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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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하비브의 최후4
키갈리는 정말이냐, 믿지 못하겠다, 따위의 말을 하지 않았다. 의심과 회의는 대전사에 대한 모욕인 동시에 자신의 명예에도 흠집이 생긴다.
정신을 못 차리는 인물은 삐에프다.
“블랙맘바, 엄청난 공훈이다. 레종 도뇌르는 따논 당상이다. 나는 포로로 남아도 좋다. 도살자는 본부로 압송해야 한다.”
“아 놔, 이 양반 삽질에 뒷북이 예술이구먼.”
블랙맘바가 뒷목을 움켜쥐었다.
알제리에 근무했다기에 통역이나 부탁하려고 데려왔더니 아랍어가 꽝이다. 입 다물면 2등은 하련만 눈치 없이 모래만 팍팍 뿌리는 진상이다.
블랙맘바가 슬며시 다가서서 귓가에 속삭였다.
“중대장님, 한 마디만 더 하면 디지게 맞습니다.”
“아니, 이 자식이, 컥”
버럭 하던 삐에프가 정신없이 뒷걸음쳤다. 거대한 괴수가 뿜어내는 살기, 백상아리 아가리에 통째로 씹히는 공포가 온 몸을 휘감았다.
언어는 대뇌에서 만들어진다. 언어중추, 운동신경을 거쳐 구음근(構音筋)이 조절하는 성대가 토출한다. 말문이 막히는 경우는 대뇌의 언어조합 연산능력 상실이다. 구음근에 문제가 생기지 않더라도 대뇌가 극한 충격을 받으면 실어증에 걸리게 된다. 연산 장치가 중단된 삐에프는 눈알만 굴렸다.
키갈리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부하들 중에 맹목적으로 하비브를 따르는 인간들도 적지 않다.
“블랙맘바, 투아레그족은 투아레그의 길을 가기로 했다. 하비브는 명예를 모르는 도살자다. 나는 썩은 달걀을 받고 싶지 않다. 당신 제안을 거부한다.”
키갈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사우드를 돌아보았다. 손목 상처를 치료하고 돌아 온 사우드가 빙긋 미소 지었다.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으음!”
블랙맘바가 침음했다. 생각과 전혀 다른 전개다. 포로 교환을 염두에 두었던 그로선 난감한 노릇이었다. 깊이 가라앉은 눈빛이 키갈리를 향했다.
‘이놈은 배신의 아이콘인 여포의 환생인가? 아니 토목지변이 맞겠군.’
양아버지 전문 킬러 여포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토목지변은 오이라트와 싸우던 명나라 6대 황제 정통제가 토목에서 포로가 된 사건이다. 오이라트의 에쎈이 정통제 송환을 제의했지만 아우인 주기옥은 이를 묵살하고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경태제다. 토목지변이라 함은 정통제 주기진이 포로로 잡히고, 동생인 주기옥이 형의 송환을 마다하고 본인이 황제에 오른 사건까지다.
키갈리 역시 주인이 사로잡히자 자신이 주인이 되려는 놈이다. 뻐꾸기 같은 놈이다. 하비브를 병신으로 만들어 건네주려던 계획이 무산된 블랙맘바는 김이 팍 샜다.
‘이놈을 주기옥처럼 만들까.’
에쎈은 정통제를 조건 없이 송환하는 잔머리를 굴렸다. 북경 조야는 정통제파와 경태제파로 쪼개져서 소란이 벌어진다. 결국 주기옥은 폐위되고 암살당한다. 하비브에게 키갈리의 말을 전해주고 풀어주면 볼만할 것이다.
“몽땅 죽여 버려야 하나?”
블랙맘바의 눈동자 안쪽에서 선홍색 기운이 스믈스믈 번져 나왔다. 파란트로푸스의 야성이다. 블랙맘바의 트라우마가 배신과 뒤통수치기다. 파란트로푸스의 야성은 포악함과 정면돌파다. 포로가 된 동료들 상당수가 죽겠지만 그것도 제 팔자다.
“나는 더 값진 보상을 받고 싶다.”
블랙맘바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키갈리의 동공을 파헤쳤다. 머릿속을 푹 쑤시고 들어오는 두려움에 키갈리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사우드와 삐에프가 눈에 들어왔다. 사우드는 미소를 짓고, 삐에프는 울 듯한 표정이다.
‘블랙맘바의 상관이라는 놈은 전투력이 낮은데다 시세도 읽을 줄 모르는 놈이군.’
“쎄 모베!(형편없군!)”
키갈리는 삐에프를 한껏 비웃어 자신의 두려움을 털어냈다. 삐에프가 일 년전 블랙맘바를 테스트할 때 힘렛 병장에게 했던 말이다.
“내가 원하는 보상은 바로 당신 블랙맘바다. 나는 당신과 손을 잡고 싶다. 당신의 강력한 전투력도 존경하지만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에 반했다.”
