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72
72
“어리석은 사람들이군요. 우릴 잡으려면 그냥 궁왕이 싸우게 했으면 됐을 텐데.”
“궁왕이 눈치 챈 거지. 저쪽은 진의를 숨기고 싸움을 시키려 했는데 궁왕이 빠진 거야.”
“궁왕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건가요? 그 정도 위치면…… 설마!”
“남도문주나 만사무불통지의 명이면 궁왕도 어쩌지 못하지. 싸우지 않은 게 최선의 저항인 셈이야.”
“우린 죽었군요.”
“살아야지. 사자바위를 끼고 돌면 급경사가 나올 거야. 경사가 워낙 급해서 낭떠러지나 마찬가지인데, 그쪽으로 가.”
금연화는 진기를 가득 모아 신형을 떨쳐 냈다.
“이곳 지리를 아주 잘 아네요?”
“답평이 죽었어.”
“그 사람이요?”
“하오문에서 가져온 정보니 정확할 거야. 정확하지 않으면 아예 전해주질 않는 사람들이니.”
“전부터 궁금했는데, 하오문과는 어떤 관계예요?”
소립파는 자신의 말만 이어갔다.
“야광 총수가 죽었다면 보통 일이 아니지.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고 보면 될 거고.”
“정반대라면…… 호호! 우리는 쫓기기만 했는데, 그럼 쫓기라도 하는 건가요?”
“우리에게 정반대의 일은 죽음이야. 지금까지 남도문은 마령음이나 만공심안을 얻으려고 했어. 날 살려놔야 하는 건데…… 이제는 포기한다는 거야. 대신 죽이려고 들 거야. 간단한 추론이야.”
간단하지 않다. 말을 쉽게 해서 그렇지, 답평의 죽음을 이렇게 연결시키는 사람은 흔치 않다.
“다 왔어. 낭떠러지로 내려가지 말고, 앞으로 질주해.”
“저런 절벽을!”
“경사가 급할 뿐이라니까.”
거짓말! 눈앞에 보이는 것은 낭떠러지였다.
***
금궁(金弓) 강화명(薑華明)의 죽음은 큰 분노를 불러왔다.
남도문의 제일(第一) 명의(名醫)인 만약은사(万藥隱士)는 반듯하게 누운 강화명의 사인을 분석했다.
“쯧! 아직도 비류(肥謬)를 쓰는 위인들이 있다니.”
“비류!”
“비류에 당해서 손발이 경직되었군요. 꼼짝할 수 없었을 겁니다.”
“오방시에 이어 십방시까지 쏘셨다고 들었네.”
유궁(流弓) 강금산(薑金山)이 말했다.
“대단한 의지지요. 보통 사람들은 비류에 당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합니다.”
강화명은 제일 먼저 독에 당했다.
“아래에서 위로 쳐올린 검상. 잔인한 손속이군요. 움직일 수 없는 상대에게 이런 칼질을 한 것은…….”
“만공심안에 백형검법의 접목이라고 하더군.”
“만공심안? 허허허! 그런 게 있으려고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호사죠. 원인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비류에 있습니다. 이즈음에서 금궁 어르신은 숨조차 쉬기 힘드셨을 겁니다.”
“쯧! 형님은 옆에서 뭘 하고 계셨단 말인가! 큰형님이 이렇게 당하도록 손 놓고 보고만 계셨단 말인가!”
“옆구리 상처도 잔혹하군요. 일반적으로 사혈만 깨끗이 베는 법인데…… 이런 상처를 입으셨다면 마지막 순간이 굉장히 길으셨을 겁니다. 상당히 고통스러우셨을 거예요.”
강금산은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모두들 들어라! 지금부터 마야는 우리와 한 하늘을 이고 살지 못한다. 모두 나가라! 나가서 죽엿!”
제삼무신가의 명궁들…… 그들이 움직였다.
“이해하여 주시기를.”
“이러면…… 제삼무신가의 위명이 돌아올 것 같으냐?”
