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66
66
건방진 말이지만 자하부를 이끄는 아버님도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럴 경우, 똑같은 자하쌍구검이지만 깊이나 세기(細技) 면에서 자신이 몇 발자국 앞서 나간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마야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부지런히 초식 수만 늘일 것이 아니라 한 초식이라도 정확하게 펼쳐 보이라는 뜻이지 않을까?
금연화 같은 사람에게는 모욕적인 주문일 수도 있다.
옛날이라면 모르지만 자신만의 검을 얻은 지금, 초보자들에게나 주문할 만한 말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야는 했다. 그가 말한 일형일살은 그런 뜻이 아니면 해독할 수 없다.
‘해보면 알겠지. 일형일살……. 분명히 합공을 해올 터인데…… 한 명을 완전히 죽이기 전에는 다른 손을 움직이지 않을 거야. 설혹 검을 맞는다 해도.’
스슷! 스스슷……!
거의 동시에 움직임이 일었다.
노리는 목표는 각기 달랐다. 금연화는 아홉 명이 한 조를 이룬 사내들을 노렸고, 그런 그녀를 누군가가 노리며 달려들었다.
파앗! 차앙!
번뜩이는 검에 피분수가 솟구쳤다.
금연화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 노린 자를 베어내고, 짓쳐 오는 천멸도 살수를 맞이해야 한다.
일차는 성공했다.
일형으로 한 명의 목을 베어냈다. 다른 일형으로는 보이지 않는 검을 막아냈다.
금연화는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사내의 목을 쳤던 피 묻은 검이 다른 자의 가슴을 꿰뚫었다.
일형완성! 그 순간, 음검은 다리 쪽으로 짓쳐 내려갔고, 정확하게 검의 부딪침을 일궈냈다.
차앙!
‘일형완성!’
아무 생각도 없다.
어떤 초식을 전개하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천멸도 살수는 즉각적인, 너무도 순간적인 반응을 요구했다. 요구에 부응하지 않으면 죽음이다.
그녀의 머릿속을 휘젓는 말은 딱 한마디뿐이었다.
“자하쌍구검은 백형검법. 일형에 한 명만 노리고.”
‘일형에 한 명만!’
파앗!
또 한 명이 목숨을 내놓았다.
그러고 보니 순서가 바뀌지 않는다. 양검은 구인일조를 한 명씩 죽여가고 있으며, 음검은 천멸도 살수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사용된다.
일형일살, 한 번에 한 명이며 한 번의 실수는 죽음으로 이어지니 음과 양의 순서는 바뀌지 않는다.
‘이거였어! 이거!’
마야의 뜻을 잘못 알았다.
백형검법을 완성한 사실은 그도 인정하고 있다. 손에 익을 대로 익어서 십이성(十二成)의 경지를 향해 치닫고 있음도 알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쉽게 풀 수 없는 숙제를 내준 것이다.
이제는 그 뜻을 풀었다.
마야는 금연화에게 지금까지보다 배는 빠른 검법을 주었다.
자하쌍구검이 두 배로 빨라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말하는 사람이 마야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럴 수 있다 해도 내게는 요원한 일’ 하며 넘어갔을 것이고,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미친 소리 말라고 무시했을 게다.
금연화의 검법은 순식간에 두 배로 빨라졌다.
전의 자하쌍구검이 왼손과 오른손을 합쳐서 일형이 완성되었다면, 지금은 왼손과 오른손이 따로 놀고 있다.
두 명의 금연화가 합공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한 명은 수비를 하고 있으며, 다른 한 명은 공격을 전담한다.
여기에 일형일살의 묘미가 숨어 있다.
마야는 일형으로 한 명을 죽이기 전에는 다른 검형을 펼치지 말라고 했다. 즉, 한 손이 한 명을 죽이기 전에는 다른 손도 수비나 공격을 일절 할 수 없는 것이다.
