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64
64
서방천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낯빛은 차게 굳어 있었다.
누구도 마야를 이렇게 높이 보지 않았다. 마령음이라는 기이한 능력이 눈엣가시이기는 하다. 하나 무공을 모르는 자이니 죽이고자 하면 쉽게 죽일 수 있는 자였다.
정작 한 사람씩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때, 마인들 중 가장 손쉽게 제거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마야다.
적멸주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큰 위협은 되지 않았다.
적멸주에 대항할 수 있는 파청공이 있다. 그마저도 통하지 않을 때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화살을 쏘거나 암기를 던지면 된다.
마야 정도를 죽이는 데는 초절기까지 사용할 필요가 없다. 지근거리에서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된다.
그런데 정작 죽이려고 하니 일이 틀어진다.
북척표가 총동원된 지금, 마야는 죽는 길밖에 없었다. 뇌옥을 장악하고 숨어 있지만 그곳이야말로 빠져나갈 길이 없는 막다른 길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외통수는 있을 수 없다.
한데, 이건 또 뭔가? 오히려 북척표가 지리멸렬하다니!
“수폭(水爆)이야.”
동방천마가 욕금진기를 가득 끌어올렸는지 양 볼을 도홧빛으로 물들인 채 말했다.
“수폭?”
“오귀궁, 기억나?”
“뇌귀(雷鬼)!”
“뇌화문(雷火門)이 건방지게 뇌(雷) 자를 사용한다고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화약 귀신이야. 뇌귀가 평생 심득을 다 쏟아 부어서 완성해 낸 것이 바로 저 수폭이고.”
화약은 불을 붙여야 터진다.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지만 꼭 불을 붙여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닌다. 수만 근의 화약을 묻어놓아도 도화선만 잘라내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가장 든든하면서, 믿을 수 없기도 한 물건이다.
뇌귀는 평생을 바쳐서 불을 붙이지 않고 터질 수 있는 화약을 연구했다.
하나라도 더 알고자 하는 자,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깊이 파고드는 자……. 눈에 보이는 것이 있다.
뇌귀는 화약에 고무나무의 진액을 버무려서 휴대하기 용이하게 만들었다. 또한 천남성(天南星: 약초)의 일종인 화우(火芋: 토란의 일종)도 찾아냈다.
화우는 동물처럼 체온을 지닌다. 밤이 되어 공기가 서늘해지면 화우는 스스로 열을 내어서 따뜻함을 유지한다. 온기는 새와 곤충에 비견할 정도이다.
열을 내는 식물.
뇌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배였다.
화우를 가루 내어 자신이 만든 말랑말랑한 화약에 섞었다.
섞자마자 터지기도 하고, 몇날 며칠을 두 눈 뜨고 지켜봐도 터지지 않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화약과 고무와 화우의 최적정 배합률을 찾아냈다.
완성된 화약은 도롱뇽 알처럼 매끈거렸다. 벽에 던지면 철썩 달라붙었다.
물기를 많이 머금어 촉촉한 습기가 묻어나는 화약, 수폭이다.
수폭은 태양에 노출되면 쉽게 폭발한다. 때문에 태양열이 닿지 않도록 매설해야 한다. 열기를 가까이하면 바로 터진다. 근처에 화로 하나만 있어도 대참사가 일어난다. 무거운 물체로 짓누르면 화우 가루가 마찰을 일으켜서 폭발한다.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요체는 화약과 화우다.
오귀궁이 멸문할 즈음, 뇌귀는 고무를 버렸다. 그는 화약과 화우만 지니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마다 즉시 배합하여 사용했다.
그를 죽이려면 촌각의 여유도 주어서는 안 된다. 촌각이면 방원 일 장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수폭을 만들 수 있다. 동귀어진까지 생각한다면 상관없겠지만.
두어 마디 말을 나눈다면 죽이기를 포기해야 한다. 방원 십 장이 초토화된다.
일다경 정도 시간이 흐른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주해야 한다. 그는 안전한 곳에 숨을 수 있지만 죽이려는 자는 보보마다 악귀의 덫이 깔려 있을 것이다.
“뇌귀…… 수폭…….”
서방천마가 소도를 꺼내 혀에 대며 중얼거렸다.
“아마도 저건 논귀가 동귀어진으로 펼쳤다는 만참만살대진일 거야. 뇌귀의 수폭, 암귀(暗鬼)의 암기술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완성된 살진이 그거니까. 아! 독귀(毒鬼)의 절독이 빠졌나?”
“또 하나 빠진 게 있어. 잡귀(雜鬼). 특이한 능력이라고는 전혀 없고 온갖 잡스러운 손재주만 지닌 자. 하지만…… 아무 능력도 없는 자가 뇌귀, 암귀, 독귀, 논귀 같은 자들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해? 잡귀의 능력을 무시하면 안 돼. 그러고 보니…… 오귀궁과 마야, 저놈…… 모종의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지나친 추측 아냐?”
동방천마가 서방천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에 와서는 모두 뒤져봐야지. 여기서는 철수해야 돼. 우린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굳이 마야를 죽이겠다면 우리도 목숨을 내놔야 할 거야. 그래도 승률은 삼 할밖에 되지 않을 테고.”