“마야를 추켜올릴 수는 없지요. 희향이까지 하오문 놈들에게 희롱당했는데 금궁까지 마인 놈 손에 죽었다면 얼굴을 들지 못하잖습니까.”
궁왕 강창도, 그는 강화명의 주검을 보았다.
“보면 모르느냐! 공정한 싸움이었어.”
“이 대 일이었죠. 자하일봉이 손을 썼으되, 마야가 곁에서 도왔으니까요.”
“무인은 변명을 않는 법이니.”
“…….”
“호오! 백형검법이 절정에 이르렀군. 화명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했는가? 벨 수밖에 없어서 안타깝다고?”
“그렇게 들었습니다.”
“무봉(無峰)이구나. 자신이 최고로 강하다고 느끼는 경지.”
“저희도 넘어선 경지입니다.”
“하하하! 됐어. 오늘 나가지 않기를 잘했군.”
“나가셨다면 놈들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아니, 뇌옥으로 찾아가셨을 때 뿌리를 뽑으셨어야 합니다. 마인에게 기회라니요.”
“그 이야기는 그만 하자. 이 싸움은 아주 크게 잘못되었어.”
“처음부터 잘못되었죠.”
“이유를 모르는구나.”
“…….”
“적을 베기 전에 아군부터 베었어. 마야를 죽이기로 작정했으면 마야를 죽여야지, 답평은 왜 죽여?”
“말씀이…….”
“아냐. 일에는 앞뒤가 있는 거야. 아군의 피부터 보았으니 일이 잘될 리 없지. 너도 적당히 하고 돌아와. 뿌리를 뽑으려고 하면 제삼무신가는 문을 닫아야 할 거야. 하하하!”
궁왕 강창도는 통쾌하게 웃었다.
“무봉이라…… 몇 년만 지나면 정말 좋은 상대가 되겠어. 하하하!”
2
소립파는 말을 잃었다.
금연화가 몇 번이나 미끄러지고,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할 위기를 겪어도 벙어리가 된 듯 침묵했다.
맨몸으로도 건너기 힘든 절벽이다. 등에 자신보다 더 무거운 사내를 업고 건너려면 악전고투를 벌여야 한다.
“저쪽에 산봉이 있군.”
한참 만에야 불쑥 한마디 했다.
경치 감상을 하고 있었나?
“저쪽으로 가란 말이에요?”
“아니, 저쪽에서 활을 쏘아대면 아주 좋을 것 같아서.”
“기가 막혀서…….”
금연화는 말문이 막혔다. 그때,
쒜에엑! 쒜에에에엑……!
예리하게 공기를 갈라대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화, 화살!”
“밑으로.”
“예?”
“밑!”
밑은 낭떠러지다. 지금도 간신히 돌부리 하나를 밟고 있는 판인데 어딜 더 밑으로 내려가란 말인가.
그래도 마야의 말이니 따라야 한다.
금연화는 돌부리를 박차고 신형을 허공에 띄웠다. 순간,
탁! 타타타탁!
멀리서 날아온 강전들이 방금 전에 그녀가 서 있던 곳을 강타했다.
금연화는 그 모습조차 오래 보지 못했다. 그녀는 추락하고 있었다. 어디 잡을 곳이 있는지 찾아봐야 한다. 이대로 계속 추락하면 뼈도 추리지 못한다.
아! 없다. 도무지 눈에 띄는 곳이 없다.
작은 돌부리 같은 것은 숱하게 있지만 너무 빠른 속도로 낙하하고 있어서 잡을 수가 없다.
“저 아래 매 둥지가 있어.”
‘매 둥지?’
사람이 지은 건물도 아니고 매의 둥지까지 알아? 이게 사람이야, 귀신이야. 하기는, 이러니 마야라는 소리를 듣지. 아니다. 자신은 보며 행동해야 하니 정신이 없지만 마야는 지켜보기만 하면 되니 훨씬 시야가 넓다.
정말이다. 발아래 툭 튀어나온 나뭇가지가 있다. 그 가장자리에 제법 큼지막한 매 둥지가 보인다.
