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8
8
“주루와 집이라. 둘 다 주지.”
“이놈…… 정말이다!”
“후훗! 곧 죽을 사람이 욕심은.”
“산다. 악착같이 살아서 두 개 다 가질 거야. 나중에 헛소리나 마.”
금연화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고개를 돌려 버렸다.
‘허튼짓만 하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수묘인은 노인의 입에 화주를 네 병이나 틀어넣었다. 반면에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간 것은 얇게 썬 건포(乾脯) 한 조각이 고작이다.
“그만 가지.”
수묘인이 일어나 고삐를 잡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 진흙탕을 순조롭게 헤쳐 나왔듯이 나무들이 울창한 산도 탈 수 있는 것일까? 사람 발길이 닿은 곳은 없고, 고작해야 동물들이 다니는 길밖에 없는데.
수묘인은 기적을 일으키지 못했다.
수레는 방향을 틀어 되돌아갔다.
산골짜기로 들어간 것은 우연도 아니었고, 실수도 아니었다. 노인에게 술을 먹이기 위해서 일부러 선택한 것이다.
수묘인은 이곳 지리를 조금 아는 정도가 아니라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금연화 일행은 뜻하지 않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북무림 무인들과 만나지 않고 권수를 건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해도 될까?
“지리는 얼마나 알지? 보기에는 많이 아는 것 같은데.”
“군(軍)에 고용된 향도(鄕導)였지. 위험하기는 해도 수입이 제법 좋았어.”
‘아!’
시름이 확 풀린다는 말을 이때 쓰는 건가? 군대에 고용될 정도로 지리에 능숙한 향도가 길을 안내해 준다면 권수를 건너는 일이 꿈만은 아니다.
그녀는 곧바로 물었다.
“수묘인이 향도보다 수입이 더 좋았나?”
향도는 대중과 섞여 살 수 있는 평민이지만 수묘인은 최하층 천민이다. 장의사는 ‘정중히 다뤄달라’는 부탁이라도 받지만 수묘인은 그런 것조차 없다. 오히려 묘를 잘못 관리하면 몰매만 맞는다.
굶어 죽을지언정 수묘인이나 백정 노릇은 하지 말라는 속설이 천민들의 고충을 대변해 준다.
금연화가 묻는 것은 그런 거였다.
수묘인은 대답하지 않고 피식 웃었다.
“이제부터 고달파질 거야. 아무거나 단단히 붙잡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말은 수림이 울창한 산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수레를 산으로 모는…….’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나무가 촘촘히 자란 산속이지만 수묘인은 용케도 수레를 몰아갔다. 정면에서 보면 도저히 수레가 지나갈 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옆으로 살짝 돌면 나무와 나무 사이의 공간이 그렇게 좁지 않다는 데 놀라게 된다.
비루먹은 말은 결코 서둘지 않았다. 멈추지도 않았다. 묵중한 짐을 진 사람이 뚜벅뚜벅 한 걸음씩 내딛듯 답답한 마음이 절로 일어날 정도로 느리게 올라갔다.
산에는 잡목도 무성하다. 수레가 지나갈 만한 공간이 충분해도 키 작은 잡목들이 우거져 있기 때문에 바퀴를 쇠로 만들어 짓밟고 지나가야만 한다. 물론 철륜(鐵輪)을 붙인다면 비루먹은 말 한 마리로는 도저히 끌 수가 없다. 더욱이 산을 올라가는 것이니 아마도 육두 내지는 팔두 정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수묘인이 금연화의 마음을 읽은 듯 담담히 말했다.
“이놈은 공동묘지를 앞마당 거닐 듯 오르락내리락한 놈이야. 흙도 져 나르고, 떼도 옮기고. 산을 타거나 짐을 옮기는 능력만 가지고 논한다면 이놈도 명마지.”
그럴듯하다. 무엇인가…… 속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설명을 들으면 믿고 싶어진다. 장사꾼들의 상투적인 말인 ‘본전에 주는 거다’, ‘밑지고 판다’는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믿는 심정처럼 수묘인의 말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믿고 싶어진다.
