹게 이어오던 싸움을 종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마야라는 자를 잡았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그는 놓쳤지만 기회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마차로 호송되는 마인들은 마야를 끌어들일 미끼이니 귀중하고도 귀중하다.
“계집년들이 하나같이 여우들이네.”
“저 계집이 자하일봉이지? 썩을 년. 어딜 복수하겠다고 기어들어 와. 얌전히 꼬리 말고 앉아 있지. 저런 년은 콱 유곽에 던져 버려야 돼.”
“새끼들 봐라. 눈가에 독기 서린 것. 저런 눈깔에는 쇠꼬챙이를 콱 쑤셔 박아야 되는데.”
적대 감정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
북무림 무인들에 대한 적대감도 하늘에 닿았지만, 마인들에 대한 살심과는 비교할 수 없다.
‘어디 두고 보라지.’
금연화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호송 마차는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움직여 동일로(東一路)를 따라갔다.
대로는 팔두마차 대여섯 대가 엇갈려 지나갈 수 있을 만큼 크다.
좌우로는 온갖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주루, 다루는 물론이고 서점이나 포목점 등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만은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그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마도 사상 최고로 자부하는 마인들이 십여 명이나 된다.
이만한 흥밋거리가 또 어디 있는가. 남무림 무인들이 천여 명이나 죽고 아름다운 강산을 피로 물들인 희대의 마두들이 압송되어 오는데 흥미가 생기지 않을 리 없다.
거기에 마야라는 자만 잡으면 삼십 년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니 만사를 제쳐 놓고 구경 나와도 모자란다.
“악록산(嶽麓山)으로 데려가는 거겠지?”
귀에 주워 담을 만한 소리가 들렸다.
“마야인가 뭔가 하는 인간을 잡으려면 그래야지. 저런 놈들은 당장 상강(湘江)으로 끌고 가서 요절내야 하는 건데.”
귀를 활짝 열어놓지 않았다면 듣기 힘들었을 속삭임이다.
‘악록산이란 말이지.’
드디어 남도문으로 들어간다.
악록산은 남악형산칠십이봉지일(南嶽衡山七十二峰之一)이다. 천마(天馬), 봉황(鳳凰), 녹아(綠蛾), 금우(金牛) 같은 영봉들이 공호(拱護)해 주는 주산(主山)이다. 악록산에서 펼쳐진 첩봉(疊峰)은 수십 리에 이른다.
남도문은 악록산에 둥지를 틀었다.
남도문이 뭇 문파들을 누르고 제일성좌(第一聖座)로 올라선 것은 악록산을 등에 지고 상강을 굽어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길지 덕분이라는 말도 있다.
믿을 것은 아니지만 풍광이 수려한 것만은 사실이다.
마차는 상강까지 동일로를 타고 나왔다가, 강에 연하여 조성된 강변로로 접어들었다.
마차 옆으로 악록산의 절경이 펼쳐진다. 다른 쪽으로는 장사성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상강의 물줄기가 시름없이 흘러간다.
강변로는 두 갈래로 갈라졌다.
우측으로 난 길은 악록산 등반로이고, 좌측 길은 남도문으로 가는 길이다.
마차는 좌측 길을 탔다.
인파도 그즈음에서 끊겼다.
우측 등반로는 누구라도 올라갈 수 있지만 좌측 길은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한 한 걸음도 옮겨놓을 수 없다.
“통과.”
십여 명이 한꺼번에 토해낸 듯 우렁찬 음성이 길 좌우측에서 울려 나왔다.
남도문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소로를 이용하지 않는다. 성문에서부터 남도문까지 곧게 뚫린 대로를 이용한다.
그런 면에서 마인들은 방문객이라고 할 수 없다.
마차는 굉장히 좁고 울퉁불퉁한 길로 접어들었다.
덜컹! 덜컹!
마차 바퀴가 돌부리에 채일 때마다 수레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쳤다. 자유로운 몸이라도 균형을 잡고 앉아 있기가 힘든 험로인데, 팔다리를 꽁꽁 묶인 상태에서는 그저 차이는 대로 뒹구는 수밖에 없었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웅장한 남도문의 건물들은 점점 멀어지다가 종래에는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굵은 나무들뿐이다.
왠지 모르지만 기분 나쁜 숲이다. 가만히 가로지르고 있는데도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동안의 편안한 대접도 끝났다.
“기어나왓! 개자식들아!”
“후후! 고년들 살이 통통하게 올랐네. 재수 좋으면 나긋한 살 맛 좀 보려나.”
‘맙소사! 이게 남도문이야, 하오문이야!’
명문정파라는 남도문, 하나 방금 귀로 들은 소리만 가지고 말한다면 막돼먹은 인간들이 모조리 모였다는 하오문이나 다를 바 없었다.
