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67
67
한데 사람 머리는 수량이 딱 정해져 있다.
일(一)의 지략을 가진 자는 아무리 애써도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자가 이(二)의 지략을 가진 자와 만나면 백전백패(百戰百敗), 볼 것도 없다.
머리도 갈고닦으면 윤기가 난다.
많은 서적을 읽고 경륜을 쌓으면 훨씬 나은 지략을 떨쳐 낸다.
그래도…… 아무리 애써도…… 간신히 이의 지략에 근접할 뿐인 것을. 십(十)의 지략을 가진 사람에게는 여전히 어린아이에 불과한 것을.
만사무불통지는 머릿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추측할 수 없는 사람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뛰어넘을 수 있어 보인다. 또 달리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태산처럼 보인다.
답평이 마지막으로 바위에 앉았을 때, 만사무불통지는 속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나 다시 돌아온 지금에는 아름답기 이를 데 없으나 흉험하기 짝이 없는 소양호처럼 깊이를 숨긴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
답평은 땀을 식힌 후, 천천히 발길을 떼어놓았다.
만사무불통지는 언제나 있던 곳에 있었다.
경사가 급해서 앉아 있기도 불편한 곳이다. 자칫 발이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주르륵 밀려나 호수 속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만사무불통지가 십 년째 고수한 자리다.
낚싯대는 언제나처럼 세 대. 어망에는 고기가 들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지만 오늘은 큼지막한 잉어가 세 마리나 들어 있다.
답평은 묵묵히 등 뒤에 앉았다.
“저 왔습니다.”
“한참 바쁠 텐데 뭐 하러 와.”
만사무불통지는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야광 총수 자리를 내놓고자 왔지요.”
“크크크! 왜? 벌써 싫증났어?”
“잡어가 대경(大鯨)의 세계에서 놀 수 있어야지요. 하하!”
“노옴! 된통으로 당한 게로군.”
찌가 움직였다. 그러나 만사무불통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강태공(姜太公)은 세월이라도 낚았다지만 만사무불통지는 무엇을 낚고 있는 것인지.
답평은 한참 동안 호수를 쳐다보다가 담담히 말했다.
“문주님께서 마야를 제거하라 하시더군요.”
“그러셨는가?”
“네.”
역시…… 호수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지만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환히 꿰뚫고 있다. 단문협 사건부터 오늘 있었던 일까지 모두 알고 있으리라.
“처리하기 힘들지?”
“그렇더군요.”
“그럴 거야. 그놈이 여간 잘난 놈이 아니거든.”
“마야를 알고 계셨습니까?”
“쯧쯧! 머리는 뒀다 어따 쓰는 거야! 그놈이 누구야? 마야 아냐, 마야. 마야가 뭐야? 마인들의 아버지란 말이잖아? 지금까지 무림사가 이어져 오는 동안에 마야라고 불린 놈이 있었나?”
“없었죠.”
“그러니 난 놈이지.”
“…….”
답평은 만사무불통지의 마음을 읽었다.
자상할 때는 한없이 자상하지만, 내치기로 작정하면 독사보다도 냉정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을 버렸다.
긴요한 이야기도 많은데 지난 이야기만 나누고 있는 게 바로 그 증거다.
“그만 돌아가야겠습니다.”
“그러려나?”
“오늘 할 일이 많아서요. 벌려놓은 일이 꽤 되는지라.”
“쯔쯧! 그 짧은 동안에 많이도 벌려놓은 모양이로군. 자넨 다 좋은데 깊이 생각을 못해.”
답평은 웃고 싶었다.
열한 살 나이에 육도삼략(六韜三略)의 이치를 깨우쳤다. 열세 살 때는 본격적으로 가업(家業)에 뛰어들어 조그마한 포목점을 단 일 년 만에 영주부(永州府)제일로 키워냈다.
장강에서 피바람만 불지 않았다면 중원을 무대로 활약하는 대상(大商)이 되어 있을 터였다.
한참 피 끓는 나이에 난세를 맞이하자 뒤도 안 돌아보고 무가에 투신했다.
그러기를 삼십여 년.
분골쇄신했다. 정말 열심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지자로서는 제일 높은 위치인 야광 총수까지 지내봤으니 여한은 없다. 한데 이 시점에서 겨우 듣는 말이란 것이 생각을 깊이 못한다는 것이니, 이럴 때는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언제 지나가는 길이 있으면 다시 들립죠.”
답평은 등 뒤에다 포권지례를 취했다.
만사무불통지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북척표는 있는 그대로 넘겨준다.
남도문주도 그렇고, 만사무불통지도 그렇고……. 이미 북척표에 대한 것은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고 있을 것이다.
천멸도 살수들에게는 남도문의 진단(眞丹)인 청령단(靑零丹) 열 알을 주기로 했다.
답평은 잠시 망설였다.
물러나기 전에 주고 가야 하나, 아니면 후임에게 맡기나.
부질없는 생각이다. 누군가 벌써 임명되고 있을 것이며, 북척표의 처리 문제도 하달받고 있을 게다.
