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65
65
차착! 차차착……!
한 조가 앞으로 나가 안전을 확보하자 다음 조가 그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갔다.
그들은 질서정연했다. 일사불란했다. 아홉 명이 한 명인 것처럼 비틀림없이 움직였다.
탁! 탁!
앞서 나가던 무인이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자신의 머리를 두 번 내려쳤다.
뇌옥에 사람이 있다는 표시다. 그것도 두 명.
스윽!
수도(手刀)가 뒷덜미에 닿더니 목 앞까지 쭉 그어 내린다.
제삼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덜컹!
“끄으윽!”
“아악!”
비명은 단 두 마디로 끝났다.
구차한 신음 소리나 헐떡거림이 흘러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손속은 깨끗했다.
탁!
제삼대장은 왼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탁 친 다음, 앞으로 쭉 내뻗었다.
그의 뒤에 있던 다른 일조가 재빨리 앞으로 달려나가 뇌옥을 살핀 후, 자리를 잡았다.
“여든한 명. 괜찮겠어?”
“해볼게요.”
금연화는 청평도 두 자루를 힘껏 휘둘렀다.
확실히 자하검보다는 무겁다. 청평도로 자하쌍구검을 펼치면 일 할쯤 위력이 감소한다.
궁왕은 정확히 보았다.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인데 손해를 감수하면서 싸운다면 이미 져놓고 싸우는 격이다.
싸움을 뒤로 물린 것은 결코 그가 불리해서가 아니다. 순전히 무인의 호의로 받아들여야 한다.
제대로 준비도 안 된 후인(後人)과 싸우기에는 궁왕도 자존심이 상했을 게다. 그만큼 자신을 믿는 마음이 단단하다. 궁왕이라면 중원 천하 누구든 눈 아래로 굽어볼 자격이 있지 않겠나.
“놈들 중에 검을 사용하는 자가 있을 거야. 우선 검부터 취해.”
“걱정 마세요.”
“자하쌍구검은 백형검법(百形劍法). 일형(一形)에 한 명만 노리고.”
“그렇게 염려되세요?”
“도와주지 않을 테니까.”
“이 정도도 해결하지 못하면 궁왕과 맞설 자격이 없겠죠.”
금연화는 이미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백삼십이로를 파해한 것, 그것보다 훌륭한 입증은 없다.
혈귀대는 치고 빠졌으니 논외로 하고, 천랑대주는 뚫기는 했지만 중상을 입었다. 그렇다면 금연화는 천랑대주에 필적할 만한 고수라는 말이 된다.
뇌옥을 들어선 자들은 상당히 조직적이나 풋내가 풍긴다.
금연화의 상대가 아니다. 한데, 소립파는 왜 이토록 조심을 당부하는 것일까.
“일형에 한 명만. 꼭 명심해.”
금연화가 소립파를 쳐다봤다.
“뭔가 있군요.”
“궁왕과 싸우려면 혼자 해결해야지?”
“알았어요. 일형에 한 명만.”
금연화가 쌍도를 움켜쥐고 빠져나갔다.
사사사삭……! 스스슷!
회랑(回廊)에서 두 줄기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한줄기 바람은 땅에서 일어났다. 무인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서로가 서로를 보호할 수 있는 최적의 거리다. 쾌속하게 전진하는 데도 용이하다.
다른 바람은 천장에서 일었다.
쌍도를 돌 틈바귀에 꽂아놓고 회랑을 지켜보던 금연화가 가을 낙엽처럼 떨어지며 쌍도를 휘둘렀다.
“적! 컥!”
‘일형에 한 명만.’
이기일원검(二氣一元劍), 우도(右刀)가 태풍처럼 일어나 목을 훑는 동안 좌도(左刀)는 음유롭게 땅을 스치며 다른 자를 겨냥한다.
손이 두 개다. 칼이 두 개다. 몸은 하나이나 손은 각기 움직인다. 양과 음을 동시에 전개해 낼 수 있다. 진기는 몸통을 관통한다. 축이다. 양손은 축에서 갈라진 극과 극의 진기를 뿜어낸다.
