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7
7
“저 사람들 무인이야.”
“그, 그럴 리가! 말도 안 돼!”
“특히 저 노인은 나도 감당할 수 없는 고수야.”
금연화는 급히 고개를 돌려 객잔을 쳐다봤다.
수묘인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노인을 쳐다보고 있으며, 노인은 주귀(酒鬼)라도 들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술독을 들어 입 안에 쏟아 넣고 있다.
어느 구석에서도 무인의 냄새가 풍기지 않는다. 절혼마녀의 말을 듣고 노인을 유심히 살펴봤지만 금방이라도 꼬꾸라져 죽을 것 같은 노기(老氣)만이 읽힌다.
수묘인들과 공동묘지에서 처음 만났던 광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자하령이 급습을 취했고, 노인과 수묘인의 몸에 검을 들이댔다. 당시 노인은 겁에 질려 음성조차 덜덜 떨려 나왔다. 가식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정말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럴 리 없다.
하나 절혼마녀의 무공은 자신이나 자하령이 상상할 수 없는 곳까지 도달해 있으니 읽어내는 기감(氣感)도 다를 것이다. 자신들이 읽을 수 없는 부분도 그녀는 읽어낸다.
절혼마녀의 말대로 저들은 무인인가?
“잘못 본 건 아니죠?”
차분해진 음성. 금연화의 눈에서 맑은 이지가 번뜩였다.
“절대.”
“생각나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
절혼마녀는 입술만 달싹거릴 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금연화는 기다렸다. 십 중 사오 정도라도 확신이 서면 말해줄 것이기에.
한참 만에야 절혼마녀가 자신없는 투로 말했다.
“아무래도…… 시마(屍魔) 같아.”
“시마요? 그 노마가 아직도 살아 있단 말예요?”
“…….”
“맙소사!”
금연화는 주귀가 씐 노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무인이라면 한 번만 들어도 영원히 잊히지 않을 별호가 시마다. 사람을 죽여놓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시신을 지킨다는 마두. 이유? 간단하다. 썩어가는 모습을 즐기기 위해서.
세상천지에 이처럼 잔인한 인간이 또 있을까. 그러니 한 번 들으면 결코 잊히지 않는 이름이 될 수밖에 없다.
“영감에게서 악취가 풍겨. 너무 지독해서 숨을 쉴 수가 없어. 사람 썩는 냄새가 몸에 밴 거야. 시신을 다뤘다고 해서 모두 그런 냄새가 배는 건 아냐. 살점이란 살점은 모두 썩어 문드러지고 뼈만 남을 때까지 시체와 같이 먹고, 자고, 눕고…… 시체와 같이 생활한 사람이 아니면 풍길 수 없는 냄새야.”
“전 아무 냄새도 맡지 못했는데요.”
절혼마녀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금연화를 쳐다봤다.
“자하문 무공…… 아무래도 전폭적인 수정을 하지 않는 한 무림에서 살아남기 힘들 거야.”
자하문의 무공이 약한 게 아니다. 절혼마녀의 무공이 예상보다 훨씬 높은 거다.
그녀가 말한 냄새란 육신에서 풍기는 냄새가 아니다. 오장육부로 스며든 냄새가 기혈과 섞이며 흘려내는 냄새다.
이런 냄새는 지고한 내공을 지닌 사람만이 감지해 낼 수 있다. 절혼마녀가 상승고수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높은 수준인 줄은 몰랐다.
“저 사내도 보통이 아냐. 개구리도 살기를 느끼면 몸을 움츠리는 법인데…… 동생도 봤지? 아예 무시하잖아. 시마의 제자라면 상당한 무공을 지녔을 거야.”
“골치 아프게 됐군요. 그런 자들을 끌어들였으니.”