숲에는 높이가 삼십여 척에 이르는 큰 암벽이 있다. 나무도 그렇고 풀도 그렇고……. 모두가 검고 칙칙한 기운을 띠고 있는 반면에 암벽은 흰빛을 띠고 있어서 조금은 살갑다.
이곳이 어딜까?
자유를 구속하는 곳인 것만은 틀림없다. 암벽을 뻥 뚫어버린 구멍이 악마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긴 통로인 듯 달짝지근한 냄새를 풍겨낸다. 피비린내, 곰팡이 냄새, 고통으로 얼룩진 땀 냄새…….
남자와 여자는 암벽에서부터 분리되었다.
“이 새끼들아!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천하 개잡놈도 해탈시켜 드리는 곳이야, 개새끼들! 오늘 푸닥거리 좀 신나게 해보자고.”
일단의 무리가 마도, 수검 등등을 데리고 암굴 속으로 들어갔다.
네 여인은 조금 더 기다렸다.
휘이잉……!
바람이 머릿결을 휘날린다.
본격적으로 겨울 한복판으로 뛰어든 바람은 내뱉는 입김마다 하얀 서리를 이끌어낸다.
마도와 수검 등이 들어갔던 동혈에서 한 여인이 걸어나왔다.
“네 년, 인계받았어.”
“흐흐흐! 언제쯤 맛을 볼 수 있을까?”
“이년들은 찍은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목숨이 몇 개라도 돼?”
“제길! 눈만 버린 건가!”
“호호호! 하는 것 봐서…….”
“기, 길이 있겠나?”
“두 년은 헌 계집이야, 저년. 저년.”
여인이 다담선자와 절혼마녀를 가리켰다.
“장강에 배 지나간 자국 나는 것 봤어?”
“흐흐흐! 잘 좀 부탁함세.”
사내는 여인의 손에 전낭(錢囊)을 쥐어주었다.
‘썩었어. 여긴 정도문파가 아냐. 이런 자들이 어떻게 남무림을 이끌고 있는 거지?’
여인을 따라 방향 감각조차 없는 곳을 얼마쯤 걸었을까? 반각쯤 되었을까? 거무튀튀한 철문이 앞을 가로막았다.
“문 열어.”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묵중한 철문이 힘겹게 열리기 시작했다. 기관으로 움직이는 철문. 두께가 한 척은 실히 되니 인간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다.
철문 안은 더욱 삭막했다.
일직선으로 뻥 뚫린 통로, 좌우로는 짐승을 가둬놓는 우리처럼 팔뚝 굵기의 쇠창살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들어가.”
네 여인은 타박타박 들어섰다.
유등이 군데군데 밝혀져 있지만 무척 어두운 편이다.
그녀들이 들어서는 기척을 감지했음인가. 우리 중 한곳에서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네 여인이 숙식을 해결해야 할 곳이다.
사방은 흙벽이고, 바닥은 지푸라기를 깔아놨다. 가장 안쪽 구석에는 대소변을 처리하는 용도로 보이는 독이 있는데, 그곳에서 구더기 썩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네 여인은 등을 떠밀려 뇌옥 안으로 들어섰다. 아니, 뇌옥이 아니라 우리다. 동물들을 가둬놓는 우리나 다름없다.
사지를 묶었던 오라가 풀렸다. 하나 사방천마의 점혈법은 지독하기 이를 데 없어서 움직이는 것은 힘들었다.
“옷 벗어.”
“뭐요?”
여인은 권태로운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방금 무슨 말 들은 것 같은데, 니년이 한 말이야?”
“옷을 왜…… 흡!”
금연화는 말을 하다 말고 이를 꽉 악물었다.
복부에 틀어박힌 일권(一拳)은 바위도 부술 만한 힘이 깃들어 있다.
진기를 운용하여 타격을 줄이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지만 육신만으로 버텨내기에는 너무 큰 충격이다.
쫘악! 퍼억!
뺨에서 불이 나고, 무릎에 안면까지 가격당했다. 입 안 가득 핏물이 머금어지고, 눈에서는 불똥이 튀며, 사지육신은 얼음 조각처럼 쩍쩍 갈라진다.
여인은 금연화가 축 늘어질 때까지 짓밟고 때렸다.
“쌍년들…… 똑똑히 들어둬. 네년들은 지금부터 인간이 아냐. 개돼지야, 알았어! 옷 벗어, 쌍년들아! 천 조각 하나 남기지 말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약육강식의 세계다. 인간의 이성이나 지성 따위는 개가 물어가 버렸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냉혹한 세계만 남았다. 그리고 그녀들은 운이 없게도 최악의 상황에서 시작해야 한다.
