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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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되지엠 랩2
소총탄에 버금가는 파괴력이다. 강력한 파괴력, 뛰어난 오감과 육감, 자연동화술, 놀라운 순간 스피드, 사기적인 재생력이면 전장에서 쉽게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니 튀지 않도록 능력을 숨겨야 할 판이다.
“끔찍하구먼.”
장쒼은 넋이 나갔다. 그는 턱이 빠지라 웃는 동료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눈앞에서 벌어진 비현실적인 사건을 받아들이기엔 상식이 걸림돌이다. 팍이 놀라운 인간임을 알고 있지만,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을 줄은 몰랐다.
자신도 팔극권 고수다. 특정한 수련을 거친 인간은 상상 이상으로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신체구조는 한계가 있다. 인간이 호랑이 같은 스피드를 낼 수 없고, 곰 같은 힘을 낼 수 없다. 한계 이상의 힘은 근골이 버티지 못한다.
장쒼은 무쌍이 뿜어낸 파괴력보다 그 파괴력을 견디는 신체가 더 무서웠다.
‘에휴, 사람이 괴물을 어떻게 알아.’ 장쒼은 고개를 흔들었다. 인지 능력을 초월한 존재는 그러려니 해야 한다. 상식이나 이해의 틀 속에 넣으려고 애써봐야 머리만 아파진다.
자신의 팔극권 실력도 고수 축에 든다고 여겼다.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조용히 찌그러져 있는 게 남는 장사다.
“팍, 발경인가?”
“나도 모른다. 사부께서는 공진파라고 하셨다.”
“공진파? 처음 듣는다. 일종의 발경인 모양이군. 팍, 평소에 힘을 조절할 수 있나?”
“글쎄, 나도 이 정도 파괴력이 나올 줄은 몰랐다.”
“조심해, 마이크 같은 놈을 무심코 때렸다간 죽는다.”
“조심하지.”
장쒼은 자신의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상식 밖의 능력을 드러내서 좋을 게 없다.
“후훗!”
무쌍은 씩 웃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다.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이지만 사람을 여럿 죽였다. 자신의 손에 병신이 된 양아치는 수십이다. 자신이 이성을 잃고 날뛴다면 파멸적인 결과가 생긴다. 사부가 등 떠밀어 용병으로 보낸 심중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팍, 제발 조심해라.”
팍은 카스텔노다리에서 짝귀 일당을 한 방에 박살 냈다. 자신의 사부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이번에 선보인 파워는 차원이 다르다. 생체 병기다. 술 한 잔하고 등이라도 두드리면 척추가 부러질 판이다.
“장, 몸 한번 풀까?”
대타를 요청받은 장쒼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정신없이 손사래를 쳤다.
“오우, 농!”
팍과 생각 없이 장난을 친 기억이 떠올랐다. 소름이 쭉 돋았다. 팍을 좋아하지만, 척추가 부러지고 싶지는 않았다. 친구와 장난 칠 생각이 싹 사라졌다.
1982년 8월 중순,
친토산에 사냥 나가는 개미떼처럼 긴 줄이 늘어졌다. 헉헉대며 오르막을 오르는 완전 군장 차림의 군인들이다. 하나같이 카키색 전투복이 땀에 절어 검게 보였다.
갑작스러운 하계 산악 훈련에 돌입한 되지엠 랩 4중대다. 다른 중대원들이 순번 휴가를 떠날 때 이들은 지옥 훈련에 투입되었다. 136명의 중대원은 중대장 삐에프를 저주하며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아작시오에 나가서 걸판지게 놀아보려던 장쒼도 들어있다.
코르시카 중서부의 친토산은 아틀라스에 친토산(Monte Cinto)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실지로는 2,000m 내외의 산들이 20여개 줄지어 늘어선 산맥이다. 친토산은 코르시카 중앙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산악 행군을 시작한 지 네 시간이 지났다. 행군로는 편안하지 않았다. 토끼길 마냥 흔적만 남은 등산로가 대부분이다. 등산로마저 없는 곳은 빽빽한 수풀을 정글도로 쳐내고, 생짜로 뚫고 나가야 한다.
