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82
82
그 몇몇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은신술이란 여타의 무공과는 달리 어둠 속에서 피어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알려진 것이 없다. 막연하게 초범에 이를 수 있는 은신술은 다섯 손가락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추측해 볼 따름이다.
초범이란 무엇인가.
무음(無音), 움직임에 소리가 없어야 한다.
무형(無形), 움직이고 있으나 공기 속에 녹아든 듯이 투명하여 보이지 않아야 한다.
무취(無臭), 냄새를 풍기지 말아야 한다. 입고 있는 옷 냄새, 식사 후에 풍기는 음식 냄새, 몸 냄새, 병기에서 흘러나오는 피 냄새와 쇠 냄새…… 온갖 냄새를 말끔하게 지워내야 한다.
무기(無氣), 기운을 흘려내지 말아야 한다. 가장 예민한 살기(殺氣)는 말할 것도 없다.
무감(無感), 시작부터 끝까지 육신의 감각을 느낄 수 없어야 한다. 자신이 자신을 느끼는 순간 상대도 느낄 것이다.
오무(五無)는 초범의 처음이자 끝이다.
은신술이 오무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초범에 올라섰다고 말하며, 오무를 얼마만큼이나 능숙하게, 흠결없이 시전하느냐에 따라서 진척 여부가 가늠된다.
어쩌면 초범의 시작과 끝은 종이 한 장 차이일지 모른다.
절혼마녀와 미지의 살수들은 서로 꼬리를 잡기 위해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은신술이 절정에 이른 자들끼리는 누가 더 뛰어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오라기 같은 실수를 범하는 쪽이 누구냐를 따진다. 그리고 바로 그자가 죽는 자이다.
‘여기서 내가 배워야 할 것은…… 은신술에 있어서만은 천하제일이라는 자신감. 더불어서 실수는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겨놓는 것.’
이것이야말로 절혼마녀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이다.
마야가 주문한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사루의 무학에 귀루의 무학을 접목시키는 순간, 이 하늘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라는 절대 무신들조차도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어야 한다.
살수들은 녹록치 않다.
마도와 수검이 천멸도 살수들에게 속절없이 당했던 것은 그들이 무음, 무형의 악귀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천멸도 살수에 비해서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절혼마녀는 두어 번쯤 살수들의 꼬리를 잡을 뻔했다. 그러나 잡힐 뻔한 적도 세 번이나 된다.
예전에 금연화가 천멸도 살수들을 잡은 적이 있다.
그녀는 양검과 음검의 조합으로 검파(劍波)를 만들어내어 상대의 위치를 파악했다. 눈이 퇴화된 박쥐가 음파로 사물을 식별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절혼마녀는 느낌뿐이다. 직감! ‘저곳이다!’라는 마음이 들면 살수들은 그곳에 있었다. 기척이나 징후가 전혀 없지만 ‘잡혔다!’라는 느낌이 들면서 전율이 치밀면 우선 몸부터 빼고 봤다. 소리없이 스쳐 지나간 검기에 소름이 돋는 것은 연후의 일이다.
무론(武論)이나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직감.
동류의 무학을 이만한 경지로 수련해 낸 자들도 찾아내기 힘들 것이다. 목숨이 걸린 일이지만 이보다 좋은 비무 상대도 없을 것이다.
‘일령이 왔으면 당했어.’
그녀가 돌아왔을 때, 마야는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암벽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잘 다녀왔어요.”
소립파는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일령에게…… 마차를…… 절혼이 허공…… 시마가 뒤…….”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야는 몇 마디 말조차 힘들어했다.
“알았어요. 푹 자요. 이제 잘 시간이잖아요.”
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절혼마녀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뉘였다.
“누구였어요?”
“살수들이었어, 고도의 수련을 거친.”
“천멸도요?”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은신술은 조금도 모자라지 않았어.”
“몇 명이나?”
“미안. 수는 헤아릴 경황이 없어서…….”
“음! 언니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정말 많았군요.”
다담선자가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돌아왔잖아. 무탈하게. 내겐 귀루와 사루의 무학이 있어. 호호호! 이제 알겠어, 내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솔직히 지금 난 무신이라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다담선자는 절혼마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아미를 곱게 찡그리며 무엇인가에 골몰했다.
“이번에 느낀 건데…… 난 천멸도 살수들도 잡을 능력이 있었어. 한데 잡을 생각조차 못했지. 마야가 영파로 위치를 알려주면 그제야 알아채곤 했어. 있는 능력도 제대로 못 쓴 거야.”