흐늘거리는 불빛 아래 빙옥으로 깎아 만든 듯 혼을 빼놓게 만드는 나신들이 드러났다.
“시작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쇠창살 밖에서 네 여인이 들어왔다.
그녀들은 한 사람당 한 명씩 맡아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조사했다.
머리 끈과 비녀도 압수당했다.
그녀들의 손길은 살갗도 꼼꼼히 누볐다. 혹여 인피(人皮)를 덧대어놓은 곳이라도 발견하려는 듯.
그녀들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추명반을 비롯해서 삭사, 자하쌍구검은 포박당할 때 빼앗겨 지금은 누구의 손에 있는지도 모른다. 성명병기 외에 다른 병기나 암기 종류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됐어. 오늘은 푹 쉬어.”
여인들은 네 여인을 나신으로 남겨놓은 채 벗어놓은 옷을 가지고 나갔다.
“언니, 왜 손을 안 썼어요?”
금연화는 퉁퉁 부어오른 눈두덩을 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절혼마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러다가 금연화의 물음이 다담선자에게 향하고 있음을 알았다.
금연화는 추명반의 무서움을 떠올리고 있다. 무공을 제압당했지만 추명반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지 않겠냐, 하는 아쉬움을 말하고 있는 게다.
추명반…… 빼앗겼다. 백기를 들 때 빼앗겼다.
금연화는 그때 왜 손을 쓰지 않았느냐고 묻는 거다. 한 명이라도 죽이고 죽지 않았느냐고 따져 묻는 거다.
말도 안 되는 억지다.
누가 항복 명령을 내렸나? 금연화 본인이다. 자신이 결심하고 백기를 들었으면서 누구를 탓하고 있는 것인가.
당시 사방천마와 천멸도 살수들을 상대로 싸울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방천마와 어떻게든 싸워본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암살자, 천멸도의 살수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다.
다담선자가 한 명이라도 죽이겠다고 추명반을 쏘아냈다면 목적은 이룰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녀 역시 죽음을 면치 못한다.
금연화는 바른 판단을 했다.
그럼에도 이런 어거지 말을 하는 것은 자신들의 처지가 너무 한탄스럽기 때문이다. 벌거벗겨진 것도 모자라서 개처럼 두들겨 맞는 처지라니.
다담선자는 피식 웃었다.
“곧 분풀이할 날이 있을 거야. 조금만 참아.”
“그럴까요?”
“사방천마의 몸놀림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지만 추명반이면 상대할 수 있을 거야. 나중에 다시 한 번 그 말을 해줘. 그때는 정말 손을 쓸게.”
다담선자는 금연화를 뉘였다.
얼굴이 시퍼렇게 멍이 든 채 부풀어 올랐다. 입술도 터져서 앵두 같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아무 생각 말고 한숨 자. 푹 자고 일어나면 속이 좀 풀릴 거야.”
“그 사람…… 마야…… 잘 빠져나갔겠죠?”
그때, 다담선자가 정녕 뜻밖의 말을 했다.
“그 사람 잡혔어. 지금 이곳 어딘가에 있어.”
“뭐, 뭐, 뭐요!”
“뭐얏!”
세상이 뒤집힌다고 해도 이처럼 놀라지는 않을 게다.
금연화는 뉘였던 몸을 발딱 일으켰다. 일령과 절혼마녀는 단숨에 다가붙어 다담선자를 쳐다봤다.
“마, 마야가 정말 잡혔어?”
절혼마녀의 음성은 가늘게 떨려 나왔다.
그는 모든 희망이다. 마인들뿐만 아니라 여인들에게도 희망이다. 그만 곁에 있다면 사방천마도 천멸도 살수들도 두렵지 않다. 아니,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어서 자신들은 사냥꾼이 되고 그들은 쫓기는 입장이 된다.
그런데 그가 잡혀 있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복수는커녕 당장 목숨을 부지하기에도 급급한 형편으로 바뀌었다. 잡혔어도 그가 반드시 돌아와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편안했는데. 그만 있다면 잠시 손발이 묶이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백기를 든 것인데.
다담선자는 의외로 담담했다. 아니, 너무 담담해서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까지 들었다.
“정말이야. 그 사람, 잡혔어. 우리가 여기 오기 전에 그는 이미 감금되어 있었어.”
절혼마녀는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부릅떴다.
“아, 아냐! 난 마야의 음성을 들었어. 영파! 영파로 말을 건네왔어. 올해 첫눈은 붉은 눈이 되어야지. 수고들 했다. 흰 눈을 붉게 만들어줄 사람은 궁왕 강창도가 될 거야.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고!”
“나도 들었어요.”
“나도요. 큰언니가 말한 그대로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