급경사로를 오르는 중대원들의 호흡이 풀무처럼 급박하게 식식거렸다. 코끝을 땅에 처박기라도 할 듯이 허리가 잔뜩 숙여졌다. 체력이 바닥났다는 표시다.
출발 시 가볍게 메고 나섰던 40kg 군장이다. 군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게가 늘어나는 마법을 부렸다. 군장 무게에 짓눌린 어깨가 점점 땅으로 기울었다.
“허리를 펴라, 턱을 당겨라, 입을 벌리지 마라.”
인솔 장교가 연속 고함을 질렀지만 모두 흙을 파먹을 기세다.
딱 한 사람, 여유 있는 사람이 있다. 무쌍은 파트너인 에밀 일병의 미니미 기관총까지 받아서 어깨에 메었다. 40kg 군장과 드라구노프, 파무스, 개인 실용 무기위에 7.5kg 미니미 기관총과 10kg탄 박스가 올려졌다. 훈련 시 파트너 사이의 조력은 어떠 제재도 없다.
무쌍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유유자적하니 친토산 급경사로를 올랐다. 동료들이 왜가리처럼 고개를 쭉 빼고 헉헉댈 때 한가로이 경치를 구경했다. 때로는 산길에 핀 시스토수(들국화 비슷한 꽃으로 코르시카 특산종)를 꺾어 향기를 음미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침가리 골에서 쌀 세 가마를 지게에 지고 험한 계곡을 오르내렸던 무쌍이다. 70kg 남짓한 무게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에밀은 총기와 탄약을 파트너에게 넘겨주고도 헉헉거렸다. 100kg이 넘는 체중자체가 짐이다. 뒤를 따르던 에밀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팍, 너무한다. 인간이 맞나?”
에밀이 불만을 토했다. 말을 하니 힘이 더 빠졌다.
“왜? 군장도 맡기려고?”
“됐어. 곰 같은 놈.”
에밀이 삐친 척 했다. 저격총을 포기하고 팍을 파트너로 잡은 선택은 탁월했다. 뛰어난 파트너야말로 여벌의 목숨이다.
무쌍은 큰 집 통시를 푸던 생각이 났다. 똥장군을 강변 밭까지 두 번 져 나르면 오전이 지나갔다. 똥장군은 두 말짜리다. 군장 무게와 같은 40kg이다. 자신은 12살때 이미 40kg를 메고 행군(?)한 몸이다.
“나 인간이다. 고추 털 나기 전에 똥장군을 나르면 나만큼 한다.”
“무슨 소리야?”
에밀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무쌍은 동료들을 휘휘 둘러보았다. 전부 혀가 닷 발은 빠져나왔다.
“띨띨한 새끼들, 허부적대는 꼬라지하고는, 어릴 때부터 똥장군 지게를 졌으마 내 맨치로 날라 다닐낀데 말이야.”
동료들이 한국말을 알아들었다면 그를 친토산 서쪽 능선에 묻어 버렸을 것이다.
똥장군이 하중도 버들 숲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불러냈다. 봇도랑을 따라 줄지어 올라가는 버들치 무리, 찢어질 듯 요란한 매미 울음소리, 이울어진 들국화 밭, 까맣게 내려앉은 청둥오리 무리, 울음을 참느라 이를 악문 진순, 헐헐 웃으시며 손을 흔들던 사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들던 혜영의 향기와 속살.
생사가 불분명한 엄마, 결국 손대지 못하고 떠나온 장씨와 화자, 행적이 의심스러운 백부, 이런저런 온갖 물상들이 염주처럼 줄줄이 떠올라 머리를 어지럽혔다.
“젠장, 버리고 싶은 고향인데 걸리는 기 와이리 많노.”
아무리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고향이다. 무쌍은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지웠다.