“당신은 아메노칼(Amenokal)인가?”
블랙맘바가 불쑥 물었다.
“많은 것을 아는군. 나는 티베스티 아띠벨(투아레그족의 작은 집단인 타워시트가 모인 큰 집단)의 아메노칼이다. 당신이 나와 손을 잡으면 니제르의 빌마와 티베스티를 잇는 투아레그 왕국을 건설할 수 있다. 사헬 일대의 투아레그까지 모으면 40만이다. 당신은 왕이 된다.”
“나는 왕의 재목이 못 될뿐더러 소련을 등을 업은 리비아가 코밑에 들어서는 투아레그 왕국을 넋 놓고 구경하겠나?”
“당신의 명성과 능력이면 사헬의 부족들을 모두 끌어 들일 수 있다. 그들은 목숨을 위협받지 않고 편하게 살수만 있다면 우리를 지지할 것이다. 리비아와 챠드 사이에 완충지역을 담당하면 국제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블랙맘바는 열변을 토하는 중년 투아레그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자식이 삼국지를 열 번쯤 읽었나?’
삼분지계를 논하는 꼴이 제갈량을 닮았다. 눙치고 어르는 재주는 조조와 유비를 섞은 꼴이다. 뻐꾸기가 아니라 천년 너구리다. 조심해야할 인간이다.
“나는 늙은 투아레그 하인 한 명 때문에 쩔쩔매는 평범한 인간이다. 그 이야기는 없던 것으로 한다.”
블랙맘바가 딱 잘라 거절하자 사우드가 나섰다.
“블랙맘바님, 언제까지 프랑스의 칼로 살아갈 작정입니까? 수백 명의 미인을 거느린 하렘의 주인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만든 최고의 음식을 날마다 골라 드시고 싶지 않습니까? 중국식의 만한전석(满汉全席)은 사막 사나이의 로망입니다.”
블랙맘바의 입에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하렘을 만들어서 혜영을 집어넣어 볼까. 엄마가 다듬이 방망이 들고 설치겠지.’
“사우드, 나는 단 한명의 여자를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좁은 가슴을 가진 남자다. 음식은 우갈리 한 조각과 야자즙 한잔이면 족한 사람이다.”
블랙맘바는 잠시 말을 끊고 키갈리를 노려보았다.
“한 가지는 확실히 말 해 줄 수 있다. 당신들 투아레그족의 첫 번째 문제는 선민 의식과 피해 의식이다. 당신들 족속은 지금도 샴시르를 들고 캐러밴을 약탈한다. 과거의 노예 제도를 그리워하고, 실제로 노예를 부리고 있다. 유럽 제국이 당신들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은 이유가 호전성 때문이지 않은가?”
“음! 문화적 사회적 인식의 차이가 커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등급이 있다. 고귀한 혈통은 태생부터 다르다.”
“인간의 조건은 다른 인간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인식할 때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은 투아레그의 아메노칼로써 나는 용병으로써 자신의 위치에 충실하면 된다.”
키갈리의 얼굴이 흐려졌다. 무력만 강한 인간이 아니다. 지식수준도 높고 정신력도 강고하다. 회유될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당신을 적대시 하고 싶지 않다. 친구는 되지 못했지만 좋은 이웃으로 지내고 싶다.”
“당신 같은 지도자가 있으니 투아레그족의 방황이 오래가지 않겠군. 당신의 요청을 받아들이겠다. 알라후 아끄바르!”
블랙맘바가 리탐을 풀고 얼굴을 드러냈다. 블랙맘바가 오른손을 내밀자 키갈리가 탁탁 두 번 손바닥을 두드렸다. 서로를 인정하고 이웃이 되었다는 투아레그식의 표현이다.
“블랙맘바, 나도 부탁이 있다.”
키갈리가 칸자르를 뽑아들었다. 블랙맘바가 고개를 끄덕이고 쿠크리를 뽑아들었다. 투아레그 임모하렌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른다고 들었다. 수백 년 동안 익히고 발전시켜온 격술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물론 방귀깨나 뀐다는 놈은 하나같이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안다. 이놈도 마찬가지다.
어둠이 덮인 사막에 하현달이 걸렸다.
“우오오, 키갈리, 키갈리!”
“임모하렌 키갈리!”
횃불을 든 게릴라들이 함성을 질렀다.
키갈리는 5분이 지나도록 꼼짝도 못했다.
상대는 쿠크리를 든 왼손을 축 내려뜨리고 아무런 방어 자세 없이 서있다.
그는 다시 눈을 비볐다. 세 번째다. 공격하려고 할 때마다 상대가 신기루처럼 흐릿해졌다. 공격의지를 풀면 태산 같은 압박감이 전신을 눌러왔다.
