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75
75
궁왕을 사칭한 자와 싸울 때 그의 화살을 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심안 덕분이다.
여기까지는 여타의 심안도 공부만 충실하면 가능하다. 마야의 심안이 훨씬 효과가 빠르고 탁월하지만 다른 유파의 심안이 못하다고는 할 수 없다.
마야의 심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상대의 내력이 읽힌다. 상대의 무공이 보이고, 움직임이 예측되며, 자신이 공격했을 때 일어날 반응이 화폭에 그려진 그림처럼 선명하게 펼쳐진다.
믿을 수 없게도 마야의 심안은 말뿐인 심안이 아니라 인간의 영력을 발전시켜 주는 진짜 심안이다.
수련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깨달음으로 터득하는 안공도 아니다. 고도의 영력을 지닌 자가 다듬어주고 틔워주어야 비로소 펼쳐 보일 수 있는 영력의 일종이다.
금연화는 두 번째 은신자를 향해 양검을 쏟아냈다.
파아앗!
둥글게 원을 그린 굉멸검이 은신자의 왼쪽 목을 베어간다.
‘창을 들어올리고…….’
은신자는 창을 들어올렸다. 그것으로 굉멸검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실제로 그의 창은 무게가 상당해서 웬만한 병기로는 흠집도 내지 못할 것 같다.
슈욱……!
금연화는 굉멸검을 미끄러뜨려 가장자리에 있는 은신자에게로 방향을 바꿨다. 동시에 음검으로는 처음 사내의 가슴을 쑤셨다.
푸욱!
소혼검이 심장을 뚫고 들어갔다. 뼈도 잘랐다. 심장을 찌를 때와는 전혀 다른 잔잔한 울림이 손바닥에 전달된다.
인간의 관절은 꺾일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없는 부분이 있다.
양팔을 좌우로 들어올린 후 뒤로 눕히면 얼마 눕히지 못해서 뻐근한 통증이 일어난다.
백형검법 구초(九招) 전참후척(前斬後刺)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금연화는 음검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녀의 등은 맨 오른쪽 사내에게 노출되었고, 사내는 당연히 짓쳐들어왔다.
그때, 밑으로 떨어지던 굉멸검이 불쑥 쳐올려졌다.
오른팔이 등 뒤로 완전히 꺾였으며 앞으로 찌를 때처럼 곧게 찔러 나갔다.
푸욱!
등 뒤의 사내는 보통 검보다 검신이 넓은 굉멸검에 머리 한쪽이 잘려 나갔다.
‘천멸도 살수들!’
금연화는 이들의 정체를 알아냈다.
이들과는 뇌옥에서 부딪쳐 본 적이 있다.
당시는 심안을 틔운 상태도 아니었고, 백형검법도 지금처럼 능숙하지 않았다. 양손을 합쳐 겨우 일형을 뿜어낼 수 있는 정도였다. 마도나 수검 같은 사람과는 맞겨룰 엄두도 내지 못했을 때다.
그래도 다섯 명이나 죽였다.
이들은 일곱 명인데……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무공이 높아졌는데…….
사람이 다르다. 그때의 천멸도 살수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자들이다. 옛날의 그녀였다면, 몇 호흡 전의 그녀였다면 말도 안 되게 당하는 쪽은 그녀였을 게다.
소혼검과 굉멸검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춤췄다.
상대의 움직임을 환히 읽고 움직이는데, 상대의 움직임보다 훨씬 빠른데…… 질래야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괜찮았어요?”
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멸도 살수들인데 전에 왔던 자들보다 훨씬 강했어요.”
“향주(鄕主)들이니까.”
금연화는 입을 다물었다.
천멸도에 대해서 마야만큼 많이 아는 사람도 없을 게다.
천멸도가 나환자촌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무림문파로서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 하나 지금은 한가한 말을 나눌 때가 아니다. 또 진득하게 말을 듣지 못할 바에는 아예 안 듣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사방천마도 왔을까요?”
“모르지.”
소립파도 그 부분이 궁금한 듯했다.
넓은 공지가 없어서 자유롭게 싸울 수 없는 곳.
추혼단주는 그곳에다가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을 팠다.
마야의 능력은 워낙 불가사의해서 무신 같은 초강자라 해도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천비대가 바짝 뒤쫓고도 그를 잡지 못한 것은 그를 보통 사람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를 잡으려면 인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무신과 같은 절대 신이라고 가정한 후에 함정을 파고, 포위를 해야 잡을 수 있다.
추혼단주는 제일 먼저 방원 오십 장의 원을 그렸다. 원을 따라가며 도랑을 팠고, 도랑 안에는 기름을 부었다.
불을 댕기면 오십 장 안에 갇힌 생명체는 모조리 한 줌 재가 된다.
마야는 함정을 알아차릴 수 없다.
일단 범위가 너무 넓다. 느낌이나 냄새로는 알아차릴 수 없다.
그가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수 없게끔 조처도 취해놨다.