삐익 삐익 삐익- 선두 향도를 맡은 카포랄이 30분 휴식 신호를 보냈다. 중대원들은 일제히 그 자리에 널브러졌다. 다섯 시간 행군에 두 번째 휴식이다.
깔비 주둔지에서 친토산 정상까지 43km다. 절반은 평지 행군, 절반은 산악 행군이다. 되지엠 랩의 시간당 훈련 행군 속도는 평지 6km, 산악 4km다. 급속 행군을 하고, 휴식은 150분마다 30분을 준다.
성인이 평지를 걸을 때 평균 시속이 4km다. 북한의 정찰여단 전사가 하룻밤에 60km 산길을 탄다지만 말짱 뻥이다. 육체가 에너지 소모를 견디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산악 행군은 평지 행군보다 4배 이상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물론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일반인의 경우 시간당 오르막은 1km, 내리막은 3km 내외를 탈 수 있다. 지형에 따라서는 10시간에 15km를 이동하기 힘들때도 있다. 완전 군장 상태로 시간당 4km 산악 행군도 쉽지 않다.
친토산 9부 능선인 해발 2,300m 지점에 되지엠 랩의 산악교육 베이스캠프가 있다. 캠프는 제2중대가 관리하는 산장으로 1개 중대가 숙박할 수 있다.
오늘 목적지가 산장이다. 산장까지 6km밖에 남지 않았다. 무쌍은 땀에 쩐 군화를 벗었다. 따가운 햇볕에 군화 목을 까놓고 발을 말렸다. 발냄새에 머리가 띵했다. 오감이 예민해진 만큼 실생활에 불편도 많았다.
중대원들은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여기저기 가장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했다. 30분은 길지 않다. 쉴 때 잘 쉬어야 낙오하지 않는다. 단련된 되지엠 랩들도 평지 20km, 산악 20km 급속 행군은 만만한 훈련이 아니다.
“어, 여기 있었구마.”
배낭을 더듬던 무쌍이 납작한 주석재질의 힙플라스크(뒷주머니에 넣을 수 있도록 디자인된 납작한 금속 술병. 알 카포네가 밀주를 숨겨 다니며 마실 수 있도록 고안했다는 설이 있다.)를 꺼냈다. 뚜껑을 돌려 열자 묵직한 포도주 향이 물씬 풍겼다.
행군 중에 마시는 적포도주 한잔은 갈증을 없애 줄 뿐 아니라 피로 회복에도 효과가 있다. 무쌍은 군장을 쌀 때 씨아까렐로 두 병 정도는 꼭 챙겨 넣었다.
씨아까렐로를 제대로 마시려고 남부의 큰 도시인 아작시오까지 가서 주석 재질의 힙플라스크를 구했다. 주석 용기는 알루미늄에 비해 무겁지만, 온도 유지 효과가 좋다는 말에 질렀다.
“그럴 줄 알았어.”
장쒼이 매를 부르는 면상을 들이밀었다. 장쒼은 전형적인 중국인이다. 술, 도박, 여자를 즐긴다는 말이다. 술이라면 종류를 불문하고 사족을 쓰지 못했다. 파트너인 에밀도 머리를 들이밀었다.
“냄새 좋다.”
“얼씨구, 백 미터 바깥에서 냄새를 맡았단 말이냐?”
“설마! 그냥 친구 보고 싶어서 왔다.”
장쒼은 딱 잡아뗐다.
“얼씨구, 결혼하자고 덤빌 기세네.”
에밀이 메기입을 이죽거렸다. 두 사람은 무쌍을 두고 다투는 견원지간이다. 툭하면 친구와 파트너 중에 어느쪽이 더 소중한지를 두고 다투었다.
피처럼 붉은 발효 알코올이 무쌍의 입가로 한줄기 흘러내렸다. 장쒼이 흘러내리는 포도주를 노려보았다. 미녀의 하얀 목을 노리는 뱀파이어가 따로 없다.
“한 모금 해”
내미는 용기를 에밀이 가로챘다.