“과연, 아즈라일!”
키갈리는 승부욕을 버렸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인간이다. 이긴다는 마음을 버리고 한 수 배운다는 생각을 하자 몸이 풀렸다.
키갈리의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투아레그가 발전시켜온 무템버다. 한 걸음 전진할 때 마다 좌우로 한 족장을 물러선다. 거리를 좁히면서 상대의 타격점을 흐리는 보법이다. 경지에 달하면 좌우로 물결처럼 흔들린다.
“저렇게 움직였군!”
삐에프가 감탄했다. 맞붙을 때는 전혀 몰랐다. 멀리서 관전하니 자신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저 이상한 발걸음에 타점을 잡지 못하고 헛손질만 했던 것이다.
쑤앙- 긴 다리가 무지막지한 힘으로 하체를 후렸다. 상대의 중심이 흐트러지는 순간에 칸자르가 상체를 공격한다. 찌르기 공격을 예상한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드는 키갈리의 필살기다.
꽝- “으윽!”
블랙맘바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체를 쓸어 찬 키갈리는 뼈가 부서지는 고통에 신음을 뱉었다. 인간의 다리가 아니라 철기둥이다.
쩍- “크악!” 손바닥에 가슴을 통타당한 키갈리가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단 일합이었다.
쿵쿵쿵 밀려나는 키갈리의 등을 사우드가 받쳤다. 덕분에 땅바닥에 쓰러지는 창피를 겨우 면했다. 키갈리가 사우드를 뿌리쳤다.
“사정을 봐줘서 고맙다.”
블랙맘바는 빙긋이 미소만 지었다.
“자 이제 내 동료들을 보러갈까.”
“칸마 아니 블랙맘바님, 유감스럽게도 중상자 다섯은 사살했습니다.”
사우드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뭐라고! 이 야만인 새꺄, 포로를 죽여. 네놈은 제네바 협약도 모르나.”
삐에프가 얼굴을 붉히며 사우드를 삿대질 했다. 삐에프는 아직도 사헬의 야만성을 몰랐다.
“미안지만 그들은 중상자다. 이곳은 프랑스 야전병원이 없다.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목숨이다. 나는 자비를 베풀었다.”
사우드가 삐에프에게 쏘아 붙였다. 찌질한 백인 놈이 대전사에 앞서 나대는 꼴부터가 빈정을 상하게 했다.
“뭐 뭐라고, 네놈은 일급 살인자다. 파리 고등 재판소, 아니 국제사법재판소에 세우겠다.”
삐에프가 펄펄 뛰었다.
‘아이고, 이 인간이 나를 미치게 만드네.’
블랙맘바는 죽을 맛이었다.
“중대장님, 여기는 사헬이고 서로 적으로 만났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비켜라 블랙맘바, 망할 새끼들을 죽여 버리겠어.”
삐에프가 목발 대용으로 짚고 있던 소총을 들어 올렸다.
퍽- 묵직한 타격 음이 울렸다. 블랙맘바가 삐에프의 뒷목을 수도로 내리쳤다.
“존만아, 나도 가슴이 아프다고. 그래서? 니 목숨도 포기할거여. 사헬에서 니놈도 한 달쯤 굴러봐. 사우드의 말이 이해될 거여.”
까무룩 의식이 죽어가는 삐에프는 의문이 들었다.
‘존만아는 뭐지? 니기미 떠그럴같은 극악한 한국 욕설 같은데.’
“블랙맘바, 프롤리나트가 해체되더라도 추적은 멈추지 않는다. 특히 FAP는 악착같이 덤빌 거다. FAP 군벌들이 모여서 당신의 목을 딴 사람이 수장이 되기로 합의했다.”
“허이구 징한 새끼들, 이등병 목을 어따 쓸라고……. 나도 한 가지 이야기를 해주지. 내 하인이 투아레그의 임모하렌이다. 하인을 봐서라도 당신이 적대시 하지 않으면 나도 적대시 않겠다. 아니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
“고맙다!”
키갈리가 고개를 숙였다. 대전사의 한마디는 태산보다 무겁다. 칸마의 조력을 받을 수만 있다면 투아레그족의 자치구 설립은 한결 쉬워질 것이다.
자정이 넘은 시각, 낙타 여섯 마리가 보루꾸 오아시스를 벗어났다.
낙타 등에 포로로 잡혔던 삐에프 중대장, 발부아 소대장, 셍티엥 중사, 막심 상사, 브로닌 병장을 태웠다. 열악한 식사와 구타로 인해 이들은 이틀 만에 걸레가 되었다. 블랙맘바는 동료들의 신음소리에 아랑곳 않았다. 저딴 상처에 끙끙거릴 정도면 차라리 죽는게 낫다. 그는 이웃이라도 다녀오는 양 두목 낙타를 타고 밤의 정취를 즐겼다.