분심공(分心功)이나 양심공(兩心功)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무공이다.
목표로 한 자가 무너질 때, 땅을 훑던 음도(陰刀)가 다른 자의 가슴을 찔렀다. 양도(陽刀)는 뽑혀져 나와 천중(天中)을 가리키고 있었다.
“크윽!”
“컥!”
비명 소리는 짧았지만 사방이 꽉 막힌 뇌옥을 쩌렁 울렸다.
자하풍류신법(紫霞風流身法)!
금연화가 홀연히 사라졌다. 그녀는 벌써 어둠과 동화되어 보이지 않았다.
접전을 벌이는 동안, 금연화는 힘이 빠졌다.
‘너무 약해.’
솔직한 느낌이다. 궁왕만을 생각하며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해 왔는데, 시험 삼아 부딪친 자들은 너무 약했다.
이런 자들이라면 여든한 명이 아니라 이백 명이 몰려온다고 해도 무섭지 않다.
이런 싸움에 적격인 사람이 있다.
제일 적합한 사람은 절혼마녀로 뇌옥의 특성과 사루, 귀루의 무학이 어울리면 저들에게는 염라대왕이 따로 없다.
절혼마녀 다음으로는 일령이 어울린다.
이런 장소에서 선유비조신법과 염화옥수는 죽음의 마수(魔手)다.
마야…… 그는 왜 자신보고 나서라 했나?
마도의 살인검처럼 감각을 다듬으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궁왕과의 싸움을 염두에 두라고 했으니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궁왕의 은형시(隱形矢)와 연관이 있을 게다.
궁왕의 활은 무적이다.
겨냥은 물을 필요도 없다. 어떤 자세, 어떤 호흡으로 쏘아도 백발백중이다.
일반적으로 활을 사용하는 사람은 시위를 당긴 후 맹점을 드러낸다. 다음 시위를 걸 때까지 틈이 벌어지는 것이다.
궁왕은 그런 틈도 주지 않는다. 쏘아냄과 동시에 다른 시위가 걸리고 있다.
화살은 무척 빠르다. 너무 빨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은형시라고 불릴까. 보통 화살보다 절반이나 가늘고, 길이는 절반쯤 길다고 하니 얼마나 빠를지 가히 추측해 볼 수 있다.
강도는 어떨까? 어쩌다 운이 좋아서 화살을 볼 수 있다면, 그래서 쳐낼 수 있다면?
어림없다. 궁왕의 화살은 도끼로 쳐내도 쪼개지지 않는다. 도끼로 막으면 오히려 도끼를 꿰뚫고 나아가 목표를 관통시킨다.
궁왕은 무인이면서 철저한 싸움꾼이다.
싸움을 하기 전에는 자비도 있고, 아량도 베풀지만 싸움판에 들어서면 일절 용서가 없다.
그의 화살은 빗맞아도 절명한다. 촉에 독까지 묻어 있으니 무슨 수로 버텨낼 수 있을까.
그는 누구도 상대하지 못하는 무신이다.
어쩌다가 겁없이 그런 사람에게 도전했는지.
‘일형에 한 명. 여기에 단서가 있을 거야. 쳇! 좀 쉽게 말해주면 안 되나.’
아홉 명…… 죽음을 모르는 자들이 또 보인다.
지금까지 숨을 끊어놓은 자는 서른여섯 명. 아홉 명이 한 조로 움직이니 네 조를 몰살시켰다.
다른 조가 습격을 눈치 채고 달려들 때는 이미 사라지고 없을 만큼 재빠른 공격이고 후퇴다.
이대로 한두 시진만 흐르면 여든한 명 모두 몰살시킬 수 있다.
몰살이 목적이 아니다. 사람 잡는 백정도 아니고, 적이라고 해서 모두 죽일 필요는 없는 것이고.
그런데 마야는 죽이라고 했다. 왜?
