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59
59
“헉! 어, 어떻게……!”
사내의 눈동자는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반송장이었다. 오늘을 넘기기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되어 간단하게 팔다리 중 하나 정도만 부러뜨리고 넘어가려 했다.
뇌옥 안으로 들어설 때만 해도 반송장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멀쩡할 뿐만 아니라 두 다리로 목을 휘감아 온다.
“풀어라!”
한기가 풀풀 날린다. 단연코 이처럼 싸늘한 음성은 들어본 기억이 없다.
“이, 이놈이…….”
사내는 사력을 다해 버텼다. 우선 목을 휘감고 있는 다리 사이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어쩌다가 다리에 힘이 들어갔는지는 몰라도 다리 사이만 빠져나가면……
“이놈이라. 후후후!”
섬뜩하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모골도 곤두선다.
발버둥 치던 사내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비로소 사태가 절박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무리 용을 써도 목을 감은 다리는 풀리지 않는다. 단단한 족쇄로 꽉 채워놓은 듯 요지부동이다.
이럴 수는 없다. 정신이 멀쩡하다고 해도 힘은 쓰지 못한다. 공력이 폐쇄된 사람인데…… 진기를 운용할 수 없는 사람은 일반인보다도 못한 법인데…….
“네게 이런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굳이 살릴 생각은 없다. 죽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이런 말, 하지 않았나?”
“사, 살려주십…….”
“아냐, 아냐. 위풍당당하던 모습 계속 유지해 줘. 그래야 나도 재미가 생기지. 너와 같은 말투로 말하지. 굳이 살릴 생각은 없다. 풀던가, 죽던가. 선택해.”
사내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쳐들어 눈을 마주쳤다.
고문하는 자, 상대의 눈빛에서 감정의 변화를 읽는다. 조그만 변화도 놓치지 않아야 비밀을 캐낼 수 있다. 뛰어난 자와 평범한 자의 차이가 찰나의 눈치에 있다.
사내는 확실히 알았다. 절대 농담이 아님을.
“푸, 풀겠습니다.”
철저한 살인도, 절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한 명씩은 죽여야 하는 지옥의 도법, 마도.
들녘을 뛰어다니며 피를 튀기고 살을 갉아먹던 늑대에게 꽁꽁 묶인 자나 희롱하던 사내는 절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사내는 철삭(鐵索)을 풀었다.
무덤에서 귀신이 튀어나왔다. 오랫동안 걷지 않아서 걷는 방법을 잊어버린 듯 두 발을 질질 끌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덜컹!
뇌옥 문이 열리며 전신이 피로 범벅된 혈인이 나타나 귀신들의 행렬에 동참했다.
“어지간히 당했군.”
“별수있어야지.”
“나도. 철천지원수라고 해도 이렇게는 하지 않을 거야. 나가면 한 일 년, 푹 쉬어야겠어.”
“한마디 들은 게 있지. 고통이 처절할수록 마야의 입이 가벼워진다. 어림없다고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고…… 굳이 시험해 보겠다니 웃으며 당할 수밖에.”
그들은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어놓았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뼈마디가 저려온다. 떨어진 살점이 비틀리고, 오장육부에서 쥐어 짜여진 쓴 물이 목구멍을 타고 기어나온다.
그래도 걷는다.
탁! 타탁! 탁! 타닥탁……!
그동안 당했던 모진 매질보다, 온갖 고문보다 신경을 더 자극하는 저 소리를 멈춰야 한다. 저 소리는…… 저 소리는…… 그들이 하나로 뭉쳤을 때만 멈춰진다.
끄릉……! 털썩!
뇌옥 문이 열리더니 키 크고 바짝 마른 사내가 무너지듯 들어섰다.
“헉!”
경악에 물든 여인의 음성이 지척에서 들렸다.
“빨리 들어가. 서 있기도 힘들어.”
말 그대로 무덤에서 기어나온 귀신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아니다. 사람의 모습은 이토록 처참하지 않다. 그나마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밖에 없다.
그제야 마야는 손을 멈췄다. 바닥 치는 소리, 신경을 갈가리 찢어대던 소리도 멈췄다.
“고생들 많았다. 좌정해.”
“좌, 좌정이우?”
전신이 피범벅이라서 누군지 몰랐는데, 음성을 들어보니 혈유인 것 같다.
소립파의 눈가에 격정이 스쳐 갔다.
“지금은 기혈을 뒤집은 상태. 빨리 정상으로 회복해야지.”
“그만두쇼. 그러다 또 정신을 잃으면…….”
“곧바로 시작한다. 빨리들 앉아.”
사내들은 어기적거리며 빙 둘러앉았다.
