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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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역습3
블랙맘바는 무심코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찡그렸다.
목구멍에 불이 났다. 최소 50도 이상이다. 감각이 예민한 만큼 충격도 컸다. 옴부티가 초콜릿을 얼른 내밀었다. 투아레그 전사에서 수행 하인으로 성공적인 전업을 한 옴부티다.
“고급 위스키 비슷하다. 잡냄새 없이 깔끔한 좋은 술이다.”
하마터면 기침을 쏟을 뻔 했지만 태연하게 칭찬했다. 남자는 죽어도 가오다. 스승님도 절대 가오를 잃지 말라고 했다.
아이러니하게 야자 술은 야자로 만들지 않는다. 대추 야자나무의 수액을 발효시켜 만든다. 수액은 늙은 대추야자 나무 둥치에 칼집을 내서 받는다. 과일주가 아니라 수액주인 셈이다.
아라크는 아라바크라는 증류기로 야자 술을 증류해서 만든다. 아라크는 아랍어로 땀이라는 뜻이다. 증류할 때 방울방울 떨어지는 술이 땀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한국에서 막걸리를 증류하여 소주를 만드는 소줏고리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야자술 10kg에서 얻어 낼 수 있는 아라크는 겨우 2kg에 불과하다. 아라크 술 주머니를 세 개나 확보한 옴부티가 좋아 할만 했다.
낙타 등에 실린 부대를 확인한 옴부티가 혀를 찼다.
“깨비텐, 낙타대추야자요.”
“상인은 이미 사막에 묻혔겠군. 더러운 인민군 놈들!”
장쒼이 이를 북북 갈았다.
“놀랄 일도 아니야. 사헬은 무법천지다. 어쩌면 우리가 프롤리나트를 너무 자극했는지도……”
블랙맘바의 얼굴에 그늘이 끼었다.
프롤리나트 결속이 약화되면 인민군 계열은 세를 불리기 위해 더 미친 듯이 날뛸 가능성이 높다. 망하는 지름길이지만 그동안 주민들은 말도 못할 피해를 입게 된다.
건조 대추야자를 북 아프리카에서 ‘낙타대추야자’라고 한다. 고급 간식은 물론 주식(主食)으로 이용된다. 유럽으로도 수출도 많이 된다.
옴부티는 희희낙락했다.
아라크와 낙타대추야자는 투아레그 족이 최고로 치는 술과 먹거리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사막 인이다.
“와킬은 행운을 몰고 다니는 분입니다. 알라께서 먹을 것 마실 것을 보내 주셨습니다.”
“행운은 개뿔이……”
블랙맘바는 옴부티의 호들갑에 쓴 웃음을 지었다.
행운을 몰고 다니다니, 지지리도 운 없는 놈에게 무슨 행운 운운인가!
턱도 없는 이야기다. 행운이 따라다니는 놈이면 부모를 잃고 고향을 등졌겠는가. 사랑하는 사람과 지구 반대편으로 찢어졌겠는가. 이역만리 타향에서 사람 백정 노릇이나 하고 있겠는가. 늙은 하인 녀석이 괜한 말을 해서 심사만 어지럽혔다.
옴부티가 낙타 아홉 마리를 끌고 나타나자 숙영지가 화들짝 깨어났다. 파야까지 마라톤 풀코스에 해당하는 거리다. 뚜벅이를 면하게 된 용병들은 사기가 치솟았다.
“알러!”
“숍 숍”
당장이라도 낙타를 몰아 파야로 달려갈 기세다.
블랙맘바는 부리머와 샤트르가 그리웠다. 팀의 균형추 역할을 해 주고, 여론 방향을 잡아 주던 두 사람이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의 자리는 확실히 컸다.
하비브의 저택이 3군 컨트롤 타워라고 했다. 저택을 지워 버리면 최고 악질이라는 3군은 지리멸렬되는 셈이다. 그물을 벌리고 시간 벌기에 최적이다.
동료들은 너무 지쳤다.
전투력이 평소의 30%다. 블랙맘바는 혼자 움직일 결심을 했다. 3군 사령부를 지웠듯이 수류탄 두 박스쯤 들고가서 탈탈 털어주면 된다. 동료들은 조력자인 동시에 혹 덩어리다. 혼자 날뛰면 간단하고 신속하게 끝난다.
“깨비텐, 하비브는 내가 처리하고 오겠다. 기다려라.”
“안 돼, 너 혼자 보낼 수 없다. 우리는 되지엠 랩이다.”
깨비텐은 단호히 거부했다. 하비브의 저택 경호가 허술 할 리 없다. 블랙맘바는 전력의 핵이다. 에르 엑딤 계곡에서 밤새 속이 타 미치는 줄 알았다.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이크, 벨맨, 에밀, 장쒼의 눈초리도 심상치 않았다.
잔뜩 자존심이 상한 얼굴이다.