“파트너가 먼저다.”
헛손질한 장쒼이 발끈했다.
“나는 형제다.”
“쿠리는 꼬레앙과 같은 종족이 아니다.”
에밀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역사적인 단정을 내렸다. 장쒼에게 뺏길세라 잽싸게 힙플라스크를 메기입에 처박았다. 벌컥이는 소리와 함께 목젖이 오르내렸다. 조바심이 난 장쒼이 용기를 탁 채 갔다.
“씨아까렐로?”
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술이다.”
에밀이 엄지손가락을 쳐들었다.
코르시카의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로 사철 온화하다. 코르시카 농부들은 지중해 기후와 사질 부식토 토양을 이용해서 씨아까렐로(Sciacarello)라는 포도 품종을 재배했다.
씨아까렐로를 원료로 생산된 적포도주는 연한 단맛에 향이 깊다. 한잔 마시면 아련한 뒷맛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는다.
씨아까렐로를 마시고 눈을 감으면 짚은다리 버들 숲의 푸른 바람이 불어온다. 애증이 얽힌 고향을 느끼게 하는 술, 늘씬한 스튜어디스가 기내에서 서비스했던 바로 그 와인이다. 추억을 불러들이는 와인, 술을 즐기지 않는 무쌍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와인이 씨아까렐로다.
포도주를 차게 마시면 신맛과 쓴맛이 강하게 느껴진다. 단맛이 강한 백포도주는 차게 마시면 좋다. 단맛을 눌러 신맛과 쓴맛을 조화시키기 위해서다. 반면에 신맛과 쓴맛이 강한 적포도주는 상온으로 마시면 좋다.
씨아까렐로는 상온으로 마시던 차게 마시던 맛의 차이가 별로 없는 와인이다. 주석 플라스크가 온도 유지에 좋다기에 비싼 주석 플라스크를 사용할 뿐이다.
플라스크를 든 장쒼이 손이 가늘게 떨렸다. 무술로 단련된 신체도 다섯 시간의 급속 산악 행군에는 버티지 못했다.
“장, 많이 지쳤나 봐. 와우, 손이 떨리네.”
에밀이 실실 웃으며 긁었다.
“파트너에게 무기까지 맡긴 사람이 누구더라. 애인을 다른 남자 품에 안긴 사람에게 들을 말은 아닌데.”
본전도 못 찾은 에밀이 찌그러졌다.
“카아!”
장쒼은 목젖이 꿀렁거리도록 시원하게 들이켰다. 팍의 옆에서 알랑거리는 에밀에게 한 방 먹이니 술맛이 절로 났다. 와인을 막걸리 마시듯 부어 넣는 무식한 놈이다.
에밀이 잡낭을 뒤적거렸다. 묵직한 덩이를 무쌍에게 던졌다. 플뢰르 뒤 마키(Fleur du Maquis), 세이보리 잎으로 감싼 코르시카 특산 치즈다. 무쌍이 특히 좋아하는 안주다.
에밀이 장쒼을 돌아보며 어린애처럼 혀를 쑥 내밀었다. 무쌍은 계집애들처럼 툭탁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진순이 자매들이 생각났다. 안아주고 떠나라고 눈물짓던 진순, 잘 있겠지? 잘 있어야 하고말고.
적포도주는 육류나 치즈와 궁합이 맞는 편이다. 백포도주는 해산물과 잘 어울린다. 물론 퇴근 후 또는 느긋한 휴일 정찬 이야기다.
피로와 갈증으로 쓰러지기 직전의 용병이다. 적포도주 백포도주 가릴 정신이 있겠는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술이라는 헨리 4세 두도뇽 코냑(한 병에 22억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최고가 술 – 1776년에 설립된 메종 두도뇽에서 한 병만 생산된 꼬냑)도 생수 한 병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갈증을 달래기 위해서는 냉수 한 바가지면 충분하다. 에밀과 장쒼이 한 모금씩 돌려 마시더니 장쒼이 남은 술을 홀짝 마시고 빈 용기를 무쌍에게 던졌다.