검법이 두 배로 빨라진 이유다.
‘완벽한 자하쌍구검이야!’
이제는 일형일살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한 손으로는 공격을, 한 손으로는 방어를. 때로는 양손으로 공격을, 혹은 양손으로 방어를.
한 몸에 각기 다른 두 가지 초식이 완벽하게 재현된다.
‘좋아! 해보는 거야!’
파앗!
금연화는 자하풍류신법을 극성으로 펼쳐 냈다.
숨지 않는다. 구인일조로 합공을 취하는 자들, 얼마든지 오라. 천멸도 살수들이여, 마음 놓고 공격하라!
차앙! 창창창……!
싸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농익어갔다.
금연화는 마야가 자신을 왜 이 싸움에 몰아넣는지 이유를 확실히 알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양검은 가공할 태풍을 일으키고, 음검은 더욱더 음유로워진다.
천멸도 살수들과 부딪치다 보니 알게 모르게 그들을 닮아가는 구석도 있다.
음검의 부드러움은 무음 무성하고도 상통한다.
그들이 신형을 숨길 때, 금연화는 음검을 숨긴다. 그들이 소리없이 나올 때, 금연화의 검도 어느덧 드러나 있다.
무엇보다 큰 소득은 음검이 깊이를 더해갈수록 천멸도 살수들의 움직임이 명확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누구도 천멸도 살수들을 감지하지 못했다.
마도, 수검, 시마…… 쟁쟁한 마인들이 수두룩했지만 마야가 영파로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도륙될 상황이었다.
그런데 느낌이 온다. 보인다.
이는 양검과 음검이 확실한 위치를 잡고 움직이는 순간 공기의 파랑이 감지된다. 또 이러한 현상은 궁왕의 화살 역시 느낌으로 감지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양검의 역할도 음검 못지않게 중요하다.
맹렬하게 토해지는 검기가 사방으로 짓쳐 나가 공격 범위를 좁혔다.
천멸도 살수들이라고 무작정 뚫고 들어오지는 못한다. 그들 역시 틈이 있어야 뚫고 들어온다. 순간적으로 느낌을 놓친 등이나 다리 쪽으로 공격해 오니 방비할 수 없는 게다.
양검은 이러한 단점들을 막아주었다.
이제 알았다.
배는 빨라진 쾌속함으로 궁왕의 빠름을 잡는다. 양검의 굉렬함으로 강궁의 강도를 감당해 내며, 음검의 밀행(密行)으로 궁왕을 잡는다.
양검과 음검은 둘이면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무아(無我)…….
나를 잊고 검을 휘두르는 동안 빽빽하던 검기가 헐거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스슷……!
천멸도 살수들이 물러간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는 느껴진다.
“퇴, 퇴각!”
누군가가 뇌옥이 쩌렁 울리도록 고함쳤다.
“남도문 무인이 예순일곱에 천멸도 살수가 다섯 명이에요. 축하해요, 언니!”
일령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모두들 눈을 크게 떴다.
천멸도 살수는 아무도 잡지 못했다. 금연화가 단신으로 그들을 잡았다면 그녀야말로 최고수라는 말이 되지 않은가.
“음!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라더니.”
마도가 신음하듯 말했다.
“후후! 너무 실망하지 마. 자하쌍구검의 특성일 뿐이야.”
마야가 싱겁게 웃으며 일어섰다.
“자하쌍구검의 특성이라니?”
수검이 되물었다.
마야는 다담선자와 함께 나갈 생각이었지만 호기심이 치민 사람들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마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천멸도의 무공을 봤어.”
그런 적이 있다. 천멸도의 나환자들이 마야를 찾아와 무공을 손봐달라고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손봐달라는 무공이 제대로 다듬으면 천하제일공이 되고도 남는다는 말까지 들은 적이 있다.
“자하쌍구검도 알고 있고.”
“정말이에요?”