“블랙,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지난번 3군 사령부를 지울 때도 아무드는 놓치지 않았나?”
“그럼, 넌 믿을 수 없어. 하비브를 놓칠 거야.”
“그렇지. 힘만 센 고질라야. 섬세함이 없어.”
아니나 다를까 턱도 없는 비난이 쏟아졌다.
블랙맘바는 뒷머리를 득득 긁으며 물러났다. 계속 고집을 부리면 다구리를 놓을 기세다.
“잠깐, 술도 좋고, 안주도 좋은데 그냥 갈 수는 없지 않소. 아직 날이 밝으려면 다섯 시간이 남았소.”
옴부티가 이유 있는 태클을 걸었다.
“낙타 고기 맛이 어떨까?”
벨맨이 입맛을 다셨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은 듯 한 맛이요. 양고기보다 부드럽고, 영양도 풍부하오.”
“그럼 최고잖아. 장쒼 뭐해.”
벨맨의 재촉에 장쒼의 난감한 눈길이 거대한 짐승과 블랙맘바를 오갔다. 왕미자(중국 최대 주방칼 업체) 태도(太刀)라면 몰라도 짧은 단검으로 1톤에 가까운 거구를 해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블랙맘바가 쿠크리를 뽑아 들고 나섰다.
눈을 감고 죽은 짐승에 집중했다. 짐승의 뼈, 근육, 힘줄, 혈관이 선연히 떠올랐다. 전설의 백정 포증이 이랬던가. 대략 머릿속에 순서를 정했다.
슈악- 칼날이 번쩍 빛나자 짐승의 목이 툭 떨어지고 사지가 잘려 나갔다.
쉭쉭쉭- 몇 번 더 칼날이 빛났다. 구경하던 용병들의 눈이 잔뜩 커졌다. 소를 기준으로 등심, 안심, 채끝, 갈비가 단숨에 정육 상태로 툭툭 잘려 나왔다.
“부위별 10kg다. 솜씨 발휘해 봐.”
쿠크리에 묻은 핏물을 낙타털에 문질러 닦으며 장쒼을 돌아보았다.
“블랙, 귀환하면 용병질 때려치우고 도축장을 차리자.”
벨맨의 말에 멍해 있던 에밀이 한숨을 푹 쉬었다.
“젠장, 난 블랙이 싫어. 용병질 때려치워도 먹고 살 길이 무궁무진하잖아.”
“에밀, 삽질하는 소리 말고 간이나 꺼내.”
장쒼이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상황이 좋은 편이 아니지만 술이 있고 훌륭한 고기 안주가 있다.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사막엔 모닥불 불티가 반짝였다. 술잔이 오가고 음담패설이 오갔다.
“에밀, 배를 채웠나?”
“빵빵합니다.”
“장쒼, 이젠 여자를 덮칠 만 하나?”
“옛썰, 반쯤 죽일 정도는 됩니다.”
“그렇지. 원래 여자는 반쯤 죽이는 거다. 우리는 놈들에게 동료를 다섯이나 잃었다. 마크, 미구엘, 모리스, 샤트르, 부리머가 이 지저분한 땅에 묻혔다. 잘 알다시피 스토커는 하비브란 놈이다. 우리 동료 다섯을 죽인 놈은 하비브란 말이다.”
“깨비텐, 대통령 출마할 생각이 없으면 출발하자.”
“하하하! 골치 아픈 대통령보다야 마음껏 날뛸 수 있는 용병팀장이 백번 낫지. 푸알레( poeler, 프랑스 찜요리, 조리중에 뚜껑을 열면 요리를 망친다.)가 익기 전에 뚜껑을 여는 놈은 혼자 살 팔자라는 속담이 있다. 김 빼지 말라고. 뱀 대가리를 잘라 버리면 몸통이 아무리 커도 우왕좌왕 한다. 스토커 놈을 지옥에 처넣고 오자고.”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덤빈다는 속담대로다. 라텔팀은 쥐가 아니라 사나운 오소리다.
래쿤 작전 31일째,
승타 경험은 깨비텐이 유일했다.
루키인 에밀과 장쒼은 말할 것도 없고, 에밀과 마이크도 경험이 전무했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질주하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그냥 영화일 뿐이었다.
마이크, 벨맨, 에밀 장쒼은 하루 종일 벼락치기 승타 수업을 받았다. 옴부티의 빡센 교육에 에밀과 장쒼이 거품을 물었다. 벨맨과 마이크도 요동치는 낙타 등에서 애처로울 정도로 안간힘을 썼다.
블랙맘바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질을 내는 낙타의 턱을 움켜잡고 한 차례 노려보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석양이 질 무렵 한 떼의 낙타 행상이 두조랍 에르그를 가로질렀다. 초보 승타자 넷의 얼굴이 꺼멓게 죽었다. 옴부티가 여자를 타는 것과 같다고 했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여자는 보조를 맞추어 요동치지만, 낙타는 보조를 맞추어 요동치지 않는다. 엇박자 롤링과 피칭에 엉덩이와 허리가 남아나지 않았다.