일단의 무인들이 활을 겨누고 있다. 그들은 제삼무신가 사람들로 위장했다. 마야가 의심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화살을 한 대 쏘아주었다. 그때의 화살은 진정한 제삼무신가 궁수가 쏜 것이니 똑같은 활을 들고 있는 사람은 모조리 제삼무신가 사람들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죽어도 좋다.
야광 총수가 사심을 가지고 끌어들인 북척표 제일대 마인들, 제이대 쓰레기들.
답평이 죽자 처치 곤란이었는데, 이렇게 활용하면 양쪽 모두 제거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지 않나.
마야는 활을 겨눈 사람들 중에 철궁대가 없는 게 궁금할 게다.
없기는 왜 없나. 그들은 원 밖을 포위한다. 안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개미 한 마리 살려두지 않는다.
마야가 숲에 절대 강자들이 은신해 있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먹잇감으로 천멸도 살수를 풀었다.
그들이 마야를 잡으면 좋지만, 잡지 못해도 상관없다.
생각할수록 한심하다. 야광 총수라는 분이 어떻게 천멸도 나환자들을 끌어들였는지.
숲에 있는 일곱 명이 죽고 나면 중원에 나온 천멸도 살수들은 십여 명밖에 남지 않는다.
그들은 철궁대 뒤에 위치한다.
불길을 뚫고, 철궁대의 철시도 뚫어낸다면 진정한 천멸도 살수들과 손속을 섞어야 한다.
그래도 부족하다.
가장 외곽에 제삼무신가 사람들이 포진했다.
그들은 틈만 보이면 화살을 쏘아댈 게다.
단 두 명 때문에 이러한 포위망을 구축하다니 하늘이 웃을 일이다.
하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비웃음을 당할망정, 놓친 후에 가슴을 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마령음을 들을 수 있을까?”
“난 적멸주를 듣고 싶군요.”
추혼단주 뒤에서 제삼무신가 사람들의 음성이 들렸다.
자신의 수하들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귀싸대기를 올려붙이련만…….
추혼단주는 새가 우짖는 듯한 휘파람을 불었다.
휘우욱! 휘욱!
순간, 사방에서 미미한 바람이 불었다.
삼백이십 명에 이르는 추혼단이 움직였다. 그들은 싸움을 하지 않는다. 제삼무신가 뒤에 포진하여 혹여 있을지 모를 탈출에 대비한다. 마야가 제삼무신가마저 뚫을 때를 대비해서.
‘됐어. 이만하면.’
이번에는 다소 긴 휘파람을 불었다.
휘우우우욱……!
불길이 확 타올랐다.
“화, 화공이에요.”
금연화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방에서 검을 연기가 피어오른다. 아니, 그전에 붉은 혓바닥이 넘실거린다.
당황한 것은 두 사람만이 아니다.
그들 주위를 맴돌던 제삼무신가 사람들은 활이고 뭐고 전부 내동댕이치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나무 위에 있던 자들도 내려와 도주하기 시작했다.
“저, 저…….”
금연화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기가 막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아아악! 크윽!”
방금 전에 도주했던 자들이 처참한 비명을 내질렀다.
누가 그들을 죽인 것일까? 불길을 뚫지 못해 타 죽는 것일까?
“훗!”
마야는 쓰게 웃었다.
“웃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군. 자칫하면 통구이 되겠어.”
소립파가 앞장서서 거침없이 걷기 시작했다. 마치 몇 번 와본 적이 있는 사람처럼.
“아악! 아아악……!”
사방에서는 끊임없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립파는 지금까지 걸어온 곳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겨우내 바짝 말랐던 나무들은 불길의 기세를 한껏 드높여 주었다.
불길이 멀리 있는데도 뜨겁다. 검은 연기가 눈에 들어가 눈물이 흐른다. 코로, 입으로 들어간 연기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다.
퍼엉! 펑!
화약이 터지는가! 커다란 폭음이 귓전을 울리고, 막대한 경기가 밀려왔다.
“이게 뭐죠? 화약은 아닌 것 같은데.”
“공기가 터지는 거야.”
“네에?”
“불길은 공기도 태워. 불길 근처에는 공기가 없다는 소리지. 하지만 공기는 금방 채워지고, 너무 빨리 채워지기 때문에 폭발 소리가 들리는 거야. 공기가 터진다고 하지.”
“아!”
“자, 갈까?”
마야는 발로 수북이 쌓인 나뭇잎들을 헤쳤다. 그러자 오소리 굴처럼 작은 구멍이 입을 쩍 벌리며 드러났다.
금연화는 할 말을 잃었다.
‘이 사람을 적으로 돌린 자가 불쌍해.’
소립파는 서슴없이 굴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금연화는 급한 줄 알면서도 쉬이 들어가지지가 않았다.
죽은 지 이틀쯤 된 닭 한 마리가 놓여 있는 것도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데, 개미가 바글바글 달라붙어 뜯어 먹고 있으니.
갑자기 궁금증이 치민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다 똑같아 보이는데 어떻게 이 자리를 찾을 수 있었을까? 닭의 시기(尸氣)를 감지했을까? 아니면 부패하는 냄새를 맡은 것일까?
