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15
x 115
제15장 하비브의 최후3
블랙맘바가 오아시스에서 300미터 떨어진 자갈 언덕에 나타났다. 오아시스 외곽에 자리 잡은 한 떼의 군세가 눈에 들어왔다.
“저놈들이 웬 일로 오아시스 외곽에 진을 쳤지?”
프롤리나트의 주 특기가 공출을 빙자한 약탈이다. 군표를 나누어 주고 물자를 징발해 간다. 수틀리면 마을을 지워 버린다. 보루꾸에는 샘이 두 개나 있다. 편리한 샘을 마다하고 외곽에 숙영하는 프롤리나트라니, 전부 나쁜놈은 아닌 모양이다.
“알라, 알라!”
일몰 샬라트를 진행하는 게릴라들의 웅얼거림이다. 푸른색 간두라를 입은 이맘이 기도 의식을 이끌고 있었다. 펠트 천으로 지붕을 씌운 천막 다섯 동, 질서 정연하게 도열한 차량과 낙타, 경건하게 기도중인 게릴라들. 제대로 질서가 잡힌 군대다.
“머릿수가 왜 이리 많아!”
블랙맘바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기도중인 인간이 무려 이백 명이다.
“……알라후 아끄바르~”
간절한 기원의 울림이 묘한 감정을 촉발시켰다.
‘저들은 무엇이 저리도 간절할까? 진정 신의 존재를 확신하고, 신이 응답할거라 믿고 있을까?
전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다.
‘이놈아, 부처가 어디 있어. 부처는 니가 맹그는 거여.’ 스승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다.
“헛, 저건 소바막!”
잠시 곁 생각에 잠겨있던 눈이 잔뜩 커졌다. 도열된 트럭 사이에 끼여 있는 경트럭 3대, 소바막이다. 지휘 차량인 P4지프도 보였다.
눈을 감았다 떴다. 시력에 문제가 생겼나 했지만 다시 봐도 르노사의 경트럭인 소바막이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소바막과 P4는 육군 단위부대에 보급된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장비다. 외부로 빠져나갈 물량도 없거니와 프랑스 당국이 미치지 않고서야 프롤리나트에 제공할 리 없다.
언 듯 떠오른 가능성은 조공으로 나선 작전팀 4개조다. 변죽만 올리고 철수하기로 계획된 팀이지만 전장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해도 놀랍지 않다.
“백견불여일행이라, 모르면 손발을 움직여야지.”
블랙맘바가 바람결에 풀리는 실오라기처럼 스르륵 숙영지로 스며들었다. 거칠고 힘이 넘치던 청파보가 바람처럼 부드러워졌다.
쉬이이- 한 줄기 바람이 천막 동 다섯 개를 휘돌았다.
천막은 텅 비었다. 게릴라 진영을 빠져 나가던 블랙맘바가 흠칫했다. 소바막 적재함 안쪽에 처박힌 인간이 보였다. 손발을 쇠사슬로 묶인 군인이다.
‘헉, 저 인간은?’
블랙맘바의 눈이 잔뜩 커졌다. 사각 얼굴과 카이젤 수염이 눈에 확 들어왔다. 중대장 삐에프다.
“중대장이 왜? 저 인간도 뒤통수를 맞았나?”
놀란 그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꼴이 말이 아니지만 느끼함의 잔재가 남은 삐에프다. 탄약 박스에 얼굴이 가려진 다른 사람도 체형이 낯익었다.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납득이 안 되면 물어 보면 된다. 적재함에 슬쩍 올라서자 삐에프가 움찔했다. 웃음이 픽 나왔다. 겁먹은 몸짓이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상대의 파장이 감지되었다.
블랙맘바가 리탐을 풀어 얼굴을 드러냈다.
“브 브 브!”
삐에프의 눈이 귀신을 본 듯 커졌다. 브브 소리만 연발했다. 터무니없는 장소에서 황당한 상태로 생각지 못한 인간을 만났다. 얼이 쑥 빠진 그는 말을 잊었다.
“쉿!”
블랙맘바는 다시 리탐을 꼼꼼히 감았다.
삐에프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이놈이 어리바리하던 피레네의 오리 새끼가 맞나?’
놀람이 지나자 또 다른 놀람이 다가섰다. 사람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마치 거대한 절벽을 마주한 기분이다. 새끼 오리가 아니라 독수리, 아니 익룡이다.
“중대장님, 설명이 필요하다.”
목소리마저 중후하게 변했다. 진실은 흙먼지를 많이 흡입한 탓에 생긴 성대 결절이다.
“고립된 너희들을 구출하려고 왔다.”
삐에프는 한마디 던지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중대장 체면이 말이 아니다.
“헐! 우리를 구하러 와?”
블랙맘바가 헛바람을 불어냈다. 되지엠 랩을 몽땅 투입해도 어려운 싸움이다 용병 몇으로 어쩌겠단 말인가! 뻔 한 그림이 그려졌다. 도대체 뭘 믿고 사헬에 발을 들여 놓았는지 묻고 싶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다.