금연화는 두 발을 살짝 오므렸다. 그리고 몸을 움직거려서 매 둥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타악!
그녀는 정확히 매 둥지를 걷어찼다.
재차 도약, 밑으로 떨어질 때보다는 많은 것이 보인다.
금연화는 간신히 주먹만 한 돌부리를 움켜잡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추락하던 순간을 생각하니 등줄기에 짜릿한 전율이 흐른다. 그런데 마야는 그녀의 마음을 계속 답답하게 만들었다.
“나 같으면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을걸? 살았다고 한숨 돌릴 때 강궁을 쏘아대면 아주 그만이지.”
“놀리는 거예요?”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 정말로 철궁이 쏘아져 온다.
쒜엑! 쒜에엑……!
“어떻게 해야…….”
묻고 자시고 할 틈이 없다. 대답을 들을 즈음에는 벌집이 되어 있으리라.
파앗!
금연화는 다짜고짜 뛰어내렸다.
‘밑에 뭐 없어요?’
묻고 싶었다. 매의 둥지를 찾아냈으니 이번에도 구명줄을 발견해 주리라 믿었다.
휘이잉……!
절벽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몹시 거세다. 차마 눈을 뜨지 못하겠다. 얼굴이며 손이며……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대로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기적은 일어났다.
출렁!
위에서 누가 잡아당긴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밑으로 떨어지던 신형이 강한 반동에 의해 위로 튕겨 올랐다.
한 번, 두 번, 세 번……
떨어졌다가 솟구치기를 여러 번, 금연화는 몸뚱이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어서야 위를 쳐다봤다.
아무것도 없다. 몸만 허공에 둥둥 떠 있다.
아니다. 사방을 둘러보던 눈동자에 팔을 위로 뻗고 있는 마야의 손이 들어왔다.
마야의 손은 무엇에 베인 듯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뭘 잡고 있는 거지?’
그는 여인의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줄을 꼭 움켜잡고 있다. 줄은 위로 연결되어 있으며…… 짐작으로는 매의 둥지가 있는 나무에 묶여져 있지 않나 싶다.
“그게 뭐예요?”
“은잠사(銀蠶絲).”
“별걸 다 가지고 다니네요.”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아. 떨어지는 충격이 이렇게 클 줄 몰랐군. 화살이 곧 날아올 거야.”
“또요!”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있나 찾아봐.”
마야는 더 이상 길 안내를 하지 못했다.
그는 신이 아니다. 가보지 않은 곳은 그도 모른다. 그나마 길 안내를 했던 것은 주변 지형지물에 대해서 사전에 숙지해 놨기 때문이다. 철두철미하게. 완벽한 승리에서부터 완벽한 패배까지 숱한 방안을 모두 염두에 두고.
그는 노력하는 사람이지 운 좋은 사람이 아니다.
“저기 아래로 뛰어내릴 거예요.”
“좋도록 해.”
“잡을 곳이 너무 적어서 큰일 날 수도 있어요.”
“그런 게 큰일이라면 오늘 정말 큰일 많았군. 안 그래?”
“호호호! 그러네요. 그럼 꽉 잡아요!”
금연화는 신형을 날렸다.
***
추혼단주 부위량은 산봉에서 일남일녀가 기적처럼 절벽을 타고 내려가는 광경을 지켜봤다.
두 사람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깨알처럼 보인다.
철궁대의 철궁이 아니라 일반 활이었다면 거리가 닿지 않는다.
철궁대는 강궁이 장점이지만 현존하는 활 중에서 가장 멀리 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멀리 쏜다. 단지 화살이 멀리 날아간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멀리 쏘면서 백발백중의 명중률을 자랑해야 의미가 있다.
철궁대는 어느 쪽으로나 긍지를 내세울 만하다.
물론 궁왕이 건재한 제삼무신가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 외에는 궁(弓)으로 일가를 이룬 어느 문파도 철궁대 앞에서 활 자랑을 하지 못한다.
그런 철궁대가 두 사람을 잡지 못했다.