절혼마녀가 술병을 꺼내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너무 걱정할 건 없어. 쏟아진 물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거고. 저 영감이 정말 시마고, 사내가 제자라면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어. 북검문에 시마라는 말 한마디만 흘려도 저들 목숨은 땅에 떨어진 것이나 진배없으니까 순순히 협조할 수밖에 없을 거고.”
“시마라니…….”
금연화는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우리도 들어가 요기나 해. 영감이 시마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무인인 것은 확실하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내색은 하지 말고.”
절혼마녀는 객잔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뒤를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비워진 금연화가 뒤따랐다.
제3장 출풍두(出風頭) ― 박차고 나서니
1
만두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금연화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놀려 집어 먹으며 생각을 거듭했다.
수묘인을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돌이켜 봤는데 이상하거나 수상쩍은 점이 보이지 않는다. 저들에게 동행을 제안한 것도 자신이고, 지금과 같은 상황도 자신이 만들었다.
저들은 제안을 받고 따라온 것밖에 없다.
굳이 트집을 잡자면 다른 수묘인들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낮이고 밤이고 묘지들을 돌봐야 하는 게 수묘인이지만, 무덤에 기대 앉아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그건 그럴 수도 있다. 수묘인들이야말로 인간 쓰레기들이 모인 곳이니까. 들리는 말로는 젊은 처자가 묻히면 밤에 몰래 파내서 시간(屍姦)을 하는 작자도 있다니 무덤에 앉아 술을 마시는 따위는 큰일도 아니다.
노인은 대수롭지 않게 흘려 버릴 수 있다.
하나 소립파라고 자신을 밝힌 수묘인은 의문투성이다.
수묘인 따위가 글은 언제 배워 묘비를 쓸 수 있었을까. 수묘인이라면 막장 인생이니 배짱이 두둑한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글을 배웠다는 점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또 혈귀대원들의 묘비를 세우겠다는 의기(義氣)는 뭐란 말인가.
더욱 납득할 수 없는 대목도 있다.
시마는 마두(魔頭) 중에서도 즉살해야 할 마두로 분류된다. 북검문과 남도문, 어느 쪽 눈에 띄든 즉시 추살당할 것이다. 숨어 있어도 무림인들의 이목을 피하기 힘든 판인데 본인 스스로 그들 앞에 걸어나와 나 죽여줍쇼,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시마라면 천금을 줘도 동행할 리 없다.
절혼마녀의 착각인가, 저들의 연극이 뛰어난 건가.
금연화는 생각을 그쳤다. 깊게 생각해 봤자 결론이 나지 않을 일이라면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낫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게다. 어쩌면 내일 중으로 궁금증이 풀릴지도 모른다. 북검문 무인들과 마주치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보일 테니까.
객잔 창가로 비치는 해거름이 아름답다.
자하부를 떠난 지 하루, 온몸에 팽팽한 긴장이 맴돌고 있어야 하는데 묘하게도 수묘인 때문에 암울한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이것도 좋아. 북검문이 건드리지 않으면 다행이고, 안 그러면 불가항력으로…… 싸울 수밖에 없겠지.’
아침만 해도 여하간 단문협에 가리라 다짐했는데, 막상 북검문이 길을 가로막는다 생각하니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이 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가야 하나, 무공으로 뚫고 가야 하나.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힘으로 뚫지도 못한다.
‘한낱 유희(遊戱)에 지나지 않는 행동인지도…… 그래도 가야 해. 단문협에서 안 되면 남도문까지 가는 한이 있어도 꼭 알아내야 해. 배신자…… 편히 잠잘 수 없어.’
금연화가 만두 한 접시를 다 비웠을 때 한 무리의 장한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대며 객잔으로 들어섰다.
“빌어먹을 놈들! 지들이 무인이면 무인이지 왜 길을 막고 지랄이야, 지랄이. 지들이 밥을 먹여줬어, 술을 사줘 봤어. 무인이 무슨 벼슬아치나 되는 줄 아는 모양이야. 에잇, 퉤엣!”