낙타는 생긴 것만큼이나 거만한 동물이다.
심통이 나면 침을 한 바가지 뱉고 윗입술을 까뒤집어 이빨을 드러낸다. 머리를 바짝 올려 게슴츠레 내려다본다. 매를 버는 인상과 포즈다.
마이크가 낙타 주둥이를 손바닥으로 때렸다가 한 무더기 침 세례를 받았다. 낙타 침은 냄새가 고약하다. 침을 덮어쓴 마이크가 권총을 빼 들기까지 했다. 낙타를 쏴 죽이고 차라리 걸어가고 싶은 심정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원주민 마을을 우회하고, 낙타 꼬장을 달래느라 파야행이 한없이 늦어졌다. 견타잡이라도 고용해야 할 판이었다.
블랙맘바는 중심잡기를 완벽히 터득한 무인이다. 흔들리는 낙타 등은 거친 계곡을 휘도는 통나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낙타와 인간이 풀로 붙인 듯 한 몸으로 움직였다.
용병들이 경이와 질시의 눈으로 블랙맘바를 노려보았다.
‘짜식들, 니들이 천생산 계곡 통나무를 알아! 대나무 꼭대기에서 한 나절을 보내 보라고.’
“이봐 블랙, 어떻게 한 거야?”
휴식 시간에 벨맨이 물었다.
옴부티와 깨비텐이야 본래 낙타를 타던 사람이지만 블랙맘바는 아니다. 낙타를 강아지 다루듯 하는 블랙맘바가 신기하기만 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당근과 채찍이다.”
“당근은 무엇이고, 채찍은 뭐냐?”
“옴부티가 가르쳐 주지 않았나. 친해지려면 턱밑을 쓰다듬어 줘. 털도 빗겨 주고, 뭉친 다리 근육도 마사지 해 주라고.”
“그렇군.
듣고 있던 에밀이 낙타 턱밑을 쓰다듬어 주다가 침 세례를 받았다. 다리를 마사지하던 벨맨은 뒷발에 차여 나둥그러졌다.
“흐이구, 지랄!”
몇 번 쓰다듬어 준다고 성질 더러운 낙타가 꼬리를 흔들 리 없다. 블랙맘바에게 고분고분한 이유는 그가 뿜는 살기에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다.
블랙맘바가 낙타 대가리를 툭툭 쳐주고 대추야자 한 줌을 가져다 먹였다. 기분이 좋아진 낙타가 고개를 숙여 블랙맘바의 가슴을 코로 툭툭 쳤다. 냄새나는 침이 앞섶을 적셨다.
“와우! 와킬, 언제 낙타 다루는 법을 배우셨습니까?”
옴부티가 놀라서 물었다.
“농. 이놈 암컷인가? 내가 마음에 들었나 봐.”
“하하하, 암컷 맞습니다. 와킬을 알아보네요.”
겁을 잔뜩 먹여 놓고 맛난 먹이를 주니 머리 나쁜 낙타도 바로 약발을 받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오랜 세월 마모된 황량한 대지, 멀리서 들리는 야행성 동물의 울음소리, 낙타의 투레질 소리, 짜증난 동료들이 투덜거리는 소리, 황량한 대지를 훑고가는 바람 소리가 고요한 세상을 간헐적으로 흔들었다.
끼이이- 끼이이- 긴 하이에나 울음소리에 달빛 부서지는 적갈색 대지가 화들짝 깨었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짚은다리에서 환한 달빛아래 동행한 늑대 부부가 생각났다. 어슬렁거리며 뒤를 따르다가 돌아보면 시침을 뚝 따던 놈들이다. 하이에나에 비하면 얼마나 의젓하고 점잖은 녀석인가.
하늘 가운데를 부연 은하수가 장대하게 가로 질렀다. 차가운 대기가 달무리를 확장시켰다. 하현달을 감싼 붉은 달무리가 천중을 장악했다. 기세에 눌린 주위의 별들이 푸딩처럼 부풀었다.
두조랍 에르그를 지나서 파야에 가까워질 무렵, 대기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폭풍이 온다.”
블랙맘바의 경고에 용병들이 일제히 리탐을 감고, 고글을 꺼냈다. 북동쪽에서 폭풍이 밀려 왔다. 모래와 마른 풀이 자욱하게 말려 올라갔다.
바람에 휩쓸린 별빛이 껌벅거렸다.
문학적인 표현이다. 실제로는 모래 바람이 시야를 간헐적으로 가리는 현상이다. 바람에 실려 오는 모래는 분가루처럼 미세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붉은 달빛아래 붉은 황무지가 요동쳤다. 옴부티가 낙타를 둥그렇게 무릎 꿇려 방풍벽을 쳤다. 폭풍이 없었으면 나름 정취 있을 밤 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