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60
60
그러나 저주를 힘없는 자의 넋두리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인들은 각기 나름대로 정령(精靈)을 숭배하며 주술을 행한다. 도가나 불가도 의미는 다르지만 저주를 주목한다.
마도 역시 저주를 연구했다.
특히 방문좌도(傍門左道)로 치부되던 사법(邪法) 전수자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번져 갔다.
그들 역시 힘없는 자들이다.
무공으로는 삼초지적도 안 된다. 정도인이든 마도인이든 마음 내킬 때마다 걷어차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원한을 저주나 주술에 담았고, 발전시켜 왔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주목받지 못한다. 효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주술로 혹세무민을 일삼는 자, 주술이나 부적으로 몇 푼 안 되는 용채나 뜯어 쓰는 볼품없는 자들에 불과했다.
하나 그들 사이에도 한 가지 전설은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오욕칠정(五慾七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이 드러내는 약점들 중 거의 모든 것이 오욕칠정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이 점이다.
벗어날 수 없으며, 허점이 있는 곳.
오욕칠정만 건드릴 수 있다면 누구든 쉽게 무너뜨릴 수 있지 않겠나.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허상, 오욕칠정을 건드릴 수 있는 방법으로는 인간의 영혼을 자극하는 주술이 가장 합당하지 않은가.
사법 전수자들조차 말이 안 된다며 고개를 돌려 버렸지만, 한 가지 가설은 세워졌다.
저주를 타인의 마음에 심을 수만 있다면 세상에 존재했던 그 어떤 초절정 기학보다도 무서운 죽음의 절학이 된다. 천리만리 떨어져 있어도 주문을 읊으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 누가 피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죽이는지, 어떻게,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게 된다.
사법 전수자들은 있지도 않은 저주에 이름까지 붙여놨다.
옆에 있는 사람도 모를 만큼 고요하게, 적(寂). 모래성을 무너뜨리듯 산산이 짓밟아 죽이는, 멸(滅). 저주의 최고봉, 주(呪). 적멸주(寂滅呪).
뇌옥에서 흘러나온 소리가…… 장난스럽게 나무 막대기를 부딪쳐 대는 소리가 말만 무성했을 뿐 단 한 차례도 나타난 적이 없는 적멸주란 말인가?
서방천마가 적멸주를 외친 것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부에서부터 치솟아 진기와 부딪치는 낯선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소리를 듣는 순간 귀신을 본 아이처럼, 겁에 질려 선 채로 오줌을 싸는 아이처럼 꼼짝달싹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싶었어!”
제일 먼저 뇌옥에 부딪쳐 갔던 남방천마가 기겁한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도 같은 현상을 느끼고 물러났다. 하나 적멸주는 떠올리지 못했다. 말도 안 되기에. 단지 마령음을 들었을 때처럼,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발전된 소리일 것이라는 생각만 했을 뿐.
“으음! 적멸주는 희로애락을 건드리지. 어떤 감정이든……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최고조로 이끌어 올리는 역할을 해. 결국은 내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감정이 무서워지고, 무서움이 극에 달한 순간 죽는 거야. 겁에 질려서.”
서방천마가 급히 심호흡을 하여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게 적멸주?”
“생각해야 했어. 영파를 전개할 수 있다면…… 만공심안을 쓸 수 있다면 적멸주도 펼칠 수 있는 것인데.”
믿기지 않지만 믿을 수밖에 없다. 뇌옥 밖에 있던 철궁대가 단 한 명도 무사하지 못하고 전멸했다. 뇌옥 안에서 흘린 소리에 앉은 자리에서 당했다.
독무(毒霧) 같은 암습을 쓰지 않는 한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또 있다. 천멸도 살수들이 비 맞은 참새처럼 오들오들 떨며 쫓겨 나왔다. 사방천마조차도 안중에 두지 않는 놈들이 뇌옥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적멸주인지 다른 능력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능력인 것만은 분명하다.
“거참! 생각할수록 묘한 놈이네. 내 언젠가는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저놈의 머리통을 반드시 쪼개보아야겠어. 허! 이거야!”
사방천마와 천멸도 살수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들은 기다렸다.
답평은 고민을 거듭했다.
마야는 두렵지 않다. 마령음에 이어 적멸주라는 또 하나의 능력을 선보였지만 죽이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그는 죽은 목숨이다.
‘지하에 매설된 화약 이천 근이면…….’
문제는 마야의 죽음을 자신이 임의로 결정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궁왕의 심기를 거스를 수는 없다.
궁왕의 온 신경이 타타파두에게 쏠려 있고, 타타파두를 좇던 시선에 마야가 걸려들었다.
마야를 사로잡은 사실은 직접 생포에 간여한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절대 비밀이었다.