절혼마녀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그녀가 아니었다. 겉모습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누구든 그녀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 그녀를 건드리려는 자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녀의 눈빛이 얼음처럼 차가워질 때, 눈길을 대하는 자는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왠지 모르게 절혼마녀가 진정 ‘절혼마녀’처럼 여겨졌다.
“그렇군요. 이제 큰 언니는 죽음을 부르는 귀수가 된 거예요. 그렇죠? 귀루의 무학과 사루의 무학이 합쳐질 때 귀수가 나타난다고 했으니까요.”
일령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절혼마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일령의 마음을 읽었는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 주었다.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사양하지도 않아.”
“둘째 언니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천와류와 추명반을 가졌고, 셋째 언니는 음양이기를 완벽하게 조화시킨 자하쌍구검.”
“호호호! 왜? 막내, 네가 제일 떨어지는 것 같아서?”
“전 제 앞가림도…….”
“마야 말대로 역시 습관이란 무섭군.”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막내, 몇 번이나 말해야 알겠어. 넌 이제 자하령이 아니라 우리 막내야. 공령문의 전인이고. 네게는 실낱같은 차이만 있으면 몸을 뺄 수 있는 선유비조신법이 있어. 누구든 잡히기만 하면 지옥으로 이끌 수 있는 염화옥수가 있고. 왜 자신을 갖지 못해?”
일령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네 능력은 정말 뛰어나다고 성심껏 일러줘도 본인이 믿지 않으니 어찌하랴.
절혼마녀, 금연화, 일령.
절혼마녀와 금연화는 기연에 버금가는 무학을 전수받아서 일취월장했다. 그러나 일령만은 자하부를 떠나올 때의 무공 그대로다.
그렇다면 예전부터 제일 무공이 강한 여인은 그녀였어야 한다.
한데 그렇지 못했다. 나중에 내력을 상승시키고, 심득을 얻긴 했지만 그때도 절혼마녀나 금연화와 비등한 정도였다.
이제 금연화는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절혼마녀도 알에서 깨어나 창공을 난다.
본인만 정체다.
실제로는 아니지만 일령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건 실전으로 깨닫게 해주는 방법밖에 없어.’
비무는 소용없다. 목숨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최고로 끌어올리지 못한다. 금연화가 장족의 발전을 했던 것도 실전을 통해서였고, 자신 역시 마찬가지다.
일령에게도 그녀의 능력을 깨닫게 해줄 실전이 필요하다.
몇 마디 말로는 굳어진 마음을 풀어줄 수 없다. 하나 혹여 기회가 닿으면 쉽게 깨달으라고 한마디 했다.
“막내야, 우린 절대 약하지 않아. 그때…… 우리가 항복할 때…… 우린 천멸도 살수들을 상대할 사람이 둘째의 추명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넷이나 있었어. 둘째와 나, 그리고 너. 마지막으로 시마. 우리 넷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눈으로 볼 수 없는 귀신을 잡을 수 있다는 거야.”
일령이 피식 웃었다.
웃겨서? 믿어서? 아니다. 큰언니의 말이니까 마지못해서 웃는 게다.
그때, 생각에 잠겨 있던 다담선자가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쳐들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것이 당신의 방식……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기 몸만 생각해도 모자랄 처지에 무슨 생각을…… 삶과 죽음은 하나던가. 삶의 끝은 죽음.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 남만에 갈 때까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은 이것……. 역시 마야군요.”
절혼마녀와 일령은 입을 꾹 다물었다.
다담선자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그녀가 왜 알지 못할 말을 중얼거렸는지.
절혼마녀가 입을 열어 무슨 뜻이냐고 물으려 할 때, 다담선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밝은 표정으로, 옥구슬 굴러가는 맑은 음성으로.
“뭐 해요? 마야가 한 말 못 들었어요? 막내, 빨리 어자석으로 가서 말을 몰아. 언니는 위로 올라가고요. 시마…….”
“지붕에 있다. 여기 올라올 필요 없어. 필요할 때나 올라와서 설쳐 대. 어떤 미친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빨리 가기나 해.”
“끼럇!”
앙칼진 음성이 암벽으로 형성된 절곡을 쩌렁 울렸다.
소립파의 지시대로 어자석에는 일령이 앉았다. 시마는 지붕에 편하게 누워 술병을 들이켰다. 다담선자와 절혼마녀는 여전히 마차 안에서 마야를 살폈다.
경계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긴장감도 엿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계속 가요?”
일령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계집아, 내가 언제 누구에게 물어보던?”
시마는 어자석에서 빠져나온 게 신나는 듯 콧소리까지 흥얼거리며 말했다.
“길을 잘못 들까 봐 그러죠.”
“노정(瑙定)만 보고 가.”