죽은 지 이틀이면 천하제일의 후각이라도 냄새를 맡기가 힘들다. 한여름이라면 몰라도 날씨가 쌀쌀한 봄이면 이틀 정도로는 부패하지 않는다.
시기를 감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휴우!”
금연화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금연화의 뒤에 꼬리가 붙었다.
‘언장은마!’
전 같으면 뒤돌아보거나 음성을 들어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풍기는 느낌만으로 누군지 파악이 된다.
작은 사람이 간신히 기어갈 수 있는 토굴인데 어느 구석에서 튀어나온 것일까.
언장은마는 금연화의 꼬리를 따라붙으며 굴을 무너뜨렸다.
푸스슥!
언장은마의 손에 조금이라도 강도가 강해지면 여파가 금연화에게까지 미친다. 머리는 떨어지는 흙더미로 뒤덮이고, 코와 입에서도 흙냄새가 물씬 풍긴다.
“후웁! 얼마나 더…….”
금연화는 입을 열어 물어보려다가 그만뒀다.
한 시진 넘게 기어왔으니 상당히 멀리 온 것 같다. 그래도 빛은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더 가야 할까?
물을 필요도 없다. 거의 다 왔다. 코로 맡아지는 공기 냄새 속에 맑고 신선한 냄새가 섞여 있다.
반각 정도 더 기어갔을까?
드디어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야는 벌써 빠져나가서 보이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가 장난스럽게 안을 들여다봤다.
‘일령? 그렇구나. 하오문주가 오면 시키는 대로 따라서 하라더니 이곳으로 옮겨왔어. 그럼 마야는…… 궁왕과 싸우기 전부터 이런 일이 있을 걸 알았다는 이야기네.’
금연화는 숨 막히는 토굴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곧 뒤따라 나오리라 생각했던 언장은마는 나오지 않았다.
사방이 환히 트인 들판에 집 한 채만이 달랑 세워져 있는 곳에서 행색이 구구각색인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조만간 눈에 띄고 만다.
토굴에서는 빠져나왔지만 이곳 역시 오래 있을 곳은 못 된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마야는 일행을 한데 모았다.
“궁왕이 나타나 싸웠다면 일은 간단했어. 죽든가 살든가. 살게 되면 나머지 세 문파도 치면 되는 거고.”
하오문주로부터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일행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방천마가 나타났다면 그것도 간단했어. 유계는 남도문의 힘을 빌어 중원에 뿌리를 내리려고 하지. 이제 밝은 곳으로 나오고 싶은 거야. 유계는 남도문을, 남도문은 유계를 이용하게 되니 사방천마가 우릴 공격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사방천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내 몸을 두 번 던졌다.”
고루쌍마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들이 진작 진실을 말했다면 마야가 사로잡히는 고육책을 쓰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하지만 그런 그들도 마야의 가슴에 깃든 어두움은 읽지 못했다.
육능자와 만사무불통지가 마야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은 일행 중에 그들의 간세가 있다는 뜻이니.
“이번에 몸을 던진 목적은 답평의 죽음이 어떤 사태를 불러왔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는데…….”
마른침이 삼켜진다.
“남도문은 우릴 제거하기로 작정했어. 이번에는 추혼단주가 치밀하게 한 것 같지만 실수가 많아서 그런 거고…… 다음에는 남도삼가가 전력을 다해 우릴 죽이려고 할 거야.”
남무림 전체가 적이라는 소리와 같다.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이어지는 마야의 말은 더욱 기가 질린다.
“북검문도 사정이 같겠지. 중원 어느 곳에도 우린 발을 붙일 곳이 없어. 그리고…… 그래, 알아두는 게 좋겠지. 한 군데 더 우릴 노리는 곳이 있어.”
“유계?”
“머리를 조아리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유계가 우릴?”
“관상 이야기를 한 번 더 할까? 여기 금 소저…… 명상(明相)이야. 깨끗하기 이를 데 없지.”
“…….”
“유계의 주공은 청상(淸相)이지. 금 소저와 짝을 맺으면 천하에 다시없는 원앙이 돼. 그는 오래전부터 금 소저를 주목해 왔을 거야. 그래서 혈귀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흉이 그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어쨌든 그도 우릴 죽이려는 것만은 틀림없어.”
“그럴 리가 없어요. 남방천마라는 자가 우릴 겁간…….”
일령은 무의식중에 뇌옥에서의 일을 쏟아내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마야는 고개를 흔들었다.
“겁간할 목적이 아니었어. 흉내만 낸 것이지. 명상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려는 거였지. 사방천마…… 잔인한 사람들이지만 유계 주공에 대한 충성만은 뛰어나.”
“제게도 음침한 눈길을 보냈는데요?”
“귀상과 명상은 분별이 쉽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뭐야…….”
시마가 코를 후비며 말했다.
“온 세상이 온통 우릴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놈들뿐이란 거잖아.”
혈유가 낄낄 웃었다.
“짜식들…… 죽일 테면 죽이라고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