일형, 한 가지 초식에 한 명만 죽이라고 했다. 양손을 사용할 수 있는데 한 손만 죽이는 데 쓰고 다른 손은 놀리라는 말이다.
남은 자는 마흔다섯 명.
그들이 후퇴하기 전에, 몰살시키기 전에 궁왕과 싸울 방도를 찾아내야 한다.
일방적으로 자신만 생각한 건가?
이들도 생각이 있을 터, 그냥 당하지는 않을 게다. 방도를 세웠을 텐데…….
금연화는 이들에게서 빼앗은 쌍검을 단단히 움켜쥔 채 다시 신형을 쏘아냈다.
2
차앙! 파아앗!
“헉!”
금연화는 깜짝 놀라 헛바람을 토해냈다.
세심하게 신경을 기울여서 여섯 번째인지 일곱 번째인지를 쳐갈 때였다.
양검이 벽에 바짝 붙어 있는 자의 몸통을 갈라냈다. 순식간에 음검과 양검은 교차했고, 양검이 숨을 돌리는 동안 음검은 다른 자의 두 다리를 잘라냈다.
그때, 허공에서 번쩍! 하고 불길이 일어났다.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을 때와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또렷하게 봤다. 확실했다.
뭐야, 하는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허리춤이 화끈거렸다.
순발력이 조금이라도 못 미쳤다면 허리가 양단되어 회랑을 뒹굴고 있으리라.
금연화는 즉시 공격을 멈추고 몸을 물렸다.
금연화는 자하밀공을 자신했다. 자하밀공으로 펼치는 자하쌍구검은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주 만물의 조화가 양손에서 어우러지는데 누가 상대할 수 있으랴.
내공도 뒷받침되니 자하밀공은 날개를 단 셈이다.
하나 제아무리 강한 무공을 지녔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은 잡을 수 없다.
무인이 육안에만 의지해서는 오래 살지 못한다.
심안이라고 해도 좋고, 육감이라고 해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눈으로 보기 전에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무인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라고 말할 때는 느낌으로 잡을 수 없는 적을 말한다.
금연화는 아무런 느낌도 감지하지 못했다.
적의 병기에는 핏물이 묻어 있다.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허벅지를 타고 종아리로 떨어질 때, 적의 병기에 묻은 피도 방울방울 알이 맺혀 떨어진다.
적은 근처에 있다. 하나 전혀 느낌으로 와 닿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적. 이걸 어떻게…… 일형에 한 명만. 한 명만…….’
마야, 그는 왜 꼭 한 명만 죽이라고 했을까? 왜?
***
사람들은 누군가를 죽이거나 치기 위해 무공을 수련한다. 혹자는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라고도 하고, 격투보다는 심신 수양이 우선이라고도 한다.
무슨 말을 하던 간에 무인은 사람을 죽인다.
그럼 살기 위해 무공을 익힌다는 말도 가능하겠지?
가능한 정도가 아니다. 진실로 살기 위해서 무공을 수련한다.
손발에 느낌이 없어진다.
무엇을 만져도 만지는 느낌이 없다.
의원이란 놈들은 지각마비라고 간단히 말하지만 겪는 사람은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검을 잡아도 감각이 없다. 사람을 만져도 느낌이 오지 않는다.
그것은 약과다.
그 정도에 징징거리는 놈들은 눈깔을 뽑아버려야 한다.
손이 곱아지고, 오장육부가 썩어 들어간다. 눈은 침침해지고 발은 갈고리처럼 휘어진다. 뒷머리가 움푹 파이기도 하고, 코뼈가 함몰되며, 안면 근육은 마비 증세를 일으킨다.
보는 사람은 눈살을 찡그리면 그만이다.
당해보라. 그 고통…… 하루 열두 시진 동안 잠시도 멈추지 않고 사지육신이 뒤틀리면 어떤 마음이 생기는지.
이 시점에서 순발력이라든가 판단력 같은 것은 멀찌감치 도망가 버린다.
폐인이 되는 과정은 아직도 멀었다.