“술맛 좋고!”
빈 플라스크를 받아 든 무쌍이 얼굴을 찌푸렸다.
“갚아. 이자는 다섯 배.”
에밀이 낄낄 웃었다.
“샤일록보다 더한 놈. 치사해서 박스로 사다 준다.”
용병 세계에서 파트너는 등을 지켜 주는 존재다. 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다. 에밀이 나이도 세 살 많고 2년 선임이지만 친구로 지냈다. 그 사이에 장쒼이 비집고 들어 셋이 친구로 지냈다.
되지엠 랩은 개인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지만, 일탈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훈련 중에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는 넘겨버린다. 포도주를 마시든 위스키를 마시든 내버려둔다.
반면에 음주로 인해 발생한 실수나 불미스런 사건 발생, 불성실한 훈련 등은 엄격하게 조치한다.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라는 뜻이다. 야외 훈련을 나갈 때 수통에 소주를 몰래 채워 가는 한국군 고참 병장이 부러워할 이야기다.
장쒼이 정색을 하고 물었다.
“펑요우!”
“왜?”
“차드에 갈 거야?”
“간다. 위험수당이 봉급과 같다.”
에밀이 끼어들었다.
“파트너가 가면 나도 간다. 파트너를 지켜야 한다.”
장쒼이 에밀을 째려보았다.
“매치리스를 지킨다고? 토끼가 호랑이를 지킨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
“팍이라고 총알이 피해가지는 않아. 파트너를 위해서 나는 미끈한 애인을 버리고 펑퍼짐한 아줌마를 안았다고.”
이번엔 에밀이 발끈했다. 장쒼이 움찔했다. 에밀은 스나이퍼다. 이 년 동안 에팔을 애용해 왔던 그가 기관총을 잡았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아쉽지 않았나?”
“아쉽지만 팍의 저격을 지원하려면 내가 기관총을 잡아야 한다.”
장쒼은 에밀에게 밀리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은 따꺼로 인정한 팍에게 매번 도움만 받았다. 해준 것이 없다.
“나도 간다. 내가 친구를 지킬 거다.”
“오우, 엘로우 폭탄마가 사막을 뒤집어 놓겠군.”
에밀이 실실 웃으며 도망갔다.
“왕빠단!”
장쒼이 에밀에게 감자를 먹였다.
“펑요우, 정말 갈 거야?”
“간다.”
장쒼이 결정을 내린 듯 이빨을 물었다.
“에잇, 죽어도 함께 죽자. 노획한 무기에 대해서도 수당이 걸려 있다더라. 와이프 치료비 때문에라도 가야겠어.”
“호우잉은 어때?”
“친구 덕분에 수술을 받았지만 좋지는 않아. 지금 안휘의 하이얼 병원에 있어.”
“돈 많이 벌어라.”
“5년 근무하고 시민권 얻어서 식당 차릴 거다.”
무쌍이 눈을 부라렸다.
“갈보 밑구멍에 처넣고, 카지노 드나들어서 언제 식당 차리겠어?”
장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머리를 득득 긁었다.
“술이 웬수다. 답답하기도 하고……. 그래도 싸구려 술만 마시거든.”
“시민권 얻으면 와이프 불러서 함께 살아.”
“그럴 거야. 펑요우 정말 고맙다.”
“뭘?”
“마누라 치료비! 곧 갚겠다.”
한 달 전 장쒼의 부인 호우잉이 뺑소니차에 치여 크게 다쳤다. 거액의 수술비가 필요했지만 장쒼은 돈이 없었다. 사정을 알게 된 무쌍이 저축해 둔 4,000프랑을 몽땅 장쒼에게 내 주었다.
“우리는 펑요우고, 내가 따꺼라며? 한국에서는 형제간에 돈 계산을 하지 않는다. 돈은 필요한 사람이 쓰는 거다. 큭큭!”