“알라, 알라! 알라후 아끄바르!”
거대한 울림이 삐에프의 곤란함을 건져 주었다.
“블랙, 일몰 샬라트가 끝났다. 일단 피해라.”
삐에프가 안달했다. 구타 2인방으로 명칭이 바뀐 미이라 콤비가 올 시간이다. 블랙맘바는 태연했다.
“신경 쓸 것 없다. 걸을 수 있나?”
“다리가 부러졌지만 지팡이가 있으면 걸을 수 있다.”
블랙맘바의 눈길이 부목을 댄 왼쪽 다리에 머물렀다.
“민폐를 끼치는군. 저 양반은?”
“발부아다.”
“헐, 소대장님까지.”
여러 번 놀라는 블랙맘바다.
“정신을 잃었지만 부상은 없군.”
물론 블랙맘바식 부상이다. 팔이 부러지고 두개골이 깨진 정도는 긁혔다고 표현한다.
“놈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했다.”
삐에프는 짝퉁 칸마에 실망한 놈들이 다구리를 놓았다는 말을 꿀꺽 삼켰다.
“다른 동료도 있나?”
“열 명이 사로잡혔다. 셍티엥 중사, 브로닌 병장, 막심 상병, 그리고 중상자가 다섯이다.”
“헐! 어쩐다.”
블랙맘바는 난감했다. 자신 혼자라면 언제라도 빠져 나갈 수 있지만 졸지에 혹 덩어리가 주렁주렁 달렸다.
“마싸-우 알카이르, 칸마.(칸마, 안녕)”
갑자기 들려 온 인사말엔 진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쉭- 순간 이동을 한 블랙맘바가 일타 이피, 적재함에 오르려는 미이라 1, 2의 목을 틀어잡았다.
목을 잡혀서 무 뽑히듯 적재함 위로 끌어 올려 진 미이라 1,2는 백이 흩어지고, 혼이 이승과 저승을 오갔다. 억센 손아귀에 목줄을 틀어잡힌 얼굴이 자주 빛으로 물들었다. 산소 부족이다. 블랙맘바가 살짝 손아귀를 풀어 주었다.
“끄으윽!” 이번엔 급박하게 산소를 보충하느라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목은 뇌로 통하는 신경망이 지나는 통로다. 타격을 받은 미이라 1,2는 소금뿌린 민달팽이 꼴이 되었다.
“근데 이놈들이 칸마 왕림을 어떻게 알았지?”
블랙맘바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평범한 게릴라가 자신의 행적을 어떻게 알았을까?
삐에프는 쓴 웃음을 지었다. 칸마로 오해받은 저간의 이런저런 얼척없는 상황이 주르륵 스쳐갔다. 치욕, 분노, 민망함, 온갖 감정이 치밀어 올라 눈물이 찔끔 나왔다.
블랙맘바가 쿠크리를 뽑았다.
정신을 집중하자 우르르 일어난 공진이 칼날로 밀려들어갔다. 칼날이 웅하고 진동했다. 쉬릿 빛이 번쩍였다. 쩌엉- 새끼손가락 굵기의 쇠사슬이 싹둑 잘려 나갔다.
“허억!” 삐에프는 쇠사슬의 재질이 못내 의심스러웠다.
놀람을 뒤로하고 삐에프가 물었다.
“어떻게 할 셈이냐?”
“놈들이 대장을 잡았으니 나도 대장을 잡는다.”
태연한 대답에 삐에프의 얼굴이 썩어문드러졌다. 적진에서 할 농담이 아니다. 아무리 놀라운 능력을 지녀도 인간이다. 물 마른 웅덩이에서 오글대는 올챙이처럼 빽빽히 몰려있는 게릴라들이 보이지도 않는단 말인가?
블랙맘바가 발부아 중위의 뺨을 철썩 철썩 때렸다. 깨어 날 줄 몰랐다. 뒷머리에 피가 엉겨 붙어 있다. 개머리판으로 뒤통수를 찍힌 흔적이다.
“에혀, 이 양반은 또 어쩌나?”
찬물이라도 한 바가지 덮어씌우고 싶지만 사막에 찬물은커녕 더운 물도 없다.
“중대장님, 저놈 옷으로 갈아입어라.”
삐에프가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전투복을 벗고 미이라의 간두라와 샬로와르를 벗겨 입었다. 얼굴을 리탐으로 둘둘 말자 삐에프는 미이라3이 되었다. 전투복은 미이라2에게 입혀서 처박아 두었다.
“대장을 만나러 간다.”
미이라3이 된 삐에프가 블랙맘바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미친놈을 보는 눈빛이다.
대책 없는 저 자신감은 무엇인가?
삐에프는 블랙맘바가 열사병에 걸리지 않았는지 의심스러웠다. 사헬을 한 달 이상 헤메고 다녔으니 충분히 발병할 만 하다. 블랙맘바는 삐에프가 어떤 생각을 하던 관심이 없었다. 번쩍들어서 적재함에서 내려 놓았다.