수레는 산꼭대기로 올라가지 않았다. 중간쯤 올라갔을 때 옆으로 방향을 틀어 나무 사이를 헤쳐 나갔다.
“수레를 몰고 산속을 헤맸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절혼마녀가 술병을 꺼내 꿀꺽꿀꺽 들이마시며 말했다.
‘그래, 이거야! 이건 비정상이야! 수레를 몰고 산속을 헤맸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없어. 한데도 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오늘은 여기서 쉬지.”
수묘인이 말을 멈추고 수레에서 일어났다.
볼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산중이다. 가파르게 비탈진 곳이라 누울 자리는 고사하고 수레를 세워놓기도 힘들다.
“여기서……?”
“야영하기에 이만큼 좋은 곳도 없어. 적도 이런 곳은 뒤지지 않고. 그러니 초병(哨兵)을 세울 필요도 없고. 후후!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나는군. 사내들에게서는 땀 냄새밖에 맡을 게 없는데 분 냄새를 맡으니 전혀 다른 느낌도 들고.”
수묘인은 수레에서 가죽 천으로 둘둘 말아놓은 물건을 들어올렸다.
‘아주 편해.’
노숙을 많이 한 편은 아니지만 전혀 경험이 없지는 않다. 그래도 지금처럼 편한 잠자리를 가져 본 적은 없다. 이건 마치 자신의 방에서 침상에 누워 있는 것과 같지 않은가.
수묘인은 능숙한 솜씨로 땅을 팠다.
수묘인이니 땅 파는 솜씨가 뛰어난 것은 당연한 건가?
바닥이 평평해지도록 땅을 파고, 나뭇잎으로 흙을 덮은 다음에 둘둘 말린 가죽 천을 풀었다.
그 속에서 나온 것은 놀랍게도 호피(虎皮)다.
사용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호피를 나뭇잎 위에 깔고, 나뭇가지를 잘라 기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수달 가죽으로 만든 덮개를 씌웠다.
“두 사람이 자기는 충분할 거야.”
물론 두 사람이 자기는 충분하다. 너무 아늑하고 편안한 잠자리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뒤따르는 자하령이 여덟 명이나 있다.
‘그 애들, 할 수 없이 이슬을 맞고 자야겠어.’
생각이 너무 짧았다.
수묘인은 경사진 비탈을 직각으로 파나갔다. 그리고 머리맡 부분, 비탈이 끊긴 부분에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를 꺾어 찔러 넣었다.
경사진 산비탈에 찔러 넣은 나뭇가지는 자연스럽게 지붕 역할을 해주었다. 거기에 웃옷을 벗어 걸쳐 놓자 훌륭한 지붕이 완성되었다.
바닥에는 잎이 넓은 잎사귀를 깔았다.
그럭저럭 하룻밤을 보내기에는 불편하지 않아 보인다.
‘자하령도 저런 식으로 잠자리를 꾸미면 이슬은 맞지 않겠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하령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녀들이 어떻게 먹고 어떤 식으로 자는지는 알고 있지만 당연히 겪어야 할 고초 정도로 치부했다. 또한 그 정도의 고초는 내밀호법(內密護法)이 되기 위해 받아야 하는 가혹한 수련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이틀, 수묘인과 지낸 날이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자하령도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편안하게 쉬고 맛있는 것을 먹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자하령의 이목은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으니 수묘인이 하는 행동도 빤히 지켜봤을 게다.
자하령에게는 그들만의 식사가 있다. 그들만의 수면 방법이 있다. 하나, 수묘인을 본떠서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어 편히 쉬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꿀꺽! 꿀꺽……!
절혼마녀는 쉴 새 없이 술을 쏟아 부었다.
“사내들…… 겪을 만큼 겪었고,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풋! 별종(別種)도 있었네.”
‘별이 참 많이도 떴어.’
금연화는 호피에 누워 밤하늘을 쳐다봤다.