그들이 대항을 포기하고 사로잡힐 때, 마야는 지장술로 땅에 묻혀 있었다. 꽁꽁 묶여서 뇌옥으로 끌려올 때까지도 마야가 잡힌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문을 당하기 시작할 무렵에서야 마야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문의 목적이 처절한 비명을 토해내게 만드는 것이고, 그래야 마야가 괴로워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비통하지만 마야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았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장강을 건넌 후에 일으킨 살겁이 보통인가. 한두 명도 아니다. 일이십 명도 아니다. 몇백 명인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도 없는 사람들을 죽였다.
살아날 길은 없다.
그런 점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는 듯 고문은 잔혹했다. 육신을 저미는 정도가 아니라 영혼까지 찢어발겼다.
넋이 빠졌다.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마야는 잔인한 자다.
죽어가는 사람까지 내버려 두지 않고 되살려 냈다.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귀에 울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되돌아왔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말도 안 된다고…… 혹시 미치지 않았냐고 하지 않을까?
그렇다. 미쳤다. 미친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마야와 나누고 싶은 대화가 너무 많다.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다 못할 말들이 가슴에 쌓였다.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언제 어떻게 잡혔으며,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자신들이 어떤 상태인지…….
마야를 믿는다. 절대적으로.
“하천식물시장득태대적(夏天植物是長得太大的: 여름에는 초목이 우거지고)…….”
소립파의 입에서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스스슷……!
바람도 없는데 공기가 일렁거렸다.
원래는 공기의 일렁거림마저 없어야 한다. 없어야 한다가 아니라 없다. 만약 조금이라도 흔적을 남긴다면 천멸도의 살수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
그들이 흔들렸다.
“철궁대가…… 당했군.”
말 끝자락이 착 가라앉는 것으로 보아서 믿을 수 없다는 말투였다.
대꾸는 없었다. 어둠은 어둠일 뿐이고, 침묵은 여전히 침묵이다.
“믿을 수 없어. 밖으로는 숨소리 하나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설계된 뇌옥인데 어떻게 마령음을 펼칠 수 있었는지…….”
다시 한 번 공기가 꿈틀거렸다.
말하는 사람에게 동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말하던 사람은 곧 자신의 말을 수정했다.
“그래, 마령음이 아냐. 철궁대는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활을 쏘도록 수련된 무인들. 마령음을 듣고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리 없지. 조준할 필요도 없이 뚫린 구멍에다가 틀어넣기만 하면 되는 것을…….”
알 수 없는 방법에 철궁대가 당했다.
소리…… 청각을 자극할 뿐인 소리를 듣고 일단의 무인들이 힘없이 꼬꾸라졌다.
정녕 믿기지 않지만 믿어야 한다.
그건 소리가 아니었다. 악마의 호곡성이었다. 소리가 귓전에 닿는 순간 전신 기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마혈(痲穴)이 제압된 사람처럼 전신이 마비되었고, 그런 와중에 심장은 제어할 수 없는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다.
둥둥둥둥둥……!
너무 빨라서…… 혈행(血行)이 너무 빨라서 정신을 수습할 수 없는 지경.
순간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뇌옥을 빠져나오지 않았다면 천멸도 살수들은 전멸하고 말았으리라.
말하던 자, 그는 자신이 겪은 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워낙 믿기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에.
“죽음을 느꼈나?”
조용했다.
“암습이었나?”
“현체(現體)를.”
처음이다. 공기가 말을 한 것은.
“허락한다.”
순간, 공기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싶더니 전신을 흑포로 감싼 괴인이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자연스럽게 서 있었다.
“현체라…… 무척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해봐.”
“소리…… 듣기 싫은 소리…… 지옥에서 들려온 소리…… 도저히 듣고 있을 수 없어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던 소리. 마령음은 듣기라도 편한데 그 소리는…….”
흑포괴인은 부르르 치를 떨었다.
“소리를 듣고 죽음을 느꼈다는 건가?”
“호흡이 가빠지고, 몸이 굳어졌습니다. 철궁대는 그런 상태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 소리는 정신이 없는 자까지도 공격했고…… 이건 심마입니다. 철궁대는 심마를 견디지 못해 즉사한 것으로.”
“심마…… 심마를 일으키는 소리?”
“영혼을 제압한다는 표현이.”
“됐어. 적멸(寂滅)!”
흑포괴인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흔적 없이 사라졌다.
두 눈을 빤히 뜨고 쳐다보았어도 어떻게 나타났으며,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기묘한 신법이었다.
그때 멀찍이서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네 사람, 세상이 사방천마라고 이름지어 준 사람들이다.
“아깝군. 천멸도의 살수가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었는데.”
남방천마가 입맛을 쩍 다시며 말했다.
“…….”
뇌옥 입구는 적막만이 가득했다.
“아까 얼핏 들었는데, 그 뭐야? 영혼을 제압하는 소리라고?”
“…….”
“뭐야? 왜 주둥이는 꽉 다물고 지랄들이야?”