무쌍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백부는 할아버지가 남긴 땅을 독식했다. 동생이 죽고 제수가 사라지자 조카를 잡아다 노예로 부렸다. 동생이 고생해서 장만한 전답도 몽땅 팔아먹었다. 돈 몇 푼 때문에, 부모가 남긴 유산 배분 때문에 형제간에 칼부림이 벌어지는 세상이 한국이다.
“우와, 한국 살람 훌륭하다. 중화인은 돈 때문에 형제를 죽이는 인간 많다.”
“니네 나라 인간들이 상놈들이라 그래.”
“상놈이 뭐야?”
“교양이 없고, 은혜와 정을 모르는 놈을 상놈이라고 한다.”
무쌍은 백부 가족들이 생각났다. 그들이 바로 상놈이다.
“맞다. 중국에는 은혜도, 의리도, 예의도 모르는 상놈들이 우글거린다.”
벌컥 화를 낼 줄 알았던 장쒼이 의외로 순순히 수긍했다. 뭔가 맺힌 것이 많은 듯했다.
“그래도 무송이나 송강 같은 의리파 호걸들도 있지 않나.”
“하하하!”
장쒼이 기가 찬다는 듯이 큰소리로 웃었다.
“그거 전부 뻥이다. 중국인들은 작은 이익만 있으면 무슨 짓이던 다한다. 온갖 폭력과 협잡을 일삼는 살인자와 사기꾼들을 호걸이라고 떠받드는 곳이 중국이다. 내가 태어난 나라지만 정말 싫다.”
장쒼의 외모는 볼품없다. 눈꼬리가 쭉 찢어져 치켜 올라가고 입 꼬리는 축 처졌다. 코는 낮고, 광대뼈는 튀어나왔다. 속된 말로 매를 버는 인상이다.
험한 인상과 달리 장쒼은 청화대를 나온 인텔리다. 장쒼의 성향은 은혜는 백배로 갚고 원한은 천 배로 갚는다는 전형적인 협사 기질이다.
“하긴 니네 나라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긴 해. 수호지를 보면 채원자 장청과 모야차 손이랑이 나오지. 무고한 행인을 돼지 잡듯 잡아서 만두 속을 채우는 객점 부부말이야. 그런 인간을 호걸이라고 추켜세우는 꼴이라니. 문화적 차이라고 하기엔 조금 그래.”
무쌍은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를 싫어했다. 중국인 특유의 잔인성과 허풍 때문이다. 수호지는 특히 끔찍이 싫어했다. 자신도 권력의 핍박을 받아 나라를 떠났지만, 무정부주의자는 아니다.
수호지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잔인하다. 권선징악을 내세우지만, 본인들도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인간들이다. 무정부주의자와 사이코들의 집합소가 양산박이다.
“휴, 나도 사람이 싫어 고향을 떠났다. 순수한 도움은 따꺼에게 처음 받았다. 따꺼가 싫다니 펑요우로 부르겠다. 은혜를 잊지 않겠다.”
장쒼은 복잡한 눈으로 대형으로 모신 펑요우를 바라보았다. 만부막적의 무력을 지니고도 표시 내지 않는 친구다. 스승이 말했던 구도자, 무예가의 표상이 팍이다. 그는 검소함의 표상이다. 의복조차 보급품 외에는 구입하지 않는다. 필요 물품은 부대 내 잡화점에서 구입하고 시내로 나가지도 않는다. 유일한 사치가 씨아까렐로다. 자신에 비해 세 살 어린 친구지만 기꺼이 대형으로 모셨다. 살아오면서 처음 만난 대인이 팍이다.
장쒼은 가오리방쯔 팍을 인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놀 줄 모르는 사람, 돈 쓸 줄 모르는 사람, 구도자일 뿐 호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팍은 자신의 딱한 사정을 듣자마자 모아 둔 돈을 몽땅 내주었다. 가오리방쯔는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진정한 대인이었다. 술과 여자 밑구멍에 봉급을 다 처넣은 장쒼은 총구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