남무림을 발칵 뒤집어놓은 놈들이지만 결국은 마인 몇 놈에 불과한 것, 쓰레기 몇 놈 잡은 것 따위는 무신들이 알 필요가 없는 조그마한 사안이다.
다른 자들에게도 시시콜콜하게 알릴 필요가 없었다.
마인들을 사로잡는 광경은 많은 무인들이 보았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마인들은 뇌옥에 갇힌 후, 온갖 형벌을 받다가 죽는다. 그 정도만 알고 있으면 된다.
조금 더 신경을 써준다면 머리를 효수하여 직접 죽음을 목도하게 해줄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든 야광이 하는 일에 다리를 걸고넘어질 문파나 무인은 없다.
마야가 마령음을 내놓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때는 무신도 알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신들이 직접 마야를 대면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마령음은 천하의 정세를 단번에 바꿔놓을 수 있는 절학이니까.
하나 아직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니 알릴 필요가 없다. 마령음을 얻기 전에 죽이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으니 무신들은 더더욱 알지 못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알려지고 말았다, 궁왕 강창도에게. 마인들이 잡혀왔다는 건 알려져도 상관없으나 마야를 생포한 사실만은 몰라야 하는데, 알려졌다.
마야는 타타파두를 가졌다. 자신은 마야를 가졌다. 자신이 가진 패, 마야에게서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이 먼저여야 하는데, 마야가 가진 타타파두가 선수를 친 격이다.
궁왕이 나섰으니 자신은 모든 패를 잃었다.
‘멋지게 당했군. 이거였다 이거지. 얌전히 남도문까지 모셔온 대가로 몇 놈 살점 추려낸 것으로 만족하라 이건데……. 그럴 순 없지. 후후후! 마야…… 좋아, 인정해 주지. 널 과소평가했어. 이제부터 제대로 부딪쳐 볼까.’
답평은 활짝 펼쳐진 섭선을 접으며 일어섰다.
그는 진정 몰랐다. 몇 달 전에 북검문의 만박선생이 그와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궁왕께 마야의 위치를 알려드려라. 그전에 북척표(北刺飇)는 물러나야겠지.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될 것이고.”
“뇌옥에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자칫하면 골치 아프게 생겼군. 할 수 없지. 뇌옥에 들어갈 수 없다니 물러설 수밖에.”
답평은 웃었다.
‘화약 이천 근이면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아.’
천멸도 살수들이 무기력하게 뇌옥에서 물러 나온 지 이틀째, 뇌옥 입구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했다.
저벅! 저벅……!
고요함을 깨고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궁왕 강창도다. 그가 철궁을 굳게 움켜쥔 채 저벅저벅 걸어온다.
아무도 그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사실 가로막을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남도문은 뇌옥 탈취 사건을 알지 못한다. 남도문이 모르니 남무림 무인들도 모른다.
답평은 뇌옥 사건을 일절 함구시켰고, 비밀은 유지되었다.
원래 뇌옥은 형옥대(刑獄隊) 관할이지만 형옥대 무인들은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답평은 만사무불통지 도숭부에게서 야광 총수 자리를 넘겨받은 즉시 형옥대의 권한부터 축소시켰다.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수족을 늘리고 견제하는 세력은 줄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일부 반발이 일어났지만 예상치 못한 바는 아니었고.
결국 형옥대의 영역은 남도문 내부 감찰에 국한되었다.
이백여 명에 이르던 형옥대 무인들은 일 할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나머지는 추혼단으로 흡수되었다.
남도문 밖에 위치한 외문십옥(外門十獄)도 답평의 직속 수하이며 비밀 조직인 북척표(北刺飇)에게 장악되었다.
말이 좋아서 북녘을 치는 폭풍이지 구성 인원이 어떻게 되는지, 구성원의 무공은 어느 정도인지,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진 것이 전무한 비밀 집단이다.
궁왕은 이 모든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외문십옥도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형옥대가 관장하고 있을 때는 보보마다 도기(刀氣)가 묻어났다. 하나 북척표인지 뭔지 하는 것들이 맡은 후부터는 무풍지대나 다름없게 되었다.
강해진 것이 아니라 약해졌다.
수장이 바뀌면 조직력도 바뀐다고 했나? 답평이 야광을 맡은 후로 남도문의 저력은 절반쯤 감퇴되었다.
남도문주는 왜 가만히 있는 것인지. 만사무불통지 도숭부는 정말 낚시나 하며 여생을 보낼 참인지.
궁왕은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는 뇌옥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나, 궁왕이다.”
그는 바로 앞에 사람이라도 있는 듯이 차분하게 말했다.
저벅! 저벅……!
뇌옥 안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한 번 보면 영원히 잊히지 않을 강렬한 인상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말했다.
“이렇게 만나는군. 내가 마야요.”
피로 범벅이 된 몰골에 걸음조차 제대로 떼어놓지 못하는 아홉 사내와 빼어난 절색의 네 여인. 실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그들 열세 명은 뇌옥 입구를 등지고 빙 둘러섰다.