“계곡 아래는?”
“밑으로는 사자암에 이르고, 위로는 구벽사(九碧寺)로 통합니다.”
“제삼무신가 사람들은 어디쯤 왔나?”
“사자암에 이르렀고, 계곡을 더듬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인원은?”
“유궁 강금산님을 필두로 백팔궁사가 모두 나섰습니다.”
“사자암 쪽은 완전한 사로(死路)가 되었군.”
부위량은 결코 서둘지 않았다.
추적을 할 때는 서둘러야 할 때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가 있다. 때에 따라서는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장강을 뚫었고, 뇌옥을 탈출한 자다.
남추혼(南追魂) 북천비(北天秘)라는 말이 있다. 남에는 추혼단이 있고, 북에는 천비대가 있다는 말이다. 북검문의 천비대는 언젠가 한 번 반드시 자웅을 겨루고 싶은 추적의 달인들이다. 그들의 추적은 두 번, 세 번 고쳐서 뜯어봐도 정말 빈틈이 없다.
마야는 천비대를 바보로 만들었다.
듣기로는 삼뇌 중에 한 명인 만박선생이 천비대를 도왔으나 끝내 헛걸음만 했다고 한다.
그 일로 인해 천비대와 만박선생은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마야…… 서둘러서 추격하면 당한다. 조금이라도 느슨한 곳이 있으면 꽁꽁 여민 후에 나아가야 한다.
봐라. 꼼짝없이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절벽에서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놈들은 철저히 준비한 후에 잡아야 한다.
“모(毛) 대주(隊主), 다시 한 번 부탁드리지만 잡을 생각은 말아주시오. 옆으로 빠져나가지만 못하게끔 부탁드리겠소.”
“후후! 놈에게 철궁대가 박살이 났어. 궁수 한 명 길러내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하물며 철궁대야. 철궁은 시위를 잡아당기는 데만 일 년을 수련해야 돼. 그런 놈들인데…… 놈에게 백이십 명이나 죽어나갔어.”
“대주께서 잡기를 원하시면 추혼단은 빠져야 하오.”
“협박처럼 들리는데?”
“어떻게 생각해도 좋으나…… 추혼단이 빠져야 한다는 말은 사욕(私慾)을 놓지 않을 경우에는 놈을 놓칠 가능성이 팔구 할이나 되기 때문이오. 잡을 가망이 희박하면 추격하지 않느니만 못한 법이오.”
“반드시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하나?”
“약속드리겠소.”
철궁대 대주 모지휘(毛志輝)는 눈을 부릅뜨더니 다시 꽉 감았다.
“좋아. 옆으로 기어나가지만 못하게 하지.”
“꼭이오.”
“꼭. 목을 건다면 되겠나?”
“하하하! 그럴 필요까지야. 믿겠소이다.”
부위량은 안심했다.
철궁대가 접전만 벌이지 않으면 승산이 있다.
철궁대는 공격력뿐만이 아니라 방어력도 탁월하다. 철궁대원 한 사람이 절벽 위에 버텨 서면 기어오르거나 지나가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그만큼 방어 영역이 넓고 강하다.
놈은 옆으로 빠져나갈 생각을 버리고 앞으로만 나가야 하리라.
‘구벽사에서 잡는다.’
***
은잠사는 워낙 예리해서 피륙으로 된 수투(手套)를 끼고 사용해야 한다.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상황이 워낙 다급하여 그냥 사용했는데, 하마터면 손가락이 전부 절단될 뻔했다.
금연화는 금창약을 바르고 옷자락을 찢어 꽁꽁 싸매주었다.
“이젠 어떻게 하죠?”
“봄이라지만 아침저녁으로는 한겨울처럼 춥군. 불 좀 피울까?”
“불이요! 미쳤…… 휴우!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불 피워도 돼. 걱정 마.”
소립파는 정말 불을 피울 생각인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마른 나무를 주워 왔다.
불을 피우는 것은 금연화 몫이다.
“오밤중이라서 불을 피우면 위치가 노출될 텐데…… 정말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