“아서, 이 사람아. 북검문의 눈과 귀가 중원 전역에 깔려 있다는 말도 못 들었어?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 자칫하면 하나밖에 없는 모가지 뎅겅 잘려 나가.”
“신경질나니까 그렇지. 우리가 죄지은 게 뭐 있어? 허구한 날 칼 찬 놈들만 보면 굽실거려야지, 피해 다녀야…….”
한참 목소리를 높여 떠들던 장한은 객잔 안에 금연화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들이 본 것은 금연화의 허리에 꽂혀 있는 쌍검, 자줏빛 노을이 새겨져 있다. 북검문에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제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자하부 무인들의 독문 병기다.
그들은 슬금슬금 한쪽 구석으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탁자에 비스듬히 기대서 술을 마시던 절혼마녀가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뭐 좀 물어봐도 돼요?”
장한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방금 전까지 무인 욕을 해서가 아니다. 쳐다보기만 해도 눈이 부신 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걸어오니 마음이 들떠서다.
장한들은 제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일어서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북검문 무인들을 만난 곳이 어디죠?”
“궈, 권수(權水) 나루터 부근에 쫙 깔려 있던데요.”
금연화와 절혼마녀는 서로를 마주 봤다.
밤새 한잠 못 자고 뒤척였다.
잠을 청해보려고 억지로 눈을 감았지만 그럴수록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다.
권수를 건너지 않고는 단문협에 가지 못한다. 북검문 무인들이 나루터에 진을 쳤다면 다른 곳에서는 배를 띄우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놨을 게다.
결국 부딪칠 수밖에 없다.
생각은 했지만 너무 빨리 닥쳤다. 북검 무인들이 알아보지 못했으면 좋겠는데. 아니, 그런 생각은 너무 꿈같은 이야기라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결정해야지? 부딪칠 건지, 물러설 건지.”
절혼마녀가 말에 올라타며 말했다.
“뚫고자 한다면 권수는 뚫을 수 있어. 문제는 그 다음이야. 북검문의 천라지망(天羅地網)은…… 잘 알잖아. 아직까지 뚫고 빠져나간 사람이 없었어.”
다각! 다각……!
두 여인이 말을 나누는 가운데서도 수레는 계속 나아갔다.
노인은 어제보다 더 위독했다.
고열에 시달리는 모습이 역력하다. 가마니를 덮고 있어도 추위서 덜덜 떨어댄다. 초저녁에 잠깐 마신 술이 화주 다섯 독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렇게 좋아하는 술도 찾지 않는다.
그가 시마라도 상관없다. 가끔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죽어서 지옥에 갔는지, 아직 이승인지 판단하려는 것처럼 보여 안쓰럽다.
수묘인은 담담한 표정이다. 금연화의 다급함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노인의 위독함도 보지 못한 듯 태연하기 이를 데 없다.
“말을 해보고 안 되면…… 뚫고 나가요.”
금연화는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어. 단문협 싸움을 알아야 돼. 혈육 사효군(沙曉軍)…… 그 사람만 만날 수 있어도 이런 고생은 필요없는데.’
그때 묵묵히 수레를 몰던 수묘인이 말을 건네왔다.
“북검 무인들을 만나지 않고 권수를 건널 방법이 있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몇 푼이라도 받아야겠지.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을 말해봐. 지금 당장 줄 수 있는 돈과 나중에 줄 수 있는 돈으로 나눠서.”
절혼마녀와 금연화는 잘못 듣지 않았나 싶어서 서로 마주 봤다.
절혼마녀가 먼저 피식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북검문 무인들을 만나지 않고 권수를 건너는 방법은 없다. 만약 방법이 있다면 북무림은 남도문 간자들로 득실거릴 것이다.
