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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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하비브의 최후1
우갈리가 달라붙은 손가락을 쪽쪽 빨고 있을 때 목과 얼굴을 천으로 휘감은 미이라 셋이 나타났다. 둘은 소총을 거꾸로 메고 한 명은 집총 자세를 유지했다.
“따라와라.”
유창한 불어다. 삐에프는 죽음을 각오했다. 되지엠 랩의 장교로서 치욕을 감수하고 항복했다.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서다. 삐에프는 마음속으로 화형만은 면하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미이라는 삐에프와 발부아를 중앙 막사로 끌고 갔다.
중후하게 생긴 중년의 아랍인이 의자에 앉은 채로 포로를 맞았다. 발부아는 불안과 두려움에 연신 사방을 살폈다. 죽음을 각오한 삐에프는 태연했다.
키갈리의 시선이 삐에프의 얼굴에 멎었다.
“칸마, 앉으십시오.”
눈치 빠른 미이라가 삐에프에게 양가죽 의자를 내 주었다.
‘짜식들 미개인답지 않게 예의가 발라, 설마 전기 의자는 아니겠지.’
삐에프는 우아한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
“반갑소 칸마, 인민군 3군단 소속 아함 키갈리 중령이오.”
“나는 되지엠 랩 4중대장 삐에프 대위요.”
‘이 자식들이 왜 자꾸 칸마라고 하지? 프랑스인을 비하하는 말인가? 기분 나쁘네.’
삐에프는 눈에 잔뜩 힘을 주고 키갈리를 노려 보았다. 나 기분 나쁘다는 의미를 눈빛에 듬뿍 담았다.
키갈리는 눈앞의 중년인을 뜯어먹을 듯이 응시했다.
‘대단한 눈빛이군. 엄청난 포스가 느껴진다.’
그는 가슴이 뛰었다. 드디어 죽음의 천사라 불리는 최고의 전사를 자신의 손으로 잡았다. 며칠 동안 밤낮없이 애쓴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과연 최고의 전사다운 인물이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번개처럼 형형한 눈빛, 관록이 느껴지는 카이젤 수염, 깊숙이 가라앉은 눈동자, 올 빽으로 쳐올려 드러난 사각 이마. 짙은 눈썹, 두터운 쌍꺼풀, 긴 팔다리, 포로로 잡혀서도 의연한 태도, 과연 사헬을 울리는 칸마다웠다.
키갈리 중령이 일어나서 목례를 했다.
“이렇게라도 만나서 반갑소. 차를 한 잔 하겠소?”
뜻밖의 전개에 삐에프는 눈만 끔벅거렸다.
키갈리가 직접 붉은빛 나는 차를 우려내서 주석 잔에 따랐다. 전사가 직접 차 대접을 하는 경우는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에 국한된다. 최고의 전사에게는 최고의 대우를 하는 것이 투아레그족의 전통이다.
“남아프리카산 루이보스란 차요. 건강에 좋다고 해서 즐기는 편이오. 입에 맞을지 모르겠소.”
삐에프는 엉겁결에 찻잔을 받아 들었다.
주석 찻잔은 정교한 양각이 들어간 고급품이다. 미개한 프롤리나트가 차를 즐긴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 중후하고 예의바른 태도는 또 무엇인가?
“놀리지 말고 죽이려면 얼른 죽이시오.”
삐에프의 항변에 키갈리가 흰창 많은 눈을 희뜩하니 들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나는 투아레그 전사요. 비록 당신이 수많은 프롤리나트 전사를 죽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소. 적으로 만났으니 죽일 뿐, 그것이 죄가 될 수는 없소.”
‘수많은 전사를 죽여? 내가?’
삐에프는 어리둥절했다. 사헬에 진입하자마자 정신없이 쫓겼다. 동네북이 되어 얻어터지기 바빴다. 전투 중에 몇 명 죽였겠지만 수없이란 관형사와는 매치되지 않는 숫자다. 자신이 언제 프롤리나트 병사들을 수없이 죽였단 말인가?
의자에 앉지 못하고 뒤쪽에 서 있던 발부아는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키갈리 중령은 삐에프 대위를 블랙맘바로 착각하고 있다.
사실 삐에프 대위의 풍채를 보면 오해할 만했다. 강인해 보이는 각진 얼굴과 날카로운 눈빛, 무술로 단련된 당당한 체격을 보면 포스가 절로 느껴진다.
“흐흐흐, 어쩌면 내가 당신 덕을 보았소. 당신이 아무드 대령과 무스타 중령을 없애는 바람에 내가 3군단을 장악하게 되었으니 말이오.”
점점 모를 소리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소. 아무드와 무스타는 이름만 들었지 만난 일도 없소.”
키갈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즈라일의 현신이라 불리는 최고의 전사가 거짓말을 하다니 실망이오. 죽음이 두렵소?”
“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소. 나는 5일전에 사헬에 진입했소. 그동안 당신들의 지저분한 공격에 계속 시달렸소. 부하들도 거의 다 잃었소.”
“5일전에 사헬에 진입했다고? 한 달 전이 아니고.”