이번에는 금연화가 되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하쌍구검을 안다. 자하부 무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외인이 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윤곽을 아는 것은 가능하지만, 마야의 말뜻은 세세하게 알고 있다는 뜻이니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날 찾아온 건 검을 전개할 때 소리 나지 않게 검풍(劍風)을 죽여달라는 것이었는데, 한마디로 무음을 요구하는 것. 자하쌍구검 중 음검의 묘리를 보태니 간단히 해결되더군.”
“뭐예요!”
“허!”
여기저기서 탄식, 탄성이 새어 나왔다.
“이해하도록. 당시로서는 자하부와 인연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솔직히 혈귀대주만 아니었다면 자하부에 눈길을 주는 일도 없었겠지.”
“그랬군요. 그래서 그들의 무공이 점점 비슷하게 느껴졌고…….”
“근원은 자하쌍구검이되, 수련의 깊이는 그들이 훨씬 앞서. 좋은 사부였던 셈이지.”
“앞으로 뭘 해야죠?”
“수련. 느낀 것을 완벽하게 습득시켜 놓아야지.”
“또 공격해 올 텐데요?”
“예순일곱에 다섯이면 일흔둘. 덕분에 병기는 넘쳐. 싸울 만한 사람도 많고. 음검은 천멸도 살수들 수준으로, 양검은 고루쌍마의 고루공과 철탑거추의 망치를 동시에 받아낼 수 있는 수준까지.”
“그, 그걸 지금 말이라고!”
수련해야 할 사람은 금연화인데 오히려 시마가 놀랐다.
방금 이름이 거론된 고루쌍마와 철탑거추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누군가. 멀쩡한 상태라면 무신까지야 상대할 수 없지만 그 외에 일파의 문주라든가 장문인이라는 자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세 사람의 합공을 양검으로 받아내야 한다고 했으니 한 손으로 받아내야 한다는 말과 같은데, 한 손?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런 무공을 지녔으면 차라리 무신이라고 부르리라.
무신…… 그렇다. 금연화는 무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녀가 싸울 사람이 무신이기에.
“오늘은 한숨 돌릴 거야. 모두들 푹 쉬도록. 나도 피곤해.”
마야가 다담선자의 어깨에 손을 얹고 걸어나갔다.
제7장 불패병(不敗兵) ― 패하지 않는 병기
1
북척표 제삼대는 무참하게 무너졌다.
호기당당하게 여든한 명이 떠났으나 돌아올 때는 열네 명뿐이었다.
그들은 심한 충격을 받아 실어증(失語症)에 걸린 듯 말문을 열지 못했다. 눈동자도 흐릿했다. 총기 발랄함은 사라지고 심약한 자의 공포만 어렸다.
“쯧! 되게 당했군.”
제이대 대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볍게 혀를 찼다.
‘이건 너무 당했어.’
답평의 놀라움은 컸다.
제삼대가 무너지리라는 것은 그도 예측했다. 하지만 이토록 엄청난 패배를 당할 줄은 몰랐다.
서른에서 마흔 명 정도.
떠나보낼 때 생각한 사망자 수다.
그렇게 두세 번 싸움을 거치면서 거르고 걸러 서너 명이 남았을 때는 일기당천의 정예 무인이 되리라.
그들에게 전수할 무공도 준비해 놨다.
수법이 너무 잔혹해서 수련이 금지된 패공(覇功)이지만 죽음의 강을 몇 차례씩 건넌 자들에게는 딱 알맞은 절공이 되리라.
그런데 예순일곱 명이나 죽었다.
부상을 당해 쩔뚝거리면서 온 자도 없다. 죽은 자가 아니면 산 자뿐이다. 검을 맞은 자는 모조리 죽었다.
답평은 자신이 일궈낸 인재들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더불어서 남무림을 장악한 남도문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남무림 무인들은 남도문 하면 외장(外莊) 삼첨(三尖)인 철궁대, 형옥대, 추혼단을 떠올린다. 대외적인 활동을 대부분 도맡아 수행해 왔으니 그만큼 많이 알려진 것은 당연하다.