“후후후! 놔두쇼. 천멸도와 우린 같은 입장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니. 침묵한다는 건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뜻이겠지. 보아하니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려면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겠는걸.”
서방천마가 뇌옥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허공에서는 말이 없었다.
“빌어먹을! 같은 처지에 지랄들이라니. 비켜봐. 그까짓 것 내가 알아보지.”
남방천마가 서방천마를 밀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때,
딱! 따악! 딱……!
소리다! 어린아이들이 장난 삼아 나무 치기를 하는 듯 무의미한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흡!”
남방천마는 나아갈 때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되튕겼다.
“이, 이게 뭐, 뭐, 뭐, 뭐야!”
남방천마의 놀란 눈으로 뇌옥을 쳐다봤다. 그의 놀라움은 극에 다다랐다.
“시, 심장이 터지는 기분이었어!”
제4장 변즉변(變卽變) ― 변화는 변화일 뿐이다
1
적에게 뇌옥을 강탈당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제 뇌옥은 그들의 수중에 있지 않았다.
웃기지도 않은 일이다. 일을 당한 곳이 남도문이라면 웃음부터 터뜨릴 것이다. 농담하지 말라고.
그런 일이 벌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뇌옥 입구는 나가지도 들어서지도 못하는 경계가 되어버렸다.
천멸도 살수들이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사람들이다. 그들 이후로는 어느 누구도 몸을 빼지 못했다.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유계에서 왔다는 사방천마가 들어가지 못하는데 누가 감히 들어갈 엄두를 낼 수 있단 말인가.
“미치겠군. 기관도 아니고 진(陣)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이 지키고 선 것도 아니고. 들어올 테면 들어오라고 문을 활짝 열어젖혀 놨는데 들어갈 수 없단 말이지.”
서방천마가 시뻘겋게 달궈진 눈길로 뇌옥을 노려보았다.
막는 사람이 있어도 뚫고 들어갈 판인데 텅 비어 있는 곳을 들어서지 못한다는 것은 치욕이다.
“후후! 이대로 물러선다면 자존심 상하지.”
서방천마는 참지 못하고 소도를 꺼내 들었다.
만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만 하는 세계에서 살아왔다. 약한 자는 죽는다. 강한 자도 죽는다.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죽느냐 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산 자가 있고, 살지 못한 자가 있다는 결과만이 남는다.
살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는 철저하게 본인 몫이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숨어버리는 것도 살아남는 방편 중에 하나다. 걸리는 자마다 모두 때려부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누가 시키지 않는다. 본인이 알아서 행동해야 하며, 결과도 본인이 끌어안으면 그만이다.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에 도전해 봐야겠다는 것은 서방천마의 생각이며 행동이다.
그 결과가 좋아도 그만이고, 나빠도 그만이다.
넷 중 누가 피를 뿜고 쓰러져도 손끝에 박힌 가시만 못하다. 쓰러지는 사람이 자신만 아니면 된다.
파앗!
서방천마는 무척 빨랐다. 발이 땅에서 떨어진다 싶은 순간에 몸은 이미 어두컴컴한 뇌옥을 뚫고 들어갔다. 그러나,
딱! 따닥! 딱! 딱!
“헉!”
예의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다급한 비명이 터졌다. 그리고 서방천마의 몸뚱이가 줄 끊어진 연처럼 날아와 떨어졌다.
쿵!
서방천마는 벌떡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의 눈은 뇌옥에 고정되어 떨어질 줄 몰랐다.
“저, 저, 저…….”
언제나 살광만 내뿜던 그의 눈길이 무섭게 흔들린다.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는 것으로 보아 내상이 심각한 듯하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말 때문에 안위 따위를 살필 겨를조차 없었다.
“저, 적멸…… 적멸주(寂滅呪)!”
“뭐야!”
“적멸주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으음……!”
반응은 각기 달랐다.
남방, 북방, 동방천마는 되묻기도 하고 탄성을 토해내기도 했다.
사방천마가 나타난 이후, 그림자조차 숨긴 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있는 천멸도 살수도 무거운 침음을 흘렸다.
“적멸주가 확실해? 아! 답답해! 속 시원하게 좀 말해봐!”
“천리만리 떨어져 있어도 저주를 걸어 죽인다는 그 적멸주를 말하는 거야?”
남방천마가 답답한 듯 가슴을 쳤고, 유일한 여인인 동방천마도 궁금증을 참지 못해 급히 물었다.
세상 사람치고 저주의 말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미운 사람에게 재앙이나 불행이 닥치기를 빌며 악심(惡心)을 토해내는 것을 저주라고 한다.
한마디로, 저주란 힘없는 자들의 넋두리다.
힘으로 어찌할 수는 없고, 울분은 치솟고…… 그러니 잔심(殘心)이나 달래주기 위해 불행을 빌고 비는 것이다. 혹여 저주의 대상이 급사라도 하는 날에는 저주 때문에 죽었다고 위안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