블랙맘바가 휘적휘적 중앙 막사로 걸어갔다. 삐에프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AK를 지팡이 삼아 절룩거리며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은 게릴라 복장과 다를바 없다.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키갈리와 지도를 들여다보던 사우드가 고개를 들었다.
“뭐냐?”
“대장이 아닌 놈은 조용히 해라.”
난데없는 프랑스어에 사우드가 번개같이 권총을 뽑았다.
핏- “윽!” 손목에 수전이 박힌 사우드가 권총을 툭 떨어뜨렸다. 사우드가 손목을 움켜쥐고 물러났다.
“내 부하가 아니군. 너는 누구냐?”
키갈리가 유창한 프랑스어로 물었다.
“당신이 만나고 싶어 하던 칸마다.”
삐에프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뭣?” 쉬악-
번쩍하고 칸자르가 날아들었다.
“헉!” “엇!”
키갈리와 사우드가 동시에 헛바람을 토했다. 빗살처럼 날아간 칸자르가 블랙맘바의 미간 앞에서 손에 얌전히 잡혀 있었다. 마치 손에 쥐어준 듯했다.
뻑- 칸자르가 번쩍하고 날아와 테이블에 박혔다.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키갈리가 들여다보던 지도의 바타주 베르달레에 정확히 꽂혔다.
“손님으로 왔다. 차 한 잔쯤은 대접받고 싶다.”
잔잔한 목소리다.
“망할 놈들, 경계를 서는 거야 자는 거야 이봐.”
“그만, 모두 물러가라.”
키갈리가 부관을 제지하고, 경호원들을 물렸다.
“사우드, 손님이다. 의자를 내 드려라.”
키갈리는 감동했다.
칸마다. 기적처럼 진짜 칸마가 나타났다. 어떻게 잠입했는지 모른다. 부하들을 탓하고 싶지 않았다. 침입자는 단 두 수로 칸마임을 증명했다. 아니 바위에 눌린 듯한 압박감만으로 충분했다.
“만나서 반갑다. 3군단 3대대장 키갈리 중령이다. 아니 이젠 투아레그 전사 키갈리다.”
블랙맘바는 행간을 읽었다. 투아레그족 대표 신분으로 자신을 대하겠다는 의사 표시다.
“블랙맘바다. 당신들은 칸마라 부른다.”
“으음, 역시!”
키갈리가 차를 우려냈다.
“고맙다. 투아레그 전사의 차를 받다니 영광이다. 알라후 아끄바르!”
블랙맘바는 입을 가린 리탐을 살짝 내리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찻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키갈리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완벽한 투아레그 임모하그의 예법이다. 두 사람은 말없이 뜨거운 차를 음미했다.
블랙맘바는 한 순간에 변한 자신을 실감했다. 전에 없던 여유로움이다. 모래폭풍 속의 깨달음이 아니었으면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오아시스를 피바다를 만들었을 것이다. 죽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무쟁(無爭)이 상수(上數)다. 도덕경에도 나오는 말이다.
상대를 존중해야 존중받을 수 있다. 투아레그족의 예법은 옴부티와 함께 지내면서 눈동냥 해 두었다.
“당신은 다른 인민군과 달리 오아시스 외곽에 숙영지를 마련했다. 명예를 아는 투아레그 임모하그다. 주민에게 피해를 주었으면 바로 공격했을 것이다. 당신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키갈리의 입이 찢어졌다.
“아즈라일의 존경을 받다니 가문의 영광이다. 나 역시 전사중의 전사인 당신을 존경한다.”
키갈리와 블랙맘바의 분위기가 십년지기처럼 화기애애해졌다.
꾸어 논 보리자루가 된 삐에프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아니 할 말을 잃었다. 키갈리는 자신의 부하를 무더기로 죽였다. 어쌔신의 단도에 생선처럼 목을 따인 부하들이 눈에 선했다.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놈에게 존경이라니, 억장이 무너졌다.
“블랙맘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나? 놈을 당장 죽여라.”
얼굴이 붉어진 삐에프가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명령에 따라 죽고 죽이는 군인이다. 군인에게 복수는 없다. 작전이 있을 뿐이다.”
삐에프는 정수리에 찬물을 덮어쓴 듯 서늘했다.
“쎄, 모베!”
두 번째 듣는 형편없다는 평가, 사우드의 한 마디가 가슴을 푹 쑤셨다. 되지엠 랩 장교로서 이 무슨 창피란 말인가!
“키갈리, 당신은 프롤리나트인가? 투아레그인가?”
“나는 투아레그 임모하그다.”
키갈리는 블랙맘바의 물음에 당당히 대답했다. 프롤리나트와 적대시할 생각은 없지만 이미 독립하기로 마음먹은 몸이다.
“이야기가 쉬워지겠군. 나는 내 동료들을 돌려받기를 원한다.”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나?”
“하비브를 돌려주겠다.”
“하비브!” “헉!” “허억!”
비명 같은 탄성이 각자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하비브님이 오히려 당했군. 역시 당신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