‘내가 할 일은 없군.’
서랍이나 정리할까 하다가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염려스러운 것은 사방천마다. 그들에게는 별동대 형식을 빌어서 독자적인 행동이 가능한 조직 형태를 주기로 했는데, 그것만은 용납되지 않을 것 같다.
사방천마는 유계에서 왔다.
정도인이라면 고개조차 돌리지 말아야 할 곳이다.
그것도 알고 있을까? 하기는 북척표에 대해서 낱낱이 알고 있다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사방천마는 제거되겠군. 유계의 힘을 끌어오려고 했는데…… 입질만 하다가 물러서는 꼴이야.’
답평은 마지막으로 시종을 불렀다.
“일다경 안에 십인회의를 소집해야 하느리라. 알았느냐!”
아홉 명의 지자.
그들에게는 천멸도 살수가 한 명씩 따라다닌다. 그들의 집에는 또 다른 살수가 숨어 있으며, 여차하면 일가족을 도륙한다. 살검에는 조금도 인정을 담지 않는 자들이니 손을 쓰기 시작하면 촌각 만에 산목숨은 없게 되리라.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만성 독약을 복용시켰다.
아홉 명이 서로 상의할 것 같아서 각기 다른 독약을 주었으며, 혹여 몸이 아프면 자신이 지정해 준 의원에게만 진맥을 받도록 했다.
참으로 아등바등 산 것 같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그는 서랍에서 행낭을 꺼냈다.
떠나는 마당에 아홉 명의 중독은 풀어주고 가야 하지 않겠나.
그러다 문득! 정말 문득!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삼십 년 세월이면 날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고 있을 터. 내게 야광 총수를 맡긴 것은!’
남도문주의 폐관수련, 만사무불통지의 은거, 궁왕의 권태.
남도문에는 주인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야망이 있는 자라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남도문을 발칵 뒤집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세력을 조금 형성해 놓자는 것이니 일이 잘못될 것도 없다.
제삼대를 구성한 것은 잘한 일이다.
제이대를 만든 것까지도 좋았다.
욕심은 거기서 그쳤어야 한다. 하나 그럴 수 없었다. 제이대와 제삼대로는 외당 삼첨 중 하나인 철궁대조차도 감당할 수 없어 보였다.
본격적으로 북척표를 출범시킨 날, 투항한 마인들이 제일대를 차지했다.
거기서, 정말 마지막으로 거기서 멈췄어야 한다.
여하한 일이 있어도 천멸도 살수와 사방천마만은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한다.
그들이 북척표에 가담했을 때에서야 북척표는 외장 삼첨을 능가하게 되었다.
과연 무신들은 이러한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이, 이런 일이! 세상에…… 세상에 이런 일이!’
답평은 일어서려다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서 있기가 힘들었다.
기우에 불과할지는 몰라도 묘한 생각이 든다.
사방천마는 남도문을 떠받드는 문파 중 가장 강한 세 문파인 상조문, 철사문, 독조림의 수장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초강자들이다.
그들을 어떻게 만났나?
만사무불통지의 집무실에서…… 그가 기재해 놓은 일기를 남몰래 뒤적여 보다가 유계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왜? 왜 그때 이상한 점을 깨닫지 못했을까?
사방천마와 자신의 만남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을.
그뿐만이 아니다. 혈귀대의 죽음도 짜인 각본이다.
혈귀대주와 마야가 친구만 아니었다면 혈귀대는 아직도 펄펄 날뛰고 있으리라.
그렇다. 그는 마야를 끌어내는 수단에 불과했다.
마야 혼자만 나서서는 어림없다. 유계가 전력을 기울일 만큼 강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자면 마야를 따르는 마인들이 많아야 하고, 그들은 한결같이 강해야 한다.
마도, 수검, 혈유, 시마, 고루쌍마…… 모두 터무니없이 강하다.
혈귀대를 몰살시킨 사람이 궁왕 한 명뿐이라면 마야는 단신으로 장강을 넘었을 터이다. 상조문, 철사문, 독조림 같이 쟁쟁한 문파들이 합격하여 죽였기 때문에 그도 세력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유계는 마도의 전설이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강한 마인이 나타나는 것을 용납지 않는다. 마야가 유계에 머리를 숙인다면 몰라도 아니라면 징치할 것이다.
물리고 물린다.
혈귀대는 마야를 끌어내는 수단이고, 마야는 꼭꼭 숨어서 나오지 않는 유계를 세상에 현신시키기 위한 미끼다.
사방천마는 죽거나 크게 당한다.
마야가 하지 않으면 무신들이라도 한다. 물론 마야가 한 것처럼 꾸미겠지만. 유계가 절대로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너무도 손쉽다.
무엇을 원할까? 유계의 힘이다.
북검문, 남도문. 양 무림도 공히 유계만은 건들지 않았다.
겉으로는 유계조차 말살된 것처럼 꾸몄지만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유계에는 무신들과 버금가는 초절정고수가 있다. 진실로 마도의 제왕이다. 온갖 마공을 습득하여 무위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추측조차 못하는 괴물이다.