그들이 움직일 때까지 뇌옥 앞 공지는 평범한 땅에 불과했다. 하나 그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 남도문 무인들이 사용하는 청평도(淸平刀)를 곧추세웠을 때, 평범한 땅은 천하에 다시없을 절지가 되었다.
궁왕은 열세 명에게 둘러싸였다. 하나 청평도는 궁왕을 겨냥하지 않았다. 오히려 궁왕을 호위하듯 그를 등지고 바깥을 경계했다.
“못난 놈은?”
궁왕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그의 눈빛은 신비로웠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폭급함과 면도로 고기 비늘을 하나씩 떼어내는 듯한 정교함, 그리고 한여름의 무더위도 단숨에 얼려 버릴 것 같은 차가움이 공존하여 속내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타타파두를 말하는 것이라면, 잘 있소.”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
“당신을 잡기 위해서는.”
“내가 왔다. 잡을 자신은 있나!”
“자신없는 자가 적지에 들어섰겠소.”
“후후후!”
궁왕은 웃었다.
구르는 마차 바퀴를 향해 달려드는 당랑을 보는 듯 눈길에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소립파는 태연했다. 그는 여유있는 모습으로 나지막한 바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상조문, 철사문, 독조림을 잡는 것은 쉽소. 그들이 있는 곳을 알고 있으니 언제든지 다가가서 치기만 하면 그만이지.”
“후후후! 인육 맛을 들인 대호인데 눈이 삔 자로군. 종이호랑이로 보다니.”
“대호라…… 그러는 궁왕도 눈이 잘못된 것 같소. 마령음에 관한 소문이 자자할 텐데, 듣지 못했소?”
“후후후!”
“이틀 전에는 적멸주도 선보였지. 듣지 못했소?”
궁왕의 낯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새파란 애송이에게 희롱당한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마야가 의외로 상대하기 까다롭다는 인식을 하게 된 거다.
궁왕의 낯빛을 변하게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야는 주목을 받아 마땅한 인물이 되었다.
“상조문, 철사문, 독조림…… 치고자 하면 치지 못할 상대들은 아니오. 무엇보다 나는 그들을 치고자 장강을 건넜으니, 그들에게 하늘을 무너뜨리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내 발길은 막지 못하오.”
“그럼 그렇게 하지 그랬나?”
“당신이 더 깊이 숨게 되니까. 그들은 홀로 떨어져 있는 맹수에 불과한데, 당신에게는 남도문이라는 성벽이 둘러쳐져 있으니까. 일을 쉽게 하기 위해서 고육지계 좀 써봤소.”
소립파가 무슨 말을 하든 궁왕은 흔들림없었다. 당장 이 자리에서 목을 떨어뜨리고 죽는다 해도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궁왕은 남무림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초절정고수다. 앞에 누가 서 있든 그가 흔들릴 이유는 없다.
“날 잡기 위해서 일부러 잡혔다는 것인가?”
“잡을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소. 당신 곁에 다가서기 위해서요. 이런 식으로 남도문까지는 올 수 있는데, 당신 앞까지는 가지 못하지. 내가 가지 못한다면 걸어오게 만드는 방법뿐. 그래서 치졸하지만 타타파두를 이용했소.”
“하오문인 것 같던데?”
소립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서슴없이 대답하는 걸 보니 정말 날 잡을 자신이 있는 게로군. 꼭 잡아야 할 게야. 그렇지 않으면 하오문은 씨가 남아나지 않게 될 테니까.”
“궁금한 점은 왜 묻지 않소?”
“…….”
“치졸하기는 했지만 방국이란 자…… 타타파두를 영원히 사랑할 거요. 당신 눈에는 양이 차지 않겠지만 타타파두를 면밀히 분석한 끝에 무난히 백년해로할 것이라고 판단된 자이니 조금은 안심해도 괜찮을 거요.”
예상대로다.
모든 것이 마야와 하오문의 수작이다.
‘멍청한 놈…….’
이 순간, 궁왕은 답평의 넓적한 얼굴을 떠올렸다.
남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자가 남도문 야광 총수를 맡고 있으니 남도문의 앞날도 뻔하지 않겠나.
도대체 머릿속에 똥만 담아놓았나?
만사무불통지라면 서너 수 앞쯤은 볼 수 있는데, 놈은 한 수 앞도 보지 못한다.
놈의 생각? 안다! 마령음을 얻어서 단숨에 북검문을 짓눌러 버릴 생각일 게다.
천만에!
마야가 펼쳐 보인 마령음이나 적멸주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습득할 수 없다.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능력이다. 확실하게 말하면 기형적인 성대를 가지고 태어나야 하며, 더불어서 영감(靈感) 또한 극도로 발달되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