하나 남도문의 진실한 힘은 남도삼가(南刀三家)에 있다.
남도문주의 제일무신가(第一武神家), 만사무불통지의 제이무신가(第二武神家), 궁왕의 제삼무신가(第三武神家).
북검문이 수직적인 명령 체계를 갖췄다면 남도문은 수평적인 체계를 유지한다.
남도삼가의 힘은 추측 불가다.
제아무리 곤란한 문제가 생겨도 남도삼가가 정문을 열면 단숨에 해결된다.
답평의 꿈은 소박했다.
야광의 머리와 북척표의 무위(武威)를 바탕으로 제사무신가(第四武神家)를 이루려는 욕망이 낮이고 밤이고 넘실거렸다.
모든 게 끝났다.
그동안 일궈왔던 힘들이란 게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한 것이라면 세상을 잘못 알아도 크게 잘못 알았다.
북검문을 잘못 봤다. 남도문도 잘못 봤고, 중원의 힘을 너무 우습게 생각했다.
‘잘…… 못된 거였어. 난 야광 총수 자격이 없는 몸이었거늘. 능력도 없는 놈이 꿈만 컸어.’
제삼대가 실패하여 물러서면 제이대를 투입할 생각이었다.
답평은 명을 내리지 못했다.
쌍도를 휘두르는 여인, 쌍검을 탈취한 다음부터는 용이 구름을 만난 듯 광풍폭우를 몰아쳤다는 여인, 금연화일 게다. 마야 일행 중에 쌍검을 사용하는 여자는 자하일봉밖에 없으니까.
여자 한 명에게 제삼대가 무너졌고, 무엇보다 천멸도 살수가 다섯 명이나 당했다. 일곱 명이 들어가서 두 명만 빠져나왔다.
‘제이대를 집어넣어도 몰살…….’
“후우……!”
답평은 정말 오랜만에 자신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푹 쉬도록. 아무 생각 말고 그냥 쉬도록.”
제일대, 제이대, 제삼대 대장들에게 한 말이나 일면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한겨울인데도 소양호(少陽湖)는 살얼음 하나 깔리지 않았다.
야트막한 산들이 호수를 동그랗게 감싸고 있어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늑해 보이기까지 한다.
답평은 소양호에 들를 때마다 한 번씩은 앉았던 바위에 앉아 넓은 호수를 바라봤다.
멋지다는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운 호수다.
하나 겉모습에 속아서 쉽게 생각하고 달려들었다가는 영락없이 물귀신이 되고 만다.
야산들은 호숫가에 이르러 깎아지른 절벽으로 변한다.
호수는 가장 얕은 곳이 한 길이 넘고 굴곡이 심해서 웬만한 유영 실력으로는 몸을 담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소양호는 많은 인간을 삼켰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좋아해서 해마다 두어 명씩은 뱃속에 끌어넣는다. 인근 마을 사람들도 귀신 씌인 호수라며 절대 근접하지 않는다.
이곳이 강남무림을 좌지우지하는 천하제일의 지자, 만사무불통지의 은거지다.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왔어.’
답평은 피식 웃었다.
웃기는 말이지만 사람 능력처럼 딱 부러지게 우열이 가려지는 것도 없다.
보이지 않는 능력인데 어찌 그럴까?
무공은 싸워보면 대번에 우열이 가려진다.
그럼 그것으로 끝일까? 역전시켜 볼 기회는 없나?
아니다. 무공의 경우는 노력 여하에 따라서 역전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오늘은 졌어도 내일은 이길 수 있는 것이 무공이다. 노력을 하지 않아도 상대가 허점을 보일 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릴 줄 알면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온다.
무공보다 더 표현하기 힘든 것이 사람 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