놀란 키갈리가 벌떡 일어났다.
“그렇소.”
“당신이 지난 한 달간 사헬을 뒤흔든 칸마가 아니란 말이요?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내 신분을 두 번 밝혔지만 한 번 더 밝히겠소. 나는 레종 에뜨랑제 되지엠 랩의 4중대장 삐에프 대위요. 포로가 된 만큼 제네바 협정에 따른 포로 대우를 해주기 바라오.”
“그 그럼, 칸마는?”
“난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소.”
“이 이럴 수가, 사우드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키갈리의 부관인 사우드인들 블랙맘바의 얼굴을 알 리 없다. 블랙맘바의 위명이 사헬을 울렸지만 정작 블랙맘바의 얼굴을 본 사람은 없다. 전부 죽었거나 리탐을 감고, 고글을 쓴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았을 따름이다.
“그 글쎄요. 칸마의 얼굴을 모르니…….어쩐지 맥없이 잡히더라니.”
사우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치고 빠지는 파상 공격이 주효했다고 자찬했지만 그러고 보면 이상하긴 했다. 칸마는 야간에 1000m떨어진 바이크 전사를 쏴 죽였다고 들었다. 사로잡힌 칸마는 별로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럼 저 친구도 칸마가 아니겠지?”
발부아를 가리키는 키갈리의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렇소. 나와 함께 투입된 내 부하요.”
“아니야, 당신은 칸마다. 칸마가 아니라면 나를 기만한 죄로 찢어 죽이겠다.”
키갈리가 히스테리를 일으켰다.
“기만? 내가 언제 당신을 기만했나?”
삐에프는 어이가 없었다.
망할 놈의 새끼가 제 멋대로 착각하고, 제 멋대로 기만했다고 억지를 부린다. 이래서 미개한 놈들이다.
“그럼, 칸마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걸 왜 나에게 묻나? 나는 칸마란 무엇인지도 모른다.”
“닉 목!”
키갈리가 갑자기 아랍어로 소리쳤다.
“넬 모르? 발부아 무슨 뜻이냐?”
“한국어 니기미 떠그럴과 같은 의미입니다.”
블랙맘바와 삐에프의 니기미 떠그럴 스토리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삐에프의 얼굴이 붉어졌다. 막 니기미 떠그럴이라고 쏘아주려고 할 때 철커덩- 키갈리가 단검을 던졌다. 포로가 될 때 압수당한 자신의 M9대검이다.
“수갑을 풀어 줘라.”
가죽 수갑이 풀리자 삐에프는 어리둥절했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키갈리가 자신의 단도를 뽑았다.
칼 몸이 뒤로 많이 휘어진 칸자르다. 변화를 주기 쉽지만 찌르기에 핸디캡이 있는 칼이다.
“자아, 당신 칼을 들고 덤벼 보시오.”
“실력을 보이라고? 그거 좋지.”
단검술이라면 자신이 있다. 되지엠 랩 근접 격투술 교관까지 지냈던 몸이다.
삐에프는 대검을 쥐고 허공에 몇 번 휘둘렀다. 중량을 손에 익히기 위해서다. 묵직한 중량감이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사삭- 삐에프는 전질보로 짧게 끊어 들어가며 하체를 찌르고 위로 올려 베었다. 펜싱 스텝을 밟듯 빠른 스텝이 따다닥 울렸다. 크라브마가 단검술의 기본 동작이다.
짱- 짱- 첫 번째 공격이 가볍게 막혔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당신은 죽소.”
상대의 말에 자극받은 삐에프가 혼신의 실력을 발휘했다.
짱- 짱- 짱- 칸자르와 M9대검이 귀가 따가운 소음을 쏟아 냈다.
단검술의 요체는 힘과 스피드다.
한차례 부딪혀 본 삐에프는 암담해졌다. 힘과 스피드 모두 자신이 딸렸다.
더빙과 훅킹으로 상대의 칼을 흘리고 파고 들려 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상대는 짧고 간결한 동선과 투로로 자신의 화려한 동작을 어렵지 않게 쳐냈다. 칼날이 부딪힐 때 마다 손아귀가 벌려질 정도로 실린 역도도 강했다.
“찻” 삐에프는 방어를 버리고 뛰어 들었다. 근접격투시 자신의 부상을 염두에 두면 필패다. 부상에 대한 두려움이 몸을 굳게 하고 비효율적인 동작을 만든다.
상대의 좌측 어깨를 일직선으로 찔러 들어가던 대검이 훽 방향을 바꾸어 목을 베었다. 인간이 가장 위협을 느끼는 공격 부위가 목이다. 본능적으로 방어하게 된다.
쨍- 등 뒤에 있던 단도가 어느새 돌아 나와 대검을 튕겼다. 마치 상대의 칼날이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 같았다. 자신의 칼날을 튕겨 낸 단도가 빙글 돌아 미간을 찔러 왔다. 튕겨 나간 대검을 당겨 막기엔 늦었다. 삐에프는 식은땀이 쫙 솟았다. 고개를 부러져라 꺾을 때 훤히 열린 가슴에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아차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뻑- “끅!” 삐에프가 정신없이 물러났다.