사방천마는 뇌옥 입구를 쳐다봤다.
북척표, 그들은 오도 가도 못한 채 멀거니 서 있다. 간혹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움직이는 자가 있지만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땅이 뒤집히고 철편이 날아다닌다.
파청공이 적멸주를 막을 수 있는지 봐야 한다.
하나 뇌옥 근처에는 접근조차 못하고 있는데, 마야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데 파청공인들 무슨 필요가 있으랴.
북척표 속에 파청공을 수련한 자 다섯 명을 집어넣었다.
그들의 목적은 마야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적멸주가 터져 나올 때 물러서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오래 버틸 필요도 없다. 촌각만 버텨준다면…….
그 다섯 명 중 네 명이 뇌옥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살아남은 한 명조차 두 다리가 바위처럼 굳어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사방천마 중 북방천마가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먼저 신형을 날려 사라져 갔다.
“저 자식…… 아주 밥맛덩어리라니까. 어차피 한솥밥 먹는 처지에 웃고 지내면 어디가 덧나나.”
남방천마가 투덜거리며 북방천마의 뒤를 좇았다.
제6장 고무변(苦無邊) ― 괴로움은 끝이 없다
1
답평은 북척표를 일부는 믿고 태반은 믿지 않았다.
애완동물이란 가지고 놀 기분이 날 만큼 귀여워야 한다. 아니면 분골쇄신이라도 할 만큼 충성스러워야 한다.
북척표는 귀엽지 않다. 입을 꽉 다물고 있지만 입술 밖으로 튀어나온 송곳니가 언제라도 목덜미를 물어뜯을 듯이 흉흉스럽다. 충성스럽지도 않다. 태생적으로 충성이라는 말을 모르는 인간들이니 눈에서 벗어나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들 중 일부가 산을 오르다 말고 석상이 되었다. 선 채로 똥오줌을 싸는 창피를 당하더라도 움직일 수 없는 입장이다.
그들은 간절하게 구원의 눈길을 보내온다.
“황소를 준비해라.”
답평은 눈살을 찡그렸다.
두두두두……!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황소 한 마리가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큼지막한 몸뚱이에는 솜을 겹겹이 감쌌고, 물까지 먹여 몹시 무거워 보였다.
황소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눈 가린 천이 답답하다는 듯 맹렬하게 질주해 나갔다.
“어어! 저저…….”
석상이 되어버린 무인들 입에서 당혹스런 음성이 새어 나왔다.
앞을 보지 못하는 황소가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지 않은가.
모두들 단단히 어금니를 악물었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황소가 몸을 들이받으려고 할 때, 허공으로 뛰어올라 등을 걷어차고 가능한 멀리 날아가는 방법뿐이다. 재수없어서 화약 뭉치 위에 떨어지면 끝장나는 거고.
두두두두! 파앗!
무인 몇 명이 동시에 땅을 박차고 솟구쳤다.
그들은 정확히 황소의 등에 날아 내렸다. 아니, 발을 닿는 순간 재차 허공으로 도약하여 어림짐작해 놓은 곳에 착지했다.
폭발은 없었다.
당연하다. 황소가 질주해 온 길이니 화약이 있었다면 진작 터지지 않았겠는가.
그들은 웃었다. 석상에서 풀려나지 않은 동료들만 아니라면 앙천광소라도 내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심정이 바로 이러려니. 그 순간,
꽈아앙!
엄청난 폭음과 동시에 흙가루가 뿌옇게 피어났다.
조심조심 살펴보며 걸어도 모자랄 판에 미친 듯 질주했으니 폭발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황소를 중심으로 반경 오 장이 쑥대밭으로 변했다.
사람은커녕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었다. 황소 등을 타고 넘었던 무인 몇 명, 그리고 움직이지 못했던 몇 명이 있었는데 감쪽같이 증발해 버렸다.
땅이 완전히 뒤집혀 붉은 황토를 고스란히 드러낼 정도. 지금까지 일어났던 폭발들보다 배는 강력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두두두두……!
황소의 죽음과 동시에 다른 황소 한 마리가 또다시 질주해 왔다.
“저, 저 미친!”
“저, 저…… 황소에…… 황소에 화약이 매달려 있어!”
“뭐, 뭐라고!”
경악이 경악으로 이어졌다.
예상외로 강력한 폭발에 의아심을 품은 무인이 질주해 오는 황소를 관찰했고, 배 부분에 매달린 화약을 발견했다.
폭발을 역으로 이용한다.
더욱 강력한 폭발로 땅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분분히 날아오르는 철편은 물 먹인 솜으로 흡수한다. 크고 질긴 황소 가죽도 철편을 붙잡아놓는데 단단히 한몫을 하리라.
그렇게 황소 한 마리가 죽어나가면 방원 오 장은 무풍지대가 된다.
뇌옥까지의 거리는 이십여 장, 겨우 황소 네다섯 마리면 길이 환히 뚫린다.