절혼마녀의 고민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분간은 수묘인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해봤자 머리만 아플 뿐이니까. 또한 그에게 신경을 쓸 마음도 남아 있지 않고.
그가 수묘인이라면 그런 것이고, 향도라면 향도다. 노인이 시마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자하부와의 인연을 끊기 위해 만들어낸 인물들이나 큰 도움을 주고 있으니 고맙지 않나. 배신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건 신경 쓰지 않으련다.
그런데 절혼마녀가 뜻밖의 소리를 했다.
“내가 괜히 따라나섰나 봐. 단단히 각오했는데 너무 싱겁게 됐어.”
“아녜요, 언니. 언니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한데요.”
절혼마녀는 금연화의 말을 받으려고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차마 말을 꺼낼 수 없는지 거칠게 술을 들이켰다.
족히 반 병쯤 들이켰을까? 절혼마녀가 술병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 줄래?”
“네? 뭘요?”
“저 사내, 나 달란 말이야. 영감이 시마든 아니든, 저 사내가 시마 제자든 아니든 상관없어. 내가 길들여 볼 생각인데, 관심있으면 있다고 하고 없으면 없다고 확실하게 말해줘.”
금연화는 깜짝 놀랐다.
“언니, 진심이에요?”
“관심있어, 없어?”
“어, 없어요. 없죠. 당연히.”
“그럼 내가 갖는다? 이의없지?”
“진심이군요.”
절혼마녀가 사내에게 흥미를 느끼다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것인가. 그녀에게 사내란 뜨거운 몸을 식히는 대상에 불과할 뿐이었는데, 절혼마녀의 표정을 보니 그 정도가 아닌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때요? 만난 지 겨우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수묘인에다가…… 시마의 제자라면 무림공적이 될 건 뻔하고. 언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은데.”
“이틀이나 같이 있었어. 그래도 파악하지 못했다면 평생 동안 한 이불 덮고 살아도 파악할 수 없어.”
절혼마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특히 나 같은 여자는 사내를 보는 눈이 아주 민감해. 믿었던 자에게 배신당하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빼앗기고, 그거로도 모자라서 살 섞고 살던 여자를 홍루(紅樓)에 팔아먹고. 낙화향 창기들이 그런 자들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냐. 척 보면 어떤 사내인지 한눈에 들어와.”
금연화는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무인이라는 공통점이 없었다면 평생 살아가면서 얼굴을 마주칠 일이 없었을 여자다. 사는 방법이 너무 다르고, 가는 길도 완전히 어긋나 있으니까.
“저 사내는 적어도 그렇진 않아. 나와 너. 후후! 우릴 보고 군침 흘리지 않은 사내 봤어? 저 사내는 꿈쩍도 하지 않아. 동생은 복수 생각으로 가득하니 그런 점까지는 살피지 않았을 거야.”
절혼마녀의 말을 듣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이름이 소립파라고 했나? 신경 쓰이는 자야.’
“저 사내는 네게는 안 어울려. 나와 같은 부류야. 나처럼 시궁창에서 굴러먹은. 시마 제자면 어때? 호호호! 멱살이라도 움켜잡고 산속에 틀어박혀 살면 되지 뭐. 당장은 아냐. 좀 더 살펴봐야지. 지켜볼 생각이야. 내 잣대로. 그러니까…… 내일부터 내 꼴이 우습게 변해도 비웃지는 마.”
절혼마녀는 등을 돌리며 돌아누웠다.
2
타닥! 타닥……!
금연화는 무엇인가 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 사방은 깜깜한 어둠에 휩싸여 있는데 발밑 부근에서 따뜻한 온기와 더불어 밝은 빛이 뿜어져 온다.
‘누가 모닥불을…… 모닥불!’
잠이 확 달아났다.
몰래 숨어가도 모자랄 판인데 야밤에 모닥불을 환히 밝혀놓으면 어쩌잔 말인가!
금연화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절혼마녀는 벌써 일어나 있었다.