스악- 어느새 따라붙은 키갈리의 횡베기에 놀란 삐에프가 땅바닥을 굴렀다. 머리칼이 한 움큼 허공에 휘날렸다. 삐에프는 일어날 생각도 못하고 키갈리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고수간의 단검술 격투시 금기가 횡베기다. 횡베기는 딜레이 동작이 크고 치명상을 입히기도 힘들다. 상대가 단도로 횡베기를 시도할 정도로 상대가 안 된다는 이야기다. 되지엠 랩 최고수의 자존심이 산산이 부서졌다.
정신적인 충격은 키갈리 중령이 더 심하게 받았다.
“이 이럴 수가!”
설마설마했더니 엉뚱한 인간이다. 칸마는 부싯돌이 번쩍하는 순간에 상대의 목을 잘라 낸다고 들었다. 잘린 목이 일시지간 붙어 있을 정도로 빠르고, 칼질을 두 번 하는 법이 없다고 들었다. 상대는 제법 칼질을 할 줄 알지만 그 뿐이다. 진짜로 가짜다.
키갈리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
한숨이 절로 나왔다. 기관총 쏘듯 저격탄을 날리는 실력, 목을 오이꼭지 따듯 잘라 낸다는 근접 전투력, RPG 집중 사격도 물 흐르듯 피한다는 몸놀림,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칸마는 그야말로 죽음의 천사 아즈라일의 현신이다.
칸마를 잡기위해 머리털이 빠지도록 고민해서 작전을 세웠다. 소수로 다수를 상대할 때 쓰는 치고 빠지기 작전을 거꾸로 이용했다.
무서운 저격을 피하기 위해 야간에 기동부대로 타격하고 순식간에 탈출했다. 욕심을 버리고 야금야금 출혈을 강요했다. 습지형 돌리네로 밀어 넣은 작전은 자신이 생각해도 훌륭했다.
이게 뭔가? 온갖 고생을 해서 잡았더니 칸마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허접한 놈이다. 칸마를 사로잡았다는 일생 최고의 기쁨이 분노로 바뀌었다.
“아악, 껍데기만 칸마였어. 저 돼지새끼를 당장 끌고 나가.”
히스테릭한 고함이 막사를 울렸다.
스윽 등장한 미이라가 삐에프의 손발을 쇠사슬로 묶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포로 학대를 금지한 제네바 협정도 모르나?”
퍽- 항의가 발길질로 돌아왔다.
“얼른 끌고 나가!”
키갈리가 버럭 소리 질렀다.
대우가 갑자기 달라졌다.
정중하던 게릴라들이 양아치로 돌변했다. 삐에프가 반항하자 개머리판으로 사정없이 찍었다. 덕분에 가만히 있던 발부아까지 다구리를 당했다.
두 사람은 손발을 쇠사슬로 꽁꽁 묶인 채 소바막 적재함에 짐짝처럼 처박혔다. 툭하면 개머리판이 날아오고, 엉덩이를 걷어찼다.
삐에프는 기가 막혔다.
잠시나마 이들을 신사적인 반군이라고 여겼던 자신을 저주했다. 놈들은 자신을 블랙맘바로 착각했을 뿐이다. 역시 능력 있는 놈은 적에게도 대우를 받는 모양이다.
“발부아, 내가 왜 이 꼴을 당해야 하지?”
“감당하기 힘든 부하를 두었기 때문이죠.”
“망할 놈의 새끼, 자기가 착각하고는 왜 나만 갖고 그래.”
“껍데기가 너무 좋기 때문이죠.”
덤으로 얻어맞은 발부아가 볼멘 대답을 했다.
“잘난 놈만 대우받는 더러운 세상!”
삐에프가 나지막이 투덜거렸다.
이래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키갈리는 새벽이슬이 마르기 전에 파야 입성을 서둘렀다. 키갈리는 파야에 당당히 입성해서 3군 사령관이 될 꿈에 부풀었다.
근래 프롤리나트는 망신살이 뻗쳤다. 소수의 프랑스 특공대가 안마당을 휩쓸고 다녔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최정예라는 하비브의 3군은 정신없이 얻어맞고 반신불수가 되었다.
자신은 프랑스 특공대를 괴멸시키고 지휘관을 사로잡았다. 손상당한 3군의 체면을 단숨에 회복시킨 쾌거다. 입이 찢어지는 하비브 위원이 눈에 선했다.
파야를 50km남긴 마이(Manni)오아시스, 키갈리는 충격적인 보고를 받았다.
“야알라이히! 저택이 초토화되고 하비브님이 실종되었다고?”
키갈리의 검게 탄 얼굴이 거짓말처럼 하얗게 변했다. 사하라 사막이 호수로 변했다는 소리만큼이나 믿어지지 않는 소리다.
“어떤 놈이야? 톰브예 위원인가? 아니야 늙은이는 그만한 배짱이 없어. 압둘 위원인가?”
잡아먹을 듯 한 기세에 정보원이 잔뜩 위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