두 눈이 실명해야 한다. 관절은 딱딱하게 경직되어 움직이는 것이 가장 처절한 고통이 되어야 한다.
자식도 낳을 수 없다.
남자는 고환이 파괴되고, 여자는 젖가슴이 뭉개진다.
흔히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 한다. 개똥밭도 개똥밭 나름, 벌레처럼 꿈지럭거리는 인생이 되고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인간이 있으면 이를 뽑아버리련다.
그래서 무공을 수련한다.
진기로 마비를 늦추고, 관절 경직을 끊임없이 풀어주고, 썩어서 떨어지려는 살점에 온 신경을 기울인다.
남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벌레가 되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서 무공을 수련한다.
천멸도, 하늘도 버린 땅.
그들은 누구보다도 강하다. 죽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수련한 무공이니만치 처절함이 극한에 다다라 있다.
싸우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꼴에 그것도 무인의 삶이라고……. 검을 휘두르다 죽는다면 의미라든가 하는 시건방진 말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들은 죽음을 무서워한다. 죽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무공을 수련할 만큼 무섭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죽음만큼이나 두렵다. 특히, 사람들의 수군거림이나 손가락질은 절망스런 사람을 더욱 깊은 늪으로 밀어 넣는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다.
형체가 볼 수 없는 음지에서만 움직인다. 병신들에게는 명예가 없다. 공격할 때도, 방어할 때도…… 마주칠 필요가 무엔가. 소리없이 나아갔다가 소리없이 돌아오면 그만인 것을.
스스슷……!
천멸도 살수들이 움직였다.
***
금연화는 쌍검을 꽉 움켜잡은 채 긴장을 풀지 못했다.
뇌옥을 침입한 자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 속에 숨어 있는 자들이 무서웠고, 어느 정도 윤곽도 잡아냈다.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으면서 무형, 무성의 검공을 펼쳐 내는 자라면 천멸도 살수밖에 생각할 수 없다.
천멸도 살수들이 섞여들었다.
마야는 알고 있었다.
어떻게? 보지도 않았으면서? 들어선 자들이 여든한 명이라고 꼭 짚어서 말했을 뿐 아니라 은밀하기로는 천하제일이라는 천멸도 살수들까지 짐작해 냈다면…….
금연화는 느닷없이 웃음이 새어 나와 볼을 씰룩거렸다. 웃음을 터뜨릴 수는 없어 억지로 참으려니 볼 근육이 이상하게 움직인다.
마야를 처음 만났을 때 무공을 익힌 자인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해서 애를 먹었다.
지금 문득 그 생각이 다시 난다. 혹여 마야가 무공을 익히지 않았나 하고. 그러면 몇 명이 들어섰는지 정확히 짚어낸 것도 설명할 수 있으니까.
마야는 천멸도 살수들을 염두에 두고 일형일살을 말한 것이다.
‘일형에 일살…… 왜?’
의문을 풀어야 한다.
느낌은 상당히 안 좋다.
보이지는 않지만 사방에서 예기가 밀어닥친다.
자신은 나무 기둥에 꽁꽁 묶여 있는데, 성난 군마가 장창을 꼬나들고 달려드는 느낌이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손쓸 사이도 없이 당한다. 천멸도 살수가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지만 두세 명만 되어도 감당하지 못한다.
마야가 영파로 위치를 알려줬으면……
어림없는 바람이다.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마야는 손을 내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죽으나 궁왕에게 죽으나 매한가지.
‘자하쌍구검…… 백형검법…… 백형…… 백형…….’
확신은 서지 않지만 기대볼 만한 생각은 떠오른다.
백형검법은 각 형마다 절정초식이다. 백 가지 절정초식이 어우러져 있는 초식의 결정체가 백형검법이다.
완벽하게 소화했는가? 그렇다.
일령과 수없이 비무했다. 절혼마녀와도 겨뤘다. 칠 주야 동안 겨룬 것을 제외하고도 날이면 날마다 검법을 완성시키기 위해, 완성했다 싶은 순간부터는 자신만의 검법을 만들기 위해 한시도 손을 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