“깼어?”
“언니! 저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밥 짓고 있어.”
“밥이요? 세상에! 지금이 어느 판국인데 한가하게 밥을…….”
“놔둬 봐. 귀엽잖아.”
절혼마녀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겨났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야간에 모닥불을 피워놓으면 십 리 밖에서도 볼 수 있어요. 더군다나 여긴 민가도 없는 산속이니 더 환하게 드러날 거고요.”
“말리고 싶으면 가서 말려봐.”
절혼마녀는 술병을 들어올렸다.
‘모두들 어떻게 됐어. 이러다가는 날이 밝기도 전에 싸움부터 치러야 할 거야.’
금연화는 호피를 박차고 일어나 수묘인에게 걸어갔다.
수묘인은 아주 느긋했다.
모닥불 곁에서 팔베개를 하고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태평스럽기 그지없었다.
모닥불 위에 올려진 솥에서는 쌀 익는 냄새가 구수하게 번져 나왔고, 한쪽에 살그머니 얹힌 흙더미는 딱딱하게 굳어서 돌이 되어갔다.
“향도였다면서.”
“…….”
“향도가 야밤에 불을 피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몰라?”
“후후! 그따위 엉터리 소리는 어디서 들었나.”
금연화는 바보가 된 듯 멍해졌다.
‘뭐 이런 인간이…….’
“이런 곳에서 불을 피우면 나 여기 있다 하고 선전하는 것과 같아. 못 알아들어? 당장 불 꺼!”
수묘인은 누워 있는 자세 그대로 손을 들어 발 쪽을 가리켰다.
“저 산은 이 산보다 훨씬 커서 불빛을 차단해 주지.”
이번에는 왔던 쪽을 가리켰다.
“지금 우리가 있는 산은 활 모양으로 휘어져 있고.”
다시 손가락이 움직였다. 금연화가 서 있는 쪽으로.
“산이 휘어져 돌아가고 있는데, 설명이 더 필요해?”
금연화는 머쓱해졌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경황이 없어서 주변 지형지물을 숙지하지 못했다. 이제야 주변을 살펴보니 이곳이야말로 바람 한 점 들 수 없는 완벽한 분지 형태이지 않은가.
분지는 아니다. 하나 주변 산들이 얽히고설켜서 산성을 쌓아도 좋을 지형이 되었다.
“밥이 다 되려면 조금 더 있어야 돼. 요 아래 계류(溪流)가 흐르니 세면이나 하고 와.”
수묘인이 일어나 불붙은 나뭇가지들을 빼내기 시작했다. 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중이었다.
수묘인은 농가에서 사용하는 큰 솥을 사용했다.
이삼 인분의 밥을 지을 수도 있고, 사람이 많은 집에서는 십여 명분의 밥도 짓는다.
수묘인이 솥뚜껑을 열었을 때 금연화는 깜짝 놀랐다.
“무슨 밥을 이렇게 많이!”
“뒤따르는 사람들, 나오라고 해. 밥은 먹어야지.”
“뭐?”
순간 금연화의 머릿속에 절혼마녀의 말이 번개처럼 스쳐 갔다. 노인이 시마일 것 같으며, 수묘인도 상당한 무공을 지녔을 거라는.
그런 말을 들었어도 정작 믿지 못했는데, 정말 이들이 그토록 가공할 고수들이란 말인가. 자신의 기감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초절정고수란 말인가.
자하령의 움직임은 금연화도 감지하지 못한다. 그들이 일부러 숨결을 뿜어내 위치를 말해주지 않는다면 등 뒤에 있어도 알지 못한다. 자하령은 당대 최고의 밀신(密臣)들인데.
금연화는 절혼마녀를 쳐다봤다.
‘자하령이 뒤따르는 것을 눈치챈 건가요?’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직감으로 때려잡은 것 같은데…… 아닌가? 눈치챘나? 이들이 무인인 건 확실한데 노수가 어느 정도인지 도무지 알질 못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