그러나 석상이 된 사람들은 어찌 되는가. 땅에 묻힌 화약만으로도 지옥을 열두 번은 오락가락하는데 그보다 훨씬 많은 화약을 무더기로 쏟아 부으면 어쩌란 말인가.
“우린 꼼짝없이 다 죽는 거야!”
“답평, 이 개자식! 야광! 이 때려죽일 놈들! 정도 놈들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에라이, 이 개자식들아! 이게 소위 협의를 내세우던 네놈들이 할 짓이냐! 이 똥물에 튀겨 죽일 새끼들아!”
석상이 되어버린 무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광분했다.
“뛰어! 폭발이 일어난 곳은 괜찮을 거야!”
가을철 메뚜기들의 모습이 이럴까.
가만히 있어도 죽고 움직여도 죽을 바에야 일말의 희망이 있는 곳에 몸을 던지기 마련이다.
무인들은 신법을 전개하여 방금 전에 폭발이 일어나 아직도 화약 냄새가 매캐한 곳으로 뛰었다.
두두두두……!
황소 한 마리쯤 피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폭발로 인해 땅이 뒤집힌 범위가 오 장, 몸을 틀어 피해낼 공간도 넘친다.
무인들은 황소를 피해내고, 일제히 산 아래를 향해 치달렸다.
꽈아아앙……!
그들의 등 뒤로 화약 냄새를 품은 후덥지근한 바람이 밀어닥쳤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사람은 겨우 삼십여 명.
그들은 답평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아니, 눈에 띄는 대로 격살을 해버려야 속 시원할 원수였다.
답평이라는 자, 야광 총수이니 머리가 지극히 뛰어날 터이다. 하나 무공이 뛰어나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보는 즉시 죽여 버린다. 싸우라고 내몰 때는 언제고 움직이지 못하니 개돼지 취급을 해?
그렇다고 그들이 바보는 아니었다.
답평의 주위에는 그들로서는 상대할 수 없는 고수들이 득실거린다. 숨어 있는 자도 있고, 노골적으로 옆에 붙어 있는 자도 있다. 그를 죽이려다가는 오히려 죽임을 당한다.
무인들은 답평이 십여 장 밖에 있어도 달려들지 못했다.
“쯧! 한심한 사람들 같으니.”
답평은 그들의 속을 뒤집었다.
의외로 황소는 많이 전진하지 못했다.
이십여 장의 공간을 뚫는 데 여덟 마리가 소모되었다.
황소…… 아무리 죽어도 상관없다. 피를 흠뻑 뒤집어쓴 귀신이 되어서야 뚫을 수 있을 것 같던 공간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답평은 제이대와 제삼대를 손짓했다.
제일대는 마공을 수련한 자들로 구성되었다. 인원수로 밀어붙이는 자들 가운데서 가장 강한 자들이다. 하나 그들은 검풍 한 번 일으키지 못하고 쓰러졌다.
제이대는 낭인(狼人)들로 구성되었다.
정통 수련을 받은 자도 있고, 아닌 자도 있지만 칼밥을 먹고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남도문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영역은 날이 갈수록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남도문이 초지를 개간할수록 황야를 떠돌던 늑대는 좁은 곳으로 내몰렸다. 그리고 결국은 북척표 제이대가 되었다.
제삼대는 그래도 조금은 믿어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답평이 지리멸렬해 가는 문파들을 돌아보며 직접 수용한 무인들이다.
재질은 옥인데 깎는 자의 솜씨가 미천해서 돌보다도 못하게 변했다.
답평은 그들을 다시 깎아서 사람 몫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적어도 남도문 외장(外莊) 삼첨(三尖)인 철궁대나 형옥대, 추혼단 정도는 상대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누가 공을 세우겠나?”
“소인들이 하죠.”
제삼대가 먼저 나섰다.
예측대로다. 제삼대는 아직 멀었다. 싸움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 반면에 제이대는 너무 싸움을 잘 안다. 그렇기에 직접 지시하지 않으면 나서지 않는다.
본인들에게 의향을 묻는다? 나올 결과는 삼척동자도 안다.
“안에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절정고수다. 마도만 해도 그래. 적수가 없다던 놈이다. 무신만이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나돌아. 그런 놈들이 득실거린다. 자신있나?”
“놈들은 진기도 대부분 고갈되었고, 운공도 제대로 못합니다. 육신은 찢기고 곪아서 반병신이나 다름없는데 그런 자들을 무서워한다면 북척표라고 할 수 없죠.”
제삼대장이 자신있게 말할 때, 제이대장은 옅은 고소(苦笑)를 배어 물었다.
‘여든한 명. 너무 많아. 너희들이 서너 명쯤 남았을 때, 그때나 내 곁에 머물게 될 거야. 절차탁마(切磋琢磨)하기에는 싸움판이 제일 낫겠지.’
“가봐라.”
답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슈슈슈슛……!
여든한 명은 아홉 명이 한 조를 이뤄 뇌옥으로 뛰어들었다.
뇌옥 안은 어두컴컴했지만 눈감고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들어와 본 적은 없다. 사전에 그림으로 숙지해 놨을 뿐이다. 하나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런 경우를 예상해서 한두 번 손발을 맞춰본 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