“노정이요? 여기서 먼가요?”
“얼추 오십 리는 될걸? 상당히 큰 도읍이긴 한데…… 그림에 떡이지 뭐. 보나마나 어디 다 쓰러져 가는 관제묘 아니면 너구리 털이 잔뜩 깔린 동굴 바닥에나 나뒹굴걸!”
“그래도 술은 떨어지지 않잖아요.”
일령과 시마는 한가한 말들을 주고받았다. 하나 그들의 마음은 입처럼 한가하지 못했다.
미지의 살수들이 바짝 붙어서 따라온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공격을 가해올 수 있고, 그들이 노린 기회라면 치명적일 것이다.
긴장을 풀면 당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긴장만 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만일을 대비해서 한 줌의 진기도 헛되이 소모할 수 없다. 편히 쉬어도 된다 싶을 때는 쉬어줘야 한다.
“어제 언니가 하는 말을 듣고 알았는데…… 전에 우리가 항복할 때 말예요.”
“계집아, 하지 않아도 될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일령은 두말없이 말문을 닫았다.
당시 시마가 무차별적으로 독을 풀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천멸도 살수들 중 상당수가 절명했을 게다.
‘그래도 안 돼. 시마의 독이면 몇 명쯤은 죽였을 거야. 하지만 인원이 워낙 많았으니…… 결국은 당했을 거야. 더군다나 사방천마도 있었고…… 그래도 대항할 여력이 있으면서 손을 들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었고.’
일령이 묻고자 했던 것은 두려움을 느꼈느냐는 것이었다.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얌전히 두 손을 묶일 때의 심정이 어땠냐는 것이다. 상대는 남도문이다. 장강을 건너면서 남무림 무인들을 숱하게 죽였으니 잡히면 도저히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시마의 마음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누구라도 그와 같은 상황에서는 죽기를 무릅쓰고 싸울 것이다. 그럼에도 잡혔다. 왜?
마지막 질문은 역시 마야에게 집중된다. 그를 믿었기에. 그가 일어서리라고 확신했기에.
‘당신들에게 마야는 뭐죠? 어떤 사람이죠?’
마인은 오합지졸이다. 이익만 생긴다면 친구도 기꺼이 팔아먹는다. 기분 내키는 대로 살인과 방화를 내지르는 흉신악살들이다.
물론 마야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하나 대부분의 마인들이 그렇다.
이들은 절대로 밝은 세상에 나갈 수 없다. 나가서는 안 된다.
마인들도 마음 놓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게 꿈이라고?
절대 안 된다. 마인들이 나돌아 다니면 애꿎은 사람들이 다친다. 마도는 영원히 지하에 파묻혀 있어야 한다.
마야는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가.
일령은 혼란스러웠다.
마야를 향해 쏟아지는 마음도 가눌 길이 없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목숨을 걸고 사랑할 수 있으면 안아도 좋다고? 흥! 난 당장이라도 목숨 걸 수 있어.’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결국은 마야에게로 좁혀졌다.
정오가 지났다.
마차는 노정이란 도읍을 삼십여 리 정도 남겨놓았다. 아침부터 정오까지 겨우 이십여 리밖에 이동하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마야는 깨어났고, 또 한차례 피나 다름없는 땀을 흘렸다.
“노정을 거쳐서 가려고 해요. 괜찮죠?”
다담선자의 속삭이는 듯한 말에 소립파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하룻밤 사이에 더욱 초췌해져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머리카락은 수세미처럼 거칠어졌고, 피부도 윤기를 잃어갔다.
‘안 돼. 쉬었다가 가야 해. 어떻게든 조리를 한 다음에 움직여야지, 이러다가는 남만까지 가지도 못하고 일 치르겠어.’
불현듯 금연화가 원망스러웠다.
왜 저주의 자오법신술을 펼쳐서 사람을 이토록 힘들게 만든단 말인가. 안다.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그녀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녀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그래도 마야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면 문득문득 원망이 샘솟는다.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약재가 없나요?”
소립파는 초점 잃은 눈으로 창밖만 쳐다봤다.
“약이라든가, 침이나 뜸이나. 뭐든 없어요?”
“…….”
“음양이기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천령혈과 회음혈을 막아버리면 어때요? 침으로 하든 점혈 수법을 사용하든 폐혈(閉穴)시키는 방법은 있잖아요.”
죽는다. 음양이기가 움직이지 못하면 마야는 전신이 돌처럼 굳어지면서 죽는다. 혹은 전신 경맥이 걸레처럼 찢어져 나갈지도 모른다. 이것은 폐혈에 성공했다고 가정했을 때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