“나눠서 말할 필요도 없어. 낙화향에 동방이라고 있는데, 들어봤어? 재산 가치로 따지면 이번 일의 대가로 받은 기루보다도 훨씬 비싸. 정말로 북검 무인들을 만나지 않고 권수를 건넌다면 동방을 줄 수 있는데. 어때?”
절혼마녀가 장난 삼아 대꾸했다.
“접수하지.”
수묘인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러나 행동은 바로 이어졌다.
수레가 느닷없이 방향을 틀어 길도 없는 들판을 가로질러 갔다.
덜컹! 쿵! 덜커덩……!
수레 가장자리라도 붙잡지 않고서는 앉아 있을 수 없을 만큼 심하게 흔들렸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금연화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말이 길을 잘못 든 건 아니다. 고삐를 잡고 있는 수묘인이 방향을 틀었고, 말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가고 있을 뿐이다.
“…….”
수묘인은 깊은 생각에 빠져들어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지도 깨닫지 못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었어!”
수묘인은 생각에서 화들짝 깨어나 금연화를 힐끔 쳐다본 후 말했다.
“길 안내를 맡겼으면 믿어. 북검 무인들과 만나는 일이 없도록 해줄 테니까. 강만 건너면 되잖아.”
절혼마녀는 수레가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선 다음부터는 아예 입을 열지 않았다.
‘비루먹은 말, 진흙탕, 수레에 세 명이나 태우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진흙탕에서 수레를 끄는 것은 건장한 말도 힘들다. 한데 비루먹은 말은 평지나 다름없이 터벅터벅 걷고 있다. 장정에 노인 한 명, 여자 한 명, 그리고 여행에 필요한 온갖 물품들이 실려 있는 수레를 거침없이 끌고 간다.
진흙탕에는 수렁도 있기 마련이다. 수레를 몰고 진흙탕 길로 들어서면 반드시 수렁에 빠져서 바퀴를 끄집어내야 하는 고역을 겪는다.
수묘인이 모는 수레는 용케도 수렁에 빠지지 않고 나아간다. 겉은 진흙탕이지만 속은 단단한 땅만을 골라서 간다.
‘분명한 게 또 하나 생겼군. 정체를 종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 영감이 시마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지만 둘 다 무인인 것만은 틀림없고.’
절혼마녀는 마술처럼 수렁을 피해가는 수레에서 좀처럼 눈길을 떼지 못했다. 고삐를 잡고 있는 수묘인에게서는 더욱 눈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 사내…… 물건이야.’
수레는 들판을 가로지른 다음, 야트막한 야산의 산자락을 따라서 돌았다.
돌고, 나아가고, 돌고…… 몇 굽이인지도 모를 산자락을 돌았을 때 갑자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이 나타났다.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지만 뒤로 물러설 수는 있다. 결국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막다른 길이다.
“좀 쉬지.”
수묘인은 막다른 길에 들어섰는데도 당황한 기색이 일절 없었다.
“확실한 게 하나 있어.”
절혼마녀가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풋!”
“왜 웃어? 실없이.”
“확실한 게 너무 많잖아요. 이상하죠? 확실한 게 그만큼 많으면 뱃속에 벌레가 몇 마리 있는지까지 알아야 되는데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노인은 술이 주식인 듯 일어나 앉지도 못하면서 술은 받아 마셨다. 그리고 수묘인은 노인 머리맡에서 보약이라도 먹이듯 정성스럽게 술을 먹였다.
이상한 사이다. 조손(祖孫)은 아닌 것 같고, 편하게 말을 주고받는 것으로 보아서는 사부와 제자도 아닌 것 같고, 수묘인이라는 직업 때문에 만난 사이라면 딱 어울릴, 그런 모습이다.
“이번 기회에 술 끊지?”
“이놈아, 누군 마시고 싶어서 마시냐!”
“후후후!”
“이번 여행에 나도 동참했으니 주루와 집 중에 하나는 줘. 동방까지 얻었으면서 하나는 줘야지. 전부 꿀꺽하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