그런 자를 건드리기에는 시운이 좋지 않았다.
남도문과 북검문이 힘을 합치는 상황이었다면 가능하겠지만 서로 으르렁거리는 실정에서는 누구도 모험을 하지 못했다.
이것이다! 남도문은 유계를 끌어내어 북검문을 치려는 것이다. 연후, 유계의 뒤통수를 칠 것이고.
‘아니야, 이게 아니야.’
답평은 생각을 다시 했다.
만사무불통지가 말하지 않았나. 생각을 깊이 하지 않는 게 단점이라고. 그러니 지금이라도 깊게 해야지.
이쪽에서 상조문, 철사문, 독조림과 궁왕을 출동시킨 사람은 보지 않아도 안다. 만사무불통지다.
그러면 저쪽에서는? 북검문 쪽에서도 혈귀대를 단문협으로 밀어 넣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장강의 철통같은 경계망을 살짝 찢어놓은 사람이 있다.
그는 무엇 때문에?
‘맙소사!’
답평은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저쪽에서 혈귀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은 불문가지, 삼뇌 중에 한 명이다.
그는 만사무불통지와 교감을 가졌을 테고…… 유계의 힘을 이끌어내서는…… 남도문주를 친다? 연후, 북검문주를 친다?
양쪽에서 똑같이 모반이 일어나는 거다.
이쪽은 만사무불통지, 저쪽은 삼뇌와 네 명의 무신 중 한 명이 개입해 있을 것이고.
마야를 치기 위해 유계가 나서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그들을 원하는 곳과 싸우게 만들 수 있나?
당장은 생각나지 않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알 수 있으리라.
‘문주님은 마야를 죽이라고 했어. 그것은…… 만사무불통지의 생각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유계가 나서기 전에 마야를 제거한다면 일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야. 원점으로.’
이제야 비로소 북검문 쪽 행동도 이해되는 게 있다.
북검문도 양 패로 갈려졌다. 혈귀대를 이상하게 매장한 자는 그들의 죽음을 널리 알리려고 했다. 또 다른 자는 절대 함구를 명했다.
후자가 더 강력한 권위를 가졌다.
그런 사람이라면 아마도 북검문주가 아닐까?
남도문주, 북검문주…… 모두 사태를 알고 있으며, 마야를 죽임으로써 간단하게 원점으로 되돌릴 생각인 것 같다.
‘후후후! 내가 고래 싸움에 끼어든 새우였군.’
생각은 정리되었다.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 사방천마에게는 허튼 일을 주어서 멀리 떠나보내고, 천멸도 살수에게는 청령단을 배로 주어서 힘든 일을 시켜야 한다.
반드시 마야는 죽이고 떠난다.
청령단은 천멸도 살수들을 천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아니, 천형을 고치지는 못하지만 더 진전되는 것은 막아준다.
천멸도 도민 중 절반의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반드시 해낼 것이다.
답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때,
푸욱!
날카로운 쇠붙이가 등을 뚫고 들어와 가슴 앞으로 삐져나왔다.
“허억! 이, 이게…….”
“만사무불통지 어른의 명이오. 먼 길 잘 보내드리라고.”
“누, 누구……?”
답평은 누가 감히 자신의 집무실에 침입해 도를 뻗어냈는지 알고 싶었다.
상대는 굳이 숨지 않았다.
답평이 고개를 절반쯤 돌렸을 때 강직해 보이는 사내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였다.
“혀, 형옥대주! 허! 허허허!”
“원망은 마시오.”
“허허허!”
“야광은 아는 게 너무 많소. 아쇼? 야광의 지자들이 남도문을 떠나는 길은 죽는 길밖에 없다는 것.”
“허허허! 그, 그게 형옥대의…….”
“주요 업무 중에 하나요. 이제 그만!”
형옥대주는 널찍한 도신을 힘껏 비틀었다.
2
소립파는 금연화를 제외한 세 여인만을 데리고 뇌옥 밖으로 나섰다.
“정면 승부는 절대로 피해야 돼.”
“그럼요. 걱정 마세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걸요.”
일령이 냉큼 말을 받았다.
“두 사람이 한눈을 팔면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죽는다는 점을 꼭 명심하고.”
“알았다니까요.”
티 없이 맑은 얼굴이다.
일령은 볼이며, 몸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편이었는데 그동안 고초가 적지 않았는지 바짝 말랐다.
어찌 보면 소녀에서 여인으로 탈바꿈했다고는 할 수 있지만, 소립파는 옛 모습이 훨씬 보기 좋았다.
소립파는 절혼마녀와 일령에게 씩 웃어 보인 후, 등에 메고 있던 행낭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행낭에서 꺼낸 것은 갈색 가루다.
소립파는 갈색 가루를 조심스럽게 다뤘다. 조금이라도 난폭하게 다루면 큰일이 날 것처럼, 가끔 가다 이마에 땀도 훔쳐가며 가루를 땅에 매설했다.
접근하는 자는 없었다.
뇌옥 주위에는 수많은 눈들이 살기를 뿜어내지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는지라 가까이 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